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사동성당 게시판

반 식구 할머니와의 약속

인쇄

박경자 [somi] 쪽지 캡슐

2001-10-29 ㅣ No.8506

꼭 일주일이 지났다.

반 식구 할머니가 돌아가신지가

새벽미사를 20년이 넘게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거양성체한 성체를 받아모실려고

제일 앞자리에 항상 먼저 와서 계시던 그 분께서

몇년 전부터 그 깨끗하시던 분이 치매로 고생을 하셨다.

정신이 없으셔서 겉에 속치마를 거꾸로 입으시더라도

새벽미사를 갈려는 갈망은 누구도 말리지 못했다.

성당에 갔다가 집을 찾지 못해서 헤메시길 반복하시더니

봉성체도 못하실 정도로 악화되었다.

 몇년전엔가 친구분이시던 말가리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많이 우는 우리를 보시고 "왜들 울고 난리여" "나 죽어도 그렇게 울껴"

하시던 그 고운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장지에 따라갔더니 친구분 할머니들께서 (같이 새벽미사 동기생)

용인의 가파른 언덕길을 다리와 허리도 아픈데.기다시피 올라가셨다.

언제 여기 다시 와 보나 하면서....

걸음이 서툴러서 먼저 산에서 내려올 때

친구 할머니께서 "데레사 할매 "기다리고 있어 나도 곧 따라 갈께"

아우할머니는 "언니 먼저 가 있어. 나도 갈테지만 나 좀 빨리 데려가"

눈물이 핑돌았다.

 

반모임을 같이 하던 봉 데레사 할머니.

우스운 일도 아닌데 킬킬 거리며 웃어대는 우리에게 "왜들 웃고 지랄이여"

하며 정색을 하던 할머니.

(후세인이 방송을 탈때) 90년대 초반인 것 같다.

 중동지역이 화제에 올라 반식구들이 이런 저런 말들하고 있자

불쑥 "우리 아버지 고향이 아마 거기지"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때 반장님이  무릎으로 기어서 바싹 다가들며 할머니 다리를 쳐가며  놀라서 "어머머머 할머니’ 아버지 고향이 그쪽이었어요?. 몰랐어요."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가 외국인 이라는 말에  할머니도 놀랐고  우리들은 더 놀랐다.

머리속에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었던 것이다.

입으로만 아버지 아버지 하는 우리와는 질적으로 다른 몸에 밴 상태였다.

 (물론 우리들은 그 때 반장님 때문에 우스워서 자지러지고 말았지만.......)

 

한창 다른 자매가 묵상을 말하고 있는중에   불쑥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 때는 잊어버리기 전에 말씀하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 저러시나 정신이 없는 것  아닌가? 로 여겼지....

그런데  지금은 우리들이 가끔씩  그러는 적이 있다.

 "잠깐 나 잊어 버리기전에 말해야 돼.하면서...

반모임을 하면서 봉데레사 할머니를 떠올릴 때가 그때이다.

옛날에 봉데레사 할머니께서 그러셨지.... 이렇게 말이다.

 

사람은 울때 추억으로 운다는 말을 가끔씩 들었다.

그 날 할머니와의 약속도 있었지만 나도 저렇게 가겠지 생각하니 비감하고 동창할머니들의 인사말을 듣는 순간도  마구 울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난다. 할머니 저 많이 울었어요...

 

주무시는 듯이 가셨다니 그 동안 선종회에 들어서 기도도 많이

바치셨고 정신이 없으셔도 가신 곳은 성당이었던 관계로....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것 틀림 없을 것이다.

 

봉금옥(데레사) 할머니의 영혼이 주님의 자비하심으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19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