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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964번 글에 대한 질문의 답글 및 재질문 964_ [성경_번역오류_약은집사] [성경해석] 782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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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7 오전 10:43 [122.128.44.*]

2010-10-08 ㅣ No.965

 
 
+ 찬미 예수님
 
 
주신 답글을 잘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매우 유감스럽게도,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보면, 국내의 신부님들 사이에서도 이 비유에 대한 강론 말씀들이 너무나 다릅니다. 즉 신부님들께서도 견해차가 심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근거 자료들을 충실하게 제시하면서, 상당히 긴 글을 마련하여 올려드린 것이었습니다.
 
여기를 클릭하시면(필독 권유) 연중 제31주일 금요일의 복음 말씀이기도 한 루카 복음서 16,1-8에 대한 윤경재 신부님(?)의 강론(?)을 읽으실 수 있는데, 지금까지 제가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본 바에 의하면, 윤경재 신부님(?)의 이 강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다른 신부님들께서는 제가 자료를 찾아 근거를 제시하면서 말씀드린 내용과는 전혀 다른, "약은 집사의 비유" 본문보다도 더 납득 수 없는 말씀들을 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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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윤경재 신부님(?)의 강론(?)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이전 생략)

유대인 집사들은 이자를 받을 수 없는 율법 규정 탓에 미리 실제로 꾸어준 것보다 더 많은 금액을 장부에 적어 넣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하나의 관례처럼 되었기에 쌍방 간에 양해된 사항입니다. 그때 집사는 자기 몫을 붙여 장부에 적었던 것입니다. 

이 집사는 주인의 원금을 손댄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돌아올 몫을 미래를 위해서 포기한 것입니다. 그러자 소문이 금세 바뀌었습니다. 아마도 먼저 소문이 잘못된 것이라는 은밀한 보고가 주인 귀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가 일 잘한다는 평이 갑자기 나돌았습니다. 소작농 처지에서 다른 집사가 와보아야 별 볼일 없었을 것입니다. 누가 집사가 되던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면 그만입니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생각도 했을 겁니다. 

비유 말씀에서 나오는 주인은 사후에라도 이런 전후 사정을 상세히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불의한 집사라고 계속 부르면서도 그가 영리하게 대처했다고 칭찬하였습니다. 물론 그를 계속 집사로 두었는지 아닌지 여부는 본문으로는 파악할 수 없습니다. 

루카저자는 이 난해한 비유를 나름대로 해석하는 실마리를 16,9-13절에서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비유의 강조점이 사뭇 달라졌습니다. 루카는 이 비유를 통해 세 가지 면을 강조합니다. 첫째 재물의 올바른 사용을 말했고, 둘째 작은 일에도 성실할 것을 말했습니다. 셋째로 각자는 하느님인지 재물인지 분명히 선택해야 하고 두 주인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 말씀을 갑작스럽게 다가올 종말 때에 어떻게 현명하게 처신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셨다면 루카저자는 종말이 미루어지는 당시 제자들에게 평소에 어떻게 재물을 사용할 것인지에 관해 가르침을 주시는 것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이후 생략)

참고: 굿뉴스 서버의 우리들의 묵상 게시판에 있는 위의 윤경재 신부님(?)의 글은 어제 새벽에 처음으로 굿뉴스 서버를 검색하여 읽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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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번역 성경에서 "집사 일을 청산하게"로 번역한 루카 복음서 16,2의 표현과 관련하여서는,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필독 권유) 위의 제 글 중에서 또한 말씀드린 것입니다만, 다음의 질문에 대답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질문:
각 교구의 주교님들께서는, 매 5년마다 교황님을 찾아 뵈어야 하는데(visit ad Limina Apostolorum, 즉 visit ad Limina), 이 방문이
 
(i) 교황님께 "집사 일을 청산하기 위하여" 일까요?
 
아니면
 
(ii) 교황님께 "자신의 집사 일에 대한 설명/보고를 드리기 위하여 (to give an account of your stewardship)" 일까요?
 
