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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식 [senal] 쪽지 캡슐

2008-08-21 ㅣ No.7766

 무엇을 위한 국제중학교인가? 

  [독자 기고] 아직도 '국제 경쟁력=영어'라고 믿나 

서울시 교육청이 국제중학교 신설을 추진하고 있어 요즘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찬성하는 측은 국제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키워내며 동시에 조기 유학을 억제하여 인재 유출과 외화 낭비를 막을 수 있다는 측면, 또한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창구의 기회가 넓어진다는 교육의 수월성 측면에서 지지하는 한편, 반대하는 측은 사교육 시장의 팽창과 더불어 초등학생마저 입시에 내모는 가혹한 제도, 그리고 평준화의 근간을 뒤흔든 사실상 중학교 입시 부활이라며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는 형편이다.

  국제 경쟁력 있는 인재를 양성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나이가 고작 13살에서 16살의 어린 청소년이다. 더군다나 국제 경쟁력을 기른다고 하면서 방법이라는 게 고작해야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고, 제2외국어 수업 시간을 늘린다는 것이다. 즉, 국제중학교 찬성론자들의 머릿속에는 '국제 경쟁력=영어'라는 공식이 틀에 박혀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 나이에 영어 몰입 교육을 받아 영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게 되면 국제 경쟁력이 길러진다고 판단하는 모양이다. 이것은 정권 초기 영어 몰입 교육을 주장하며 영어가 곧 국력이라고 주장하던 MB 정권의 교육관과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영어가 아니다. 21세기에 필요한 국제 경쟁력이라는 것은 다름 아닌 창의력과 상상력이다. 이 창의력과 상상력을 기르기 위해서 필요한 교육은 영어, 제2외국어가 아니다. 폭 넓은 독서와 논술, 토론 학습, 그리고 수학과 과학의 공부가 바로 국제 경쟁력의 밑거름이 되는 교육인 것이다. 외국어는 단순한 수단이다. 수단을 아무리 익힌들 그 수단을 통해 표현할 알맹이가 알차지 못하다면 '경쟁력'이란 뜬구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새로 신설될 국제중학교 가운데 한 곳인 대원중학교의 경우 수학과 과학 교과의 시간을 줄이고 세계사, 세계지리 교과의 시간을 늘려 세계를 이해하는 내용의 수업을 중점에 두고 학생들을 가르치겠다고 한다. 또 같은 재단인 대원외고의 원어민 교사를 활용하여 제2외국어 하나 정도는 마스터할 수 있을 정도로 가르치겠다고 한다. 

  고교생의 학업 성취도가 세계 1, 2위를 다투면서도 대학생 및 대학교의 경쟁력은 세계적 수준에서 뒤떨어지는 이유는 뛰어난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에 반해 학습 욕구는 그리 높지 않다는 점, 그리고 학문 탐구의 장이 아닌 취업 전문 학원으로 전락한 대학교에 있다. 중·고교 시절 지나치게 공부에 혹사당한 것이 원인이 되어 학습 욕구의 감퇴를 가져 왔고, 입학은 어렵되 졸업은 수월한 대학 체제, 그리고 전공 공부와 기초 학문 탐구와는 거리를 두고 어학 공부와 각종 자격증 시험공부 등, 학생들이 취직에 유리한 공부에 매진할 수 밖에 없는 이 사회의 풍토가 소위 말하는 '경쟁력'을 떨어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제 경쟁력 운운하며 올바른 인재 양성을 외칠 때, 우리는 그 포커스를 중·고교생이 아닌 대학생에 먼저 맞추고, 수단에 불과한 외국어 공부에서 창의력과 상상력을 배양할 수 있는 독서 및 논술, 수학과 과학 공부로 맞춰야 할 것이다.

