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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원의 사랑(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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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희 [moonhee56] 쪽지 캡슐

2003-10-23 ㅣ No.4034

2000원의 사랑 (퍼온글)

 

 

재수를 하고도 대학에 떨어져 삼수를 할 때였다.

 

엄마는 새벽 다섯시면 일어나 내가 아침을 다 먹기를 기다렸다가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셨는데, 그 때마다 내 손에 꼭 이천 원을 쥐어 주셨다.

 

 

그리고 엄마는 아침도 거른 채 그 길로 가게에 나가셨다.

그 해 겨울 나는 또 대학에 떨어졌다.

 

 

좌절감에 거리를 방황하던 나는 새벽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는데,

엄마가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추위에 떨며 나를 기다렸는지 엄마의 얼굴은 통통 부어 있었다.

"재경아, 이것아..."

엄마는 얼른 내 손을 꽉 잡더니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엄마의 병은 심한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누적된 피로가 겹친 뇌졸중이었다.

 

처음에 엄마는 심한 언어 장애에 기억력까지 상실하여 우리 가족들의 이름은 커녕

나를 ’아가씨’라 부르고, 의사 선생님은 ’흰 돼지’로 불러 병실을

온통 웃음 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퇴원 후에도 엄마는 가끔 집 앞 구멍가게에서 집을 못 찾아 하루종일

동네를 헤매고 다녀, 나와 언니는 교대로 엄마를 곁에서 지키고 있어야 했다.

 

 

내 스물한 살의 생일날이었다.

 

 

아직도 정신이 돌아오지 못한 엄마 때문에 친구들과의 약속도 취소하고

텔레비젼을 보고 있는데, 엄마가 들어오셨다.

 

 

"내가 죽으면 우리 막내딸은 어쩔까? 누가 우리 딸 걱정해 줄까?"

 

 

엄마는 뜬금없이 이렇게 말하고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보며

내 손에 뭔가를 꼭 쥐어 주셨다.

 

 

손을 펴보니 천원짜리 지폐 한 장과 백원, 십원짜리 동전들이었다.

세어보니 꼭 이천 원이었다.

 

 

정신을 잃은 그 순간에도 막내딸에게 이천원을 쥐어 주시는 것을 잊지 않으신 엄마,

나는 그만 엄마를 붙잡고 큰 소리로 엉엉 소리내어 울고 말았다.

 

- 퍼온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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