 
참고: 
위의 질문에서 제(i)항에 동의하시는 분들은 제가 지적하고 있는 번역 오류에 동의하지 않는 입장이나,
위의 질문에서 제(ii)항에 동의하시는 분들은 제가 지적하고 있는 번역 오류에 동의하신다고 보면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래의 형제님의 글에서 주신 질문들이, 제가 지적한 번역 오류 때문에 발생하게 되는 사고의 혼란을 상당히 포함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드리는 질문입니다만, ooo 형제님께서는 위의 질문의 (i), (ii) 중 어디에 동의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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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신부님의 공식 견해가 필요합니다.
 
작성자   번  호   4486
 
작성일   2010-10-07 오전 8:37:26 조회수   14 추천수   0
 

찬미예수님! 

+ 성경 묻고 답하기 게시판은 성경 전반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굿뉴스 회원이면 누구나 질문을 할수 있고 답변을 할수 있습니다. 아울러 게시판 전담 신부님으로서 안승태(요셉) 신부님(성소국 차장)께서 위촉되었으며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 

이 내용은 이 게시판 '성경 묻고 답하기 게시판' 공고 안내문입니다.  

이곳은 게시 내용처럼 회원 누구나가 이용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묻고 답하는 과정에도 어느 정도 룰은 있어야 합니다. 일부 평신도가 '성경 번역 오류'언급하면서 자신의 논리를 펴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는 생각을 접을 수가 없기에 제안합니다.

성경 번역은 어느 개인이 쉽게 하기엔 불가능한 엄청난 작업입니다. 국가 기관에 부합되는 곳에서 오랜 연구와 묵상으로 정말 오랜 과정을 거쳐 번역이 되었으리라 확신합니다. 하느님 말씀을 감히 어정쩡하게 다루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 (소순태 답변 시작) 
지금하신 이 말씀은 독자들에게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기에 아니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즉, 지금까지 제가 드린 말씀들은, 저의 개인적 논리를 편 것이 아니라

(1)성요셉출판사 발행(초판: 1996년)의 "주석성서 신약"[감수: 김경희 신부, 검열: 염수경 신부(주교)]의 주석,
(2)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에서 발행한(초판: 1970년) NAB 성경의 주석, 
(3) 가톨릭 교회 교도권의 가르침에 매우 충실한 나바르 성경의 주석,
(4) 가톨릭용 프랑스어 성경인 Tob 성경의 주석, 그리고 특히 
(5)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및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강론 말씀들, 
(6) 알렉산드리아의 성 클레멘트 교부께서 하신 주석/해설 등 등을, 

약간의 추가 설명과 함께, 그러나 이들 주석/해설들과는 다른 개인적 견해의 추가 없이 그대로 말씀드린 것입니다. 

따라서, 제가 한 일은 기껏해야 이런 자료들을 찾아서, 우리말로 번역까지 하면서, 전달해 드린 것 뿐입니다. 특히 위에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Address들에 근거하여 드리고 있는 저의 질문이, "집사 일을 청산하게"라는 표현이 번역 오류임을 너무나 자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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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추가일: 2010년 10월 8일]
 
 다음은, 여기를 클릭하면 직접 읽을 수 있는,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중국어 루카 복음서 전문에서 발췌한 루카 복음서 16,2의 후반부로서, 새 번역 성경에서 

"집사 일을 청산하게. 자네는 더 이상 집사 노릇을 할 수 없네."

로 번역한 부분에 해당하는,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중국어 번역문입니다:

"把?管理家務的帳目交出來,因??不能再作管家了。"

상당히 오랫만에 한문 문장을 들여다 봅니다만, 아무리 눈을 닦고 이 파란색칠의 한문 문장을 여러 번 들여다 보아도, 

집사더러
"자네의 집안일 관리에 대한(?管理家務的) 장부의 항목(帳目)들을 (즉, 회계 보고서를) 제출하게(交出)" 라는 뜻의 중국어 표현으로 번역을 하였지, 

결코 새 번역 성경에서처럼, "집사 일을 청산하게", 혹은 "집사 일을 정리하게"(국내의 개신교측 일부 성경에서의 번역) 의 뜻으로 번역하지 않았다는 생각입니다.

[이상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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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답변 끝)

 이런 관점에서 저는 정말 난해한 복음인 이 '약은 집사의 비유'와 '재물을 올바르게 이용하여라.' '하느님이냐, 재물이냐?'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의 참모습'[이상 루카 16. 1~15]에 대해서는 이 게시판의 전담 신부님의 공식적인 의견 개진이 필요하다고 사료됩니다.  

