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동성당 게시판

[청년연합]사무장님을 위해 썼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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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만 [Blueyes] 쪽지 캡슐

1999-09-10 ㅣ No.1470

16년 전의 일기장을 꺼냈습니다.

회색 갱지 100원짜리 공책엔  

삐뚤삐뚤한 글씨와,

그림으로 그린 날씨와,

여섯살의 제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습니다.,,,,,

 

 

우리 옆집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애가 살아요. 이름은 승아에요. 우린 나이

도 같구, 다니는 유치원도 같구요, 생일도 비슷해요. 우리가 태어나던 날,

우리 아빠들은 저 골목 앞의 대성상회에 가서 술을 같이 드시고는 나중에

우리 그냥 결혼시키기로 하셨대요.

 

우린 어렸을 할부터 매일 같이 놀았어요. 빨간색 바께쓰에서 목욕도 같이

하구요, 걸음마도 같이 배웠대요. 아기일때 사진을 보면 승아가 제 팔을

깨물고 있고 저는 그래도 뭐가 좋은지 히~ 하고 웃고 있는 사진이 있어요.

울 아빠가 이걸 보구는,

 

" 너 승아랑 결혼 시키면 안되겠다. 완전히 공처가로 살 꺼 같구만...."

 

라구 그러셨어요. 난 공처가가 뭔지 몰라서 계속 물어봤는데, 그냥 계속 씨

익 웃으시면서 안가르쳐 주세요.

 

 

우린 유치원 갈때도 같이가요. 저 쪽 뚝산오르는 길 옆으로 자갈이 많은 길

을 계속 따라 걸으면 유치원이 나오는데요, 원래는 10분만 가면 되는데 우

린 가면서 막 때리고 도망가구, 가위바위보들보들개미똥꾸멍멍이가똥을 쌌

대요~! 하면서 가위바위보 해서 한걸음씩 가기두 하구, 원반같이 생긴 유치

원 빵모자를 날리기도 하구 그래서 매일 지각해서 혼나요. 유치원 낮잠시간

에도 잠자는 척 하면서 몰래 목 뒤를 손가락으로 찌르고

 

" 어느 손가락으로 찔렀게?"

 

하구 놀다가 선생님한테 들켜서 장난감 상자 치우는 벌도 많이 받았어요.

치우면서도 승아랑 장난감 던지면서 놀다가 선생님한테 무지 혼난 적도 있

답니다. 혼나면서도 우리는 서로 보고 키득키득 웃었어요.

 

 

여름이면 승아네 집에서 오렌지 가루를 물에 녹인걸 얼려서 샤베트 해 먹고

나가서 해 질때까지 고무줄 하고 놀았어요. 고무줄은 제가 승아보다 더 잘

해요.

 

" 적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

 

라구 노래 부르면서 고무줄을 머리 위까지 있는걸 밟아서 땅에 찍고 다시

도는건 우리동네에서 저밖에 못했어요. 우리 동네 남자애들은

 

" 쟤는 남자애가 고무줄 한대요~~ 쟤는 승아 남편이래요~~ "

 

하고 놀리긴 했지만 제가 고무줄을 하니까 고무줄 자르고 도망가는건 못했

어요. 그래서 여자애들도 고무줄 할때면 항상 절 끼워줬어요. 전 고무줄 하

는 것보다도 승아랑 놀 수 있다는게 더 좋았구요.

 

 

전에 유치원이 끝나고 다시 자갈길을 걸어오는데 승아가 업어달라고 그래서

비틀비틀 거리면서 업고 집에 오는 길이었어요. 승아가 나보고 귀에 대고는

요,

 

" 우리 나중에 결혼하는거다~. 응?"

 

하고 물어봤어요. 전 막 좋다구 그러구 싶었지만 아빠한테 전에 들은게 있

어서

 

" 우리 아빠가 너랑 나랑 결혼하면 안된대....그럼 나 공처가 된대."

 

" 공처가가 뭔데?"

 

" 나두 몰르는데, 머 괴물이나 그런걸로 변신하는거면 어쩌지?"

 

" 그래도 결혼 하자. 응? 응? 응? "

 

" 그래~~~"

 

하고는 내려서 둘이 폴짝 폴짝 뛰면서 왔어요. 그날 전 몰래 우리집 담벼락

에다 전에 땅따먹기 그리다가 남은 석필로

 

" 승아 ? 진석 "

 

하구 크게 쓰고 왔답니다. 나중에 승아가 보구 이거 누가 이런거냐구 막 그랬

지만 난 몰르는 척 하구 그냥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날부턴지 모르는데요, 승아가 이상해졌어요. 얼굴도 이상하게

하얗구요, 전에는 저랑 달리기도 잘 했는데 이젠 조금밖에 못 뛰구요, 유치원

낮잠시간에도 전엔 저랑 자는 척 하면서 놀았는데 지금은 그냥 자요. 집에

올때두 자꾸 쉬었다 가자구 그러구, 고무줄도 조금 하다가는 집에 그냥 들어가

요. 그러면 저는 더 하는 척 하다가 그냥 집에 엄마가 불른다구 가서는 승아네

가서 놀아요. 근데 전엔 하루 종일 승아네서 놀아도 승아 엄마가 아무말도 안

하셨는데 요새는 조금 놀면

 

" 승아 힘들어서 안돼. 이제 집에 가야지?"

