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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개구리 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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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 [kimpaul25] 쪽지 캡슐

2004-05-23 ㅣ No.3020

 

 

 

청개구리의 통곡

 

 오후, 산에 갈까하다가 양재천에 나갔다. 맑은 하늘 아래에 흐르는 냇물의  흥겨운 노래가 있다. 그 뿐인가 부부 자녀, 늙으신 부모까지 모시고 나온  보기에 너무나 좋은 장면이 펼쳐지는 양재천은 분명히 우리 고장의 천국이다. 가끔 쏜살같이 바람을 가르는 롤러도 아름답고, 무르익는 사랑을 터트리는 청춘의 창공을 향하는 외침도 곳곳에서 본다. 옆 풀밭에는 하얀 토끼풀꽃 찔레꽃, 노란 애기똥풀꽃들이 무성한 풀밭 위를 스치는 후련한 바람이 있다.

 

 갑자기 풀숲에서 청개구리 한 마리가 나올 듯하다. 오늘 신부님의 강론이 귓바퀴에 걸린다. 신부님께서 내리시는 보편적인 해설에 미묘한 꼬리를 달고 싶다. (청개구리 어미 우화)

 ‘자식의 속을 품고 산 어미입니다. 냇가에 묻고 폭풍우 쏟아지는 날 엉엉 울 줄을 어미는 잘 알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간곡히 바랐습니다. 자식들이 모여서 어미의 무덤을 지키려고 엉엉 우는 광경을 어미는 벌써 애타게 그렸습니다. 어미는 두 번 죽는 아픔으로 자식을 구했습니다. 탕아의 회개를 즐거워하시던 아비의 마음입니다.’

 병고 13년의 내 엄마의 바싹 마른 서글픈 침상을 스치는 기억이 흐른다. 가난과 가정불화를 품에 혼자 안고 사셨던 엄마, 자식이라는 것들이 근심만 안겨드렸던 시절, 바락바락 달려들며 엄마 가슴에 망치질하였던 불효, 혹 문이라도 박차고 나가는 내 뒤에 ‘성모님 모시고 잘 다녀와라.’ 하고 위로하여 보내던 출근길 위에 핀 뽀얀 모정. 영상같이 스치는 일이 수도 없다.

 한 마리의 청개구리로 운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라.’ 하신 주님의 말씀이 쟁쟁하다. 하늘을 보고 땅을 쳐도 돌아오지 못하는 시공(時空)을 어찌 하련가. 내 품에 꼭 안아 기저귀를 갈아드리는 청개구리의 눈물이 있다. ‘바오로여, 그대의 엄마가 스스로 택한 자식구원의 길이라네.’ 신부님께서 나에게만 살짝 귀띔하시는 말씀이 들리는 듯하다. 나를 품에 안고 젖꼭지를 물어뜯어도 좋아라. 그윽이 미소 지으셨을  엄마, 이제는 늙은 아들의 품에서 몸부림쳐가며 쥐어뜯는 엄마는 분명히 우리 주님의 십자가이시다.

 

 양재천 길가에 인파가 가득하다. 부부 자녀가 다정하다. 인파를 가만히 뜯어보면 유모차는 많지만 휠체어는 보이지 않는다. 부부자녀의 웃음은 흔하지만 늙은 부모와 걷는 웃음은 꽤나 드물다.

 올 여름에는 비가 많단다. 청개구리의 울음도 많겠지. 그러면 장마 후에 늙은 부모와 손을 잡고 휠체어를 며느리가 밀고, 사위가 미는 에덴  동산이 길게 흐르겠지.

 내리 사랑을 순리(順理)요, 올림 사랑은 역리(逆理)인가? 그러고 보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어미를  품에 안고 똥을 치우고 어미의 응석을 들으며  아버지께 한 불효를 용서받을  수 있는 숙제가 있으니까. 엄마를 냇가에 묻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청개구리가 나인 것을.

 하느님의 오묘하신 섭리를 어찌 새끼가 잊으오리까? 저의 죄가 씻길 때 까지 어머니께 봉양할 시간을 주소서. 아멘!

 

(신부님, 오늘 강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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