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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 전반 내용 안내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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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2 ㅣ No.1318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2 / 이재룡 교수


4.1. 제2부 제1편

제2부 제1편의 머리글을 읽어 보자: “인간은 신의 모상대로 창조되었다. 여기서 모상이란 ‘지성과 자유 의지 그리고 자기 행동 통제력을 갖춘 존재’를 가리킨다. 따라서 원형(原型), 즉 신에 대해서 그리고 신의 의지에 합치되는 신의 능력으로부터 유래된 모든 것에 대해 살펴 보았으니, 이제는 그분의 모상(模像, imago Dei) 즉 인간에 대해서 살펴 볼 차례다, 인간은 바로 자유 의지와 행동 통제력 덕분에 자기 행동의 원리인 것이다.” 제Ⅱ부의 첫 5 개 문제들은 ‘인간의 최종 목적’을 탐구한다. 그 나머지 부분은 그 고유 목적에 도달하려는 각 사람의 개인적인 노력을 다루고 있다. 제Ⅱ부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분석하고 구원을 얻기 위한 도구인 그리스도의 성사들을 다룬다. 인생살이에서 갈망하게 되는 최종 목적은, 인간의 정신 속에서 가장 중요하고 1차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직 그 끝에 가서야 도달 된다. ‘지향에 있어서 첫째는 실행에 있어서 마지막’이라는 스콜라학의 공리가 말해주고 있듯이, 목적인(目的因)이 능동인(能動因)을 선행(先行)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목적인 덕분에 행위의 추동력이 생겨나고 이 추동력을 통해 그 결과로서 바라는 목표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토마스는 자기 자신이 충분한 경지에 이르렀을 때 이 ‘최종 목적’ 문제를 다루고자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계획을 완성하기 전에 그는 죽게 된다. 토마스 자신이 제Ⅱ부를 일반론과 각론으로 나누었다. 그가 죽자마자 바로 제자들은 그것을 각각Ⅱ부 1편(prima secundae) 과 Ⅱ부 2편(secunda secundae)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아마도 거의 확실하게 이탈리아에서 작성되었을 Ⅱ부 1편의 첫 다섯 문제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논의되고 있다: 1) 인간에게는 최종 목적이라는 것이 있는가? 2) 최종 목적이란 무엇 인가? 3) 인간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4) 이승에서의(그리고 저승에서의) 행복의 구성 요소들은 무엇인가? 5) 인간은 어떻게 행복에 이를 수 있는가?<최종목적>: 토마스에 따르면 모든 피조물은 그 본성상 그에 어울리는 최종 목적을 향해 행동하도록 되어 있다. 본성은 모든 행위와 그에 따른 모든 것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본성들의 차이에 따라 나름대로 목적에 도달하는 방식도 다르다. 인간은 자기 행위에 대해 이성적 통제를 수행한다. 한편 세상을 구성하는 다른 피조물들은, 화살이 궁수에 의해 표적을 향하게 되듯이, 자기 자신의 본성에 따라 목적을 향해 움직여 간다.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통제 능력 덕분에 자신의 목표 설정과 그 목표에 이르려는 모든 행위에 책임이 있다. 목표에 도달하는데 적합한 수단을 규정짓고 조건지우고 정당화하는 것은 바로 목적이기 때문이다. 각 사람은 한 가지 ‘삶의 목적’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특히 청소년기에 선택하게 되고, 나중에 포기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온전히 행동할 수 없을 것이다. 확실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종 목적에 관해 전문적으로 숙고하지 않고, 다만 일상 생활에서 도달될 수 있는 직접적인 목적들에 관해서 부심한다. 이 직접적인 목적들에 관해 수고하는 방식은 실상 각자가 설정하고 있는 일반적 목적에 의해 지배된다. 그러나 무관심이나 영적 게으름 탓으로, 또는 그날그날의 삶의 필요 때문에, “최종 목적” 같은 추상적 실재에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 이다.

<대상>: 선택의 자유가 있고 자신의 행위에 대한 통제 능력이 있는 인간은 그의 최종 목적이 부귀영화나 명예, 권세, 성(性)이나 문화 또는 어떤 다른 개인적인 성취에 있다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실상은 ‘창조되지 않은 선’(善)인 신(神)만이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요구들을 완전히 채워줄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 행복의 진정한 대상은 신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주여, 당신 향해 우리를 내셨으니, 우리 영혼이 당신 안에 쉬기까지는 안식이 없나이다.”

