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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29장 1절- 31장 4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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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숙 [sjs88] 쪽지 캡슐

2003-02-09 ㅣ No.303

욥의 마지막 독백

 

29 욥이 탄식하며 읊조렸다.

    지나간 예시시졀은 영영 돌아 오지 않으려나!

    하느님께서 지켜 주시던 그 날은 끝내 돌아 오지 않으려나!

    하느님의 등불이 내 머리위에서 비차나고

    그의 횃불로 아둠을 몰아 내며 거닐던 그 날,

    내 나이 한창일 무렵

    하느님께서 나의 천막을 감싸 주시던 그 때,

    전능하신 분께서 나를 버리지 않았고

    아이들도 나를 에워 싸며 돌아 가던 그 시절,

    나는 우유로 바를씻었지.

    기름이 내가 되어 바위 사이를 흘러 내리던 시절,

    내가 성문께로 발을 옮겨

    성문 앞 광장에 자리를 잡으면

    젊은이들은 나를 보고 비켜 서고

    노인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네.

    양반들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하던 말을 삼켰으며

    귀족들은 입천장에 혀가 붙어

    소리를 죽이고

    나의 입술이 떨어지기만 기다리며

    나의 의견에 묵묵히 귀를 기울였네.

    내가 말을 마치면 다만 그들은 고개를 끄덕일 뿐,

    나의 말은 그들 위에 방울방울 떨어졌지.

    비를 기다리듯이 그들은 나를 가다렸고

    입을 벌리고 봄비를 받아 마시듯이 하였네.

    내가 웃기만 해도 그들은 어리둥절하였고

    내가 미소만 지어도 으쓱해 하였는데,

    나 윗자리에 앉아 그들의 갈 길을 지시하며

    군대를 거느린 제왕처럼 앉아

    목메어 우는 사람들을 위로하던

    아, 그 시절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인가!

    귀는 내 이야기를 듣고 찬사를 아기지 않았으며

    눈은 나의 하는 일을 보고 즐겨서 증언하였네.

    도와달라고 아우성치는 빈민들,

    의지할 데 없는 고아를 내가 건져 주지 않았던가?

    숨을 구두며 하는 마지막 축복은 모두 나에게 쏠렸고

    과부의 서러움은 나에게서 기쁨으로 바뀌었네.

    정의가 나의 옷이었으며

    공평이 나의 두루마기요, 나의 면류관이었는데.......

    나는 소경에게는 눈이었고

    절뚝발이에게는 디리였었지.

    거지들은 나를 아버지로 여겼으며

    낯선 사람들도 나에게 와서 억울함을 호소하였네.

    악인의 턱을 때려 부수고

    그가 물고 있는 것을 이빨 사이에서 빼내기도 하였지.

    그러니 내가 어찌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인가?

    "나는 보금자리와 함께 타 버렸다가도

    다시 재를 털고 일어나

    오래오래 사는 불사조,

    나의 뿌리는 물기를 따라 뻗고

    밤새 이슬에 젖은 내 잎사귀는 싱싱하기만 하구나.

    나의 영광은 날로 새롭고

    활 잡은 내 손은 결토 맥이 풀리지 않으리라."

 

 

30 그런데, 이제 나보다 어린 것들엑 웃음거리가 되었구나.

    그 아비들은 내 양떼를 지키는 개들과도

    함께 있을 수 없다고 여겼었는데.......

    그들의 맥이 다 빠져 버렸는데

    그 손의 힘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먹지 못해 굶주려 말라 비틀어지고

    메마른 흙이나 씹으며 거친 들을 파먹고

    덤불 속에서 자라는 짠나물과

    대싸리 뿌리로 겨우 연명하며

    "도둑이야"하는 고람소리에 쫓기는 도둑처럼

    인간세상에서 쫓겨 나던 그들,

    급류에 팬 골짜기 벼랑에나 몸을 붙이고

    땅굴이나 바위 틈에 숨어 살면서

    떨기나무 속엣 울부짖고

    가시나무 밑에 웅크리고 있던

    이름도 없는 바보 같은 것들,

    회초리에 몰려 제 고장에서 쫓겨 나더니......

