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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자 유다에 대한 성경 기록이 전설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성경공부] [성경해석] [예수 세미나] 782_ 281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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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5.115.208.*]

2011-10-20 ㅣ No.1121

 
 
+ 찬미 예수님!
 
아래의 <<부록>> 에 발췌된 바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이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1.
200주년 신약성서의 해설/주석은, 1990대 말에 교황청과 한국천주교 주교회의로부터 경고와 제재를 받은, 그리고 최근에도 제재를 받은, 종교다원주의자이며, 그리고 최근의 국내 언론에 보도된 바에 의하면 그리스도가 하느님이라는 신조를 부인하는, 정양모 신부의 개인적 견해가 많이 피력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발췌 인용하고 있는 바의 내용은, 가톨릭 교회가 전통적으로 가르치는 바와 대단히 크게 충돌하니, 더 이상 정양모 신부의 주장을 전달하는 글을 이곳(성경 묻고 답하기)에 올리는 것을 삼가해 주실 것을 권고드립니다.
 
2. 조금 더 추가로 말씀을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2-1.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신약 성경의 각 경전들의 저술 시기인데, 이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글을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2-2.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도 또한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2-3.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도 또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4.
예를 들어, 정양모 신부는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기적(miracles)들을 기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이적(wonders)들이라고 주장해 왔는데, 이러한 주장은 성경 말씀들에 대한 대단히 심각한 훼손입니다.
 
"기적(miracle)""이적(wonder)", 그리고 "표징(sign)"의 차이점을 모를 경우에는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을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2-5. 다음은 개신교측의 극단적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모임인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에서, 1995년에, 배반자 유다에 대하여 투표를 하여 내린 결정에 대한 Times 지의 1996년 4월 8일자 기사 내용입니다. 바로 이 "예수 세미나"의 결정이 정양모 신부의 주장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발췌 시작)
THE GOSPEL TRUTH?
복음은 진리일까?
By DAVID VAN BIEMA;RICHARD N. OSTLING/NEW YORK AND LISA H.TOWLE/RALEIGH
Monday, Apr. 08, 1996
 
 
JUDAS DIDN'T DO IT. OR AT LEAST THE CHARGES wouldn't stick. That was the decision of the judges (admittedly a little after the fact) in the Flamingo Resort Hotel Ballroom in Santa Rosa, California, late last year. Of course, there was testimony against him, primarily from Matthew, Mark, Luke and John. But that foursome is notoriously unreliable: the judges at the Flamingo already had to throw out the Evangelists' testimony on the Nativity, the Resurrection, the Sermon on the Mount and any number of other cases. So, as regards the matter of Judas, although there was a good deal of debate--some people felt the evidence showed he did do it, some people felt he did it with help from other Apostles, some people felt he was simply a literary device--the 50 panelists assembled at the Flamingo agreed that it was highly unlikely that for 30 pieces of silver, Judas Iscariot kissed his master, Jesus Christ, and thus betrayed him to the authorities to be crucified.

유다는 그것을 하지 않았다. 아니면 적어도 그 비난은 고수되지(stick) 못할 것이다. 바로 이것은, 지난 해(1995년)에, 캘리포니아 Santa Rosa에 위치한 Flamingo Resort Hotel의 Ballroom에서 (틀림없이 그 사실 조금 뒤에) 이 재판관들의 결정이었다. 당연히, 주로 마태오 복음서, 마르코 복음서, 루카 복음서 그리고 요한 복음서로부터, 그(him)에 불리한(against) 증언이 있었다. 그러나 바로 이 4인조는 다음과 같이 악명 높게 신뢰할 수 없다: Flamingo에서의 재판관들은 그리스도의 탄생, 부활, 산상설교 그리고 많은 다른 경우들에 대한 복음사가들의 증언을 이미 던져버려야 하였다. 그래서, 유다의 건에 대하여서, -- 비록, 일부 사람들은 그 증거가 그가 그것을 하였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느꼈으며, 일부 사람들은 다른 사도들의 도움과 함께 그가 그것을 하였다고 느꼈으며, 일부 사람들은 그가 단순히 하나의 문학적 장치(a literary device)였다고 느꼈던 --, 상당한 양의 토의가 있기는 하였으나, Flamingo에 모였던 50명의 토론자들은 은전 서른 닢을 위하여, 유다 이스카리옷이 자신의 선생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입을 맞추었으며, 그 결과 십자가 형에 처해지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권력자들에게 팔았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였다는 데에 동의하였다.
 
...
 
(이상, 발췌 끝).
 
