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로마 16,25에서 <내가 전하는 복음으로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로> 는 번역 오류 이다 869_tran KH_err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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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1 ㅣ No.2143

 

 

1. 들어가면서

 

1-1. 우선적으로,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로마서 16,25나해 대림 제4주일 제2독서(로마 16,25-27)에 포함됩니다.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RSVCE (Revised Standard Version Catholic Edition), 로마서 16,25-27을 읽을 수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adv_4.htm 

(발췌 시작)

[25] Now to him who is able to strengthen you according to my gospel and the preaching of Jesus Christ, according to the revelation of the mystery which was kept secret for long ages [26] but is now disclosed and through the prophetic writings is made known to all nations, according to the command of the eternal God, to bring about the obedience of faith--[27] to the only wise God be glory for evermore through Jesus Christ! Amen.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1-1: (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보편 교회의 교도권에 매우 충실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수석 편집자의 로마서 입문을 읽을 수 있는데,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intro_Romans_AF.htm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는 성 바오로의 서간문들 중에서 비교적 늦은 시기에, 즉, 세 번째 선교 여행을 마친 후에, 그러나 아무리 빠르더라도, 성 바오로가 로마에서 순교하기 약 1년 6개월 이전인 시점인, 57년 초쯤에 코린토에서 저술된 것으로 알려진, 로마서에서, 로마서 16,25-27은 로마서의 제일 마지막에 있는, 소위 말하는, 영광송(Doxology) 전문입니다.

 

(2) 그런데 바로 위의 제1-1항에 발췌된 바로 이 영광송의 전문들 들여다보면, 이 영광송이 단 한 개의 문장(sentence)임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본문을 지역 언어인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직접 확인할 수 있듯이, "공동번역성서""새번역성경" 둘 다에서,

http://maria.catholic.or.kr/bible/read/bible_read.asp?menu=bible&m=4&n=52&p=16 [공동번역성서, 로마서 제16장 전문]

http://maria.catholic.or.kr/bible/read/bible_read.asp?menu=bible&m=2&n=152&p=16 [새번역성경, 로마서 제16장 전문]

 

바로 이 한 개의 문장 구조를 가진 로마서 16,25-27가 세 개의 문장으로 쪼개어져서 우리말로 번역된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쪼개기 번역은, 소위 말하는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고의역 번역(free translation)의 범주에 포함될 것입니다. 

 

(3)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우리말로 번역이 된 개신교회 용도의 "개역한글" 및 "개역개정"로마서 16,25-27은, 독자들이 한 개의 영광송임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한 개의 문장 구조를 유지하는 직역 번역을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bskorea.or.kr/bible/korbibReadpage.php?version=HAN&book=rom&chap=16&sec=25&cVersion=GAE^SAE 

 

(4) 그리고 1910년에 한기근 신부님과 동료 신부님들에 의하여 마련된 초판본 역주 "사사성경"1922년판에는 "종도행전"(즉, 사도행전)이 추가되었으며,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듯이,

http://sspx.or.kr/bbs/board.php?tbl=doctrine&mode=VIEW&num=173&category=&findType=&findWord=&sort1=&sort2=&page=4 

 

심지어, 1960년대까지 우리나라 천주교회에서 사용되었던, 1948년판 "사사성경"에는 "로마서"도 포함이 되어 있는데,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듯이, 바로 이 "사사성경"로마서 16,25-27의 영광송은, 확실하게, 한 개의 문장으로 번역이 되었음에 주목합니다:

 

출처: http://sspx.or.kr/bbs/board.php?tbl=doctrine&mode=VIEW&num=215&category=&findType=&findWord=&sort1=&sort2=&page=1 

(발췌 시작)

25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설교를 의지하여, 무시로부터 감추여 있던 신비의 계시를 따라, 26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시는 저(=천주)에게, - 그러나 지금에 와서 그 신비는 계시되었으며, 영원하신 천주의 훈명을 따라 만민을 신앙에 복종시키기 위하여 선지자들의 서책으로 말미암아 명시(明示)되었느니라 - 27 홀로 지혜로우신 천주이신 저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찬미와 영광이 무궁세에 있어지이다. 아멘.

