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꼭필독] 사람의 행위와 인간의 행위의 차이점, 일/노동(work) 등 969_토미즘학습 free_wi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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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8.55.90.*] 2014-10-16 ㅣ No.1581 (십자성호를 그으며)
당부의 말씀:
+ 찬미 예수님!
1. 들어가면서 [내용 추가 일자: 2014년 11월 28일] 우선적으로,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따라서 차용(借用) 번역 용어들로서 사용되기 이전의, 우리말로서의 "행동(行動)" 과 "행위(行爲)" 의 사전적 의미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1. 다음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행동(行動)" 이라는 단어에 대한 설명입니다: 출처: http://124.137.201.223/search/View.jsp 행동(行動) 「명사」
행동-하다(行動--)
「동사」
(이상, 발췌 끝)
1-2. 다음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행위(行爲)" 라는 단어에 대한 설명입니다: 출처: http://124.137.201.223/search/View.jsp (발췌 시작) 행위(行爲) 「명사」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1-2: (1) 위의 제1-1항과 제1-2항에 주어진 이들 두 단어들의 의미들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행위(行爲)" 는 "행동(行動)" 이나, 그러나 그 역은 성립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행위(行爲)" 라는 단어의 의미를 설명할 때에 "행동(行動)"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기에, "행동(行動)" 이라는 단어가 "행위(行爲)" 라는 단어보다 더 원초적 의미(primary meaning)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2)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행위(行爲)"라는 단어의 의미를 설명할 때에 "자유 의지(free will)" 에 대한 언급 없이, 단순히 "의지(will)"만을 언급하고 있는데, "의지(will)"의 개입과 "자유 의지(free will)"의 개입은 결코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행위(行爲)"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한 설명은 상당히 부족하다는 생각을 또한 하게 됩니다. [이상, 내용 추가 끝]
1-3. 이번 글에서는, 이번 글의 제목에서 말씀드린 차용(借用) 번역 용어들이 나타내는 의미(meaning)의 차이점, 그리고 이들 사이의 논리적 포함 관계 등에 대하여 함께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2. 2-1. 영어로 "action[행동/능동/주동(主動)/작용]"으로 번역되는 용어에 대한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설명은 다음의 글의 제1-4항에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56.htm
(중간 결론 1) 따라서, 일반적으로 "action(행동/주동(主動)/작용)" 아라는 용어 그 자체의 의미(meaning)/정의(definition)에는, 비록 행위자의 의지(will)는 그 원리(principle)(*)로서 개입되었으나, 그러나 한 인격(a person)의 어떤 윤리적 행동(a moral action)(**)과는 달리, 행위자의 자유 의지(free will)가 그 원리(principle)로서 개입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따라서 행동을 하는 자의 윤리(morality)가 그 원리(principle)로서 개입되지 않을 수도 있다.
[내용 추가 일자: 2014년 11월 24일] [이상, 내용 추가 끝]
(**) 게시자 주: "moral action(윤리적 행동)"이라는 용어는, 예를 들어, (i)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061항의 색인에서, Action/Acting(행동/행함) 이라는 소제목 아래에서 "moral action drawing its meaning from the Covenant: 2061 이라는 표현 중에서 사용되고 있고: http://www.vatican.va/archive/ccc_css/archive/catechism/index/a.htm
(ii) 그리고 또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대단히 중요한 내용의 1993년 회칙[제목: 진리의 광채(VERITATIS SPLENDOR) 제8항]에서 사용되고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vatican/hf_jp-ii_enc_06081993_vs_en.htm
참고 자료: https://www.google.co.kr/search?q=%22moral+action%22+site%3Avatican.va&hl= (이상, 중간 결론 2 끝)
2-1. Merriam-Webster Dictionary 에 주어진 act(행위)" 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은 다음의 글의 제1-1항에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56.htm <----- 필독 권고
(중간 결론 2) 따라서, 일반적으로 "act(행위, 行爲)"(*) 라는 용어 그 자체의 의미(meaning)/정의(definition)에는, 한 인격(a person)의 어떤 윤리적 행위(a moral act)(**)와는 달리, 비록 행위자의 자유 의지(free will)는 그 원리(principle)로서 개입되었으나, 그러나 행위자의 최종 운명(the final destiny) 쪽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도 있다, 즉, 행위자의 윤리(morality)는 그 원리(principle)로서 개입되지 않을 수도 있다.
