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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읽고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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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현주 [hjlidwina] 쪽지 캡슐

2000-11-29 ㅣ No.5560

오래 전 초겨울 아님 늦가을 쯤? 전태일 일대기를 사람들의 성금을 모아 만든 적이 있었지요? 그때 쇼걸인가 하고 같이 상영되서 한 친구와 입씨름도 했던 기억이 나는 군요.

며칠전 그 전태일 영화를 보러 갔다가 시간이 남아 헤매다니던 길을 갔었습니다,,그때 친구와 나눴더 얘기들,,뭐 그런 것이 생각나던 차에 이 글이 눈에 들어와서요,,같이 읽고  싶어서요..

여러가지 일로 우리가 각자 다른 문화를 이루고 생활하지만 여하튼 교회안에 모여서 있는데 왜 서로 공동체를 깨려할까 하는 생각들이 있던 차라 더 그분이 생각나는 것 같네요, 전태일 이 분 역시 또 다른 우리 예수님의 모습이잖아요..

우린 또 그분을 못 알아보는 어리석은 백성이구요..

여하튼 항상 내가 왜 교회에 있는지 교회는 무엇인지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한겨레 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난나이야기] 취업준비생에게 `전태일’은...

 

대학교 1학년 때 한 시사토론학회에 들어가 활동하면서 <전태일 평전>을 처음 접했다.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지만, 당시 나는 그 책을 끝까지 다 읽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그 책 속의 전태일을 노동문제를 다룬 소설 속의 한 주인공으로 착각했던 듯하다. 내가 착각한 전태일은 너무나 비현실적인 행동들로 인해 나로 하여금 결국 그 책을 접게 만들었다.

 

대학에 입학한지 만 8년이 되어 가는 지금 나는 아직 사회로 가는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리저리 입사지원서를 넣어보지만 나를 반겨주는 곳을 찾을 수 없다. 결국 몇 번의 낙방 후에는 최근 싸늘해진 경기 탓만 하고 있는 여느 취업준비생인 것이다.

 

이런 내가 최근 전태일 30주기를 맞아 준비되는 교내 추모행사 홍보를 위해 나온 학생들에게서 <전태일 평전>을 구입했다. 11월이 되자 쏟아져 나온 전태일 추모의 물결이 신입생 시절 그 책을 다 읽지 못했던 나의 기억을 되살린 것이다. 이렇게 다시 잡은 전태일 평전을 순식간에 독파하고 나서 나는 지금 한없이 작아져 있다.

 

30년 전 동대문 평화시장의 한 재단사의 삶과 사람에 대한 지독한 사랑 앞에 쪼그라들어 버린 것이다.

 

“다 같은 인간인데 어찌하여 빈한 자는 부한 자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까. 왜 가장 청순하고 때묻지 않은 어린 소녀들이 때묻고 부한 자의 거름이 되어야 합니까? 이것이 사회의 현실입니까? 빈부의 법칙입니까?”

 

지독히 `빈한 자’였던 전태일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가난을 초월하여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의 빈함에 가슴아파하고 분노하였다. 그는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한 층을 아래위로 둘로 나눠 천장의 높이가 1.6m 정도밖에 안 되는 노동지옥에서 혹사당하는 여공들을 위해 자신의 식대와 차비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곧 여공들을 위한 온정적 태도의 한계를 깨닫는다.

 

그 후로 그는 밤낮을 아끼지 않고 노동자들의 노동실태를 조사하여 기업주와 노동당국에 진정을 하여 자신이 독학해 알아낸 근로기준법이 준수되도록 하기 위해 힘썼다. 여기서 더 나아가 그는 자신의 `한 쪽 눈을 사회에 봉사해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는 시범업체를 직접 설립하여 다른 사업주들을 계도하려는 원대한 희망을 품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와 같은 일련의 노력들이 허사임을 깨닫고 `완전에 가까운 결단’으로 노동자를 억압하고 노동조건 개선을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대상으로 하여 필사적인 항의 투쟁을 펼친다. 결국 전태일은 우리에게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외치며 스물둘의 젊음에 석유를 끼얹고 한 점 불꽃으로 화해갔다. 그리고 그가 남긴 유서는 아직도 우리의 안일한 정신을 옥죄어 온다.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영원한 휴머니스트 전태일의 삶과 투쟁과 죽음은 그동안의 학생운동, 노동운동, 민주화운동 속에 용해되어 21세기를 맞았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현재 전태일이 맡긴 그의 생애에 못다 굴린 덩이를 그가 바라던 목적지까지 굴려왔는지 자신이 없다.

 

취업의 문턱에 걸려 허우적대던 나로서는 아직 좁은 자아의 껍데기를 깨지 못하고 있었음에 더욱더 부끄러워진다. 나는 이제 노동소설 속의 주인공이 아닌 치열하게 현실적인 삶을 살았던 인간 전태일을 통해 `나와 이웃과 세계에 대한 참되고 순수한 관심의 햇살이 비치는 곳을 향하여’ 한 발자국을 내딛으려 한다.

 

소장섭/<인터넷한겨레> 하니리포터·인하대학교 영문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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