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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의...[새벽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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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봉사회 [welcome.ds] 쪽지 캡슐

2004-09-19 ㅣ No.80


제1독서 지혜 3,1-9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에 있어서, 아무런 고통도 받지 않을 것이다. 미련한 자들의 눈에는 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이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재앙으로 생각될 것이며, 우리 곁을 떠나는 것이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으로 생각되겠지만, 의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사람들 눈에 의인들이 벌을 받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들은 불멸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이 받는 고통은 후에 받을 큰 축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 뜻에 맞는 사람들임을 인정하신 것이다.
도가니 속에서 금을 시험하듯이,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을 번제물로 받아들이셨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 그들은 빛을 내고, 짚단이 탈 때 튀기는 불꽃처럼 퍼질 것이다. 그들은 민족들을 다스리고 백성들을 통치할 것이며, 주님이 무궁토록 그들의 왕으로 군림하실 것이다.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진리를 깨닫고,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안에서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께 뽑힌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제2독서 로마 8,31ㄴ-39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 되셨으니, 누가 감히 우리와 맞서겠습니까?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당신의 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 주신 하느님께서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이든지 다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느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소하겠습니까? 그들에게 무죄를 선언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신데 누가 감히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께서 단죄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서 돌아가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셔서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혹 위험이나 칼입니까? 우리의 처지는, "우리는 종일토록 당신을 위하여 죽어 갑니다. 도살당할 양처럼 천대받습니다."라는 성서의 말씀대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도움으로 이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생명도 천사들도 권세의 천신들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능력의 천신들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의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타날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복음 루가 9,23-26
그때에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거나 망해 버린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영광스럽게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어느 날, 저와 함께 지내는 신학생 중의 한 명이 제게 이런 말을 합니다.

“신부님, 신부님께서는 잡지책 비용으로 나가는 돈도 만만치 않겠어요.”

생각해보니, 제가 보고 있는 잡지가 한 두 개가 아니더군요. 주간지와 월간지 포함해서 총 12 종류의 잡지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시사 잡지도 있고요, 또한 강론의 소재를 찾을 수 있는 좋은 이야기가 담겨있는 잡지도 있습니다. 물론 교회에서 출판되는 잡지도 있지요. 그런데 이 중에서 자그마치 3종류가 여행 종류의 잡지랍니다.

사실 저는 여행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작년 교구청에 있을 때에는 최소한 한 달에 한 두 번은 여행을 갈 정도였지요. 그랬던 제가 이곳 성지에 오면서는 도저히 여행갈 시간을 내기가 힘든 것입니다. 하지만 멋진 곳을 가고는 싶고요. 그러다보니 여행 종류 잡지를 계속해서 보게 됩니다. 또한 여행 관련 서적도 보고, 여행 관련 사이트에도 접속하면서, 언젠가는 꼭 멋진 그곳으로 여행을 가겠다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비록 그곳에 직접 가지는 않지만, 그런 꿈을 키우면서 현재의 삶에 있어 또 하나의 활력소를 얻습니다. 물론 여행을 직접 하는 것이 더 신나고 재미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여행 관련 글을 읽고 지도를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멋지게 소개된 글과는 달리 직접 그곳에 가보면 형편없는 경우도 너무나 많거든요. 그러나 아직 가지 않은 상상 속의 그곳은 늘 멋지고 아름다운 곳으로 제 머리 속에 남아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여행 서적을 보면 기분이 너무나도 좋아집니다. 언젠가는 갈 것이라는 희망을 간직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남들 다 가는 휴가를 못가더라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또한 멋진 그곳을 둘러보면서 쉬는 꿈을 하면서 지금의 어렵고 힘듬도 이겨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인 순교자들을 기억하면서 그들의 신앙을 다시금 생각하고 본받는 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생명을 바치면서까지 주님을 증거하려고 했을까요? 어쩌면 앞서 여행을 갈 것이라는 희망을 간직하는 저의 경우처럼, 주님 앞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겠다는 희망으로 그 고통과 아픔을 모두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맞습니다. 그 희망이 있기에 모든 고통과 아픔 역시 부차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희망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변화되어야 한다고 오늘 복음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첫째, 자기를 버려야 합니다. 이는 곧 자기 자신을 삶의 중심으로 삼지 말라는 것이지요. 모든 것의 중심이며 기준은 이제 예수님이 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제 십자가를 매일 지어야 합니다. 우리들 삶 안에서 보면 고통이나 아픔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고통과 아픔을 체험하면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이게 내 십자가야.’ 그러면서 그들은 삶을 포기하신 듯이 그러려니 하면서 생활하십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런 모습을 원하지 않습니다. 무거운 십자가를 질 때, 힘을 빼면 들 수 있을까요? 그냥 주저앉고 맙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힘을 내어서 힘찬 발걸음을 내딛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가지의 변화를 가져온 뒤에 주님께서는 당신께 대한 희망을 가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 희망을 두십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변화되어야 합니다. 나를 버리고 힘차게 십자가를 지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들은 과거의 순교자들처럼 영광의 주님을 만날 수가 있을 겁니다.


언젠가는 갈 가족과의 여행 계획을 세워봅시다. 화려하고 멋진 계획을 말입니다.



Do it Now

한 교수가 종강을 앞두고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만약 당신이 사흘 뒤에 죽는다면 당장 하고 싶은 것 세 가지를 순서대로 써 보아라.”

이 질문에 학생들은 ‘부모님에게 전화를 하겠다.’, ‘애인과 여행을 하겠다.’, ‘그 동안 오해했던 친구들에게 사과의 편지를 쓰겠다.’ 등 지극히 평범한 답변을 내놓았다.

학생들의 답을 다 들은 뒤에 교수는 칠판에 어떤 문장을 하나 적었다.

“Do it Now(바로 지금 하라).”

그러자 교실은 아주 숙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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