[내용 추가 일자: 2014년 10월 31일] (*) 게시자 주: "행동(action)" 과 "행위(act)" 의 차이점, 즉 "행위(act)"의 정의(definition)는, 다음에 발췌된,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의 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Ia IIae, prologue(서언)에 주어져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83.htm <----- 필독 권고 [이상, 2014년 10월 31일자 내용 추가 끝]
(**) 게시자 주: "moral act(윤리적 행위)" 라는 용어는, 예를 들어, (i)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754항에서 사용되고 있고: http://www.vatican.va/archive/ccc_css/archive/catechism/p3s1c1a4.htm
(ii) 그리고 또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대단히 중요한 내용의 1993년 회칙[제목: 진리의 광채(VERITATIS SPLENDOR) 제49항]에서 사용되고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vatican/hf_jp-ii_enc_06081993_vs_en.htm
참고 자료: https://www.google.co.kr/search?q=%22moral+act%22+site%3Avatican.va&hl= (이상, 중간 결론 1 끝)
게시자 주 2-2: (1) 특히 스콜라 신학/철학에서 사용되고 있는 이 용어의 의미(meaning)/정의(definition)는 또한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에서도 사용되어 왔음에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2) 중국의 그리스도교(여기에는 가톨릭도 포함됨)에서는 영어로 "act" 로 번역되는 표현의 차용(借用) 번역 용어로서 "行爲(행위)"를 사용 중이고, 그리고 특히 "행위"라는 용어를 부정적 의미만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음은 다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www.chinacath.org/book/html/162/9581.html
2-3. "사람의 행위(act of man)" 라는 용어가 나타내는 개념과 동일하지 않은, "human act(인간의 행위)" 라는 용어가 나타내는 개념에 대한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설명은 [이미 위의 제1-1항에서 안내된] 다음의 글의 게시자 주 1-1, 제(3)항, (#1) 번역자 주에 있습니다. 특히 "human act(인간의 행위)" 라는 용어는 가톨릭 그리스도교 윤리 신학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용어이므로 필독을 권고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56.htm <----- 필독 권고
2-4. Merriam-Webster Dictionary에 주어진 "activity[활동]"이라는 단어에 대한 설명은 [이미 위의 제1-1항에서 안내된] 다음의 글의 제1-6항에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56.htm
(중간 결론 3) 따라서, 일반적으로 "activity(활동)" 이라는 용어 그 자체의 의미(meaning)/정의(definition)에는, 한 인격(a person)의 어떤 윤리적 활동(a moral activity)(*)과는 달리, 비록 행위자의 자유 의지(free will)는 그 원리(principle)로서 개입되었으나, 그러나 행위자의 최종 운명(the final destiny) 쪽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도 있다, 즉, 행위자의 윤리(morality)는 그 원리(principle)로서 개입되지 않을 수도 있다.
[내용 추가 일자: 2014년 11월 6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85.htm 혹은
"the second act(두 번째 행위)" 가 나타내는 개념에 대한 더 분명한 이해를 위하여, 다음에 있는, "potency(잠재력)", 즉, "potentiality(가능태)" 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에 주어진 예(examples)들을 또한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85_potency.htm 혹은 http://ch.catholic.or.kr/pundang/4/summa/glossary_potency.htm <----- 필독 권고 [이상, 내용 추가 끝]
(*) 게시자 주: "moral activity(윤리적 활동)"이라는 용어는, 예를 들어, (i)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813항에서 사용되고 있고: http://www.vatican.va/archive/ccc_css/archive/catechism/p3s1c1a7.htm
(ii) 그리고 또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과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스승으로 알려진 Hans Urs von Balthasar 추기경님에 의하여 마련된, 다음의 교황청 국제 신학 위원회(International Theological Commission) 문헌[제목: Theses in Christian Ethics] 중의 첫 논문 [제목: "Nine Theses in Christian Ethics(그리스도교 윤리에 있어 아홉 개의 주제들)"]의 입문 첫 문장에서 다음과 같이 사용되고 있다:
(발췌 시작) The Christian who lives by faith has the right to base his moral activity on his faith.
신앙(faith, 신덕)으로 살아가는(live by)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신앙(faith, 신덕)에 자신의 윤리적 활동(moral activity)의 기초를 둘 권리(right)를 가지고 있습니다.
