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사동성당 게시판

따뜻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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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임 [lee67] 쪽지 캡슐

2001-12-05 ㅣ No.8760

따뜻한 이야기가 있어 올립니다

 

저의 아빠는 작년 2월에 담도암이란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연세도 있으시고(70세) 또 이미 너무 진행된 상태여서

이식 수술도, 방사선 치료도 소용없다고 했습니다

많이 사시면 3~6개월 사실 수 있을 거라며

원이나 없게 치료라도 받아보겠느냐고 했는데,

연장할 수 있는 건 겨우 한 두달이랍니다

물론 치료가 잘못되어 돌아가실 수도 있다면서...

 

정밀검사 겸해서 원자력 병원에 일주일간 입원하셨었는데

그당시까지해도 식사도 잘하시고 체중도 정상이며

암이라고 생각될만한 아무런 증세도 없으셨습니다

엄마는 방사선 치료 받으며 힘들어 하시는 분들을 보고 놀라서

"생사람 잡겠다, 암은 무슨...

암환자들은 저런데 니 아빠는 이렇게 멀쩡하시잖니...

퇴원할란다" 그러면서 퇴원하셨습니다

 

그 후 일년간 정말 건강하셨습니다

엄마가 간에 좋다는 건 다 해드리고, 잘 드시고

체중도 일정하고 혈색도 좋아서

엄마는 오진이라 하시며 좋아하셨습니다...

가끔 언니가 "의사가 말한 6개월째인데 괜찮을까?"

"칠순은 보고 가셨으면" 하는 말을 하면 너무 듣기가 싫었습니다

 

그러다가 올해 1월 중순 구정무렵부터

갑자기 식사를 못하시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제가 2월 말부터 교리교사를 시작했는데

거의 매주 토요일에 교리끝나고 6시가 넘어서야

1시간 걸리는 친정까지 내려 갔다가 밤중에 돌아왔습니다

 

개신교 집안에 오빠가 목사님인데,

친정에선 동생 말고는 아무도 제가 개종한걸 몰랐거든요...

엄마는 "토요일 일찍 좀 오지..." 했는데

저는 아이들 가르친다고 말하고

(엄마는 과외인 줄 아셨고, 저는 교리가르친다는 얘기였습니다)

늦게서야 아빠를 보러 갔습니다

 

눈물이 나네요

이렇게 일찍 가실 줄 알았으면...

마지막달엔 아빠도 암인줄 아셨는데, 방법이 없다고 했다는 말씀에

아무 내색도 안하셨습니다

양방에는 방법이 없다니까 민간요법과 안수기도까지 받으시고

식사를 못하시니까 제가 선식을 계속 사서 날랐습니다

 

저는 아빠의 선종기도를 주로 했습니다

담도암으로 끔찍한 고통 속에 잠도 못자며 한달 이상

고생하다 가신 친구엄마 얘기를 들으니 무서웠습니다

고통없이 선종하시라는 기도를 하며

대세드릴 수 있게 해 주시라고 기도드렸습니다

 

부활절 전 성목요일 미사 중에 예수님을 뵈니

왜그렇게 눈물이 걷잡을 수 없는지...

아빠기도만 나오며 선종기도와 함께

이상하게 아빠가 천국가실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떼를 썼습니다

아빠가 하느님아빠를 일찍부터 알고 받아들인 건 아니지만

이제라도 하느님을 알고, 받아들이고, 편안하게 가실 수있게 해

달라는 기도만 나왔습니다,

하느님 품에 안기기 전에는 안된다고...

 

미사 끝날 때쯤에는 아빠는 분명히

천국에 가실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섰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아빠가 오래 사실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해야 하는데 , 왜 천국 가실 수 있게

해달라고 떼를 썼지 ?...

 

그런데 그 시간 아빠의 첫번째 고통이 왔다고 합니다

그동안 아빠는 크게 아픈데는 없으시고 단지

식사를 못하시겠다고 하셨었는데

그날은 너무 아프다고 119부르라고 하셔서

응급실로 실려가셨답니다.

제가 미사 드릴 때가 아빠 응급처치 중이셨답니다...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기시긴 했어도 좋아지셨으니

올 건 없고 토요일에 오라시기에 형제들이 모두 내려 갔는데

아빠는 여전히 피부도 깨끗하고

많이 마르신 것 외엔 전혀 아픈데 없이 괜찮아 보였습니다

 

부활절날 아침 일부러 내가 교대하겠다고 병원에 갔는데

그 병원계신 수녀님이 부활달걀을 나누어 주시더군요

"아빠, 부활달걀이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사흘만인 오늘 살아나셨대요,

그래서 살아나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축하한다고 나누어 주신 거예요.