 
3. 다른 한 편으로, 다음은 배반자 유다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에 주어진 해설들입니다. 대단히 좋은 내용이니 되도록 많은 분들께서 읽었으면 합니다:
 
3-1. 나해 부활 제7주일 복음 말씀(요한 복음서 17,11ㄴ-19)
 
 
3-2. 매년 성주간 화요일 복음 말씀(요한 복음서 13,21-33.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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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 록 >>
 
게시자 주:
다음의 글은, 성경 묻고 답하기에 답글을 올린 분께서, 200주년 신약성서 마태27장과 사도1장에서 발췌하였다고 합니다:
 
마태 27장의 유다가 자살하다 
 
1) 일찍이 예루살렘 교우들 사이에 유다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생겨났고, 이것이 구전되던 중에 두 갈래로 갈라졌다. 그 중 한 갈래가 27,3-10에 채록되고, 또 한 갈래는 사도 1,18-20에 채록되었으니 다음과 같다: "유다는 불의한 삯으로 토지를 샀으나, 앞으로 거꾸러져서 배가 터지고 그 내장이 온통 쏟아져 나왔습니다. 예루살렘 주민들은 모두 이것을 알고 그 토지를 그들 지방말로 하켈 다마하라 했으니 피의 토지라는 뜻입니다. ..." 
 
2) 유다의 죽음 이야기가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 밝히기란 매우 어렵다. 다음과 같은 가설이 가능하다. 예루살렘의 힌눔 계곡 남쪽에는 옹기장이들의 마을과 밭이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그 밭이 나그네들의 묘지로 변했다. 이 묘지는 아람어로 하켈다마(잠드는 자리)인데, 그 발음이 살짝 변하여 사도1,19에서처럼 하켈 다마하(피의 자리 = 피의 토지.피의 밭)라고도 했다. 그런데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은 배신자 유다의 죽음과 하켈 다마하를 결부시켜 전설을 만들었다. 즉, 유다가 버린 예수님 몸값으로 고급제관들이 밭을 사서 하켈 다마하라고 불렀으니, 곧 예수님의 피값으로 산 때문이라고 하는 전설을 만들었다(마태오 전승). 또 다른 전승 한 가지가 사도행전에 채록되어 있다. 유다 자신이 예수님 몸값으로 밭을 샀으나, 그만 그 밭에서 "앞으로 거꾸러져 배가 터지고 그 내장이 온통 쏟아져 나왔기에" 주민들이 그 밭을 하켈 다마하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즉, 유다의 피가 쏟아진 밭이기에 그렇게 불렀다는 전설이다. (사도행전 전승)  
 
3) 유다는 스승을 배신한 다음 그리스도인들의 눈앞에서 아주 잠적해 버렸던 것 같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인들은 유다의 여생이나 말로에 관해 아무런 소식도 못 들은 것 같다. 그러니 전설을 만들 수밖에. 어떻게? 악인들의 끝장은 으레 비참한 법, 따라서 배반자 유다의 말로는 매우 비참했다는 전설을 꾸몄을 것이다. 유다의 말로에 관한 제3의 전설이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파피아(60~130년경) 단편 3항에 전해오는데 직역하면 이렇다: "유다는 불경의 큰 본보기로서 이 세상에서 처신했다. 그는 몸이 엄청나게 부어올라, 마차가 쉽게 통과할 수 있는 곳도 통과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아니, 그의 머리통조차도 통과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소문에 따르면 그는 눈꺼풀이 엄청나게 부풀어서 전혀 빛을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의사가 검안경(檢眼鏡)을 사용해도 그의 눈을 들여다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눈이 눈언저리에서 그처럼 깊이 박혀 있었던 것이다. 그의 음부는 어떤 흉물보다도 흉하고 크게 보였다. 수치스럽게도 온 몸에서 고름과 구더기들이 음부로 흘러나왔으니, 이는 필연적 현상이었다. 소문에 따르면 그는 많은 고통과 죄벌을 겪은 다음 제 토지에서 죽었는데, 그 토지는 냄새가 나서 이제까지도 사람이 살지 않는 황량한 땅이 되었다. 아니, 손으로 코를 막지 않고서는 오늘날까지도 사람이 그곳을 지나갈 수조차 없다고 한다. 그의 몸에서 그처럼 많은 분비물이 땅으로 흘러내렸던 것이다." 

사도1,18-20절은 루카가 유다의 말로에 관한 전승을 모아 수록한 것이다. 이 전승의 변체가 마태 27,3-10에 그리고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파피아스가 120~130년경에 집필한 [주님의 말씀] 중 후세에 전해진 단편 3장에 있다. 
 