-----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79.htm <----- 필독 권고 -----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참고 자료: https://www.google.co.kr/search?q=%22moral+activity%22+site%3Avatican.va&hl= (이상, 중간 결론 3 끝)
3. 3-1.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work(일)" 이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입니다. 첫 번째 문장의 이 용어의 정의(definition)입니다:
출처: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w/w057.htm (발췌 시작) WORK
Continued exertion directed to some recognized purpose or end. The exertion may be physical or mental, and the purpose may be determined by the one who works or by someone else, who in turn may have his or her own motive for assigning the task. Christianity does not look upon work as demeaning or evil, as though leisure were more worthy of human dignity. Work ennobles a person’s character and assimilates one to the Savior. “We believe by faith that through the homage of work offered to God man is associated with the redemptive work of Jesus Christ, whose labor with his hands at Nazareth greatly ennobled the dignity of work. This is the source of every man’s duty to work loyally, as well as his right to work; moreover, it is the duty of society to see to it that, according to the prevailing circumstances, all citizens have the opportunity of finding employment” (Second Vatican Council, Constitution on the Church in the Modern World, III, 67).
일/노동(勞動)(work)
어떠한 인지되는 목적(purpose) 혹은 끝(end, 최종 목표)을 향하게 되는 계속되는 노력(勞力, exertion, 표준국어대사전: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하여 애를 씀)을 말합니다.(*) 이 노력은 육체적/형이하학적이거나(physical) 혹은 정신적일(mental) 수도 있으며, 그리고 그 목적은 일/노동을 하는 당사자에 의하여 혹은, 이와는 달리(in turn), 이 임무를 할당함에 대한 자신 고유의 동기(motive)를 가질 수도 있는, 이외의 다른 이에 의하여 정해질(determined)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마치 자유 시간/여가(leisure)가 인간의 품위에 더 알맞은 것인 것처럼, 일/노동(work)을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demeaning)으로서 혹은 악(evil)으로서 내려다보지 않습니다. 일/노동(勞動, work)은 한 인격의 품성(character)을 고상하게 하고(ennobles) 그리하여 그를 구세주(the Savior)께로 동질화합니다(assimilates). "우리는 하느님께 봉헌되는 일/노동(勞動, work)이라는 헌상물(獻上物, homage)을 통하여 사람(man)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하는(redemptive) 일/노동(勞動, work)과 결합시켜짐을 신앙(faith, 신덕)에 의하여 믿는데(believe),(**) 나자렛(Nazareth)에서 당신의 손들로써 하셨던 당신의 근로/노고(labor)가 일/노동(勞動, work)의 품위를 커다랗게 고상하게 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모든 사람이, 일/노동할 당사자의 권리(right)뿐만이 아니라, 성실하게 일/노동하여야 하는 임무(duty)의 원천(source)이며, 그리하여 더욱이, 우세한 여건들에 따라, 모든 시민들이 고용의 기회를 가짐을 배려하는 것(see to)은 사회의 의무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Second Vatican Council), 현대 세계에 있어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Constitution on the Church in the Modern World), III, 67(우리말본 전문)].
----- (*) 번역자 주: 이러한 노력(勞力, exertion), 즉 일/노동(勞動, work)에는, 이성적 욕구(rational appetite)인, 당사자의 의지(will)가 개입하여 지속적으로 작용 중임에 주목하라.
(중간 결론 4) 비록 일/노동(勞動, work)에 당사자의 의지(will)가 개입하여 지속적으로 작용 중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일/노동(勞動, work)" 아라는 용어 그 자체의 의미(meaning)/정의(definition)에는, 한 인격(a person)의 윤리적 일/노동(moral works)들(#)과는 달리, 행위자의 최종 운명(the final destiny) 쪽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도 있다, 즉, 행위자의 윤리(morality)가 그 원리(principle)로서 개입되지 않을 수도 있다.
(#) 게시자 주: "moral works(윤리적 일/노동들)"이라는 용어는 (i) 예를 들어,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의 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IIa, IIae, q181, a2 영어본에서 사용되고 있다: http://www.newadvent.org/summa/3181.htm#article2 http://www.logicmuseum.com/authors/aquinas/summa/Summa-IIb-179-182.htm#q181a2ad1
(ii) 그리고 바로 위의 제3-1항에 발췌된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work"에 대한 설명 중에서 (**) 부분은, 믿음(faith, 신앙)에 기인하는/기초를 둔 윤리적으로 선한 일, 즉, 선행(morally good work), 즉, 1테살로니카 1,3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믿음(faith, 신앙)의 일/노동(work of faith)에 대한 설명이 분명하다.