<행복의 본성>: 인간 행복의 참 대상을 살펴 본(제2문) 다음, 토마스는 행복의 본성을 논하는 데에로 나아간다(제3문). 왜냐하면 행복이란 일종의 개인적인 성취 또는 역할에 달려있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인간 행복의 대상이 신이기 때문에, 거기 도달할 수단들은 신 자신에 의해 구성될 수 없고, 오직 피조된 개인적 활동들에 의해 구성된다. 비록 감각들이 정신을 미리 예비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고 또 나중에는 목적에 도달했을 때 생겨나는 넘치는 기쁨에 보다 완전한 형식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행복은 감각들의 한 기능이 아니다. 행복은 그 자체로 근본적인 것이어서 거기에 도달하려면 인간의 가장 숭고한 활동을 통해서 나아가야 한다. 프란치스코회의 전통은 참된 행복을 의지의 한 기능인 사랑 위에 정초한다. 그러나 토마스는 여기서는 물론이고 다른 곳에서도, 사랑이 인식의 결실임을 강조한다. 맹목적이지 않으려면, 사랑은 지성적 인식을 전제한다. 그러므로 행복은 사랑과 기쁨으로 분출되게 될 명상 속에 있다. 의지에 뿌리박고 있는 사랑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토마스의 주지주의(主知主義, intellectualism)는 프란치스코회의 주의주의(主意主 義, voluntarism)와 날카롭게 대립된다. 그에게 있어서 참된 행복의 원천은 ‘신에 대한 명상’(contemplatio Dei)에 있다. 이것은 이승에서는 신앙을 통해서, 그리고 저승에서는 직접적인 신 직관을 통해서 가능하다. 토마스는 인간이 이승에서도 행복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그 자신의 목적을 신 인식과 신 사랑에 두는 한에서 이다. 행복이, 적어도 이승에서는 지성의 한 기능인 인식에서만 배타적으로 유래된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지상에서는 사랑이, 우리의 인식이 도달한 경지를 훨씬 능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식 없이는 사랑도 맹목이 되고 만다. 여기서 귀결되는 것은, 영원한 행복의 중요한 형상적 요소는 ‘신의 지복직관’이고 이것은 지성의 활동이라는 점이다.

신 인식은 행복의 형상적 요인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만이 유일한 것은 아니다. 행복이란 천상에서 완전히 채워지는 것이므로, 지상에서는 오직 단편적이기 때문이다. 만족감이 대상의 소유에서 오는 것처럼,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쁨(快)이다. 인간이 이승에서 불완전하고 간헐적으로만 맛보는 영적이고 물질적인 기쁨의 상태가, 저 미래에서는 완전하게 채워질 것이다. 참된 행복은 또한 “올바른 의지”를 요구한다. 즉 덕스러운 생활을 먼저 살아야 하고, 이것을 통해 인간은 행복에 도달해서 취득한 그 목적을 충만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덕스러운 삶은 이승에서도 또 저승에서도 행복을 얻는 데 절대 불가결하다. 마찬가지로, 충만한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는 인간은 자신의 몸(신체)을 필요로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옳다. 이승에서의 인간은 인식하기 위해서 감각상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 다. 그리고 육신이 부활할 때 개개의 인격은 자신의 종적 본성으로 재구성되게 될것이다, 그러나 어떤 희랍 저술가들이 믿었듯이, 죽음과 육신의 부활 사이의 기간 동안, 분리된 이성적 영혼이 구원의 결실을 누릴 수 없으리라고 믿는 것은 잘못이다. 천상에서 행복의 본질은 신 직관에 있고, 이를 위해서 육체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토마스는 계속해서 설명하기를, 이승에서의 행복은 육체의 건강(6항), 인간이 덕스럽게 살기에 필요한 만큼의 세속 재화들(7항), 그리고 우정(8항)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와 마찬가지로 토마스에게도 인간은 근본적으로 친구들을 필요로 한다. 모든 사람이 간절히 소망하는 우정은, 신의 선물로서 강요될 수도 없고, 사고 팔 수도 없으며, 또 가장할 수도 없다. 그것은 다만 받아들여 맛들일 수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상 및 천상 행복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천상에서는 성인들과의 우정을 즐기게 될 것이다.

<행복의 추구>: 제5문에서 토마스는 ‘행복의 추구’를 논한다. 그에게 있어서 행복은 도달할 수 있는 실재(1항)로서, 개인의 성품과 능력에 따라 여러 등급이 있을 수 있다(2항). 토마스는 이승에서도 어느 정도까지 행복에 이를 수 있음을 분명히 확인한다(3항). 비록 이 지상의 행복은 생명의 조락성(凋落性) 때문에 너무도 쉽게 상실될 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성과 의지에 토대를 두고 있는 한 얼마간은 기쁨을 누릴 수 있다(4항). 이것이 말하는 것은, 인간은 건강이나 세상의 재화 그리고 친구들이 없다고 하더라도 참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 행복의 추구는 가능하다. 인간의 본성이 거기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원한 행복인 신 직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순수 자연적인 기능들을 훨씬 넘어가야 한다(5항). 영원한 참 행복은 신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로서, 오직 은총을 통해서만 도달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다 “신이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마련 한” 이 행복을 갈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참 행복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수롭지 않다고 내팽개치기 때문이다(8항).

