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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탑]글 조각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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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 [jhp94] 쪽지 캡슐

1999-09-28 ㅣ No.1358

<선과 악>

 

  인간의 영혼은 원래 죽음에 맡겨진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죽는 것은 육체이지 영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의지가 타락하면 영혼은 존재의 빛을 멀리하고 도리어 허무의 어둠을 향해 기울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생명이 무를 지향항 때 그것이 바로 악입니다. 그런데 생명이 무를 지향한다고 하는 것은 다짜고짜 우리가 자살을 감행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물론 그런 것도 포함할 수 있겠습니다만) 생명이 허무를 지향한다는 것은 그것이 자기보다 열등한 존재, 즉 보다 비존재에 가까운 존재에 기울어지고 거기에 사로잡힌다는 것을 뜻합니다. 한마디로 말해, 인간에게 있어서 생명의 주체인 영혼이 육체와 물질적인 사물에 기울어질 때, 인간의 영혼과 생명은 허무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무릇 육체는 어떤 생명보다도 못하다. 왜 그런가 하면 잠시나마 형용을 갖추어서 존속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명에 힘입어서 존속하는 까닭이다. ...... 육체는 죽음에 더 종속되어 있고, 따라서 그만큼 더 무에 가깝다. 생명 또한 육체의 향유에 탐닉하고 하느님을 등한시하는 경우에는 허무로(ad nihilum) 기울며, 이것이 바로 사악(nequitia)이다."(아우구스티누스의 ’참된 종교’)

 

  모든 피조물에게 있어서 그들의 존재는 창조주의 선물입니다. 다시 말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절대적 존재인 신의 존재에 참여함으로써만 스스로도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영혼이 신에게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그것은 참된 존재를 얻게 된다는 것이 플라톤주의자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러한 생각을 표현하여, "영원한 창조주께 귀의하면 우리 또한 필연적으로 영원성을 얻게 마련"이라고 말합니다. 요컨대 인간은 신에게 가까워질수록 보다 완전해지고, 보다 선한 존재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영혼이 자기보다 못한 것들을 사랑하고 그것들에 대해 애착을 가져 거기 사로잡히게 되면, 영혼은 허무의 어둠으로 가득차고, 그 자신 허무에 가까운 것이 되고 맙니다. 그렇게 인간의 영혼이 헛되고 허무한 것들로 가득 차고 거기 사로잡혀 있는 상태가 곧 악한 상태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해, 인간의 영혼이 덧없이 사라져버리는 세상의 물질적인 것들과 육체에 탐닉하고 거기 사로잡힐 때, 영혼은 악에 빠져들게 됩니다. 자기보다 열등한 것을 사랑하는 ’영혼의 이러한 도착(perversitas  animae)’이 바로 도덕적 악입니다.

 

  - 김상봉 철학 이야기 ’호모 에티쿠스’ 중,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관한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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