(이상, 발췌 끝)

 

(5)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807년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목회자들에 의하여 한문/중국어로 번역이 된 한문본 성경들의 로마서 16,25-27을 확인할 수 있는데, 로마서 16,25-27의 영광송은, 확실하게, 한 개의 문장으로 번역이 되었음에 또한 주목합니다:

https://bible.fhl.net/new/ob.php?book=all&chineses=45&chap=16&sec=25

 

(6) 그리고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대중 라틴말 성경"(Clementine Vulgate) 및 "새 대중 라틴말 성경"(Nova Vulgata), 로마서 16,25-27을 읽을 수 있으며 또한, 독자들이 한 개의 영광송임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한 개의 문장으로 번역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https://www.newadvent.org/bible/rom016.htm [Clementine Vulgate]

http://www.vatican.va/archive/bible/nova_vulgata/documents/nova-vulgata_nt_epist-romanos_lt.html#16 [Nova Vulgata]

 

그러나 1968년부터 국내에서 선종완 신부님께서 개신교회 측의 문익환 목사와 함께 공동 번역하여 "공동번역성서"이 마련될 때에, 도대체 무슨 특별한 이유 때문에, 한 개의 문장인 이 영광송이, 세 개의 문장들로 쪼개어져 그리하여 의역 번역이 되었는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즉, 양보하여서는 아니될 부분을 양보하였다는 생각입니다.

 

(7) 왜 이 의문과 또한 구체적인 지적을 드리는가 하면, 성 바오로는 자신의 서간문들에서

 

(i) "그리스도의 복음"(로마 15,19; 1코린토 9,12; 2코린토 2,12; 2코린토 9,13; 2코린토 10,14; 갈라티아 1,7; 필리피 1,27; 1테살로니카 3,2)

 

(ii) "나의 복음", 즉, "바오로 복음"(로마 2,16; 로마 16,25; 2티모테오 2,8)

 

확실하게 구분하카 여 기술하고 있고, 바로 이 구분을 또한 로마서 16,25-27 영광송에서도 성 바오로가 확실하게 하고 있으며,

 

(iii) 특히,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듯이, 로마서 3,21-32에 대한 NAB의 각주는, "바오로 복음"정의(definition)‘그리스도 쪽으로 믿음에 의한 의화(즉, 의롭게 됨)의 원리‘이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b/romans3.htm <----- 필독 권고

 

(8) 이제, "새 번역 성경"로마서 16,23-27에서 "내가 전하는 복음으로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로"라고 번역된 것이, 바로 위의 제(7)항에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구체적으로 지적한 바와 얼마나 부합하는지 혹은 얼마나 부합하지 않는지에 대하여, 다들 곰곰히 생각해 보십시오.

 

예를 들어, 여기서 성 바오로가 말하는 "내가 전하는 복음"이, "곧"이라는 글자의 사용과 결합하여, (i) "그리스도의 복음", 혹은 (ii) "바오로의 복음"을 말하는지, 도저히 구분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는지요?

(이상, 게시자 주 1-1 끝)

 

1-2.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그리스어본, 로마서 16,25를 확인할 수 있으며:

https://biblehub.com/interlinear/romans/16-25.htm 

 

또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특히 로마서 16,25에서 사용되고 있는 그리스 단어 "καὶ"가 성경 본문 중에서 통상적으로 "and"로 번역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biblehub.com/greek/kai_2532.htm 

 

1-3. 그리고 또한 다음은 프랑스어본 "공동번역성서"(TOB), 로마서 16,25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A celui qui a le pouvoir de vous affermir selon l'Evangile que j'annonce en prêchant Jésus Christ, selon la révélation d'un mystère gardé dans le silence durant des temps éternels,

 

(유관 부분 영어로 졸번역)

... according to the Gospel which I proclaim by preaching Jesus Christ, ...

 

(유관 부분 우리말 졸번역)

... 예수 그리스도를 설교함으로써 내가 선포하는 복음에 따라 ...