(iii) 그리고 바로 아래의 제3-2항에 발췌된, Dictionary of the Liturgy (New York, 1989) (원저자: Jovian Peter Lang)을 우리말로 번역한, "전례 사전"(주비언 피터 랑 지음, 박요한 영식신부 옮김, 출판사: 가톨릭출판사)에 주어진 "노동(勞動, work)"에 대한 설명에서, 가톨릭 그리스도교 전례(Liturgy)가 믿음(faith, 신앙)에 기인하는/기초를 둔 윤리적으로 선한 일, 즉, 선행(morally good works)들, 즉, 믿음(faith, 신앙)의 일/노동(works of faith)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윤리적으로 선한 일/노동, 즉, 선행(the most important morally good work)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vi) 성 바오로(St. Paul)의 서간들 중에서 이러한 삶을 살았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칭찬은, 예를 들어, 1테살로니카 제1장에 잘 기록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가톨릭 그리스도교 전례(Liturgy)를 당연히 포함하고 있는, 이들 테살로니카 그리스도인들의 믿음(faith, 신앙)에 기인하는/기초를 둔 윤리적으로 선한 일, 즉, 선행(morally good work), 즉, 믿음(faith, 신앙)의 일/노동(work of faith)에 대하여서는, 이 글을 작성하게 된 주된 동기인, 다음의 글[제목: 믿음의 일/노동(work), 사랑의 노고, 그리고 희망의 인내 - 1테살로니카 1,3]을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79.htm <----- 필독 권고 (이상, 중간 결론 4 끝) -----
3-2. 다음은, Dictionary of the Liturgy (New York, 1989) (원저자: Jovian Peter Lang)을 우리말로 번역한, "전례 사전"(주비언 피터 랑 지음, 박요한 영식신부 옮김, 출판사: 가톨릭출판사)에 주어진 "노동(work)"에 대한 설명입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도와드리고자 굵게 표시하고 색칠을 한 것, 그리고 [ ] 안에 추가한 것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한 것입니다. 특히 아래의 발췌문에서 차용(借用) 번역 용어인 "일" 이란, "사정(事情)" 도 아니고, "관심사(關心事)"도 아니고, 바로 위의 제3-2항에 정의된(defined) "일/노동(勞動, work)"을 말합니다:
츨처: http://info.catholic.or.kr/dictionary/view.asp?ctxtIdNum=6785 (발췌 시작)
어떤 것을 행하거나 수행하기 위하여 힘이나 기관을 이용하는 사람의 활동을 가리킨다. 구약성서에서 하느님의 노동은 창조[creation](시편 104편)와 그분의 계시[revelation]이다. 계시란 모든 거룩한 역사에서 드러나는 그분의 계약과 창조주의 능동적 현존[active presence]을 뜻한다. 신약성서에서 노동 또는 일[work]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의 사명을 증언하는(요한 5,36; 10,25; 14,11; 15,24; 로마 14,20) 그분의 일[work]과 구원 행위들을 가리킨다(마태 11,2-19).
전례(liturgy)라는 단어는 노동(ergon)[work]과 백성(laos)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다. 그러므로 전례는 ‘백성의 노동 / 일[work]’을 뜻하며 특히 하느님 백성의 일[work]을 가리킨다. 전례는 그리스도인들이 완성할 수 있고 또 다른 모든 좋은 일[good works]로 이끌어 주는 가장 중요한 ‘좋은 일’, 곧 선행(good work)이다.
전통적으로 시간전례[Liturgy of Hours, 즉, Divine Office(성무일도)]는 ‘하느님의 일’[오푸스 데이]로 불렸다. 선행(善行 Good Works), 오푸스 데이(Opus Dei), 전례(典禮 Liturgy) 참조. (이상, 발췌 끝)
3-3. 그리고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선행(good works)" 에 대한 설명 등은 다음의 글 중에 안내되어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44.htm <----- 필독 권고
4. 4-1.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의 Summa Contra Gentiles, Book 2, Chapter 6. THAT IT IS PROPER TO GOD TO BE THE SOURCE OF THE BEING OF OTHER THINGS, [7] 에는 다음과 같은 언급이 있습니다:
출처: http://dhspriory.org/thomas/ContraGentiles2.htm (발췌 시작)
그러나 행위(act)는 행동(action)의 원리입니다.(*)
----- (*) 번역자 주: (1) 바로 이 문장의 서술부에서 "행동/능동/주동(action)" 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다음의 글의 게시자 주 1-1을 잘 읽어보면, "행동/능동(action)들" 로 구성된 한 개의 집합(a set) 안에 "행위(act)" 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는 생각이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56.htm
즉, 다음을 알 수 있다는 생각이다:
행동/능동(能動)/주동(主動)(actions)들 중에서만 오로지 행위(act)가 있을 수 있다.
