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십리성당 게시판

사탄아, 물러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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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하 [domini0727] 쪽지 캡슐

2005-08-29 ㅣ No.3569

참말로 예수님도 너무하시지.

어떻게 저한테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냐는 말이에요.

뭐라구요? 사탄아 물러가라?

지금 저더러 사탄이라고 하신 겁니까?

사탄이라면 마귀라는 얘기 아닙니까?

아무리 화가 나셔도 그렇지

할말이 있고, 안 할 말이 따로 있다고

주님께서 어찌 저한테 그리 말씀하실 수 있냐구요?

 

저요? 주님 따라 나서느라구 제 모든 것을 몽땅 버렸습니다요.

어머니도 버리고 식구들을 버리고.......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며 온 식구의 밥줄이었던 내 전 재산인

배와 그물, 그리고 배에 실린 식기며 어구들도 몽땅 버렸습니다요.

동생까지 저를 따라나서는 바람에 집안 식구들이 밥을 먹는지 죽을 먹는지

전혀 개의치 않고 오직 주님만이 내 주인이시라 믿고

동가숙 서가식하면서 오늘까지 오로지 주님 뒤만 쫄쫄 따라 다녔습니다요.

그런 저에게 주님께서 어찌 그리 섭한 말씀을 하시는 거냔 말입니다.

 

제가 설령 주님 심기를 건드렸다고 칩시다.

그렇다고 어찌 그리 매정스럽게 말씀 하십니까?

사탄이라니요? 저더러 마귀라고 하시다니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너는 베드로다. 네 반석 위에 교회를 짓겠다"고 하시며

저를 추켜주셨던 분이 바로 주님이셨잖아요?

헌데, 요새 며칠 동안 왜 그리 주님의 심사가 꼬이셨습니까?

생전 안 하시던 험한 말씀을 거침없이 하시더이다.

이방인인 가나안 여자에게 "강아지에게 줄 음식이 없다"하시며

주님 입으로 강아지(개 새끼)라는 욕말을 쓰시는 것을 보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저 어른이 왜 저러시나? 사람이 죽을 때는 평소에 안하던 짓도 하고

일부러 정을 끊어놓고 간다든데.....

말씀하신 대로 주님이 정말로 돌아가시는 것 아닌가?

그렇게 되면 우리는 어떻게 되나?

혹시 요단강에 오리알이 되는 게 아닌가?

요새 몇일 그 근심 때문에 밤에 뒤척거리느라고 잠을 못 이루기도 하였는데

주님께서는 그런 제 마음을 조금이라도 아시기나 하십니까?

 

돌아가시다니요? 말이 안 됩니다.

주님이 돌아가시면 저희들은 어쩌란 말입니까?

집도 버리고 가족도 버리고 재산도 버리고 정처없이 주님만 따라 다녔는데

이제 와서 저희들 몰라라 하시면 저희는 어디로 가라는 말씀입니까? 

오직 주님이 세우실 나라의 새 일꾼이 되길 희망하며

권력자에 빌붙어 온갖 만행을 서슴치 않으면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율법을 해석하며

호의 호식하면서 권위만 내세우는 율법학자들

겉으로는 모세 5경을 따르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호박씨만 까는

저 못된 바리사이 들 

말만 하고, 실행을 안 하는 나쁜 자식들.

무거운 짐을 꾸려 몽땅 남의 어깨에 지우고

저들은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않는 저 못된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

그러면서도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고 싶고

거리에 나가면 스승이라고 불러주길 바라는 아주 나쁜 자식들.

그들이 발을 못 붙이게 이 땅에서 영원히 쫓아내고

세상을 한번 발칵 뒤집어 엎어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기고도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까지 하는

우리들 선한 민초들이 주동이 되어서

주님을 우리의 위대한 새나라 유다의 왕으로 모시고

이 땅에 그리스도 왕국을 건설하려는

우리들이 꿈 꾸어온 세상은 어찌 하라고

주님께서 돌아가신다는 말씀을 하시는 거냐 이겁니다.

 

안 됩니다. 돌아 가셔선 안 됩니다.

아니지요 주님 마음대로는 아니 됩니다.

아무리 엿장수 마음대로 라는 말이 있다 해도

주님 마음대로 돌아가실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오직 주님 한분만을 믿고 따른

저희들은 앞으로 어쩌라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냐구요?

오죽하면 제가 감히 주님의 옷소매를 부여잡았겠습니까?

아닙니다. 그 순간 너무 너무 허무해서 

외람되지만 주님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습니다.

 

주님은 살아게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제와 항상 그리고 영원히 사셔야 하실 분이시지 않습니까?

왜 저 못된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왜 우리가 타도해야할 쓰레기 같은 그들 손에 죽으신다는 것입니까?

정녕 말씀대로 죽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다 하드라도

절대로 아니 되옵니다. 돌아가셔선 아니 되옵니다.

 

이렇게 말씀 드리는 저를 사탄이라구요? 마귀라구요?

주님 참말로 너무 하십니다. 너무하셔요.

 

저녁미사에 가서 복음을 읽고 신부님의 강론을 들으면서

나는 갑자기 베드로가 되었다.

얼마나 원통하고 분한지.........

얼마나 억울하고 허무한지...........

내가 만약 베드로였다면 

베드로님보다 훨씬 더 심하게 주님께 대들었을 것 같다.

허나 어쩌랴? 하느님은 하느님 일만 생각하고

인간인 나는 인간의 일만 생각하는데......

그래. 그렇게 살자.

이왕지사 주님을 믿고 따르기로 한 것이니

내 성질도 죽이고, 내 욕심도 줄이고, 나를 낮추고

내가 살아오면서 지은 죄는 내 십자가 형틀에 메달아

내 어깨에 지고 메를 맞더라도 불평하지 말고 뉘우치면서

오직 주님을 따라 가자. 저 하늘나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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