(이상, 발췌 및 유관 부분의 우리말 졸번역 끝)

 

게시자 주 1-3: 바로 위에 발췌된 프랑스어본 "공동번역성서"(TOB), 로마서 16,25는 바로 위의 제1-2항에 안내된 그리스어 로마서 16,25의 의역 번역(free translation)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문제점은, 예를 들어, 바로 위에 제시된 졸번역, "예수 그리스도를 설교함으로써 내가 선포하는 복음에 따라" 혹은 이 표현과 논리적으로 등가인(logically equivalent) 표현 대신에, "새 번역 성경"에서의 "내가 전하는 복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로"라는 우리말 번역 표현은, 우리말을 사용하는 독자들이 사전에 프랑스어본 "공동번역성서"(TOB), 로마서 16,25 중의 유관 번역문을 전혀 알지 못하는 한, 프랑스어본 "공동번역성서"(TOB), 로마서 16,25 중의 유관 번역문과 논리적으로 등가인 문장으로 이해하는 것이, 많이 부족한 죄인의 경우처럼, 매우 힘들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는지요???

 

직성 중입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87.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02.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97.htm <----- 필독 권고

 

 

다음은, "가톨릭 교회의 밀씀 전레예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출판사: 가톨릭출판사), 다해-II, 연중 제10주일, 제2독서에 포함되는, 갈라티아 1,12에 대한 각주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발췌 시작)

복음(Gospel, Good News)은, (i)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활까지 포함되는) 유일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the gospel of Christ)’, 즉 ‘하느님 나라의 도래(the coming of the kingdom of God)’(LG 5) (ii) 이 유일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다 성령강림 이후 사도들의 증언들과 실천들을 포함시킨 ‘사도들의 복음’, (iii) 그리고 이 ‘사도들의 복음’에 교부들의 증언들과 실천들을 포함시킨 ‘교회의 복음’으로 시간적으로 단계적 포함 관계 구조를 형성하면서 누적이 되어, 결국에 이것이 바로 ‘신앙의 유산(the deposit of the faith)’으로 불리면서, 사도전승의 일부로서 사도계승에 의하여, 우리에게 지금까지 전달되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신앙의 유산’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이들 단계적 포함 관계의 핵심(kernel)인 유일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즉 ‘하느님 나라의 도래’인데,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 드러나게 되는 매우 형이상학적인 이 유일한 핵심 개념을 우선적으로 그리고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면, (i) 전례, (ii)성경, 그리고 (iii)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내용을, 개별적으로가 아니라, 상호 유기적으로 및 통합적으로 쉽게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주제와 관련된 더 자세한 설명들은 다음에 있으니 필히 참고하도록 하라:

 

(1) 예수 재림의 날까지는 동일하지 않기에 반드시 구분하여야 하는, ‘천당(heaven, 하늘)’의 개념과 예수님께서 공생활의 시작에서 선포하신 ‘하늘 나라(the kingdom of heaven, 천국)’의 개념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개념적 혼란에 대한 엮은이의 졸글들은 다음에 있으니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H_concept_errors.htm   
   

(2) ‘그리스도에 의한 복음’ 즉 ‘하늘 나라의 도래’와 관련하여, 우리말 핵심 문헌들에서 발견되는 번역 오류/번역 누락들에 관한 엮은이의 졸글들은 다음에 있으니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H_translation_errors.htm
   
(3) 다음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일반 알현 강론 말씀들 중에서, ‘하늘 나라’(즉 ‘하느님의 나라’ 혹은 ‘그리스도의 나라’)와 가톨릭 교회와의 관계, 즉 이 나라가 가톨릭 교회 안에, 즉 영성체 중에 우리들 가운데에, 이미 존재하며 그리고 지속적으로 자라고 있음에 대한, 즉 ‘하늘 나라’가 사실은, 예수 재림의 날에 완성될, 가톨릭 교회임에 대한 가르침들을 발췌하여 엮은이가 번역한 자료들이니, 별도로 시간을 내어 꼭 읽도록 하라. 이들은 또한 이 해설서 다해-II의 부록이기도 하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KH_JohnPaul_II.htm
   