즉, 용어 사전 등에서 "act(행위, actus)" 라는 용어를 설명하는 서술부에서 "action(행동/능동)" 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으므로, "행동/능동(action)"이 나타내는 개념이 "행위(act)"가 나타내는 개념보다 더 원초적(原初的) 개념임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에 의하여 사용되어 온 아홉 개의, 부수적인(accidental), 최고의 류(類)(supreme genera)들 중에는 "action(행동/능동)" 이 있지, "act(행위)"가 있지 않음으로부터도(#7) 그리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 (#7) 게시자 주: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글에 있다:
[내용 추가 일자: 2014년 10월 31일] (2) "행동(action)" 과 "행위(act)" 의 차이점에 대한 정의(definition)는, 다음에 발췌된,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의 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Ia IIae, prologue(서언)에 주어져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83.htm <----- 필독 권고 [이상, 내용 추가 끝]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4-2.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의 Questiones Disputatae de Veritate, 24. Free Choice, Article 1. Answers to Difficulties 에는 다음과 같은 언급이 있습니다:
http://dhspriory.org/thomas/english/QDdeVer24.htm (발췌 시작)
1. 사람의 활동(activity)에 있어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요소들이 발견될 것입니다: (1) 행동(action)의 한 과정(a course)의 선택, 그리고 이 선택은 한 사람의 힘(power) 안에 있으며, 그리고 (2) 행동의 이 선택된 과정의 수행 혹은 실행, 그리고 이 수행 혹은 실행은 한 사람의 힘 안쪽에 항상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섭리의 인도 아래에서 이 과제(the project)가 어떤 때에는 완성(completion)에 이르게 되고, 어떤 때에는 그렇지 않게 됩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중간 결론 5) 행동/능동(能動)/주동(主動)(actions)들 중에서만 오로지 행위(act)가 있을 수 있고,
행위act)들 중에서만 오로지 활동(activity)이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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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moral) [인간의(human)] 행위(acts)들 중에서만 오로지 윤리적(moral) 활동(activity)이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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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은총(恩寵, grace)[즉, 우의적(友誼的) 도움]이라는 도움 덕택으로 선한, 인간의, 행위(human acts that are good)들, 즉, 선한, 윤리적, 행위(moral acts that are good)들(*), 즉, 선행(good works, opera bona)들을 하는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선한, 윤리적 활동(moral activity that is good)을 하는 자가 있을 수 있다.
특히, 은총의 지위에서 하느님의 은총(恩寵, grace)[즉, 우의적(友誼的) 도움]에 화답하는[즉, 은총의 품격에 적정한] 선행(good works, opera bona)들은 적정 공로(適正功勞, condign merit)라고 불린다.(**)
----- (*) 게시자 주: (1) 선한, 인간의, 행위(human acts that are good)들, 즉, 선한, 윤리적, 행위(moral acts that are good)들, 즉, 선행(good works, opera bona)들에는, 소위 말하는, 다음의 행위들이 당연히 포함된다:
(i) 신덕의 행위(act of faith)[여기에는 신덕송(信德誦)이 포함됨], (ii) 망덕의 행위(act of hope)[여기에는 망덕송(望德誦)이 포함됨], 그리고 (iii) 애덕의 행위(act of charity)[여기에는 애덕송(愛德誦)이 포함됨].
(2) 그리고 이들 향주삼덕(the three theological virtues)들의 행위(acts)들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다음의 글에 안내되어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59.htm <----- 필독 권고
(**) 게시자 주: "적정 공로(適正功勞, condign merit)"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다음의 글에 안내되어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09.htm <----- 필독 권고 -----
5. 그리고 이 글에 이어지는 글[제목: 행(行)하다do 와 실천(實踐)하다practice의 차이점 외]은 다음에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86.htm <----- 필독 권고
---------- 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현재까지 약32시간 (자료 조사 및 분석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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