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의 얼굴은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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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주 [roseoflima] 쪽지 캡슐

2001-11-05 ㅣ No.2399

산더미같이 쌓여진 그릇을 씻기 위해 개수대 앞에 선다

밥공기들을 하나 하나 ’퐁퐁’ 을 묻혀 닦아내다가

문득 씻지도 않고 쓰는 마음이 손바닥에 만져졌다

먹기 위해 쓰이는 그릇이나 살기 위해 먹는 마음이나

한 번 쓰고 나면 씻어두어야

다음을 위해 쓸 수 있는 것이라 싶었다

그러나 물만 마시고도 씻어두는 유리컵만도 못한 내 마음은

더럽혀지고 때묻어 무엇 하나 담을 수가 없다

금이 가고 얼룩진 영혼의 슬픈 그릇이여,

깨어지고 이가 빠져 쓸 데가 없는 듯한 그릇을 골라내면서

마음도 이와 같이 가려낼 것은 가려내서

담아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누룽지가 붙어서 좀처럼 씻어지지 않는 솥을 씻는다

미움이 미움에 늘어 붙으면

이처럼 닦아내기 어려울까

닦으면 닦을수록 윤이 나는 주전자를 보면서

씻으면 씻을수록 반짝이는 찻잔을 보면서

영혼도 이와 같이 닦으면 닦을 수록

윤이 나게 할 수는 없는 일일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릇은 한 번만 써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뼈 쏙까지 씻으려 들면서

세상을 수십 년을 살면서도

마음 한 번 비우지 못해

청정히 흐르는 물을 보아도

때묻은 정을 씻을 수가 없구나

남의 티는 그리도 잘 보면서도

제 가슴 하나 헹구지도 못하면서

오늘도 아침 저녁을 종종걸음치며

죄 없는 냄비의 얼굴만

닦고 닦는 것이다.

 

-많은 생각을 해주게 해준 시입니다.

누구의 작품인지, 이 작가는 저와 비슷한 마음을 가졌나 봅니다.

내 마음을 닦아내고 싶어요... 닦을수만 있다면..

누구나 그런 것이겠지요? 닦을려고 노력이라도 한다면...보시기에 이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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