    이제 내가 그것들의 조롱거리가 되었구나.

    비웃으며 수군거리는 대상이 되었구나.

    보기 싫어 가까이하려고도  아니하고

    거리낌없이 내 앞에 침을 뱉으며

    나의 활시위를 푸러 버리고, 나를 들볶으며

    굴레벗은 말처럼 덤벼드네.

    찬한 무리가 내 오른쪽엣 들고 일어나

    나의 앞에 저승길을 터놓는구나.

    내 앞길을 파헤쳐 나를 망치는데도

    그들을 막을 사람이 없네.

    성벽을 허물며 밀려 드는 적군과 같고

    덮쳐 오는 폭풍과도 같구나.

    갑자기 쏟아지는 이 두려움에

    나의 영광은 바람에 불려 가듯이 사라지고

    나의 행복은 구름처럼 날려 갔네.

    이제 나의 넋은 모두 쏟아졌고

    괴로운 나날이 나를 사로잡는구나.

    밤이면 도려 내듯이 내 뼈를 쑤셔 대는데

    그 쓰라림이 잠시도 멎지를 않네.

    누군가 나의 옷을 세차게 잡는구나.

    나의 옷깃을 휘어 잡아

    수렁에 내던져서

    미침내 이 몸은 티끌과 재가 되고 말았네.

 

    내가 당신께 부르짖사오나

    당신께서는 대답도 없으시고

    당신 앞에 섰사오나

    보고만 계십니다.

    당신은 이다지도 모진 분이십니까?

    손을 들어 힘껏 나를 치시다니.

    나를 번쩍 들어 바람에 실어 보내시고

    폭풍에 휘말려 사라지게 하시다니.

    아, 어찌 모르겠읍니까?

    당신께서 나를 죽음을 이끌어 가시리라는 것을.

    모든 산 자가 모여 갈 곳으로 데려 가시리라는 것을.

 

    이렇게 빠져 들어 가면서 그 누가

    살려 달라고 손을 내뻗지 않으며

    절망에 빠져서 도움을 청하지 않으랴!

    고생하는 자들을 위하여 내가 괴로와하지 않았던가?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내가 괴로와하지 않았던가?

    좋은 날을 기다렸더니 재난이 닥치고

    빛을 바랐더니 어둠이 덮쳤네.

    속은 쉬지 않고 부글부글 끓고

    괴로운 나날이 앞길에 도사리고 있구나.

    햇빛에 타지도 않은 몸이 이렇게 새까맣게 되어

    사람들 모인 가운데 일어나서 도움을 청하는 신세가 되다니.......

    나는 승냥이의 형제요

    타조의 벗이 되고 말았는가!

    살갗은 까맣게 벗겨지고

    뼈는 지글지글 타오르는데,

    나의 수금은 장송곡이나 울리고

    나의 피리는 통곡소리나 반주하게 되었구나.

 

31 젊은 여인에게 눈이 팔려 두리번기리지 않겠다고

    나는 스스로 약속하였네.

    하느님께서 위에서 나누어 주시는 분깃은 무엇인가?

    전능하신 분께서 높은 데서 떼어 주시는 유산은 무엇인가?

    악당에게는 파멸이,

    바람둥이에게는 고독이 아니던가?

    그는 나의 걸어 온 길을 살피시고

    나의 발걸음을 세시는 분,

    내가 호황한 생각으로 살았다거나

    이 발이 거짓으로 서둘렀다면,

    바른 저울에 달아 보시면 아시리라.

    하느님께서 나의 흠없음을  어찌 모르시랴?

    내 발길이 바른 길에서 벗어났다든가

    이 마음이 눈에 이끌려 헤매고

    이 손바닥에  죄지은 흔적이라도 묻어 있다면,

    내가 뿌린 것을 남이 먹고

    내 밭에서 자란 것이 뿌리째 뽑혀도 좋겠네.

