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새 번역 성경 신약 중의 번역 용어 신심(信心)에 대하여 [번역오류] 1444_piety 1619_devotions 1293_evangelize

인쇄

제일먼저읽으십시오 [218.55.90.*]

2015-03-29 ㅣ No.1624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내용 추가 일자: 2015년 4월 29일]

게시자 주: 아래의 본글은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제목: 복음화/토착화를 위한 한 개의 필요 조건인 popular piety의 보급 및 실천의 활성화]에 이어지는 글이기도 합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22.htm <----- 필독 권고

[이상, 2015년 4월 29일자 내용 추가 끝]

 

당부의 말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글들은 어떤 특정인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하여 마련된 글들이 결코 아니기에, 다음의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1) 지금까지 필자의 글들을 읽고서 필자에 대한 "분노(anger)" 혹은 "질투(envy)"를 가지게 된 분들은, 혹시라도 그분들께 "걸림돌(stumbling block)"일 수도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의 글들을 더 이상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2) 그리고 위의 제(1)항의 당부의 말씀을 읽고도 굳이 이 화면의 아래로 스스로 이동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의 아래의 본글을 읽는 분들은, 필자에 대한 "분노(anger)"와 "질투(envy)" 둘 다를 가지지 않을 것임에 동의함을 필자와 다른 분들께 이미 밝힌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3) 그리 길지 않은 인생 여정에 있어, 누구에게나, 결국에,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귐 (출처: 표준국어대사전)]"이 유의미할 것이라는 생각에 드리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 찬미 예수님!

 

 

 

[내용 추가 일자: 2015년 4월 29일]

게시자 주: 아래의 본글은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제목: 복음화/토착화를 위한 한 개의 필요 조건인 popular piety의 보급 및 실천의 활성화]에 이어지는 글이기도 합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22.htm <----- 필독 권고

[이상, 2015년 4월 29일자 내용 추가 끝]

 

질문 1: 성경을 읽다 보면, "신심" 이라는 차용(借用) 번역 용어를 가끔 만나게 되는데, 이 차용(借用) 번역 용어의 의미가 무엇인지요? 다음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설명들 중의 하나로 그 의미를 이해하면 되는 것인지요?:

 

출처: http://124.137.201.223/main.jsp

(발췌 시작)

신심(信心)

 

명사
  • 「1」어떤 것을 옳다고 굳게 믿는 마음.
    우리나라 부모들은 유난히 자식에 대한 신심이 두텁다.
  • 「2」종교를 믿는 마음.
    기독교인들은 구원에 대한 확고한 신심을 갖고 있다./남원에 사는 길 서방, 그는 불교에 귀의한 지 오래였고 신심도 매우 깊었다.≪박경리, 토지≫

-----

 

질문 1에 대한 간략한 답변: 위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신심(信心)" 이라는 우리말 단어에 대한 첫 번째 설명은 개인적 믿음(belief, 신념)을 말한다는 생각이고, 그리고 두 번째 설명은, 소위 말하는, 믿음(faith, 신앙)을 말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1티모테오 6,11"새 번역 성경" 에서 다음과 같이 번역된 것으로부터 우리는 "새 번역 성경"의 용어로서 선택된 차용(借用) 번역 용어 "신심(信心)" 이, 영어로 "faith" 혹은 "belief" 로 번역되는, "믿음" 을 말하지 않음을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bible/bbl_read_sori.asp?gubun=new2&code=161&JangNo=6

(발췌 시작)

["새 번역 성경"1티모테오 6,11]
하느님의 사람이여, 그대는 이러한 것들을 피하십시오. 그 대신에 의로움과 신심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십시오.

(이상, 발췌 끝)

 

따라서,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설명에만 오로지 근거하면서 번역서인 우리말본 성경 본문을 읽고서 그 내용을 올바르게 혹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지요?