<행복에 이르는 수단들>:《대전》제Ⅱ부 1편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행복에 이르는 데 필 요한 수단들을 규명하고 있다. 인간의 자기 실현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토마스는 인간 행위의 본성 즉 지성적이고 책임있는 인격인 한에 있어서의 인간에 속하는 행위들을 탐구하고(7-21문), 따라서 인간의 감정 생활(22-48문), 덕과 악습(49-70문), 죄(71-89문)를 논한다. 이 모든 문제는 인간 각자의 “자기 실현”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수단들을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데 올바른 방향을 잡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우리를 인도하는 두 원리 즉, 법(90-108문)과 은총(109-114문)을 연구해야 한다. 토마스가 법, 특히 은총의 새로운 법의 본성을 분석하는 방식은 놀랄만큼 정교하고 날카롭다. 이 점은 은총에 관한 논술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불행히도 현대의 많은 주석가들은 토마스의 ‘자연법’(lex naturalis) 이론을 그 맥락으로부터 따로 떼어냄으로써 결국은 왜곡시켜 버리고 말았다. 이것은 은총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토마스가 그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정신과학론》, 《자연과학론》,《자연과 은총》에서부터 유래된다는 사실을 많은 학자들은 놓쳐버리고 있다. 법 일반론과 자연법에 관한 논술은 자연법의 토대에 관한 토마스의 완전한 이론을 충만히 다 담고 있지 못하다. 제Ⅱ부 1편에서 다뤄지고 있는 논술들은, ‘신과 백성 사이에 맺는 옛법과 새법’이라는 그의 더 큰 관심에 비켜 볼 때 단순한 예비적 물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4.2. 제2부 제2편

덕과 악습 그리고 윤리 문제 일반과 관련된 모든 것을 살피고 나서(Ⅱ부1편), 토마스는《신학대전》에서 가장 긴 부분인 제Ⅱ부 2편을 덕의 세부적 논술과 그에 상응하는 악습의 분석에 바치고 있다. 무엇보다 먼저 그는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에게 관계되는 덕들을 면밀히 검토하고(1-178문), 그 다음 주교, 수도자, 관상 생활, 활동 생활 등 특별한 구성원들의 생활 방식을 다룬다(179-189문).

토마스는 그의 윤리 이론 전체에서 인간 행복의 토대가 되는 덕스러운 삶을 고찰하고 있다. ‘7가지 주요 악습《七罪宗》’(교만, 인색, 사치, 탐욕, 태만, 질투, 분노)이나 십계명 또는 피해야 할 악습들을 부각시키는 대신, 그는 생생한 사랑의 덕을 통해 적극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행복의 신학을 설정한다.

습성(習性, habitus)은 전통에 따라 토마스에게도, 영혼에 의해 취득된 (또는 타고난) 능동적 성질로서, 이것을 통해 사람은 특정 작업 영역에서 자신의 행위들을 쉽게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 수행할 수 있다. 따라서 선한 습성 또는 악한 습성은 ‘제2의 본성’과도 같아서, 일단 한번 취득되면, 떨쳐버리기 힘들다. 오늘날은 많은 개인적 성격 특성들(idiosincrasie)이 ‘습관’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그것은 스콜라 신학에서 말하는‘습성’(habitus)과는 다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토마스에게도, 덕이란 두 극단 (이것은 결국 두 악습이 된다) 사이의‘중용’(中庸, medium)이다. 흔히 말해지는 ‘덕은 두 극단 사이의 중간에 있다’는 표현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예컨대, 사랑의 덕은 그 자체로 한 극단이다. 한편, 정의는 결코 어떤 극단도 알지 못하고 다만 그 결핍만을 알 뿐이다.

세 가지 신앙의 덕(믿음, 희망, 사랑)을 세부적으로 분석한 다음, 토마스는 4추덕(지혜, 용기, 절제)의 탐구에로 나아간다. 4추덕은 아주 다양한 측면들을 보여주고 있어서, 진정한 인간 조건을 깊이 알아듣기 위해서는 주의 깊게 그 통전적 부분들과 그 기능적 부분들을 탐구해야 하기 때문에,《신학대전》중에서 이 부분이 제일 길다. 바로 여기서 토마스가 인간 조건을 그 심층에서부터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제Ⅱ부 2편이 고금의 철학자나 신학자들이 썼던 모든 것을 훨씬 능가한다고 안심하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Ⅱ부 2편을 제Ⅱ부 1편에서 설정된 근본 원리들로부터 따로 갈라내서 연구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수도생활

제Ⅱ부 2편의 마지막 11개 문제들은 명상 생활과 활동 생활, 수도적 완성 상태 등을 다루고 있다. 그 논술 목적은 영성 생활의 여러 완성 단계들을 설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수도회 생활과 주교직의 경우처럼 교회법이 규정하고 있는 신학적 관점의 의미와 함축들이 과연 무엇인지를 밝히자는 것이다. 토마스는 그 점을 말하고 있지 않지만, 그의 신학적 분석은 로마의 주교로서 교황도 포함할 수 있는 것이리라. 토마스에게 있어서 관상적 및 활동적 수도회들은 주교 신분에 고유한 완전성에 참여한다. 교계 및 활동적 수도회들은 주교 신분에 고유한 완전성에 참여한다. 교계 질서 속에서 도미니코 회원들에 해당되는 자리는 도미니코회를 거스른 논란 속에서 적수들의 주요 논거가 되고 있다.