(4) 사도 바오로는 자신의 서간들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는데, 그는 오늘의 제2독서의 갈라티아서 1,11-12에서 이 ‘그리스도의 복음’이 ‘계시의 형태로 그리스도로부터 자신이 직접 받은 것’임을 구체적으로 증언하고 있음에 주목하라.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면 NAB 신약 성경의 본문 중에 the gospel of Christ라는 표현이 나오는 절들을 찾아 볼 수 있으며, 마르코 복음서 1,1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도 바오로의 서간들에 있음을 알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b/search_results4gospel_of_Christ.htm
  

따라서 이 유일한 그리스도의 복음, 즉 ‘하느님 나라의 도래’(LG 5)는 네 복음서들에 기록되어 있는 열두 사도들의 목격 증언들과 그의 서간들에 기록되어 있는 사도 바오로에게 직접 주어진 계시들로서, 이렇게 두 개의 큰 가닥으로 드러났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5) 다른 한 편으로, 로마서 3,21-31에 대한 다음의 NAB 주석에 의하면, 특히 2티모테오 2,8에서 또한 언급되고 있는, ‘바오로의 복음(Paul's gospel)’‘그리스도 쪽으로 믿음에 의한 의화(즉, 의롭게 됨)의 원리‘정의된다(defined):


These verses provide a clear statement of Paul's "gospel," i.e., the principle of justification by faith in Christ.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nab/romans3.htm
   
(6)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가해 연중 제25주일 제2독서(필리피 1,20ㄷ-24.27ㄱ) 및 복음 말씀(마태오 복음서 20,1-16)은 ‘그리스도에 의한 복음의 대상’인 ‘하늘 나라’와 사도 바오로가 언급하는 ‘그리스도에 의한 복음’ 두 표현들이 등장하는 단 하나의 주일 미사 말씀 전례이다.
   
(7) 다음은 가해 대림 제2주일 독서들에 대한 나바르 주석 성경의 해설인데, 복음 말씀(마태오 복음서 3,1-12)의 해설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그리스도의 첫 번째 및 두 번째 오심 사이의 시기에 있어, 이 하느님의 나라(즉 하늘 나라)는, 사실은, 교회를 말합니다. 교회는 모든 백성들 사이에 그리스도께서 (그리고 따라서 또한 하느님께서) 현존하게 하시며 그리고 이들을 영원한 구원으로 초대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 세상의 끝에, 즉 우리의 주님께서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하러 오실 때인 시간의 끝에 오로지 완전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하느님께서는 완전한 방식으로 복자들(the blessed)을 통치하실 것입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a_adv_2.htm
  
(8) 다음은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첫 월요일의 독서들에 대한 나바르 주석 성경의 해설인데, 복음 말씀(마태오 복음서 4,12-17.23-25)의 해설에서, 예수님의 예언자 및 선구자로서의 세례자 요한이 예언하였던 그리고 당시의 유다인들이 당시의 종말론적 분위기 안에서 이해하고 있었던 종말론적 ‘하늘 나라’가, 예수님께서 실제로 선포하셨고 지상에 그 씨앗을 심어 존재케 하신 ‘하늘 나라’와 어떤 차이점들이 있는지에 대하여, 위의 a_adv_2.htm에 주어진 설명에다, 추가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으니 또한 참고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epiphany_mon.htm

  

(9) 위의 (7)에서 계속하여, 마태오 복음서 3,2에 대한 NAB 주석은 이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유다인들의 종말론적 문헌들에서 발견되는 예상 때문에, 하늘 나라는 어떤 판관에 의하여 도착이 알려질 것이었는데 거기서 죄인들은 단죄될 것이고 그리하여 소멸될(perish) 것으로 생각되었으며, 이것은 세례자 요한에 의하여 공유되었던 예상이었다. 이 예상은 그리스도인들의 이해 안에서 수정되었는데 이 입장에서 하늘 나라는 단계적으로 설립되어,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정점에 달할 것으로 이해되었다.”(엮은이 번역).    
http://ch.catholic.or.kr/pundang/4/nab/matthew3.htm

(이상, 발췌 끝)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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