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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날 시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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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영 [s-girl] 쪽지 캡슐

2000-08-24 ㅣ No.2431

비 오는 날의 일기........이해인 수녀님

1.

비 노는 날은

촛불을 밝히고

그대에게 편지를 쓰네

 

습관적으로 내리면서도

습관적인 것을 거부하며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

그대에게

내가 처음으로 쓰고 싶었던

사랑의 말도

부드럽고 영롱한 빗방울로

내 가슴에 다시 파문을 일으키네

 

2.

빨래줄에 매달린

작은 빗방울 하나

사라지며 내게 속삭이네

 

혼자만의 기쁨

혼자만의 아픔은

소리로 표현하는 순간부터

상처를 받게된다고

늘 잠잠히 있는것이 제일 좋으니

건성으로 듣고 말고 명심하라고

떠나면서 일러주네

 

3.

너무 목이 말라 죽어가던

우리 산하

부스럼난 논바닥에 부활의 아침처럼

오늘은 하얀 비가 내리네

 

어떤 음악보다

아름다운 소리로

산에 들에

가슴에 꽂히는 비

 

얇디 얇은 옷을 입어

부끄러워하는 단비

차갑지만 사랑스런 그뺨에

입맞추고 싶네

 

우리도 오늘은

비가 되자

 

사랑없어 거칠고

용서 못해 갈라진

사나운 눈길 거두고

이세상 어디든지

한방울의 기쁨으로

한줄기의 웃음으로

순하게 녹아내리는

하얀비, 고운비

맑은비가 되자

 

4.

집도

몸도

마음도

물에 젖어

무겁다

 

무거울수록

힘든 삶

죽어서도

젖고 싶진 않다고

나의 뼈는

처음으로 외친다

 

함께 있을 땐

무심히 보아 넘긴

한 줄기 햇볕을

이토록 어여쁜 그리움으로

노래하게 될 줄이야

 

내몸과 마음을

퉁퉁 붓게한 불기를 빼고

어서 가벼워지고 싶다

뽀송뽀송 빛나는 마른 노래를

해 아래 부르고 싶다

 

.......좀 길었네요.. 하지만 비오는날 이 시 한편을 여유롭게 읽지 못한 사람은

감정건조주의보니 비좀 맞아보세요.. 당신의 삶이 훨씬 여유롭고..촉촉해 질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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