토마스는《신학대전》의 이 부분을 제라르 다베빌(+1272)을 중심으로 한 논쟁이 극도에 달했을 때 작성했다. 그에게 있어서 수도회들은 우선 염려하고 추진하는 그 ‘목적’과 둘째로 거기 도달하는 데 활용되고 있는 ‘수단’에 따라서 구분된다. 예컨대, 시토회나 베네딕도회같은 관상 수도회들은 노동과 영원한 진리 묵상을 통해 주로 개인적인 구원에 헌신하다. 그러나 예컨대, 병원 운영이나 감옥의 죄수를 보살피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사회적 활동에 종사하는 활동 수도회들은 세속적인 선행과 영적인 자비심을 실천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또 같은 목적을 지니고 있는 수도회들의 경우라도 그 수단에 따라 구별할 수 있다. 명성이 외부적 활동보다 더욱 완전하기 때문에, 관상 수도회들은 활동 수도회보다 더 높은 완성 단계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외부적 활동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교육, 설교, 영혼 구원 등의 활동이고, 다른 하나는 그저 세속적인 활동이다. 그러므로 가장 높은 단계는 명상에 전념하고 그 결실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자신의 연구 결과들을 설교를 통해 전하고 가르치며 고해성사를 주는 일이다.“그러므로 가르치고 설교할 능력을 갖춘 사람들은 수도 활동 가운데서 으뜸 자리를 차지하고, 주교의 완전성에 가장 가까이 있다.…실상 빛을 단순히 반사하는 것보다는 조명하는 것이 더 큰 완전성의 표지이듯이, 단순한 명상보다는 명상에서 얻은 진리를 남들에게 전하는 것이 더욱 완전하다”(Ⅱ-Ⅱ, 188문, 6항).

그러므로 토마스에 따르면 설교에 투신하는 수도회가 수도 생활의 가장 완전한 단계이고 주교들의 완전 단계에 가장 가깝다. 물론 토마스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도미니코회다. 도미니코회의 목적은 설교를 통해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고, 따라서 연구를 그 수단으로 삼으며, 공동 생활, 합송 기도, 가난, 순결, 복종을 서약한다.

제Ⅱ부 2편의 마지막 3개 문제들은 도미니코회를 거스르는 재속 교수들의 신학적 논거들을 총망라해서 다루면서, 설교, 교육, 고해성사, 자선, 고아들 수용의 원리를 옹호하고 있다. 이 3개 문제들은 실상 재속 교수들의 논거를 총 요약하고 있는데, 그들은 도미니코회 같은 것은 존재할 필요가 없으며 더더욱 설교나 교육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논쟁 속에 말려들 어감 없이 토마스는 냉정히 논점들을 하나하나 검토하고 통박하고 있다.

토마스가《신학대전》의 이 부분을 썼을 때 제라르 다베빌은 아직도 생존하고 있었다. 현대의 토미스트들은 도미니코회를 거스른 이 논쟁의 심각성에 대해서 거의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들에 관련된 가르침이 어딘가 일관되지 못하고 흥미가 없다고 간주한다. 그러나 토마스가 그 글을 쓰던 당시에는 그 어느 누구도 관심을 집중하지 않을 수 없던 중요하고도 심각한 문제였다. 이 부분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수들의 논거들을 잘 알아야 하고, 따라서 이 문제들을 굴리엘모 생타물과 제라르 다베빌을 거슬러 쓴 직접적 논술들과 함께 읽어야 한다.

5. 제3부의 주요 내용

에슈만에 따르면 토마스는 제Ⅱ부 2편을 1270년 말이나 1271년 초에 시작했고, 1272년도가 시작되기 전에 끝냈던 것 같다. 그러나 토마스는 이 작업을 마치고 오래 쉬었을 것 같지가 않다. 1272년 곧바로 그리스도와 성사들을 다루는 제Ⅲ부를 시작했고, 1273년 12월 6일에 작업을 갑작스럽게 중단해 버렸다. 에슈만은 토마스가 나폴리로 떠나기 전 파리에서 제Ⅲ부의 첫 20개 문제들을 끝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보기로 하자. 어쨌든《육화된 말씀의 결합론》문제는 1272년 초에 파리에서, 제Ⅲ부에서 취급되는 ‘육화된 말씀’ 부분을 시작하면서, 강의되었던 것이었다.