[이상, 질문 1에 대한 간략한 답변 끝]

 

1. 들어가면서 

1-1. 우리말본 성경이 번역서이므로, 우리말본 성경 본문에서 사용된 명사, 형용사 등의 우리말 단어들은 모두가 차용(借用) 번역 용어들임을, 우리말을 모국어로 사용하는 분들 모두가, 우선적으로, 인정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예를 들어, 우리말본 성경 본문에 있는 "신심(信心)" 등과 같은 특정 차용(借用) 번역 용어의 의미가 과연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우리말 단어 "신심(信心)"의 의미와 동일한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하여, (i) 대응하는 히브리어 단어의 어원(히브리어 구약 성경의 경우) 혹은 대응하는 그리스어 단어의 어원(신약 성경의 경우), 그리고 (ii) 다른 지역 언어본들에서의 대응하는 번역 용어들과 정밀하게 비교/검토를 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iii) 가톨릭 보편 교회의 문헌들에서 해당 성경 구절을 어떠한 문맥 안에서 인용하고 있는지도, 만약에 그러한 경우들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용례 분석을 또한 진행하여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 본문에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들의 자구적 어의/의미(literal sense)가, 특정 지역의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설사 부지불식간에 우발적으로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잘못 전달되어 그리하여 전와(轉訛, 어떤 말이 본래의 뜻과 달리 전해져 그릇되게 굳어짐[표준국어대사전].)되어서는 결코 아니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에, 주신 질문은 상당히 유의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1-2. 바로 위의 제1-1항에서의 지적과 관련하여서는, 가톨릭 보편 교회가 이미 수용한,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의 다음의 글[제목: 성경 본문의 무오성(inerrancy)에 대한 성 아우구스티노의 입장]에 있으니 꼭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79.htm <----- 필독 권고

 

1-3. 다음은 ;굿뉴스 서버 제공의 우리말본 신약 성경들의 본문에 대한 검색 결과들입니다"

 

1-3-1. 1970년대에 초판 발행된 "공동번역 성서"신약 본문에는 "신심" 이라는 차용(借用) 번역 용어가 사용되지 않았음은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info.catholic.or.kr/bible/view.asp?ctindex=new&prindex=0&Keyword=신심 <--- 꼭 클릭하여 직접 확인 하십시오

 

1-3-2. 2000년경에 초판 발행된 "200주년 기념 신약 성서"의 본문에도 또한 "신심" 이라는 차용(借用) 번역 용어가 사용되지 않았음은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info.catholic.or.kr/bible/view.asp?ctindex=200new&prindex=0&Keyword=신심 <--- 꼭 클릭하여 직접 확인 하십시오

 

1-3-3. 그러나, 2005년에 초판 발행된 "새 번역 성경"신약 본문에서 "신심" 이라는 차용(借用) 번역 용어가 사용된 절들은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info.catholic.or.kr/bible/view.asp?ctindex=new2&prindex=0&Keyword=신심 <--- 꼭 클릭하여 직접 확인 하십시오

 

1-3-4. (번역 오류) 따라서, 바로 위의 검색 결과들로부터 우리는, "새 번역 성경"의 신약 네 복음서들의 본문에서는 "신심" 이라는 차용(借用) 번역 용어가 사용되지 않았고, "사도 행전"에서부터 2베드로서에 이르기까지 총 19개의 절들에서, 특히 1티모테오서에서 집중적으로, 이 차용(借用) 번역 용어가 갑자기 등장함을 알 수 있는데, 그러나,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대충 확인한 바에 의하면,

 

(i) 콜로새서 2,23, 야고보서 1,26; 1,27 이렇게 새 개의 절들에서의 "신심" 이라는 차용(借用) 번역 용어에 대응하는 그리스어 용어의 어원과

(ii) 나머지 19 -3 = 16 개의 절들에서의 "신심" 이라는 차용(借用) 번역 용어에 대응하는 그리스어 용어의 어원이

 

명백하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차용(借用) 번역 용어 "신심" 을 획일적으로 사용한 것은, 이  차용(借用) 번역 용어가 원 용어의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를 최대한 잘 전달하기 위하여 적절하게 선택되었는지의 여부와 무관하게, 우리말로의 전달 과정 그 자체에서 개념 축소/혼돈 등의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에, 번역 오류라 아니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지금 지적한 바에 대하여, 이어지는 항들에서 이들에 대하여 더 자세하게 함께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1-3-5. 다음은 "새 번역 성경"의 신약 본문 중에서 "신심" 이라는 차용(借用) 번역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 절들의 나열입니다. 괄호 안에, "새 번역 성경" 본문에서의 기종의 차용(借用) 번역 용어 다음에, (i) 그리스어 어원을, 그리고 (ii)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중국어본 성경 본문에서의 대응하는 한자 단어를 또한 삽입하였습니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bible/view.asp?ctindex=new2&prindex=0&Keyword=신심

