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2주일(다해) 요한 2,1-11; ’2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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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2-01-09 ㅣ No.4902

연중 제2주일(다해) 요한 2,1-11; ’22/01/16






 

고등학교 때인가 어떤 선배 한 분이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때는 이 회합실에서 회합을 하다가도 전등이 나가면, 다 같이 모여서 기도했어. 그러면 정말 기적같이 불이 들어왔어.” 지금 들으면 까마득한 옛날의 전설로 치부하며, 웃음으로 지나칠 수도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때 그 선배의 말에는 현실에서 살다가 어려운 일이 닥치면 주님께 기도하면 들어주신다.’라는 신앙체험이 생애 안에 아로새겨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현실의 어려움을 단순히 전기 공급의 불안정한 상황이나 전등의 불완전한 접촉이나 불량 여부를 떠올릴 수 있을 텐데, 그것을 주 하느님과 연결해 생각했다는 점에서 믿음에 대한 사람의 인식과 생활양식을 새롭게 되새길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머니 마리아와 제자들과 함께 카나 지방의 한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아 참석하십니다. 그런데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집니다. 그러자 성모 마리아께서는 주님께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리고 청합니다. 아들 예수님은 우선 어머니, 저나 어머니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요한 2,4) 그리고 둘째로 아직 제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요한 2,4) 라는 말로 거절하십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계속 청하십니다. 하인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 하고 이릅니다. 주님께서는 어머니의 청을 거절하지 않으시고 들어주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채 다시 맛있는 포도주를 즐기며 잔치를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이 카나의 혼인 잔치 기적 이야기에 나오는 어머니 마리아를 통해, 우리는 현대 사회 안에서의 신앙인의 역할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 마리아는 잔치가 흥겹기 위해 꼭 필요한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주님께 알립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였다.”(요한 2,3) 왜 성모 마리아는 아들 예수에게 그 사실을 알렸을까? 어머니 마리아는 아들 예수에게 말하면, 예수님이 반드시 기적을 일으켜 주실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집에서 음식이 떨어졌을 때나 아버지께서 미리 말하지 않은 손님을 모시고 오는 바람에 음식 재료나 조미료가 모자라 황급해하며 허둥지둥하는 어머니께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는 기적을 베푸셨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예수님께서 나쁜 일도 아니고 더군다나 예기치 않게 손님이 많이 와서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발견하고 아들 예수님을 찾아왔는지 모릅니다. 성모님은 아들 예수님께서 예전에 집에서 그랬던 것처럼 도와주기를, 친척이나 가까운 친지의 잔치가 망가지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하여 아들 예수님께서 청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께서는 아주 쉬운 일이셨지만, 이렇게 많은 손님이 모여있는 가운데에서 기적을 일으키기에는 부담스러우셨습니다. 이른바 예수님의 초능력과도 같은 기적을 발휘하는 능력이 드러났을 때, 닥쳐올 불편한 사실이 불안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잔치나 벌이며 그때 그 순간 사람들 좋아하라고 선심 쓰는 것처럼 낭비하거나 떠벌릴 능력이 아니라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방법론적으로도 나중에 하늘 나라를 건설하는 사명 수행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에서 꼭 필요하여 사용해야 할 능력을, 하늘 나라 건설과의 연관성도 없이 벌써 드러내면, 예수님의 사명 수행과 예수님이 추구하는 하늘 나라가 자칫 잘 먹고 잘사는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풍요 상태라고 축소되고 변질되어 받아들이게 될까 두려워 망설이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에게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4) 라고 머뭇거리셨나 봅니다.

 

둘째, 어머니 마리아는 비록 주 예수님께 거절을 당했지만 계속 청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주 간절하게 기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가 빨리 아니 당장 이루어지지 않으면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그냥 포기해 버리기도 합니다. 그 사정이 들어주시면 좋고 안 들어주시면 어쩔 수 없다고 여길 정도로 그렇게 간절하지도 않은 것이어서 그런 것일까? 또는 그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해결될 그런 것일까?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내게 꼭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시지,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방법대로 이루어지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안 들어주셨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렇게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주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주님이 자기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므로 주님은 자기에게 필요 없는 존재라고 여겨 주님 곁을 떠나버리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곁을 떠나지도 포기하지도 않고 계속 청합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이성적인 강인함도 어머니의 감성 어린 청에는 박절하게 거절하실 수 없으셨는지도 모릅니다.

 

셋째, 어머니 마리아는 아들 예수님께서 꼭 들어주시리라고 믿고 청하십니다. 그래서 성모님이 청한 바를 아들 예수님께서 결국은 들어주실 것이므로 사람들에게 아들 예수님의 명을 따르도록 준비시킵니다.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하고 말하였다.”(5) 마리아는 주님께 끊임없이 청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준비마저 합니다. 감나무 아래에서 그저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간절하고 열렬한 마음으로 입만 벌리고 누워있는 것이 아니라, 감나무가 익도록 물과 비료도 주고 가지도 치며 준비를 하고 익은 것을 보고는 익혀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따 먹는다고나 할까!

 

결국 어머니의 거듭되는 간절한 청에, 망설이고 주저하던 예수님께서는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7) 라고 말씀하십니다. 일꾼들이 여섯 개의 물독에 물을 가득 채우자, 예수님께서는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8) 라고 하십니다. 이미 물은 포도주로 변화되어 있었습니다.

 

넷째, 마리아를 통해 세상은 다시 흥겹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이 예수를 구세주로 믿게 됩니다. 마리아의 이런 수고를 통해 주님은 은총을 베풀어주시고 다 같이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렇듯 요한 복음사가가 전하는 예수님의 첫 기적은 어머니 마리아의 청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 기적을 통해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11) 라고 요한 복음사가는 전합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고 꼭 하셔야겠다는 성격의 필요도 아니었고, 또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여겨서 거절한 이적이 결국 어머니 마리아의 간절한 청으로 이루어집니다. 주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청원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 삶의 개인적인 간절함 뿐 아니어도, 우리 주변인이나 우리 공동체의 절실한 요구호 상황이나 꼭 채워야만 하는 결핍이 생겨났을 때, 현실적으로 쉽게 해결되지 않을 때, 또는 우리의 힘으로 수고하는 모든 노력이 주님 사랑 안에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기를 조르듯이 청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카나에서 기적을 베풀어주셨듯이, 우리에게도 기적을 베풀어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카나에서 어머니 마리아의 청을 통하여 일을 들어주셨듯이, 오늘 우리도 어머니 마리아께, 예수님께서 꼭 들어주시도록 어머니께서 우리 대신 어머니의 권위로 청해 달라고, ‘전구기도를 청할 수 있겠습니다.

 

강론 서두에 말씀드린 바와 같은 예나, 성당에서 마이크가 나가면 제의방 담당 수녀님께서 앰프 앞에 가서 주모경을 바치면 다시 들리게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것처럼 들리면서 간절한 염원으로 청하는 이의 기도를 물리치지 않으시는 주님의 자비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의 믿음 안에서 되새길 수 있습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점점 더 과학화되어 가고 있는 이 시대에, 과학적으로는 풀 수 없는 요구호와 간절한 염원을 주 예수님께 자비로우신 사랑으로 허락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주님께서 기억해 두셨다가, 주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방법대로 이루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기적을 이루시려는 그 과정에서 우리를 주님 도구로 써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하였다.”(요한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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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주일 꽃꽂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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