1272년 나폴리에서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토마스의 나이가 47세였다. 여러 가지 자료로부터 확인할 수 있는 바에 따르면, 그는 파리에서처럼 아직도 원기 왕성했고 건강 상태도 좋았다. 교육 활동이 비교적 적은 날들에는(이 시기에 ‘토론회’를 열었다는 문서적 증거는 발견되지 않는다)《신학대전》과 아리스토텔레스 ‘주해서들’을 끝내기 위해 전력을 다 기울였다. 토마스는 이 작업을 위해서 레지날도 외에 다른 조교들을 더 두었던 것 같다. 예컨대《형이상학 주해》의 나폴리 사본에서는 7개의 서로 다른 필체가 간파되기 때문이다. 그 필경사들 가운데 하나는 쟈코모 다스티라는 수사였는데, 그는 토마스가 죽은 뒤《이사야 주해서》를 “읽을 수 있게 옮겨 적었다.” 돈데인은《형이상학 주해》의 나폴리 수사본의 ‘A’의 글씨체를 바로 이 쟈코모의 것으로 보면서 그를 토마스의 나폴리 시절 조교 중 한 명으로 간주하고 있다. 시성식 과정 동안 도미니코회의 바르톨로메오는 토마스가 나폴리에서 ‘여러 명의 필경사’에게 구술했다고 증언했다. 그 당시 토마스의 학술 활동 기간이 도합 14-15 개월을 넘지 못했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어느 특정 기간 동안은 저술 활동이 특별히 왕성한 시기였다고 결론짓지 않을 수 없다. 온통 ‘육화’와 ‘성사’ (특히 성체성사)에 집중되고 있는《신학대전》제Ⅲ부는 그의 천재적 재능, 불굴의 노력, 풍부한 박식 등이 번득이고 있는 찬란한 종합이다.

그렇지만 이 풍요로운 작품 활동 시기에 토마스는 또한 명상과 명상적 기도에 더욱 몰입 하고 있었다. 그의 정신적 몰입(혹 탈혼, abstractio mentis)은 쉽사리 그리고 아무데서나, 특히 미사 시간과 성무일도를 바치는 공동 기도 시간에, 그를 넋나간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제3부의 머리글을 읽어 보자: “주 예수 그리스도는 천사가 예고한 것처럼,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신 구세주로서, 부활을 통하여 당신 자신에게 불멸의 삶이라는 행복에로 이르는 진리의 길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그분이 소개해 주신 인간 생명의 궁극적 목적, 덕, 악습에 대하여 살펴보고, 이제 한걸음 더 나아가 신학적 의미에서 세상의 구원자이신 그분과 모든 인간에게 베푸신 그분의 은총에 대해서 고찰하고자 한다. 이런 목적으로 첫째 부 분(1-59문)은 직접적으로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둘째 부분(60문-‘보충부분’-68 문)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성사(聖事, sacramentum)에 대하여, 그리고 마지막 부분 (보충부분 69문 이하)은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다시 살아서 얻게 될 영원한 삶의 목적에 대해서 다루고자 한다. 구원자 그리스도에 대한 첫째 부분은 다시 둘로 나누어 1-26 문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목적으로 그분을 사람이 되게 하신 바, 즉 육화(肉化, Incarnatio)의 신비를 다룰 것이며, 27-59문은 우리의 구원자, 즉 육화하신 말씀(Verbum)께서 무엇을 행하셨고 또 고통을 어떻게 감수하셨는지를 다루고자 한다..” 《신학대전》제Ⅲ부의 ‘서론’을 쓸때, 토마스는 그것을 세 부분으로 나눌 생각이었다: 인류의 구세주 그리스도(1-59문), 우리를 구원에로 이끌고 갈 그의 성사들(60문- “보충부” 68문), 그리고 부활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도달하는 목표인 영원한 생명, 따라서 우리는 제Ⅲ부가 온통 ‘구세주’에 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제60문의 ‘머리글’에서 토 마스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다: “육화된 말씀의 신비에 관해 모든 것을 살펴보았으니, 이제는 육화된 말씀 자체로부터 그 효력을 끌어올리고 있는 교회의 성사들을 숙고하는 데에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구상을 끝마칠 만큼 오래 살지를 못했다. 1273년 12월 6일 그는 ‘고해성사’에 대해 분석적으로 검토하고 있던 중이었다. ‘속죄(贖罪)일 반’ 부분을 다루는 제90문에서 그는 갑자기 중단했다. 그리고는 “더 이상 계속하지 못했다.”

5.1. 육화의 신비

토마스는 ‘육화된 말씀’에 관한 논술을 두 부분으로 나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오신 ‘육화의 신비’, 그리고 그 구세주가 우리를 위해서 행하고 겪은 모든 활동. “육화의 신비”라고 명명된 부분에서 토마스는 세 가지 근본 요점을 검토하고 있다: 신이 우리 구원을 위해 사람이 될 필요가 있었는지(an sit), 육화 사건에서 신이 인간이 된 것은 어떤 방식인지(quid sit), 이 결합의 귀결들은 어떤 것인지(quale sit).

