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성당 장년게시판

모니까 언니의 대단한 기억력!

인쇄

박계화 [p-agatha] 쪽지 캡슐

2000-04-04 ㅣ No.715

  모니까 언니의 영세 기억을 들여다 보며 새삼스레 나의 어린 시절의 영세식이며 첫영성체 교리공부하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저도 8살 되던 1958년에 신당동 성당에서 영세를 받았습니다.

언니처럼 루시아와 함께 하얀 치마저고리를 입고, 광목 미사보를 한 켜 씩 접어 제껴서 미사보를 쓰고(마치 지금의 수녀님 머리에 쓰시는 것 처럼) 있는 사진을 보면 아련한 옛생각이 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첫영성체 교리공부를 잊을 수가 없어요.

그 당시의 미아리 성당에서는 중학생 이상만 첫영성체 교리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루시아와 저는 운이 좋아 5학년 때 그 교리반에 합류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첫영성체 교리반에는 중학생 이상의 학생들과 어른들이 함께 교리 공부를 했는데 제 기억으로는 지금의 그 유명하신 "노기남 주교님"이 그 당시 미아리 성당의 주임 신부님

이셨던 것 같습니다.

 

  어른들 속에서 가장 어리고 작은, 게다가 언제나 옷도 똑같이 입고 다니는 작은 쌍동이가 무척 귀여웠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어른들이 많이 예뻐해 주셔서 우린 정말로 열심히 교리 공부를 했습니다. 그 당시 신부님은 매우 엄격하셔서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모두무서워

했었는데 무서운 신부님께 찰고를 통과해야먄 첫영성체를 할 수 있었습니다. 모두들 어렵고 두려워서 신부님께 찰고를 받지 못하고 있을 때  저희 쌍동이 둘이 제일 먼저 들어가 찰고

를 받게 되었습니다. 신부님 방에 들어가기 까지 밖에서 루시아와 얼머나 떨었던지....

 

  지금도 그 기억은 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이 틀리지않고 또박또박 대답하여 신부님을 기쁘게 해드렸고 그 상으로 미국에서 막 들어온 구제품 보따리를 끌러 주시면서 가장 입고 싶은 옷 한 가지 씩을 고르라고 해 주셨습니다.

 

  우린 그 시절 정말 가난하게 살았었고, 먹을 것도 부족해 가끔 씩은 밥이 없어 몇 끼니씩 굶었던  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저희들에게 레이스가 달린 원피스가 눈에 들어 왔을 때 우린 그 옷이 구호품이란 것은 알지도 못한 체 너무나 감격스러워하고 감사해 하며 그 옷을 입고 단숨에 집으로 달려가 어머니께 보여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그 시절의 감동을 다시 마음으로 끌어 당겨 주님께서 보시기에 좋으시도록 다시 기도하며 살아가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이런 좋은 기억을 되살리도록 도와주신 모니까 언니께 감사드립니다.

 

                                  계수나무꽃(아가다)

 



26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