  사교육의 개입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 놓았다고 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추첨제다. 국제중학교 입시는 크게 3단계로 구성되는데, 1단계 서류전형에서 학교장 추천제와 생활기록부 활용으로 정원의 5배를 뽑고, 2단계 면접전형에서 개별면접, 집단토론을 통해 정원의 3배로 압축한 다음, 마지막 3단계에서 추첨을 통해 최종 인원을 선발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사교육의 개입을 억제할만한 구석이 없어 보인다. 일단 서류 전형에서 생활기록부를 통해 당락을 가르겠다고 했는데, 그렇게 되면 단연 학업 성취도의 비중이 커질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 교육부는 대입에서 수능의 비중을 줄이고 내신의 비중을 늘리기 위해 수능을 점수제에서 등급제로 바꾸고, 내신의 비중이 큰 수시 모집의 선발 인원을 확대했다. 모든 것은 '사교육' 때문이었다. 사교육의 영향을 많이 받는 수능의 비중을 줄이고, 공교육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내신의 비중을 높임으로써 공교육 정상화 및 사교육 억제가 이뤄질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일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수능 대비를 위한 대규모 학원가에는 다소 한파가 불어닥친 반면 내신 대비를 위한 중소규모의 보습 학원들의 숫자는 늘어났다. 또한 대학 측의 비협조로 수능의 변별력은 줄어들지 않았으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본고사형 논술 시험까지 대비해야만 했다.

  국제중학교 입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5배수를 뽑는 1단계 전형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 없을 바. 그렇게 되면 이제 초등학생들도 내신을 위해 보습학원을 다니면서 시험 공부에 매달려야 한다. 

  각종 영어인증시험, 올림피아드 수상 내역 같은 수상경력의 기재를 금지하여 입시에 활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보이고 있지만 사실상 생활기록부의 비교과 란에 이미 이런 내용들은 전부 기재되고 있어서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가 된다. 내신 뿐만 아니라 비교과 영역에서도 학생들은 남보다 더 뛰어난 결과를 얻기 위해 이 역시도 사교육 러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뿐만 아니다. 2단계 전형은 개별면접 및 집단토론. 창의력과 사고력, 문제해결 능력과 협동심, 리더십 등을 평가한다는 이 전형이야 말로 사교육 시장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시사적인 주제로 토론하고 자기소개서도 받겠다는데 이 부분은 현재 공교육의 영역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학생들은 학원가로 몰려들 것이 뻔하다.

  영어 면접을 제외하겠다는 말 역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다. 이미 국어와 국사를 제외한 대부분 과목을 영어로 수업하겠다는, 영어 몰입 교육의 뜻을 비친 국제중학교이다. 그런 상황에서 선행학습이 되어 있지 않다면 수업 내용을 따라가기 어렵고 자연스레 학업에서 도태될 것이 자명한데, 영어 교육에 투자하지 않을 학부모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요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초등학생들의 단기 어학 연수나 조기 유학이 더 급증할 수 있다. 조기 유학을 막기 위해 생기는 국제중학교가 오히려 조기 유학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1, 2단계를 거친 이들 중에서 추첨을 통해 최종 인원을 선발하겠다는 것인데 방안을 놓고 보면 사교육의 개입을 막겠다는 것인지 환영하겠다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사회적 약자 배려 전형이 정원의 7.5% 정도라고 했다. 국제중학교의 연간 학비는 특목고와 비슷한 수준인 연 500만 원 선. 서민층에서는 엄두를 내기 힘든 큰 액수이다. 귀족학교라는 꼬리표가 붙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다고 했으면서 그 수가 정원의 1/10도 안되는데다 정작 국제중학교 입학전형안에는 장학제도 등이 설명되어 있지 않다.

  구시대적인 발상의 도입 취지, 사교육 시장의 팽창, 계급간 교육 양극화 심화, 이 세 가지 면에서 국제중학교 설립은 시기상조이다. 소수의 엘리트 학생을 위한 교육 창구의 신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체적인 공교육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일이다. 소수의 뛰어난 학생들에게 좋은 학습 환경을 제공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학생들에게 더 좋은 학습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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