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2주일(가해) 요한 1,29-34; ’23/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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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3-01-01 ㅣ No.5266

연중 제2주일(가해) 요한 1,29-34; ’23/01/15

  

한동안 우리 사회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글귀가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사회심리학자들은 행복은 욕망분의 성취도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얼마나 이루고 얻었느냐가 자기 행복의 지수일 수 있다고들 합니다. 많은 것을 원하고 높은 것을 바라면 바랄수록 그만큼 불만족스럽고 불평이 많아지며, 자신과 누군가를 원망하면서 자기 생애가 불행하다고 여기면서 살 수 있습니다. 그러자니 당연히 적게 원하고 큰 것을 바라지 않으면, 검소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면서도 현세에 만족하며 나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천주교 신자들은 주 하느님께서 자신들과 함께하면서 축복을 내려주고 계심을 알고 또 믿고 있기에 크게 감사드리며, 행복하고, 교회의 장상을 통해 들려오는 명을 주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여 순명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주님께 바라면 바랄수록, 금방 그리고 또 쉽게 채워지지 않아 주 하느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신다고 여기거나 자신의 기도는 들어주지 않으신다고 원망하거나 자신이 버림을 받았다고 여기며 의기소침해하면서 공허해하지만, 영적이며 영원한 것을 바라면 주님만이 채워주실 수 있는 가난을 살게 되기 때문에, ‘하느님 나라라고 하는 큰 행복을 얻어 누리게 됩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사도 성 바오로는 교회 안에서 누리는 하느님 나라의 행복에 대해 또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로마 14,17)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자기에게 오시는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라고 알려줍니다. 당시 유다 사람들은 죄를 지어 병이 들고, 병으로 죽게 된다고 여기기 때문에, 병고와 죽음의 원인인 죄를 씻어주면 구원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죄를 씻어주는 권한은 하느님께 유보되어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복음서 곳곳에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병을 고쳐주시면서,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태 9,2; 마르 2,5; 루카 5,20; 7,48)라고 선언하시며 치유해 주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죄를 용서받아 구원됨을 주님의 백성에게 깨우쳐 주려는 것이다.”(루카 1,77) 이렇게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죄를 사해주시는 방안으로 병으로부터 구해주시는 이유는 바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로서 죄를 사해주시는 권한을 하느님에게로 받았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표현양식이었습니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마르 2,10; 루카 5,24)

 

세례자 요한이 말한 후반부의 하느님의 어린양이란 표현은 구약시대에 유다인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 이집트인들이 유다인들을 노예살이에서 독립하여 나가도록 쉽게 내주지 않자, 주 하느님께서 이집트인들에게 빨리 내보내 주라고 내리는 10가지 재앙에서 기인합니다. 그 열 번째 재앙으로 이집트의 맏아들과 맏배를 치시는 가운데, 죽음의 천사가 이집트 집안과 유다 집안을 구분하기 위하여, 유다인들에게 양을 잡아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두면, 죽음의 천사가 양의 피가 발라진 집은 유다인들의 집으로 간주하고 그냥 넘어가서, 이집트 집안의 맏아들과 맏배만 죽고 이스라엘의 맏아들과 맏배가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도록 했던 하느님의 은총에서 기원합니다. 그때 잡은 양을 기억하여,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예수님의 구원방법은 단지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사해주시는 은총을 베풀어주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죄인을 사해주고 구원해 주시기 위한 죗값으로 예수님 자신을 제물로 바치신다는 것까지 포함하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 몸소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포도주를 나눠주시면서, “이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마태 26,28)라고 선언하심으로써, 죄를 사해주시기 위한 죗값으로 예수님 자신의 생명을 바쳐 구해주신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사도 성 베드로도 이러한 예수님 구원의 방식과 현실적인 적용이라는 의미의 연장선에서, 주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회개와 세례를 제시하셨고, 또 구원의 현세적인 표현으로 우리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고 이르십니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사도 2,38)

 

사도 성 요한은 세례자 요한의 입을 빌려, 예수님의 신원과 본질적인 소명에 대해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저분은,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하고 내가 전에 말한 분이시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요한 1,30-31)

 

세례자 요한은 또 구원의 표징이랄 수 있는 성령께서 예수님께 내려오시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증언한다고 선언합니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요한 1,32-34)

 

사도 성 요한은 세례자 요한의 증언에 이어서 죄사함의 세례와 고해성사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그분은 성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1요한 1,9) 사도 성 요한은 이렇게 주님의 사함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주님 대전에 죄를 고백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해 새로 나아가야 한다고 일러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죄를 고백하고 성령을 받아 구원의 길을 걸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그분의 이름 덕분에 죄를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1요한 2,12)라고 증언해줍니다.

 

오늘 우리는 세례자 요한이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시는 예수님을 향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선언하면서, 그 증거로 성령께서 내려오셔서 몸소 축성해 주시고 확언해 주셨다는 증언을 듣습니다. 우리도 주 예수님께 우리가 지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받으며, 탐욕에서 빚어지는 물질적인 풍요가 아니라 주님께서 내려주시는 성령의 은총으로 오늘을 만족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합시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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