그런데 아빠,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 믿어?

예수님이 살아계시다는 걸 믿어?" 했더니

"그럼 내가 주님 덕에 산다." 하시는 거예요

원래 냉철한 이성주의자이신 아빠는 교리를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셨는데

그날은 진지하게 말씀하셨어요, 얼마나 기쁜지 !

 

너무 좋아지셔서 자식들 다 돌아가라고 하시기에

"아빠, 다시 올께" 하며 나서는데

돌아보니 아빠가 손을 흔들고 계셨습니다...

다시 아빠한테 갈까 ! 지금 올라가지 말까 !

순간적인 생각이 들었는데, 서두르면 부활 대미사에

참석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냥 올라왔습니다

 

화요일, 수요일 좋아지셨다기에 내려가진 않았는데,

이상하게 손에 아무 것도 안 잡히더니 미사중에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미사 끝난뒤 받아보니 언니가 빨리 오라고 하더군요, 위독하시다고...

바로 가려고 했더니 레지오 단장님이 남편이랑 함께 가라고 하더군요

수녀님이 같이 기다려 주시는데, 다시 언니한테 전화가 오기를

내려오지 말고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하데요

지금까지는 담도암 전문의가 있는 종합병원에 있었는데

응급상황에는 대학병원이 의사도 많고 하니까 가라고 해서 온다고

일찍 출발했으면 엇갈릴 뻔 했는데,

하느님 아빠는 여러분을 동원해서 저를 붙잡아 주셨습니다

 

아빠는 구급차로 도착하시고 나서 얘기도 하셨는데...

처치 중 혼수상태에 빠지셨습니다.

나는 아빠를 주물러 드리며 울면서도

"아빠, 천국 가서 기다리세요, 우리도 갈게요" 했습니다

고향으로 떠나기 전 잠깐동안 한순간에 식구들이 모두 나가고

예비자 교리 중인 동생과 나만 남게 되었습니다

감사 드리며 대세를 드렸습니다.

 

하느님 아빠는 모두 들어 주셨습니다

큰 고통 두번째 왔을 때 가시고

하느님 아빠를 받아들이고 감사하셨으며

부족한 저를 통해 대세도 받으셨습니다...

 

아빠 49제까지 일주일에 한번씩 미사봉헌하고

주일미사만 드리며 거의 한달을 꼼짝도 못했습니다

아빠 가시고 난 뒤 한달쯤 지났는데

한밤중에 잠이 안와 그냥 누워있다가

갑자기 아빠한테 너무 미안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원망스러우셨을까 하는 맘에...

당신의 병을 알고 거의 일년을 그저 기적만 바라며,

방법이 없다니까, 민간요법에만 의지한 우리한테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

그런데 아무 내색도 없이 한결같이 잘해주신 아빠께

얼마나 미안했는지 !

오히려 팔아픈데 괜찮으니 그만 주물러라 하신 아빠

12시도 넘은 한밤중에 엉어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아빠 미안해, 아빠 미안해,

미국이라도 갔어야 했는데, 안된다 해도 해봤어야 했는데

선종기도가 아니라 아빠 살려달라고 기도 했어야 했는데...

 

지금도 전 아빠한테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제가 원래 몸이 약해 한약을 자주 해 주셨는데

아빠는 어디서 들으셨는지 "흰접시뿌리랑 마른 명태가 좋다더라"

하시며 저를 위해 달여 주셨는데 부인병에 특효더군요

또 한자를 잘 아시고 아시는 게 많아서

무얼 여쭈어 봐도 명쾌하게 답해주셨습니다

가끔 살다가 막히는 게 있으면 아빠가 가르마를 타주셨는데...

 

얼마전에도 무심코

아빠한테 물어봐야지, 아빠한테 해달래야지...했다가

가슴이 싸아해졌습니다. 아빠 미안해...

아빠 고마워...

아빠 보고싶어.....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받아주신다는 주님’이라는

 전례중 말씀이나, 성가 520장을 부르면 아직도 전 눈물이 흐릅니다

주께서 불러가신 이 영혼 보소서, 이 세상 살때

주님께 애원하였으니 주여 그 애원 들어 평안케 하소서...

하늘나라에 가신 저의 아빠,

’김진성 요셉’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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