토마스에 따르면, 신은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인간을 구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신은 상상를 초월하는 가장 내밀한 방식으로 사람이 되고 또 우리를 위해 자기 자신의 피를 흘림으로써 인간을 화해, 회복시키는 방식을 선택했다. 신은,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무엇보다 원죄에서부터 그리고 모든 개개인의 범죄에서부터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이 되었다. 토마스의 동 시대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아담이 범죄하지 않았더라도 신은 어쨌든 우리를 향한 그분의 큰 사랑 때문에 인간이 되어 왔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토마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가 신의 위업(偉業)들의 근거들을 알게 되는 것 은 오직 그의 계시를 통해서 뿐이며 성서에서 계시되고 교회의 신앙고백문 형식으로 선포되어온 육화의 유일한 동기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따라서 신이 육화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것이므로, 만일 아담이 범죄하지 않았더라면 신은 사람이 되어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활초 축성시에 교회가 이렇게 노래하고 있는 까닭이다: “오, 복된 죄여 (felix culpa)! 너로 말미암아 우리가 위대한 구세주를 얻을 수 있게 되었도다!”

5.2. 성사:그리스도 수난의 유산

제Ⅲ부에서 토마스는 ‘육화의 신비’ 외에도, ‘성사(聖事, sacramentum)의 신비’도 검토 하고 있는데, 그는 그것을 “그리스도의 수난의 유해(遺骸)들”(reliquiae Christi passionis) 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 속에 구원의 결실들이 들어오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성사들을 통해서이기 때문이다. 토마스에게 있어서, “새로운 법”의 성사들은, 신과 인간 사이의 계약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성사적 행위로 의미되는 은총의 주입을 구현시키는 것이다. 이처럼 제Ⅲ부에서, 성사들은 이제까지 토마스가 확인해 온 대로 인간으로 하여금 은총을 받을 수 있게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이제 한걸음 더 나아가 은총 자체를 실제로 “산출”한다. 이전의 저술들 속에서 토마스는 은총이 무(無)에서부터 창조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또 신만이 성사들이 축성되는 그 순간에 그렇게 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신학대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주장한다: 성사들은 그것이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의 “도구들”인 한에 있어서, ‘인간의 잠재력’으로부터 은총을 솟아나게 한다. 좀 더 뒤에 가서 그는 이 잠재력을 “순종하는 능력”(potentia oboedientialis)이라고 부르게 될 것 이다.

모든 성사들 중 단연 뛰어난 성사는 ‘제단의 성사’ 즉 ‘성체성사’(聖體聖事)이다. 이 성사는 은총을 산출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 안에 은총의 주인 자신인 그리스도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축성의 성사적 행위, 즉 “이것은 내 몸”, “이것은 내 피”라는 선포는, 그리스도 몸과 피의 실재적 현존을, 즉 빵과 포도주라는 가시적(可視的) 형상과 행위(sacramentum) 로 의미된 그 “실물”(res)을 현존하게 만든다. 이 성사에서는, 그 축성의 말들 때문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갈보리 산의 희생 제사에서처럼 분리된 방식으로 현존한다. 이 성사 행위를 통해서 희생 제사 (즉 몸과 피의 분리) 속에 현존하는 것은 동일한 갈보리 산상에서 죽는 그리스도(Christus passus)이다. 그리고 흠숭될 수 있도록 높이 거양되고 감실 속에 모셔지게 되는 성체도 성사적으로 피로부터 분리되는 (즉 죽은)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의 몸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참된 몸은 (미사 중에 성사적으로 죽는 것을 예외로 친다면) 죽지 않았다. 그리스도가 온전히 ‘동시적으로’  (concomitanter) 현존하고, 삼위일체 하느님이 온통 ‘전체에 남김없이’ (circuminsessione) 현존한다. 토마스에게 있어서 ‘미사’(eucharistia)의 성사적 특성은 회생 제사의 성격과 다른 것이 아니었다. ‘실체변화’ (實體變化, transubstantiatio)를 통한 그리스도의 성사적 현존은 갈바리아를 표상하는 제단의 희생 제사와 동일하다.

애석하게도 우리의 제한된 시간이《신학대전》제Ⅲ부의 이 ‘그리스도의 성사’'에 대해 오래 머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토마스가 제73-83문에서 다루고 있는 성체성사에 관한 논술은 중세가 제공한 가장 뛰어나고 완벽한 작품이라는 점 만을 지적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거기서 우리는 그가 성체성사의 신비를 강한 집중력으로 명상했을 뿐 아니라 또한 더 없이 열렬하게 기도했다는 사실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구리엘모 토코는 산도미니코 수도원의 제의방 담당자였던 도미니코카세르타 수사에게서 들은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그 수사는 여러 차례 신비로운 장면들을 목격했다.” 그 수사는 토마스가 아침 기도 전에 수도원 내에 있는 산니콜라라는 한 작은 경당에 자주 가는 행동을 목격하고, 호기심을 발동하게 되었던 것 같다. 어느날 밤 그는 토마스가 기도 하는 모습을 훔쳐보기 위해 그 경당에 미리 가서 숨어 있었다. 그는 토마스가 “거의 두 큐 빗 정도 공중에” 떠 있는 것을 보았고, 열렬히 울며 기도하는 소리를 들었다. 또한 토마스가 경당 벽에 걸려 있던 십자가와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십자가의 예수가 말했다; “토마스 네가 나에 관해 쓴 글들은 아주 훌륭하다. 내가 그 보답으로 너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을까?” 토마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주님, 저는 다른 아무 것도 원치 않습니다. 오직 당신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토코는 그 당시 토마스가《신학대전》제Ⅲ부의 그리스도 ‘수난과 부활’ 부분을 저술하고 있었다고 상기시키면서, 그것이 곧 성체성사에 관한 것이었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덧붙이고 있다. 오늘날도 산도미니코 수도원의 수사들은 산니콜라 경당에서 토마스에게 말을 건넨 그 십자가를 방문객들에게 보여주며 그 일화를 설명해 주고 있다.

