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대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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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철 [haeminn] 쪽지 캡슐

2004-07-11 ㅣ No.3173

 
한 떨기 무궁화로 피어난 님이시여
 

 후배 사제들의 첫 미사 참석을 위해 남도를 한바퀴 돌았습니다. 새사제들을 향한

   '아버지 신부님들'의 진심어린 충고말씀은 아직도 제 귓가를 울리고 있습니다.

    다른 모든 사제들에게도 훌륭한 삶의 지침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고해소 안에서 화날 일이 있더라도 절대 화내지 마십시오.

  한번 혼난 신자들이 다시 고백소를 찾겠습니까? 사제로서 가장 좋은 보속이려니 생각하시고

   부디 꾹꾹 눌러 참으십시오."

 "혼배성사 때도 화내지 마십시오. 가끔 신랑 신부가 늦게 도착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긴장한 나머지 실수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절대 화내지 마십시오.

  당사자들에게는 일생에 한번 있는 가장 큰 축복의 순간이 아니겠습니까?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인내하십시오."

 "사제는 빗자루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빗자루가 자신에게 주어진 몫인 마당을 다 쓴 후에

   '내가 이만큼 열심히 일했는데!' 하면서 안방 한가운데를 차지한 것을 보셨습니까?

    빗자루는 빗자루일 뿐입니다. 신부님, 늘 안방 한가운데 자리는 예수님께 내어드리고

    구석진 자리에 서 있는 겸손한 빗자루로 사십시오."

 참으로 가슴을 파고드는 말씀, 한평생 좌우명으로 삼아도 좋을 말씀이었습니다.

   신부님들 말씀의 요지는 결국 겸손한 사제, 신자들을 위해 희생하고 목숨을 바치는 사제,

   다시 말해서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김대건 신부님 같은 사제가 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첫미사를 끝내고 신자들에게 축복을 드리는 새사제들을 바라보며 김대건 신부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새사제 신분으로 사제생활을 마감한 분이지요.

 김대건 신부님과 관련된 성가를 따라 부르고 있노라면 언제나 마음 한구석이 찡해옵니다.

   비장한 마음을 감출 길 없습니다.

 "동지사 오가던 길 삼천리 트였건만, 복음의 사도 앞에 닫혀진 조국의 문, 겨레의 잠 깨우려

    애타신 그의 넋이, 이역의 별빛아래 외로이 슬펐어라."

 사제가 되기 위해 마카오로 떠난 15세 어린 나이의 김대건 신학생에게 펼쳐졌던 상황은

   장밋빛 탄탄대로가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용기가 가상했고, 꿈은 컸지만 중학교 2학년 나이,

   여린 소년의 눈앞에 비춰진 현실은 암담하기만 했습니다. 낯설은 이국 땅에서의 기약 없는

   유학 생활,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낯선 언어, 낯선 풍습 안에서 살아가던 어린 소년은

   숱하게도 많은 밤들을 이역의 별빛 아래 눈물지으며 보냈겠지요.

 그 숱한 슬픔의 나날을 어렵사리 극복하고 사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님은

   안타깝게도 입국하자마자 오래 지나지 않아서 당국에 체포되고 맙니다.

 순교 20일전에 주교님 앞으로 쓰셨던 김대건 신부님의 옥중 서한에 소개된

   어머님과 관련된 구절은 읽는 이의 마음을 '짠하게' 만듭니다.

 "저는 감히 주교님께 저의 어머니 우술라를 부탁드리옵니다.

   저의 어머니는 10년 동안 못 본 아들을 불과 며칠 동안 만나 보았을 뿐 또 다시

   홀연 잃고 말았으니, 주교님께 간절히 바라건대 슬픔에 잠긴 저의 어머니를 잘 위로하여

    주십시오."

 1년 1개월, 그 짧았던 김대건 신부님의 사제 생활은 그야말로 '환난과 역경,

   박해와 굶주림, 헐벗음, 위험과 칼' 아래의 절박한 삶이었습니다.

 관헌으로 압송되어온 김대건 신부님은 마치 수난 당하시는 예수님처럼 극도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옷이 벗겨지는 치욕을 당합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매를 맞았고, 조롱을 당했으며, 짐승과도 같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런 극도의 고통을 김대건 신부님은 얼마나 의연하게 잘 견뎌내었는지 다음의

   옥중서간문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제게 이런 형벌을 주신 관장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관장께서 제게 내리시는

  이 형벌을 통해서 저는 더욱 하느님 사랑을 느낍니다. 우리 하느님께서 관장 나리를

   더 높은 관직에 올려 주시기를 빕니다."

 관헌들이 여덟 자나 되는 긴 칼을 가져오자 김대건 신부님은 즉시 그 칼을 잡아

   자신의 손으로 스스로의 목에 대니, 둘러섰던 모든 사람들이 크게 웃었습니다.

 죽음의 칼날 앞에서도 의연했던 김대건 신부님, 죽음의 칼날조차도 주님께서 주시는

  것이려니 생각하고 기꺼이 수용했던 김대건 신부님이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던 김대건 신부님,

   칼을 들이대는 사람에게조차 축복을 해주던 김대건 신부님이었습니다.

 

  평화신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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