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동성당 게시판

[신앙체험수기]청년 거듭나기 오현주 데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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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수 [kangcarolus] 쪽지 캡슐

2000-10-21 ㅣ No.5094

보나 언니의 세례식

 

오현주 데레사(거듭나기)

 

저는 막 사회로 첫발을 내딛은 스무 살의 어느 봄날, 저랑은 네 살밖에 차이나지 않는 막내 이모의 손에 끌려 장애인 봉사단체인 거듭나기에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몇 달도 못가 힘도 들고 재미도 없는 그 단체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2년 동안 아무 활동도 하지 않고 지내다가 어느 날 저는 다시 무언가에 이끌려 관심밖의 일이었던 그곳을 다시 찾게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제가 만난 사람이 한 분 있습니다.

 

이름은 "이 보 나" 자그마한 키. 동그란 얼굴.  짝딸막한 손. 둥그런 어깨를 가진 어딜 봐도 귀여운 그녀!! 저보다도 일곱 살이나 많은데 정신연령은 세 살 짜리 어린아이에 비교 할 수 있을 만큼 순수하고 맑았답니다.

 

보나 언니는 정신지체 1급에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난 장애인이랍니다. 제가 처음 봤을 때 아무런 말없이 저를 보며 따스한 미소를 보내던 그녀의 눈동자에서 사랑이 아주 많은 사람임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지요.

 

왠지 모르게 전 언니가 점점 좋아져 갔습니다. 할 줄 아는 말이라 봐야 "네~"하고 수줍은 미소를 띄우는 것이 전부였고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지만, 착하고 고운 그 심성은 저를 마구 그녀에게로 빠져들게 했답니다. 그리고 언니도 점차 저를 좋아하게 되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저희들의 지속적인 방문 때문인가요? 성당에는 관심도 없던 보나 언니의 어머니께서 성당에 나오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저희는 기뻤답니다. 우리 보나 언니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하느님 보시기에도 신나는 일일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저희는 영화 ’분닥세인트’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사명을 부여받은 형제라도 된양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보나 언니와 함께 미사를 드렸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찌는 듯한 여름에도 보나 언니는 주일아침 "성당 가야지" 하시는 어머니의 말씀만 들으면 벌떡 일어나 채비를 합니다.

 

집안에서만 30년 넘도록 지내온 언니는 그야말로 엉거주춤한 폼으로 어그적 어그적 걷습니다. 손을 잡아야만 걸을 수 있던 언니! 그러나 이제는 성당에서 집까지 가는 길도 다 외우고 혼자 가보시라면 뒤따라오는 우리 눈치를 보아가며 잘도 가십니다. 단지 아직도 횡단보도를 무서워하고 차가 와도 비킬 줄 모르는 게 좀 걱정이지만 보나 언니가 이만큼 발전할 수 있는 게 바로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자그마한 기적이 아닌가 싶었지요.

 

우리는 오며 가며 성호경 긋는 것도 공부하고 여러 가지 노래도 부르며 다녔습니다. 보나 언니가 무슨 말인지도 모르게 따라하는 모습은 정말 사랑스러웠답니다. 그러나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운증후군은 염색체 이상으로 오는 선천적 질환으로 서로들 닮았고, 누구나 장애인임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보나 언니가 지나가면 놀란 듯 처다 보았습니다.

 

그런 눈총 속에서도 어느새 이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그리도 못하던 성호경을 이제는 "성부와~"만 말해도 손이 절로 이마로 갈 정도로 도가 트이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저희는 보나 언니가 이번에 있는 본당 세례식에서 세례를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부족했던 것일까요!! 이번 세례식에서 세례를 받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또 교리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이유였지요. 하지만 저희는 그 모든 것이 미리 준비하지 못한 우리들의 불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원들도 저도 조금은 기운이 빠졌지만 좀 더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함을 느껴 휴교를 했었던 장애인 주일학교 ’늘참반’을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수녀님이 담당하시는 예비자 교리 학생반에서도 교리를 받게 하며 다시 한 해를 준비했습니다.  

 

드디어 한 해가 지나 세례식이 다가왔답니다. 그런데 반복에 반복을 더해도 할까말까한 보나 언니인지라 저희는 다시 걱정이 생겼습니다. 세례식 때 실수라도 크게 해서 툇자라도 맞을까봐 였지요. 우리들이 하느님께 드리는 간절한 기도도 시간이 가까와짐에 따라 더해갔습니다.

 

세례식을 앞두고 3일간의 종합교리가 있었는데 그때까진 지루해하지도 않으셨고 누구보다 얌전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례식 전날 예절 연습 시간에 성체모시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우리끼리 과자로 연습은 많이 했지만 직접 보기는 처음이고 성체가 혀에 닫은 느낌이 어색했던지 갑자기 언니가 "안먹을래요"라고 하는 바람에 주위 사람들이 모두들 놀랐답니다.

 

그런데 실상 저희가 놀란 것은 평소 기껏해야 "네~"라는 말밖에 모르던 언니 입에서 그렇게 긴말을 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자리에 앉은 언니는 밍밍하고 아무 맛도 없는 밀떡을 삼키기가 뭐했던지 혀 위에 놓고는 입을 벌렸다 다물었다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간절한 심정으로 ’주님 삼킬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언니를 보니 언니는 어느새 삼키고 저를 말똥말똥 처다 보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세례식날이 되었습니다. 언니 어머님은 심한 관절염에도 불구하고 택시까지 타고 오셔서 축하해주시고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예식에도 모두들 의젓했답니다. 가장 걱정되었던 영성체 때도 놀라우리 만큼 잘 하였습니다. 언니에게는 두 번째라서 그랬는지 몰라도 정말 첫 영성체를 잘 해준 언니를 보고 왠지 모르게 울컥하는 마음이 들면서 코끝이 찡해져왔답니다.

 

잘해준 언니가 고마웠고 모두에게 한없이 감사했습니다. 오늘처럼 하느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한 날이 있으랴 싶었습니다.

 

그날 언니를 집에 바래다주고 돌아오면서 까만 하늘에 세례식 때의 보나 언니 얼굴을 그려보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보나 언니,

 

언니는 나에게 예수님이에요.

 

사랑이 무엇인지..

 

인내가 무엇인지..

 

기쁨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신

 

작은 예수님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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