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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탑]시(이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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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 [jhp94] 쪽지 캡슐

1999-10-28 ㅣ No.1599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다

 

지은이 : 이정하

 

 

 

        햇볕은 싫습니다.

        그대가 오는 길목을 오래 바라볼 수 없으므로,

        비에 젖으며 난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비에 젖을수록 오히려 생기 넘치는 은사시나무,

        그 은사시나무의 푸르름으로 그대의 가슴에

        한 점 나뭇잎으로 찍혀 있고 싶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그대.

        비 오는 날이라도 상관없어요.

        아무런 연락 없이 갑자기 오실 땐

        햇볕 좋은 날보다 비 오는 날이 제격이지요.

        그대의 젖은 어깨, 그대의 지친 마음을

        기대게 해주는 은사시나무. 비 오는 간이역,

        그리고 젖은 기적소리.

        스쳐 지나가는 급행열차는 싫습니다.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지나가버려

        차창 너머 그대와 닮은 사람 하나 찾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비에 젖으며 난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그대처럼 더디게 오는 완행열차,

        그 열차를 기다리는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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