가회성당 자유게시판

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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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 [novita] 쪽지 캡슐

2003-09-02 ㅣ No.3080



우리 어머니는 세상 물정에 밝으셔도 컴퓨터는 도통 모르신다. 
무척 비싸다는 것, 어렵다는 것, 딸아이가 공부한다고 
늘상 방에 처박혀 마주하고 있는 물건이라는 것. 
그리고 컴퓨터를 마주하고 있을 때에 
딸아이 곁에 가면 날카롭게 화를 내더라는 것. 
이것이 아마도 컴퓨터에 대한 어머니의 인상일 것이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같은 업종에서 일하는 아저씨들이 
하나 둘 인터넷 사업을 시작하면서 돈을 조금씩 번다는 소문을
들으셨나보다. 
그러면서 하나 둘 엄마에게서 손님을 뺏아가자 
급기야 큰 아들을 시켜 컴퓨터를 하나 장만하셨다. 

어머니에게 인터넷을 가르쳐 드리기로 했다. 
한동안 어머니에게 자주 전화가 왔다.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가 꺼지지 않는다, 모니터가 안 들어온다, 
그리고 이상하게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등등 

어머니는 RESET버튼과 POWER키를 헷갈리셨고 
모니터에 따로 전원을 켜야 한다는 것을 자주 잊으셨다. 
그리고 스피커는 언제나 전원을 켜두라는 
소리도 좀처럼 듣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과연 모니터 속의 깨알 같은 글자를 
읽으실 수나 있을까 걱정했다. 행여 보이지도 않으면 
가르쳐 드릴 수가 없으니까. 
올해로 쉰일곱인 나의 어머니는 곧잘 글씨를 보셨다. 
내가 가르쳐드리면 곧잘 따라하시곤 했다. 
처음엔 어디서부터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왜 사이트마다 비밀번호와 아이디가 다르고 
이걸 입력해야 가입할 수 있는지 
일일이 설명하기란 너무나 힘든 과정이었다. 

어머니의 메일 계정을 만들면서 
어머니의 아이디를 만들어야 했다. 
엄마 좋아하는 색깔이 뭐야? 초록색. 
초록나라 어때요? 싫다. 
엄마 그럼 좋아하는 꽃은 뭐야? 난초 좋아해. 
그럼 난초 어때? 아니다. 모나리자로 하자. 
그렇게 해서 엄마의 아이디는 모나리자가 되었다. 
그리고 비밀번호로는 엄마가 좋아하는 난초를 
영어로 쓴 스펠을 불러주셨다. 
비밀 번호를 찾을 때에는 특별한 질문이 필요했는데 
나는 그 중에 있던 질문 중에 기억하기 좋은 것으로 ‘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이라는 질문을 택하자고 했다. 
그리고 답으로 내 이름을 적자고 했다. 
엄마는 거기에 있는 여러 가지 질문들을 
꼼꼼하게 오랫동안 훑어보시더니 ‘
기억에 남는 선생님은?’이라는 질문을 누르셨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이름을 키보드를 하나하나 훑으시면서 천천히, 
그리고 차곡차곡 집게손가락 두 개를 번갈아 쓰시며 쳐 넣으셨다.

나는 워낙 쉬운 것이고 한 번만 가르쳐 드리면 
금방 하시리라는 생각에 진도를 나가면, 
꼭 반복해서 저 혼자 해보겠다고 우기셨다. 
그리고 내가 답답해서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동안 
어머니는 꼭 다시 컴퓨터를 켜시고, 
인터넷에 접속하시고 내가 가르쳐드린 사이트에 접속 한뒤 
처음부터 꼭 같이 다시 하셨다. 
언제나 컴퓨터를 켜는 것부터 다시였다. 

엄마는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는 것까지 배우려 하셨다. 
난감했다. 한글의 자모음의 체계를 이해하고 
아래아를 이용해서 작성하는 것이 핸드폰 문자인데 
과연 어머니가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침을 꼴딱꼴딱 삼키고 물을 들이키며 방법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엄마는 금방 알아들으시고 몇 가지 예시 문을 금방 작성하셔서 
내 핸드폰으로 보내셨다.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고 지쳐서 들어오면 
이모에게 인형이 춤도 추고 노래도 나오더라는 
캐릭터메일을 받았노라고 꼭 같이 보내도록 가르쳐달라고 조르셨다. 

조금 있으면 예순이 되는 150센티가 약간 넘으시는 우리 엄마가 
그렇게 잘 하시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했다.

내가 엄마에게서 자라온 지 스물 두 해가 지나서야 
어머니가 좋아하는 색깔이 초록색이라는 것, 
난초를 좋아하신나머지 영어로 난초의 스펠도 알고 계셨다는 것,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딸의 이름을 넣기보다 은사님에 대한 질문으로 
고집스레 바꾸시고 그 분의 이름을 넣으시는 것을 보았다. 

나는 엄마의 세계가 생각보다 훨씬 단단하고 
나와 같은 다양한 욕망과 추억들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엄마의 방보다 나의 방이 훨씬 더 넓다고 생각했고 
엄마만의 별개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총명하시고 
욕심이 많은 분이라는 것을 컴퓨터를 가르쳐드리면서 알고있다. 

엄마는 내가 걷는 법, 뛰는 법, 계단을 오르내리는 법, 
숟가락을 오른 손에 쥐고 밥을 먹는 법, 
오른 손을 높이 들고 길을 건너는 법을 가르치셨다. 
내가 스물세살이 되기까지 이런 사소한 것들을 
일일이 가르치시느라 바쁘고 욕심 많고 
총명하신 우리 어머니가 참을성 있게 해왔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찡하다. 

나와는 너무나 오랫동안 침묵의 강으로 멀어진 어머니. 
먼 곳에 떨어진 섬...

그러나 이제 어머니는 멀리 떨어져서도 딸과 채팅을 할 수 있고, 
메일도 보낼 수 있고, 문자도 보낼 수 있게 됐다. 
어머니는 그렇게 한달음에 
딸에게 가는 다리를 놓고 싶었던가보다.


출처/국민일보 게시판
글쓴이/라면머리

♬ 러시아팝....당신이 나에게 잊혀졌을 때 Ф.КИРКОРОВ и М.РАСПУТИНА, 끼르꼬로프와 라스뿌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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