제 좁은 견해로도 '약은 집사의 비유'는 여러분의 말씀대로 정말 어렵습니다. 어쩌다보면 정말 단순한 것이 성경인데, 해석과 묵상의 접근 방법에 따라 천차만별이 됩니다. 질문 방법과 답변 방법에 따라 결론은 어처구니가 없게도 어정쩡하게, 아니면 딴판으로 달아나 버립니다. 그래서 소생은 이 게시판 담당 신부님께서 아래의 소생의 질문에 대해 풀이해 주시면 이 어려운 복음의 이해에 도움이되리라 사료되어 몇 자 질문으로 의견을 개진합니다. 

1. 이 복음이 의미하는 '약은 집사의 그 무엇이 정말 약은가?'이다.[아래의 둘 중 하나 아니면 다른 것?]

1]'업무 수수료로 자신의 몫으로 받기로 하였던 고리의 수수료를 채무자들에게 면제해 주었던 것인가,

2]아니면 자기가 개인적으로 축적한 것인가?' 

2. 집사의 불의한 행동이 어떤 측면이 영리한가?

3.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라는 이유는?

4.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라는 이유는?

5. 예수님께서 이 '약은 집사의 비유'의 결론적인 설교를 하신 목적은?  

이것에 대한 많은 의문점을 해소하는 과정이 성경을 묵상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확신을 하면서, 작은 견해의 이런 저런 설명보다는 이 부분 복음의 큰 뜻이 무엇인가를 모으길 기대합니다.

그리고 혹시 제 뜻을 달리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런 생각을 가진 분도 있구나!'하고 이해해 주시길 부탁을 드리면서 감히 몇 자 적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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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한 집사의 비유 - 윤경재
 
작성자   윤경재(whatayun)  쪽지 번  호   50486
 
작성일   2009-11-06 오후 2:54:07 조회수   306 추천수   3
 
 
 

불의한 집사의 비유 - 윤경재

 

“어떤 부자가 집사를 두었는데, 이 집사가 자기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말을 듣고, 그를 불러 말하였다. ‘자네 소문이 들리는데 무슨 소린가? 집사 일을 청산하게. 자네는 더 이상 집사 노릇을 할 수 없네.’ 그러자 집사는 속으로 말하였다. ‘주인이 내게서 집사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니 어떻게 하지? 땅을 파자니 힘에 부치고 빌어먹자니 창피한 노릇이다. 옳지, 이렇게 하자. 내가 집사 자리에서 밀려나면 사람들이 나를 저희 집으로 맞아들이게 해야지.’ 그래서 그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 첫 사람에게 물었다. ‘내 주인에게 얼마를 빚졌소?’ 그가 ‘기름 백 항아리요.’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으시오. 그리고 얼른 앉아 쉰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당신은 얼마를 빚졌소?’ 하고 물었다. 그가 ‘밀 백 섬이오.’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아 여든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루카 16,1-8)

 

 

예수님의 비유 말씀 중에서 이 불의한 집사 비유처럼 알아듣기 어려운 것도 없습니다. 아마도 이 비유를 처음 듣던 청중이나 제자들도 고개를 갸우뚱하였을 것입니다. 심지어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주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일찍이 사람들이 보고 경험한 적이 없는 내용을 좀 더 쉽게 알아듣도록 하실 목적이었습니다. 당신만이 알고 계신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시고자 청중이 알 만한 비유와 이야기를 채택한 것입니다. 우선 청중이 잘 아는 생활 속 실례를 드셨습니다. 그러나 종종 듣는 이들이 예상하지 못한 내용도 담겼습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일부러 화폐단위를 어마어마하게 드신다든가, 이야기 전개를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이끌었습니다. 청중 가슴 속에 깊이 각인되도록 의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비유 말씀의 목적을 청중을 놀라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선 이 집사가 불의하다고 평가를 받은 이유는 사람들 사이에 나쁜 소문이 돌아서였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대부분 소문이란 것이 본질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면을 들어 생겨나는 법입니다. 실제가 아니라 무엇인가 연관된 것으로 소문이 나는 법입니다. 소문과 실제는 약간씩 다르기 마련입니다. 소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늘 의심해 보는 편이 낫습니다.

