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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겉과 속 ♠
그때에 하느님 나라가 언제 오겠느냐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질문을 받으시고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하느님 나라가 오는 것을 눈으로 볼 수는 없다.
또 ‘보아라.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 그러고 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영광스러운 날을 단 하루라도 보고 싶어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아라, 저기 있다’ 혹은 ‘여기 있다’ 하더라도 찾아 나서지 말라.
마치 번개가 번쩍하여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환하게 하는 것같이 사람의 아들도
그날에 그렇게 올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의 아들은 먼저 많은 고통을 겪고 이 세대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아야 한다.”
(루가 17,20-25)
◆신학교 시절에 나는 거룩하게 되고 싶었다. 하느님을 온통 차지하고 싶었다.
간절한 기도와 규칙에 충실한 생활이 거룩하게 살아가는 길이라 믿었다. 아침에는
누구보다도 먼저 성당에 가 묵상을 하였고 저녁에는 가장 늦게까지 경당에서
기도하였다. 침묵시간에 소곤거리는 친구들을 남모르게 경멸하였고 정해진
규칙을 대수롭지 않게 어기는 친구들을 멀리하고자 하였다. 마음속에 미움과
질시가 가득했지만 친절하고 온유하게 보이고자 애썼고 늘 심각한 표정으로
생활하였다. 친구들은 나를 은근히 비꼬며 ‘쌍뚜스’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그러나 내 노력은 얼마 가지 못하였고 한 학기가 지나기도 전에 거룩한 체하며
살았던 것을 포기했다. 거룩함은 어떤 행동과 말을 하는지 겉으로 보여주는 데
달려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없는 것을 있는 체한다고
해서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하느님 나라는 외적인 조건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한다
하더라도, 아무리 봉사활동으로 하루를 보낸다 하더라도 그 나름대로 의미는 있겠지만
그것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자유이용권이 될 수는 없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하느님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외적인 행동은 내 마음을 살찌우는 방법이자
표현일 뿐이지 그 자체가 본질은 아닌 것이다. 기도하고 봉사하는 내 삶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잊고 겉치레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오늘 하루 다시 반성한다.
이정호 신부(구속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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