도미니코 카세르타 수사의 이야기를 어느 만큼 신뢰할 수 있었든지 간에, 그것이 얼마든지 사실일 수 있다는 점과 또 그것이 토마스가《신학대전》제Ⅲ부에 임하고 있던 정성과 정신을 완전히 잘 표현하고 있다는 점 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신 체험이 있고나서 토마스는 이제껏 자신이 쓴 모든 것이 마치 ‘지푸라기처럼 느껴진다’며 ‘붓을 걸어두었다.’ 즉 모든 집필 활동을 중단했다.

마무리

《신학대전》은 토마스가 ‘신학계’에 기여한 가장 깊고 가장 완전한 선물이다. 토마스는 1273년 12월 6일에 갑자기 중단하기까지 7년에 걸쳐 그것을 저술했다. 토마스의 전 작품 중에서 수사본 형식으로든지 출판본으로서든지 간에 가장 놀리 보급된 작품이다. 그것이 가톨릭 교회와 사상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특히 고해신부용, 설교가용, 본당 신부용 등 대중용 참고본으로 발췌된 ‘요약’, ’발췌’, ’인구용’ 등의 형식으로 널리 이용되었다. 이 작품은 (토마스 자신이 쓴 것만도 )512문에 2,669항 그리고 10,000여 개의 반론과 답변으로 구성되어 있다. 흔히《신학대전》과《보충부》(Supplementum)는 전5권으로 출판된다. 그 형식 구조면에서 볼 때 이 작품을 신학의 역사에 있어서 전무후무한 대작이다. 제Ⅰ부 는 완벽하고 심원한 형이상학적 논술로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놀랄만큼 간결하다. 제Ⅱ 부는 인간의 윤리 생활을 취급하는 데 있어서 완전히 독창적이다. 저자는 윤리 생활의 복잡성을 잘 알고 있으며 모든 인간적 행위에 있어서 ‘사랑’의 우위를 확립하고 있다. 흔히 토마스의《윤리학 주해》는 ‘사실적’이라고 평가되고 있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윤리학》의 순서를 대체로 따르고 있으면서도 ‘인생은 초자연적 목적인 영원한 신 직관에 도달하려고 투쟁하는 인간의 몸부림’이라는 그리스도 교적 인생관의 관점에서 볼 때 그 어떤 사상가도 능가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사실적’이다. 제Ⅲ부는 성자 그리스도의 육화의 신비와 그분의 일생 그리고 ‘성사들’ 속에서 계속되는 그분의 삶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성사의 절정은 성체성사이다. 그것은 사랑의 성사이면서 동시에 희생 제사이기 때문이다.

토마스는 평생에 걸쳐서도 그러했지만, 특히 1269년 파리 복귀 시절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5년 동안에는 자신의 사도직을 새롭고 강하게 느꼈기 때문에 매우 정열적으로 일했다. 그것은 마치 일종의 불길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교육, 저술, 설교, 기도에 몰두하고 있었고, 음식과 수면을 위해서는 그야말로 최소한도의 시간만 할애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의 활동의 질은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 속에서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대답을 추적하고 있었고, 더욱 간절히 진리 인식에 접근해 가고자 애쓰고 있었다. 그토록 지대한 지성의 노력 속에서, 그는 불완전한 해결책들로부터 언제나 더욱 간결하고도 명백하게 진리를 표현하는 데에로 나아갔고, 자주 이전에 가지고 있던 견해들을 교정했으며, 때로는 심지어 결정적으로 바꾸기도 하였다. 여러 가지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그의 전문적 의견을 물어오는 편지들에 응답할 때조차도 이미 발표한 어떤 이론을 단순히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오히려 언제나 모든 개개의 주제들을 다시 새롭게 검토하기를 좋아했다. 아마도 모든 문제를 언제나 다시 명상함으로써 더욱 새롭고 더욱 엄밀한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이러한 태도야말로 바로 그의 가르침들의 ‘독창성’과 ‘신선함’의 비밀일지도 모른다. 그의 사도직은 언제까지나 남에게 봉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언제나 탐구, 교육, 저술을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들의 선익을 위해서 추구했다.” 바르톨로메오 카푸아는 이렇게 말한다: “널리 퍼진 통설에 따르면, 그는 그의 시간의 단 일초도 결코 낭비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토마스가 언제까지나 그런 생활 리듬을 유지해 나갈 수는 없었다. 날마다 계속적인 긴박감 속에서 5년간을 작업하고 난 뒤에 일종의 ‘침몰’이 따라온 것은 차라리 당연한 일이었다. 49세를 다 채우기 전에 그는 교회를 위해서 뿐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해서 그토록 값진 40여 권을 작품을 저술했다. 그에 관해 우리에게 전해진 정보들에 따르면, 토마스의 건강 상태는, 몇 번 열병을 앓았던 것만을 빼고는, 그의 생애 어느 때보다도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1273년 12월 6일 토마스에게는 그의 생활 방식을 바꾸어 놓을 어떤 일이 발생했고, 그 세 달 뒤인 1274년 3월 7일에는 죽음이 덮쳐 왔다.