소작농들은 집사가 가혹하게 군다고 투덜대더라도 주인의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주인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식의 소문을 내었습니다. 주인에게 직접 피해가 가야 주인이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이라 여겼던 것입니다. 주인으로서는 돈을 안전하고 빠르게 증식시켜주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주인이 소문을 들은 내용은 집사의 일하는 능력이나 가혹한 인품이 아니었습니다. 주인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집사를 불러 집사 일을 청산하고 그만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곤란한 지경에 다다른 집사는 약삭빠르게 나중 일을 생각하고 빚을 진 소작인들에게 찾아가 얼마씩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최소한 나중에 대접이라도 잘 받을 수 있게 준비한 것입니다. 그의 행동은 사실 자기가 받을 몫을 떼어 준 셈입니다. 다른 집사 같았으면 소작인들을 찾아가서 한 몫을 자기에게 달라고 우격다짐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집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 조건 없이 빚을 탕감해 준 것입니다. 

유대인 집사들은 이자를 받을 수 없는 율법 규정 탓에 미리 실제로 꾸어준 것보다 더 많은 금액을 장부에 적어 넣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하나의 관례처럼 되었기에 쌍방 간에 양해된 사항입니다. 그때 집사는 자기 몫을 붙여 장부에 적었던 것입니다. 

이 집사는 주인의 원금을 손댄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돌아올 몫을 미래를 위해서 포기한 것입니다. 그러자 소문이 금세 바뀌었습니다. 아마도 먼저 소문이 잘못된 것이라는 은밀한 보고가 주인 귀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가 일 잘한다는 평이 갑자기 나돌았습니다. 소작농 처지에서 다른 집사가 와보아야 별 볼일 없었을 것입니다. 누가 집사가 되던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면 그만입니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생각도 했을 겁니다. 

비유 말씀에서 나오는 주인은 사후에라도 이런 전후 사정을 상세히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불의한 집사라고 계속 부르면서도 그가 영리하게 대처했다고 칭찬하였습니다. 물론 그를 계속 집사로 두었는지 아닌지 여부는 본문으로는 파악할 수 없습니다. 

루카저자는 이 난해한 비유를 나름대로 해석하는 실마리를 16,9-13절에서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비유의 강조점이 사뭇 달라졌습니다. 루카는 이 비유를 통해 세 가지 면을 강조합니다. 첫째 재물의 올바른 사용을 말했고, 둘째 작은 일에도 성실할 것을 말했습니다. 셋째로 각자는 하느님인지 재물인지 분명히 선택해야 하고 두 주인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 말씀을 갑작스럽게 다가올 종말 때에 어떻게 현명하게 처신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셨다면 루카저자는 종말이 미루어지는 당시 제자들에게 평소에 어떻게 재물을 사용할 것인지에 관해 가르침을 주시는 것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신 여러 가지 능력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고 낭비하고 살아왔습니다. 비단 재물처럼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시간이나 건강, 개인의 능력을 말합니다. 또 자연환경이나 사회적 평화 등 공짜로 받은 것 하며 인간관계에서 오는 기쁨 등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것들을 감사하기는커녕 당연하며 심지어 자기가 잘나서 당연히 획득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이런 행태를 바로 낭비한다고 나무라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본래 자기 것이 아니며 함부로 낭비할 권리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 나와 사는 모든 이가 함께 누려야 할 선물이라는 말씀입니다. 자신의 생명마저도 하느님의 것이라는 생각을 해야 하겠습니다. 

이제 이 집사는 주인의 재산을 가지고 자기 것인 양 전횡을 부리며 낭비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본래 누구의 것이었는지 확실히 깨달은 것입니다.

 

 

 

 
박경애 ( (2009/11/06) : 이런 깊은 뜻이...tkcjsehdtjde)  
 
소순태 ( (2010/10/07) :

+ 찬미 예수님

여기를 클릭하시면 제가 찾아낸 위의 본글의 문헌적 근거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당시의 팔레스티나 지역의 풍습/관습을 반영한 올바른 해석에 근거한 좋은 묵상글을 올려주신 윤경재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suns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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