마태 27,3-10: "예수를 넘겨주었던 유다는 그분이 유죄 판결을 받으신 것을 보자, 뉘우치고 은전 서른 닢을 대제관들과 원로들에게 돌려주면서 "내가 무죄한 피를 넘겨주어 죄를 지엇소" 하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오? 당신이 알아서 하구려"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성소 쪽으로 은전을 내던지고 떠났다. 그렇게 물러가서 목을 매달았다. 대제관들은 은전을 거두면서 "이것은 피의 값이니 성전 금고에 넣어서는 안됩니다" 했다. 그들은 의논한 끝에 그것으로 나그네들의 묘지로 쓰려고 옹기장이의 밭을 샀다. 그래서 그 밭은 오늘날까지도 "피의 밭"이라고 불린다. 그리하여, 예레미아 예언자를 시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그들은 은전 서른 닢을 받았으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값매긴 자의 몸값이로다. 그들은 그것을 주고 옹기장이의 밭을 샀으니 주님이 나에게 명하신 대로 된 일이로다.''" (즈카11,12-13; 예레32,6-9)  
 
유다의 말로에 관한 세 가지 전설(마태27,3-10; 사도1,18-20; 파피아스 [주님의 말씀] 단편 3장)을 비교해 보면 후대로 갈수록 더 비참하게 서술된다. 객관적 정보는 매우 빈약했던 모양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악인의 말로는 비참하다는 통념에 따라 유다의 죽음에 관한 전설을 꾸몄을 것 같다. 이스라엘 백성을 몹시 박해하다가 기원전 164년에 비명 횡사한 안티오쿠슨 4세의 최후(2마카9,5-29), 무려 33년 동안 폭정을 일삼다가 기원전 4년 예리코에서 병사한 헤로데 대왕의 최후 (유다고사 17,169), 대왕의 손자로서 요한 사도와 형제인 야고보 사도를 참수하고 베드로를 옥에 가두고 나서(사도12,1-19) 얼마 안 되어 44년 4월 병사한 아그리빠 1세의 최후도 비참했으리라고 여긴 그리스도인들이 저 비극적 전설들을 만들어냈으리라. 세월이 흐르면서 전설전설을 낳아 유다의 최후는 더욱 비참해지고,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은 유다의 최후에 관한 이 전설을 그곳 시민 누구에게나 잘 알려진 장소와 연관시켰을 것이다. "나그네들의 묘지로 쓰인 옹기장이의 밭"(마태27,7), 그리고 "피 밭"(마태27,8), "아람어로 하켈다마흐, 번역하면 피의 토지"(사도1,19) 등이 바로 그 장소들이다. 

옹기장이 밭과 피 토지는 같은 곳인데, 아마도 힌눔 계곡이 끝나는 지점의 서쪽 언덕에 있었던 것 같다. 마침내 그리스도인들은 전설의 전승 또는 편집 과정에 구약성서에서 알맞은 구절을 찿아내어 유다의 비극적 최후가 마치 예언의 성취인 것처럼 서술하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마태 27,3-10에 따르면 유다가 목을 매어 자살한 다음에 제관들이 예수의 몸값으로 피 밭을 샀다. 이와는 달리 사도 1,18에서는 유다가 스스로 토지를 사고 나서 뜻밖의 사고로 비참하게 죽었다고 한다. 루카는 아람어 하켈다마흐,아람어 원문에 가까운 발음으로는 하켈 드마를 그리스계 그리스도인 독자들을 위해서 그리스어로 "피 토지"라고 번역해 놓았다. 왜 그런 이름이 생겼나? 유다가 "거꾸로 떨어져서 배가 터지고 그 내장이 온통 쏟아져 나왔다 (사도1,18)는 데서 생긴 이름이라고 루카는 말한다. 이와는 달리 마태오는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 넘겨 피를 흘리게 한 까닭에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마태27,4.6-7). 밭을 사는 문제와 관련해서도 루카와 마태오의 기록은 다르다. 루카는 유다 자신이 예수를 판 돈으로 자신의 토지를 산 것으로 기록하나, 마태오는 유다가 예수를 판 것에 대해 후회하고 대제관들과 원로들에게 도로 가져온 돈을 데제관들이 성전 금고에 넣지 않고 옹기장이의 밭을 산 것으로 기술한다(마태27,1-10). 
 
이상은 200주년 신약성서 마태27장과 사도1장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게시자 주: 위의 글은, 성경 묻고 답하기에 답글을 올린 분께서, 200주년 신약성서 마태27장과 사도1장에서 발췌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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