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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베] 겨울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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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승 [forcedeux] 쪽지 캡슐

1999-12-16 ㅣ No.776

겨울편지

 

 

 

1

하얀 세상으로 변할 겨울이 내려올 때가 되었습니다. 아직은 흐린 하늘 아래에서 기다림을 만들며 내 마음의 보이지 않는 약속을 해 봅니다. 당신을 빼앗은 적이 없는데 도망가시려는 이유도 나는 알고 있답니다. 한 개의 나란했던 평행선이 같이 가더니 따라오지 못하는 당신이 있었답니다. 내가 조금 기다리며 당신과 같이 갈 수 있는 평행선이 되겠습니다.

 

2

당신의 외로움은 나를 멍들게 하였답니다.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다가서기에는 너무나도 벅차다는 사실을

알고는 포기도 해 보았지만 나의 첫 번째 잘못이 당신을 알게된 것이라고 또 새겨봅니다. 아직은 용기가

나지 않지만 이젠 용기를 가질 수 있답니다. 내 마음속의 당신을 하나의 끊어질 수 없는 끈으로 묶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3

이 겨울은 참으로 길게 느껴지겠지요. 기다림의 겨울은 더 길게 느껴야합니다. 구속되기보다는 구속하고 싶지요. 어쩌면 당신을 이해하면서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기 싫어서랍니다. 당신을 위해 비참함이 찾아온다면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는 순종이랍니다

 

4

아침에 눈을 뜨고 세수를 하면서도 부를 수 있는 이름이라면 나는 그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당신이 듣지 못할 먼 거리에 있다해도 내가 부르면 바로 옆에 있을 내 그림자라는 것을 압니다. 좋았던 기억들을 모두 접어두겠습니다. 이제부터 다시 만들 수 있는 기억 속의 이름을 만들을 것이니까요. 아직은 서먹해도 잊혀져서는 안 되는 것을 압니다. 기다림에 익숙하고 아픔에 익숙해져 상처가 눈물로 변한 세월만 남았습니다. 이젠 아니지요. 당신을 위하기보다는 나를 위해서 또 한번의 익숙함에 빠지겠습니다.

 

5

어느 날 잠시동안이라도 당신과 산책했던 날을 기억해보세요. 그 순간만큼은 행복이라는 단어를 만들었지요. 돌아갈 곳은 있지만 돌아오기는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답니다. 돌아와서 문을 두드리지 말고 열쇠를 가지고 가서 문을 열고 돌아오세요. 기다림의 문은 언제나 당신을 위해 준비해 두겠습니다. 어차피 돌아가도 원점이 아니던가요.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6

사람사는 냄새가 묻어있는 시장을 거닐어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당신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면 행복이겠지요. 그런 맘으로 거리를 거닐겠습니다. 아픔이 지워지지 않는 상처지만 그 아픔도 그리움으로 바꾸겠습니다. 오늘은 시장에나 갈까합니다

 

7

그리움을 모르는 사람은 아픔도 모릅니다. 슬픔을 모르는 사람은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모릅니다. 사랑이 더 크다고 생각하지만 사랑보다 더 큰 것은 외로움이 만들어 놓은 쓸쓸함이랍니다. 쓸쓸함을 채우기 위해서 기다림을 시작해봅니다. 이유도 없이 가까워지고 싶습니다. 이것이 내가 받을 아픔이 되어도 나는 모든 아픔을 받을 수 있다는 약속을 했잖아요. 그런 것에는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는 내가 되었다는 사실이랍니다. 당신을 위해 기다림을 시작해봅니다.

 

8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작은 불빛마다 사랑이 가득할 겁니다. 여기저기 돌아 다녀보면 내 눈을 슬프게

하는 일들이 많겠지요. 나는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대신 당신의 이름을 불러보겠습니다. 한번 두 번

부르다 보면 내 마음속의 당신이 같이하는 분위기라는 걸 알겠지요. 슬퍼하지 마세요. 당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들이잖아요. 내게 모두 주세요. 나는 그런 것에 더 익숙하잖아요. 내가 들려주는

크리스마스 캐롤을 들을 수 있는 귀가 당신이라면 나는 행복할겁니다.

 

9

하얀 겨울의 찬바람이 불어 왔습니다. 너무나도 차가운 바람은 나를 날려보려고 안간힘을 냈지만 소용없는 일이 되었답니다. 아직 열기가 채 가시지도 않은 내 몸을 얼게는 할 수 없었답니다. 서러운 눈물이 바람을 타고 날려갈 때마다 무서움으로 나를 욕해보았답니다. 당신은 그런 내 모습을 알고도 가만히 있는 외로움이 되었답니다. 이젠 나를 묶어 두려고 하지 말고 훨훨 날아가 당신을 만날 수 있게 해주세요. 이 겨울은 지금부터 시작이지만 나의 쓸쓸함은 벌써부터 시작된 아픔이 되었답니다. 또 익숙한 모습으로 기다려야겠지요. 오늘밤도 별은 흐리게 빛나겠지만 내 마음은 그렇지 않답니다. 조용히 침묵으로 바람이 멎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봅니다.

 

 

 

 

참 오래간 만에 오는 군요...그동안 많은 분들이 또 왔다 가셨군요...

늘 그렇듯이....

모두 행복하세요~~~

 

참...좋은 그림 동화를 올려 보았어요....잼 있네요...  ^^*

첨부파일: 동화책.exe(303K), 고백.exe(439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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