성 토마스가 49세라는 결코 길지 않은 생애 동안 인류 사상사에 기여한 업적은, 체스터튼 (G.Chesterton)의 표현을 빌린다면, “가장 위대한 혁명”이었다. 성 토마스는 참으로 보기 드물게 ‘개방적’인 정신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대다수의 철학자들이나 평범한 일반인들 처럼 어떤 이론이나 사상가를 도매금에 매도하는 일이 없었다. 그는 “진리는 누가 말하든, 모두 성령으로부터 온다”는 성 암브로시우스의 말을 즐겨 인용했다. 그는 오직 편견없이 진리만을 겸손하고 근면하게 추구했고, 아무리 그릇된 이론이나 주장들 속에서도 진리의 편린들을 인정하고 그것을 그릇된 부분들로부터 갈라낼 수 있는 비범한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더 현대인이었고, ‘영원한 현대인’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중세 사상가들의 저술은 일반적으로 잘 읽히지 않는 실정이다. 왜 그럴까? 우성 중세 저작들 가운데 순수 철학적인 것들은 매우 드물고, 대부분의 중요 저작들은 신학 서적들로서 신학적인 주제들을 다루는 가운데 오늘날 순수 철학적인 주제들을 함께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의 철학자들이 즐겨 다루는 주제들과 논술 방식에 익숙한 우리 현대인들에게는 그 서술 방식이 아주 낯설고 달갑지 않은 것이다. 두 번째로는, 라틴어로 씌어져 있는 중세 사상가들의 주요 저작들이 현대어로 번역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원전에 접근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보다 훨씬 더 오래 전에 살았고 훨씬 더 어려운 그리스어로 저술했던 고대 철학자들의 경우도 이와 비슷할까? 그렇지 않다. 오늘날의 현대인들이 고대 철학자들에 대해서는 근대나 현대의 어느 철학자 못지 않게 친근감을 느끼고 아낌없는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중세사상가들에 대해서는 일종의 깊은 거부감과 혐오감 같은 것을 느낀다는 것은 어딘가 역설적인 면이 없지 않다.

그 주된 원인은 르네상스 시대의 ‘인본주의자’(Humanist)들에게 있다. 그들은 중세와 중세 문화를 전면 거부하고 스스로를 고대 사상의 직계 계승자로 자처했다. 여기에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이 가세했고, 근대 과학의 폭발적인 발전도 한몫 거들었다. 실상 이들 근대인들의 중세 문화 전반에 대한 반동을 성공으로 이끈 주요 요인 중 하나는 당대에 가능하 게 된 인쇄 기술의 발명이었다(Kretsmann).

그러나 인본주의의 기본 동기가 그 절정에 달한 19세기 말에는 그 내밀한 한계와 약점이 충분히 노정되었고, 그래서 재차 반동의 기운이 무르익어 갔다. 실상 근대인들은 화려한 수사학을 구사하며 저마다 새로운 철학 체계를 발견했다고 떠들어댔지만, 막상 철학에 기여한 것이라고는 그리 많지 않았다(M. 아들러).

19세기 말부터 가톨릭 학자들은 오랜 쇠퇴기를 극복하고, 중세척학 그 중에서도 특히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상 부흥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영원한 아버지》(1879)를 도화선으로 20세기 전반에는 그 어느 단일 학파와는 비교도 안될 정 도로 거대한 운동이 되어 부당하게 파뭍혀버렸던 중세철학 전체를 재조명하여 복원시키는 동시에 현대 사상과의 대화를 추진했다.

이런 시대적 요청에 따라 가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1962-1965)를 통해 자기 쇄신을 모색했다. 교회는 현대의 요구를 시대적 징표로 삼을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공의회 이후 성 토마스와 중세철학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약화 되었다. 가톨릭 교회의 일부 주도적인 신학자들은 ‘신신학’(nou-velle theologie)을 부르짖 으며 과거 전통적인 신학 방법과 결별하고 ‘새로운 신학 모델’을 창안해야 한다고 역설하 고 나왔다(라너, 큉). 너무 먼 데까지 나아간 것일까? 그렇지만 이처럼 교회 내부에서 관심이 시들해진 것과는 대조적으로, 일반 철학계에서는 차츰 중세철학과 특히 성 토마스의 사상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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