 

사도행전 3,12 [신심, eusebeia熱心 

사도행전 10,2 [신심이 깊은, euseb?s, 虔誠(건성, 경건한 정성) ($1)

사도행전 10,7 [신심이 깊은, euseb?, 虔誠 ($1)

 

-----

($1) 게시자 주: (번역 오류) 사도행전 10,2.7 에서 "신심이 깊은" 으로 번역된 것이 번역 오류인 것은, 아래의 제2-6항에 있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1981년 교리 교육용 일반 알현 강론 말씀에 대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각주 (1) 및 이 각주에 대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각주 (#2)를 읽도록 하라. "신심이 깊은" 대신에,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중국어본 성경에서처럼, "건성(경건한 정성)을 다하는" 으로 번역되는 것이, 전후 문맥 안에서 훨씬 더 정확한 번역일 것이다.

-----

 

콜로새서 2,23 [자발적인 신심, ethelothr?skia, 私意的敬禮 ($2)

 

-----

($2) 게시자 주: (번역 오류) 바로 위의 제1-3-4항에서 이미 지적하였듯이, 콜로새서 2,23 에서 "자발적인 신심" 으로 번역된 표현은, 이 번역 표현에서의 "신심"에 대응하는 그리스어의 어원이 eusebeia 와 확실하게 다르므로, 명백한 번역 오류라 아니할 수 없다. 자발적인 신심 대신에, 위의의 빨간색 글자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그리스어 어원에 충실한, 공동번역성서에서의 기존의 번역 표현인 "제멋대로의 예배" 가 더 나은 번역 표현일 것이고, 그리고, 더 나아가, 동일한 그리스어 어원 "religion(경신, 敬)" 이 사용되고 있는 야고보서 1,27에 대한 바로 아래의 ($3) 게시자 주에 발췌된 "주석 성경" 의 주석에 따라, 그리고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중국어본 성경 본문을 또한 참조하여, 콜로새서 2,23 에서, "자발적인 신심" 대신에"제멋대로의 경례(경건한 예절)" 로 번역하는 것이, 전후의 문맥 안에서 그리스어 어원에 훨씬 더 충실한 차용(借用) 번역 표현이라는 생각이다.

-----

 

1티모테오 2,2 [신심 깊고, eusebeia, 虔敬(건경, 경건한 공경)

1티모테오 4,7 [신심이 깊어지도록, eusebeian, 虔敬

1티모테오 4,8 [신심, eusebeia, 虔敬

1티모테오 6,3 [신심, eusebeian, 虔敬

1티모테오 6,5 [신심, eusebeian, 虔敬

1티모테오 6,6 [신심, eusebeia, 虔敬

1티모테오 6,11 [신심, eusebeian, 虔敬

2티모테오 3,5 [신심(2번), eusebeias, 虔敬

 

야고보서 1,26 [신심이 깊다, 신심, thr?skos, thr?skeia, 虔誠(건성, 경건한 정성, 2번) ($3)

야고보서 1,27 [신심, thr?skeia, 虔誠 ($3)

 

-----

($3) 게시자 주:

($3-1) (번역 오류) 위의 제1-3-4항에서 이미 지적하였듯이, 야고보서 1,26; 1,27 에서 "신심이 깊다", "신심" 으로 번역된 표현은, 바로 위의 빨간색 글자를 클릭하면 직접 확인할 수 있듯이 그리스어 어원은 영어로 "religion(경신, )" 에 대응하기에, 이 번역 표현에서의 "신심"에 대응하는 그리스어의 어원이 eusebeia(즉, pietas, piety) 와 확실하게 다르므로, 명백한 번역 오류라 아니할 수 없다. 다음은 야고보서 1,27에 대한 "주석 성경"의 주석 전문인데, 이 주석에서, 경신(敬, religion)/경신덕(the virtue of religion, 敬)의 지극한 공적 표출인 "경신례" 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으므로, 그리고 또한 야고보서 1,27을 인용하고 있는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208항에서 "religion" 으로 번역되고 있으므로, (i) 야고보서 1,26에서, "신심이 깊다" 대신에, "경신을 잘 실천한다" 로 번역하는 것이, 그리고 (ii) 야고보서 1,27에서, "신심" 대신에, "경신" 으로 번역하는 것이, 전후의 문맥 안에서 그리스어 어원(religion, 경신, )에 훨씬 더 충실한 차용(借用) 번역 표현이라는 생각이다:

 

(발췌 시작)

필자도 예언자들의 전통에 따라, 참된 경신례와 약자들을 위한 "의로움" 이 별개의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이사 1,11-17.23; 예레 5,28; ㅇ[ㅈ[ 22,7; 즈카 7,10 참조). 경신례에서 요구하는 깨끗함은 결국 사랑의 순수성을 뜻한다(4,8; 마르코 7,1-25 참조).