 

하고는 절 보낸답니다. 전 아줌마가 무지 원망스러웠어요.

 

 

그 날은 오랜만에 유치원에서 초코파이 간식이 나오는 날이었어요. 우리는

초코파이를 간식 시간에 안먹구 가방에 넣어가지구는 집에 오면서 먹었어요

. 그 날따라 승아도 쉬었다 가자구 안그러구 괜찮아 보여서 오랜만에 망까

기를 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잘 세워지는 돌을 찾아서 세워놓구는 맞추기를

하는데 잘못해서 승아가 돌을 밟다가 넘어졌어요. 그래서 무릎이 까졌는데

피가 막 났어요. 계속 피가 그치지 않고 계속 나와서 승아두 울구 저두 피

가 무서워서 같이 옆에서 엉엉 울었어요. 저희가 우는 소리를 들은 우리 엄

마랑 승아네 엄마랑 나오셔서는 두 분이 뭐라구 얘기하시드니 승아네 어머

니는 승아를 업고 막 골목 저쪽으로 뛰어가시구 전 엄마가 데리고 집에 들

어 가셨어요. 그리고는,

 

" 진석아, 이제 승아랑 놀면 안돼."

 

" 왜요?"

 

" 승아가 아프단다. 그래서 놀면 힘들어서 안돼."

 

" 아녜요. 오늘은 괜찮았단 말예요."

 

" 하여튼 이젠 놀지마라."

 

그날 전 승아랑 놀겠다구 엄마한테 대들다가 회초리로 맞았어요. 전 슬퍼서

엉엉 울었구 엄마두 뭐가 슬프신지 같이 우셨어요.

 

 

그날 이후로 전 승아랑 한번도 놀지 못했답니다. 유치원 갈때두 승아 엄마

가 승아를 데려다 주구요, 올때두 그러구요. 가끔 승아네 집 앞에서

 

" 승아야, 놀자~"

 

하면 승아 엄마가 나와서

 

" 이제 승아랑 놀면 안돼요. 어서 가거라."

 

그러면서 한번두 승아랑 놀게 못하구요. 승아랑 안노니까 고무줄도 재미가

없어서 한 번두 안했어요. 유치원 갔다 올때두 이젠 혼자서 와요. 가을이라

길가에 코스모스 꽃이 막 피었는데 그게 흔들흔들 거리는게 날 놀리는 거

같아서 막 뛰어왔어요. 그날 우리집 담벼락에 전에 쓴 " 승아 ? 진석 " 이

라는 글씨가 다 지워져 버려서 석필로 계속 계속 쓰고 또 썼어요. 유치원

가다가 승아가 이걸 보겠지 하면서 석필이 다 닳아 없어질때까지 쓰고 ?

썼어요.

 

 

그러던 어느날, 일요일이었어요. 갑자기 엄마가 전에 사고는 한번도 입지

않으신 한복을 입으시구요, 저한테는 제가 제일 아끼는 옷을 입으라구 하셨

어요. 그래서 전 태권V 티셔츠하구 멜빵바지하구 입었어요. 그리고 절 데리

고 우리동네 앞에 있는 교회로 데리고 가셨어요. 가시면서 계속 우셔서 엄

마 왜그래 하구 물어볼려구 그랬는데 엄마가 또 대답 안해주실꺼 같아서 그

냥 따라갔어요.

 

교회 안에는 우리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있었어요. 전 그런거 처음봐서 어

리둥절 해 있었는데 엄마가 저 보구

 

" 진석아. 승아...이제 먼 나라로 갔단다. 저기 가서 인사하고 오렴."

 

하셨어요. 그래서 전 저 앞에 나무로 만든 조그만 침대같이 생긴 곳으로 갔

더니 그 안에 승아가 자고 있었어요. 그래서 전 승아한테 말했어요.

 

" 승아야. 나 나중에... 공처가 되두 좋으니까 우리 결혼하자. 응? "

 

그랬어요.그러니까 옆에서 승아 아줌마가 막 우시면서

 

" 진석아...이제...승아 다시 못봐....승아 이제 먼 곳으로.."

 

하고는 말을 다 못하시고 우셨어요. 전 승아 올때까지 우리동네에서 기다릴꺼

라구 말 할려구 그랬는데 승아를 오래 못보게 된다니까 갑자시 슬퍼서 엉엉

울었어요. 승아 어머니두 절 안고는 계속 우셨어요.

 

....

 

 

 

 

 

 

오늘은 승아의 20번째 생일입니다. 전 승아의 무덤에 장미 20송이를 놓고

집에 오는 길입니다. 동네도 많이 바뀌고 자갈길도 아스팔트 길로 바뀌었지

만 길가에 핀 코스모스는 여전히 한들거리고 있었습니다.

 

승아가...많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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