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계동성당 게시판

작은 요정들은 어디로.(공부방폐쇄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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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2002-11-16 ㅣ No.5491

"선생님, 전 목요일이 기대돼요."

어느 날 한 아이로부터  무심코 들은 이 말 한마디 때문에 전 오늘도 산동네 공부방 언덕을 힘차게 오릅니다.

아! 벌써 7년이란 시간이 지났습니다. 매주 목요일이면 공부방을 찾은 지가...

 

 전 결혼 후 아이들을 키우면서 단순하게 반복되는  매일의 일상에 무료해 했었고 아이들과 남편이 전부인 제 생활, 그리고 결혼 전에 그려왔던 많은 꿈들, 잃어버린 제 정체성에 대한 상실감이 커 우울한 시간들이 자주 찾아오곤 했었습니다.

마치 물 속에 있어도 목말라 하는 것같이 이상적인 제 모습과 현실의 제 모습을 조화시키지 못하고 자긍심을 잃고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해결책으로 생활의 변화를 바꿔보고자 지금 말씀드리고자 하는 곳을 찾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산동네가 있어요. 그곳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부락을 이루고 함께 모여 살고 있는 곳입니다.

집도 판잣집에다가 온통 주변은 경사가 져 그 흔한 아이들의 자전거도 볼 수가 없는 그런 살기가 불편한 곳입니다.

부모님 모두가 일터에서 일을 나가기 때문에 아이들은 방과후에 방치된 상태로 놓여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을 모아서 학습지도와 인성지도를 위해 공부방이 세워졌습니다.

우연히 그곳을 알게 되었고 제 생활의 변화를 위해 그 곳에서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곳을 막상 가보니 아이들이 어찌나 산만하고 거친지 정말 혼란스러웠습니다. 수업시간만 되면 책상 밑으로 기어 들어가 나오지 않은 아이가 있는가 하면, 창틀에 매달려 바깥만 쳐다보는 아이, 설명을 하면 저 혼자 떠들고 있었던 시간이 더 많을 정도로 수업을 진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 당장 그만두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맡은 학년이 있으니 몇 달만 참아보자 하면서 계속 그곳을 나갔습니다. 수십 번도 더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봉사에 임했으니 제 마음은 늘 불편했었습니다.

 

그러나 공부방의 작은 요정들과 자주 만나게 되면서 서서히 제 자신이 변화되기 시작했지요.

 

첫 번째 요정이 되어준 그 아이는 부모님 모두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프셔서 정부에서 준 돈으로 다섯 명이 어렵게 살고 있었지요. 그 아이는 다른 아이와 다르게 늘 공부방에 오면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어  저에게 와서 수학을 열심히 배웠습니다. 처지가 딱해 학원에도 다닐 수 없는 그 아이는 학문에 대한 답답함을 저에게서 풀며 밝게 살아갔습니다. 나중엔 30분 일찍 오게 하여 수학지도를 더해 주었더니 실력이 날로 달라졌습니다. 그 아이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두 번째 요정이 되어준 한 아이의 일도 생각납니다. 가난한 살림이었지만   아이와 단둘이 살고 있는 할머니는 그  아이에게 새 옷을  오랜만에 사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옷을 한 번도 입어 보지도 못하고 실수로 재래식 화장실에 빠트린 것을 건져서 손으로 빨아준 일이  기억납니다.

 

 고마워 하는 그 아이의 눈망울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아이와 저와의 신뢰감이 깊게 형성된 일이기도 했지요.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그 아인 아마도 나에게 그 날 엄마의 정을 느낀 것 같았었습니다. 왜냐면 그 날 그 아이의 까만 눈망울엔  제가 듬뿍 담겨져 있었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세 번째 요정은 저에게  성탄 편지를  보내준 아이었지요.

"선생님,  전 가진 게 없어요. 그래서 편지만 써요. 저처럼 가난하게 살지 마세요. 부자로 사세요. 꼭이요. 꼭이예요."

 

그 아이는 저도 자기처럼 가난하게 살고 있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 편지를 읽으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매주 목요일이면 아이들은 저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 오늘은 재밌은 얘기 안 해 주세요?"  딱딱한 수학만을 하면 취미를 잃어 버릴까봐 도중에 재밌은 이야기를 한두 가지 해주었더니 이젠 수학 시간이 재미있는 시간으로 바뀌었습니다.

 

매년 방학 때면 제가 맡은 아이들을 집으로 초대해 맛있는 음식과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던 모습들도 떠오릅니다. 지극히 평범한 내 살림을 보고 만져보고 신기해하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던 기억도 납니다.

 

오늘도 몇몇 아이들은 공부방에서 저녁에 먹을 도시락을 타 가지고 집으로 갑니다. 그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아픕니다. 엄마의 따뜻한 정성으로 지어준 국과 밥을 먹어 보지 못하는 그 아이들...

 

부모에게 재롱을 한껏 부리며 자라야할 우리 아이들이 오늘도 쓸쓸한 방안에서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부모님들을 기다리며 지쳐 잠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고 맑고 순수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 그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희망이 보입니다. 현실의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밝은 모습으로 힘차게 사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약한 제 자신은 도리어 힘과 용기를 받습니다.

 

저의 작은 수고가 그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고 기쁨이 되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이 세상이 정말 살아 갈만한 가치가 있는 것임을 알게 되었지요. 그리고 지난 날 제가 무료하게만 보내왔던 시간들이 얼마나 축복이었고 감사였었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제가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은 동안에 고통 받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이웃들을 잊고 있었음을 크게 반성할 수 있었습니다.

 

봉사라는 것은 이 다음에 여유가 있을 때, 좀 더 시간이 있을 때 해야지 하고 미루기 쉽지만 우리의 계획대로 살아지지 않는 것이 인생이란 생각이 듭니다.

 

현재 생활이 좀 넉넉지 못하고 시간이 부족하더라도 그것까지도 함께 나눌 수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삶이 아니겠는가 감히 적어봅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 이 다음 생을 마감할 때 정말 잘 살았다고 씩씩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당신의 맑은 삶으로 인해서 나오는 달빛과 같은 은은한 부드러움과 들꽃과 같은 소박한 향기를 이웃에게 함께 전하지 않으렵니까?   

고맙습니다.

 

위 글은 제가 공부방 7년을 봉사하면서 체험을 적어 어느 곳에 보낸 글입니다. 그런데 문을 닫아야 하는 형편이라니... 정말 슬퍼요.  절대적인 극빈자인 아이들은 어디서 시간을 보내야 하고 어디서 보호를 받아야 하고 어디서 공부를 해야할까요?  

! 천사가 나타났으면 좋겠다.          노원성당 조 쟈네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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