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남터성당 게시판

하느님 저희에게도 희망의 빛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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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gichan72] 쪽지 캡슐

2003-03-23 ㅣ No.1989

소년소녀가장 생활수기 대상작  차영일군의 글입니다.

 

 

 

 

 

오늘도 새벽안개를 가르며 난 이집저집 대문에 신문을 찔러 넣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소년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된것은 지금으로부터 약5년전 어머니가 가출한 후 그 충격으로 인해 매일 술로 세월을 보내시던 아버지가 또 가출을 하시면서 그렇게 시작 되었습니다. 두 살 아래인 동생만으로도 힘든 상황이었는데 우리에게는 앞이 보이지 않는 팔순의 할머니가 계셨습니다.처음에는 어찌할 바를 몰라 나도 가출을 해버릴까 하는 마음에 몇 번이고 망설이고 방황도 했지만 거동조차 못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습니다.그러던 중 소년가장세대로 책정 되어 군청의 보호를 받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정말 어렵게 어렵게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우리의 이런 사정을 알고 주위에서 많은 분들이 집안 청소며 가사를 돌봐 주시러 오셨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창피하고 귀찮아서 자원봉사자 분들이 오시면 숨어버리거나 도망치기 일수였습니다.그러는 동안 할머니는 점점 건강이 안 좋아 지셨고 동생도 방황을 하는 듯 공부도 안하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습니다.저는 몇 날 며칠을 학교에 가지않고 나 자신의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답은 나오지 않고 어떠한 해결 방법도 딱히 없는 상태에서 정말 밥도 먹기 싫고 모든것이 다 싫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원봉사자 한 분이 저희 집을 찾아오셔서 저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용기와 힘을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행복하고 부유하게 성장하지는 않는다며’ 공부 열심히 하면 좋은 날이 꼭 올 거라고 도움을 주시겠다는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나는 모기 소리만한 목소리로 겨우 약속은 했지만 자신이 없었고 그럴만한 여유도 없었습니다.

 

 

 

 우리의 시련은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읍사무소 직원으로 부터 가출했던 아버지가 춘천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몇년동안 소식조차 없다가 이제 쓰러져 병원에 실려온 것이었습니다.

 

 

 

나는 부랴부랴 버스를 타고 두시간여를 걸려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버스안에서 나는 몇년만의 만남에 어떻게 대할 것인지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병실 문을 여는 순간 목에는 구멍을 뚫어 호스를 연결한 채 뇌졸증으로 거의 식물인간에 가까운 아버지를 보고 말문이 막혔습니다. 간병해 줄 사람도 없고 엄청난 입원비를 감당 할 수 없어 바로 퇴원을 하고 지금은 집에서 내가 병간호를 하고 있습니다.

 

 

 

앞이 안 보이는 할머니와 전혀 거동을 할 수 없어 호스를 연결해 죽으로만 식사를 하시는 아버지 그리고 중학교에 다니는 남동생과 이렇게 네식구가 14평 다가구주택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침이면 피곤해서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동생을 흔들어 깨워 우리 두 형제는 새벽을 가르며 이 집 저 집에 신문을 배달합니다.그나마 다행인것은 양구자원봉사센터와 연결이 되어 매주 찾아오시는 자원봉사자들이 밑반찬이며 집안청소,세탁등을 해주시는 덕분에 우리가족은 깨지지 않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정말 포기 하고 싶었던 때도 많았습니다. 추운겨울날 자전거가 미끄러져 신문이 길거리에 나뒹굴 때나 학교시험기간 중에는 그런 마음이 더했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집을 나간 엄마라도 돌아와 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환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럴때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했고 이젠 아버지 병간호와 약값을 위해서 더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생각에 어깨가 자꾸자꾸 무거워집니다. 그러나 어깨가 무겁다고 그냥 포기하고 가출을 해버리기엔 할머니, 아버지,동생 이 너무 가엽습니다. 그래서 나는 정말 마음을 다잡아 학교도 다니면서 가정 일을 돌보며 할머니 시중과 아버지 병 수발을 하며

 

생활 하고있습니다. 어제는 보건소에서 나오셔서 도저히 이대로는 안될것 같다며 아버지를

 

간병을 해줄수 있는 시설로 보내야 할 것 같다며 알아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막상 아버지가 회복가능성이 전혀 없어 시설로 들어가시게 된다면 계시는 날까지 그동안 못해드렸던 효도를 조금이나마 할 수있게 되기를 가슴 속 깊이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두 형제와 할머니를 나몰라라 내동댕이치신 아버지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나에겐 정말 소중한 ’아버지’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도 그렇고 자원봉사자분들의 말씀도 이제 아버지는 거의 가망 없는 듯

 

싶었습니다.

 

 

 

 이제 들녘에는 풍년을 알리는 황금물결의 벼들이 수확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정에도 그런 넉넉한 마음과 즐거운 행복이 찾아와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얼마뒤엔 추석이 다가옵니다.정말 몇년만에 아버지와 함께 하는 추석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고 아버지가 병마를 훌훌 털고 일어나셔서 우리 할머니 그러면서 옛날 행복했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습니다.

 

 

 

            하느님 저희에게도 희망의 빛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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