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동성당 게시판

연중 제21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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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michaelhun] 쪽지 캡슐

2003-08-26 ㅣ No.1246

연중 제21주일(나해. 2003. 8. 24)

                                          제1독서 : 여호 24, 1~2a.15~17.18b

                                          제2독서 : 에페 5, 21 ~ 32

                                          복   음 : 요한 6, 60 ~ 69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한 주간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장마철보다도 비가 더 많이 오는 것 같습니다.  아마 비를 좋아 하는 분들도 이제는 그만 좀 왔으면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왕이 한 죄수에게 사형을 언도하자 신하 두 사람이 죄인을 감옥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절망감에 빠진 죄수는 감옥으로 끌려가면서 “이 못된 왕아!  지옥 불구덩이에 빠져 평생 허우적거려라!”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때 한 신하가 그 죄수의 말을 막았습니다.  “이보시게.  말이 너무 심하지 않은가?”  하지만 죄수는 더욱 목소리를 높여서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무슨 말인들 못하겠소!”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왕은 신하들이 돌아오자 “그래.  죄인이 잘못을 뉘우치던가?”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죄수의 말을 가로막던 착한 심성의 신하가 “예.  게다가 자신에게 사형을 내린 폐하를 용서해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했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신하의 말에 왕은 매우 기뻐하며 그 죄수를 살려 주라고 명령을 내리려 했습니다.  그때 다른 신하가 “폐하, 아닙니다.  그 죄수는 뉘우치기는 커녕 오히려 폐하를 저주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왕은 “네가 한 말이 진실에 가깝다는 걸 안다.  그러나 나는 저 신하의 말이 더 마음에 드는구나!”라고 하며 그 신하를 나무랐습니다.  “폐하, 어째서 진실을 마다하고 거짓말이 마음에 든다 하시는 겁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저 사람은 비록 거짓일지라도 좋은 의도에서 그렇게 말했지만, 네 말에는 악의가 있구나.  때로는 선의의 거짓말이 분란을 일으키는 진실보다 나은 법이니라.”라고 왕이 말했습니다.

왕은 결국 죄수의 목숨을 살려 주었습니다.(좋은 생각에서)

 

좋은 의도에서 하는 거짓말이든 악의를 가지고 하는 거짓말이든 거짓말은 해서는 안 됩니다.  거짓말은 서로에 대한 신뢰를 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선택을 해야 합니다.  더 좋은 결과를 위해서 말입니다.  착한 신하의 거짓말은 한 사람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는 항상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가끔 영세를 받고도 잘 안나오는 교우들을 찾아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신앙생활을 마치 누구와 거래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교우들을 보게 됩니다.  영세 받고 신앙생활 하다 보니 이것저것 해야 할 것도 생기고 하여 신앙생활이 짐스럽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데 집안에 아이가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팔을 다치거나, 사소한 차량 접촉사고라고 나면 “성당에 나갔더니 궂은일만 생기네.”라고 하면 성당에 발길을 딱 끊는 것이 보통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느님을 믿으면 만사가 잘될 것이고 부귀와 영화가 굴러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당에 오면 이러한 생각과 기대와는 다르게 사랑하라는 말과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말들을 합니다.  세속적이고 계산적인 사고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신앙생활마저 하느님과 거래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지도 모릅니다.  신앙생활이 하느님과의 거래라고 생각하면 떠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어떤 모습입니까?

 

빵의 기적을 보고 몰려왔던 사람들이 오늘 복음에서는 더 이상 예수님을 따르지 않고 떠나갔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제 남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자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가겠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이때 시몬 베드로가 나서서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라고 대답합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선택’의 순간은 늘 다가옵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선택이 아니라, 세상의 기준과 하느님의 기준에 맞서는 선택의 순간 내 마음 속에서 외치는 그리스도인의 양심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저버리다니 될 법이나 한 말입니까?  그러나 한두 명씩 등을 돌리고 돌아서는 이들을 보며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으십니다.  여러분의 답은 어떤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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