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관련

선교, 이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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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 [khsjp] 쪽지 캡슐

1999-04-17 ㅣ No.102

1999년 정진석 대주교님의 서울 대교구 사목교서를 보면 선교하는 본당의 중요성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본당 신자수의 10%에 해당하는 숫자를 새가족으로 찾아 나서라는 말씀이다. 그 만큼 젊잖기만 한 한국가톨릭의 신자들에게 일침이 되는 말씀이기도 하려거니와 적극적인 복음선포의 행동을 강조하신 말씀으로 이해하고 한 본당의 사목을 책임지고 있는 나도 이 지침을 열심히 따르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다.

  각설하고 가톨릭 신문이나 평화신문을 통해 알려지는 몇몇본당의 실태를 선교와 관련하여 주의깊게 읽노라면 짜증이 나는 이유는 왜 일까?

새가족 찾기 900명, 또는 800명, 500명, 300명등 아직 검증되지 않은 숫자에 대한 보도하며 마치 경쟁이라도 붙듯 한개인의 욕심을 채우려는 것인지 아니면 신자공동체의 욕심을 채우려는 것인지 도무지 알수 없을 듯한 선교의 과열 양상은 마치 내일이면 이나라국민 모두가 천주교 신자가 되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하느님의 일을 하면서 하느님을 빙자한 인간의 일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본다. 아,엠,에프이전에 부풀리기로 정평이 나있던 정치 지도자들의 모습을 교회가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도 선교, 너도선교,  좋아보인다.   하지만 선교를 하고싶어도 하지 못하는 이들에대한 기만과 교회가 마치 물량주의 로 빠져들기 시합이나 하는 듯 내눈에는 참으로 안타깝기기 그지없다. 교구장님의 의도가 이토록 퇴색된다면 선교는 누구를 위한 선교가 될것인지....

선교의 욕심에 많은 신자들은 갈길을 잃고 직장과도 같은 상명하복의 절대권위가 성당에서 일어나고 있음에 개탄을 금치 못한다. 누구하나 똑바른 소리 하지 못하고 내내내하면서 의욕을 잃어 간다면 이것은 누구의 책임이 될 것인가?   하느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신앙공동체이어야 함을 너무나 잘알고 있는데 왜 직장 공동체가 되어가는지 알수가 없다.

단 한사람을 선교하더라도 기쁨과 사랑과 감사의 정이 배어나오는 아름다운 선교가 되어야 할텐데 신자들의 마음이 찌뿌둥해 온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

마음이 아프다. 이애서는 안되는데.....

취재하는 기자의 자질도 의심스러울 수 밖에.

입교하겠다고 약속만 했다면 기다려보아야 마땅할 텐데. 아직 오지도 않은 숫자를 기적이라 외치며 녹화까지 해 갔다니 한심스러울 수 밖에.

다른본당에 본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항변한다면 설득력이 없지 않을까!

정신차려야 한다.. 거품을 빼야한다고 생각한다.교회가 먼저 이러한 것들을 실천하지 못한다면 앞일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지금이라도 하느님의 일에 인간의 욕심을 채우지 않는 빈 마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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