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의 작은터

<58> 부실한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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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나 [shyj] 쪽지 캡슐

2000-05-12 ㅣ No.5306

부실한 저녁

 

부실한 저녁

 

그 여자가 조금 늦게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그 남자는 재빨리 시동을 걸었습니다.

 

그리고는 한강변에 있는 시민공원으로 갔지요.

시민공원에는 초가을의 저녁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아주 선선한 바람.

 

무심코 앉아있다 보면 살결에 오소소 작은 소름들을 만들고 가는 바람이었습니다.

 

그 남자는 말했지요.

“우리 오늘은 여기 강변에 앉아서 해가 저물고 저녁이 깊어지고

밤이 오는 걸 바라보자. 부실한 저녁을 먹으면서 말이야.”

 

강가에서 해가 저무는 걸 바라보자는 그 말. 저녁이 깊어지는 것을 보면서

‘부실한 저녁’을 먹자는 말에 그 여자는 그만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부실한 저녁을 먹자’는 말은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그 여자는 생각했습니다.

커피와 크래커 몇 개 그리고 컵라면의 부실한 저녁이 그 여자곁에 놓여졌습니다.

 

두 사람은 별말없이 앉아서 강변에 어둠이 내리고 해가 저물고

구름이 검게 변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강가 위에 꿈처럼 걸린 다리 위에

어느 순간 가로등이 들어오는 것도 지켜보았습니다.

철교 위로 지나가는 기차가 불을 환하게 밝혔고,

먼 길을 가는 차들은 헤드라이트를 켜는 시간.

 

그렇게 저녁이 깊어가고 밤이 왔습니다.

 

강변에는 날마다 이런 저녁이 있었을텐데

한 번도 이런 저녁을 모르고 살았던 것이 억울하기도 했습니다.

 

그 여자가 한 번도 몰랐던 아름다운 강변의 저녁을

선물해 준 그 남자가 참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이 사람이 오늘 청혼한다면 받아 주리라 생각했습니다.

 

꼭 하나의 조건만을 붙여서 말이지요. 그 여자가 생각한 단 하나의 조건은,

한 계절에 한 번만 이렇게 강가의 저녁을 보여 준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청혼을 하면 멋지게 허락하려고 결심하고 있었지만,

그 남자는 끝내 그여자의 마음을 모른 채로 자리를 걷었습니다.

 

그 여자는 괜히 쑥쓰러워져서 혼자서 웃었습니다.

부실한 저녁을 먹으면서 지켜본 강가의 저녁.

 

해가 지고 저녁이 지나고 밤이 오는 동안 그 여자는

세상의 누구보다도 행복한 여인이었습니다.

 

비록 원하던 멋진 청혼을 받지 못했고,

그래서 멋진 허락을 하지는 못했지만...

 

 

 

 

< 음..예전이 생각나는 글이었습니다.

 

  함께 지켜본 강가의 저녁.

 

  해가 지고 저녁이 지나고 밤이 오는 동안  

 

  세상의 누구보다도 행복한 연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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