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성당 게시판

그대로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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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선 [jchorong11] 쪽지 캡슐

2000-10-02 ㅣ No.685

2000년 6월 25일

 

 제 삶에 빛을 비춰준 책이 몇 권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권을 헌 책방에서 보고 누구한테 선물할까 해서 샀습니다.

너무나 얇고 가벼운 책입니다. 지은 사람은 러끌레르그이고 제목은 "게으름의 찬양" 입니다. 제목부터 통쾌합니다.  모두들 바쁘게 살고 있고, 그렇게 사는 게 옳다고 말하는 오늘날 "게으름의 찬양"은 우리들의 삶을 곰곰히 되돌아보게 하는 아름다운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는 러끌레르그의 제자인 장익 신부님이 쓰신 짧은 글도 실려있는데요.  이런 대목이 눈길을 끄는군요.

 "출입문 설주 위에는 흰차돌(Le Caillou Blanc)이라는 팻말이, 이를테면 우리네 당호격으로 조촐하게 달려 있었습니다. 현관에 들어서면 몇줄의 알림이 맞은 편에 붙어있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하나,  이 집에는 죄 이외에는 무엇이든 허용됩니다.

 

둘,   집 주인은 이층복도 끝방에 계신데, 인사 여쭙는 것이 예의 일것입니다.

 

셋,  잠자리는 서넛 있는데 누가 이미 들어 있지 않은 곳으로 마음대로 택해 쓰십시오. 다 차 있으면 벽장에서 침구를 내다가 거실 또는 다른 곳에서 주무셔도 좋습니다.

 

넷,  시장하시면 부엌에 있는 음식을 마음대로 드십시오.

 

다섯,  집을 떠나실때에는 다음 오실 분들을 위해 정리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여섯,  이 집에 또 아무 소용없는 늙은이도 하나 사는데, 만나셔도 좋고 그만 두셔도 좋습니다. 편히 지내다 가십시오."

 

집주인은 소성당에 모신 감실이었고 늙은이는 선생님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이렇게 자유로움과 여유로움이 넘치는 가운데 이루어지고, 맺는 관계도 그리되면 참 좋겠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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