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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에 부치는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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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인 [yisangin] 쪽지 캡슐

2006-04-11 ㅣ No.1264

봄비에 부치는 엽서/신영길 | 삶을 유익하게 하는 말
2006.04.11

봄비에 부치는 엽서
   
 

새벽부터 내린 비가 오전 내내 계속되었습니다.
큰 빗줄기도 아니고 차가운 날씨도 더욱 아니었기에
금방 그치려나 싶어서 창 너머를 하릴없이 자주 내다보았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밖에서 서성이는 듯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곤 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풀잎과 나무 잎사귀들이 후줄근하게 비를 맞으며 제 안에 온기를 만드려고 가끔 떨곤 하였습니다.
아이 손 같은 싹이 행여 다칠세라 비는 조용조용히 곱게 내려주었습니다.
어머니가 젖 빠는 아이의 손을 만져주는 것처럼
따스했습니다.

비가 개자 강변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길로 변해 있었습니다.
훌쩍 키가 자란 풀들이 개발 딛고 있었고  언덕은 초록물감을 뿌려 놓은 듯 진해져 있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구름이며 강물이며 나뭇가지며 온 세상이 갓 빤 빨래 펄럭이듯 하늘을 숨 쉬고 있었습니다.
빗속에 무엇이 있었기에 저런 조화가 벌어진 것일까
생기로 가득해진 것일까
신비스러웠고 내 가슴은 황홀하게 뛰었습니다.

예, 참으로 신기한 일이지 않습니까.
봄비 오는 소리가 대자연을 공사하는 소리였더란 말입니까.
하늘은 빗속에서 그렇게 작업한단 말입니까.

사실은 내게는 “봄비신앙”같은 것이 있어 왔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이루어져가는 변화가 아니라 한방에 끝내버리는
그런 기적 같은 것 말입니다.  
허망한 생각인 줄은 알지만, 그러나 사실 그렇지 않은가요.
한 번의 비로 인해 온 세상이 푸르게 바뀌는 것도 그렇고
메마른 마음으로부터 사랑을 회복시켜주는 구원을 봄비는 내게 실제로 보여주었으니까요.
그런 기적을 눈 앞에서 보여준 이가 봄비 말고는 여태 없었으니까요.

보세요.
이 비를 맞고서도 까딱하지 않고 가만있는 것들이,  
아직도 거무튀튀한 모습으로 멀뚱하게 서있는 것들이 있는지.
냉랭한 가슴으로 상대를 보고있는 몇몇 사람말고는 누가 있는지를.
헛고생 마세요.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요,
호흡이 있는 것치고는 봄비 앞에서 자유로울 자가 없을 테니까요.

죽어도 물러설 것 같지 않던 겨울이
찍,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물러서는 것 보셨죠.
내 삶에도 사랑은 그렇게 오리라 믿어요.
비록 더디 와서 그렇지, 늘 연착이어서 그렇지

타는 마음을 가누려 빈 하늘을 올려 보고 있는데
금방 알에서 깨어났는지 아기새 우는 소리 한 줄기가 늪지로부터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마치 내가 알에서 깨어나는 듯 선한 마음 한 줄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 큰 공사가 한 줌의 빗물로써만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알에서 병아리가 태어나는 과정이 그러하듯이
새싹 하나도, 어둡고 차가운 땅속에서 초록의 때가 이르기를 기다리며
간절한 소망의 기도를 드리는 동안
비로소 하늘의 기운이 내려와 안과 밖에서 서로 부응하는 것 아니었겠습니까.

나는 하늘의 기별을 그 동안 얼마나 외면하였을까.
한 포기의 풀도, 새 한 마리도 저렇게 안과 밖이 부응하는 가운데 태어나거늘
나는 왜 스스로 해야 할 내 몫을 생각하지 못하였을까, 라고 반성했습니다.

그대는 봄비의 비밀을 아시나요.
비 오는 강가에서 그대를 불렀습니다.
내가 그대를 부르는 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하셨는지요.
비 온 끝자락, 아지랑이처럼 내 님 오시라고 비가 내리더니,
내 봄비가 내리더니
마침내 내 신앙에도 응답이 있으려는지
새싹을 보았습니다.
내가 보고 싶다고 그러셨죠.
분명 그렇게 말하셨죠. ㅎ
내게 봄비는 그렇게 내렸답니다.
신앙이라니깐요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 배따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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