    나의 밭이나를 향해  아우성치고

    이랑들이 한꺼번에 목놓아 운 적이 있다면,

    품값을 주지도 않고 밭의 소출을 모조리 먹어 치워

    일꾼들이 허기져 비틀거리게 하였다면,

    밀이 날 자리에 엉겅퀴가 나고

    보리가날 자리에 잡초가 무성하여도 좋겠네.

    나의 마음이 남의 여인에게 끌려

    이웃집 문을 엿보기라도 하였다면,

    내 아내가 외가남자에게 밥을 지어 주고

    잠자리를 같이하여도 할 말이 없겠네.

    그렇듯이 추자반 죄를 짓고도

    어떻게 심판을 받지 않으랴?

    송두리째 태우는 무서운 불길에

    나의 모든 소출이 타 버려도 할 말이 없겠네.

    내가 만일 남종의 인권을 짓밟았다든가

    여종의 부평을 묵살해 버렸다면

    하느님께서 일어나실 때 어떻게 하며

    그가 심문하실 때 무엇이라고 답변하겠는가?

    나를 모태에 생기게 하신 바로 그분이

    그들도내시지 않으셨던가?

    내가 가난한 사람을 모른 체하였던가?

    과부들이 눈앞을 캄캄하게 해 주었던가?

    나의 분깃을 혼자만 먹고

    고아들에게는 나누어 줄 생각도 없었던가?

    아니다, 아비가 제 자식을 키우듯이

    나는 그들을 어릴 적부터 키워 주었고,

    나면서부터 손을 잡아 이끌어 주었다.

    걸칠 옷 한 벌 없이 숨지는 사람,

    몸 가릴 것도 없는 빈민을 못 본 체라도 했단 말인가?

    내가 기른 어린 양털에 온기를 입어

    그의 시리던 허리가 나를 칭송하지 않았던가?

    성문에 모이는 사람들이 모두 내 편이라 믿고

    죄없는 사람에게 손찌검이라도 했더란 말인가?

    그랬다면 내  어깻죽지가  빠져도 좋겠네.

    팔이 팔꿈치에서 빠져 나가도 할 말이 없겠네.

    나는 다만 하느님의 징계가 두렵고

    그의 위엄에 눌려서라도 그런 짓을 하지는 못하였다네.

    "나는 황금만을 믿는다.

    정금밖에 의지할 것이 없다."

    이것이 과연 나의 생활신조였던가?

    재산이 많다고 우쭐거리고

    일확천금을  했다고 으스댄 일이라도 있었던가?

    해를 우러러 절하고

    두둥실 떠 가는 달을 쳐다보며

    슬그머니 마음이 동하여

    손으로 입맞춤을 띄워 보내기라도 했던가?

    그랬다면 이 또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요,

    높이 계시는 하느님을 배신한 것이겠지만.......

    나의 원수가 망하는 것이 좋아

    그에게 재앙이 내리기를 빌기라도 했던가?

    나의 입천장이 죄의 맛을 알아

    그에게 앙화가 내리도록 빌었단 말인가?

    나의 천막에서 유숙하는 사람들은 자랑슬워하였네.

    나에게 산해진미를 실컷 얻어먹지 못한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나는  길손을 노숙시킨 일이 없고

    길 가는 사람 앞에서 문을 닫아 건 일이 없었네.

    죄를 짓고 사람 앞에 감춘 일이라도 있었던가?

    악한 생각을 가슴 깊이 숨긴 일이라도 있었던가?

    사람들의 큰 소란을 무서워하고

    문중이 떨쳐 나와 조롱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입을 다물고 두문불출, 앉아 있기라도 하였던가?

 

    오, 하느님께 드린 내 말에 누가 증인으로 서 주겠는가!

    나는 이렇게 속을 모두 털었으니

    이제는 전능하신 분의 답변을 들어야겠다.

    나를 고소하는 자여, 고소장이라도 써 내려무나.

    나는 그것을 목에 걸든가

    면류관인 양 머리에 두르고는

    살아 온 나의 발걸음을 낱낱이 밝히며

    귀족처럼 그의 앞에 나서리라.

 

이로써 욥의 말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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