(이상, 발췌 끝)

 

($3-2) 바로 위의 제($3-1)항에 권고된 차용(借用) 번역 용어의 선택을 지지하는, 야고보서 1,27; 1,27에서 사용되고 있는 그리스어 단어가 나타내는 개념과 그리스어 단어 eusebia 가 나타내는 개념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하여 그 차이점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다음에 있는 글의 제2-2항에 발췌된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의 저술인 "하느님의 도성(De Civitate Dei, City of God)", Book X, Chapter 1의 세 번째 단락을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22.htm <----- 필독 권고

-----

 

2베드로서 1,3 [신심, eusebeian, 虔敬(건경, 경건한 공경)

2베드로서 1,6 [신심, eusebeian, 虔敬

2베드로서 1,7 [신심, eusebeia, 虔敬

2베드로서 2,9 [신심 깊은 이들, eusebeis, 虔誠的

2베드로서 3,11 [신심, eusebeiais, 虔敬

 

1-3-6. 역으로(conversely), 이번 항에서는 라틴어 성경 용어 "piety" 에 대응하는 신약 성경의 그리스어 성경 용어 "eusebia"그 파생어들"새 번역 성경" 의 신약 본문에서 어떻게 번역이 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위의 제1-3-5항에서 파악한 바에서 누락된 경우에 한하여, 괄호 안에, "새 번역 성경" 본문에서의 기종의 차용(借用) 번역 용어 다음에,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중국어본 성경 본문에서의 대응하는 한자 단어를 또한 삽입하였습니다

 

출처 1: http://biblehub.com/greek/2150.htm

eusebeia 의 경우:

사도행전 3,12 [신심]

1티모테오 2,2 [신심 깊고]

1티모테오 3,16 [신앙의 신비, 虔敬的奧蹟](*1)

1티모테오 4,7 [신심이 깊어지도록]

1티모테오 4,8 [신심]

1티모테오 6,3 [신심]

1티모테오 6,5 [신심]

1티모테오 6,6 [신심]

1티모테오 6,11 [신심]

2티모테오 3,5 [신심(2번)]

 

-----

(*1) 게시자 주: 영어로 "the mystery of piety" 로 번역되는 표현이 "새 번역 성경" 1티모테오 3,16에서, 예를 들어,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중국어본 성경에서처럼 "건경(虔敬)의 신비" 대신에, "신앙의 신비" 로 번역된 것이 중대한 번역 오류임에 대하여서는, 아래의 제2-7항에 발췌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가르침을 꼭 읽도록 하라.

 

"신앙(faith, 믿음)"향주삼덕들 중의 하나인 한 개의 초자연덕(a supernatural virtue)이나, 그러나 "piety[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는, 사추덕(the four cardinal virtues)들 중의 하나인, "정의(justice)"에 부속되는 한 개의 윤리덕(a moral virtue)이므로 한 개의 자연덕(a natural virtue)임에도 불구하고, 영어로 "the mystery of piety" 로 번역되는 표현이 "새 번역 성경" 1티모테오 3,16에서 "신앙의 신비" 로 번역된 것은 중대한 번역 오류라 아니할 수 없다.

-----

 

티토 1,1 [신앙, 虔敬](*2)

-----

(*2) 게시자 주: 위의 게시자 주 (*1) 을 읽도록 하라.

-----

 

2베드로 1,3 [신심]

2베드로 1,6 [신심]

2베드로 1,7 [신심]

2베드로 3,11 [신심]

 

출처 2: http://biblehub.com/greek/2151.htm

eusebeó 의 경우:

사도행전 17,23 [숭배, 敬拜]

 

1티모테오 5,4 [헌신, 孝敬]

 

출처 3: http://biblehub.com/greek/2152.htm

eusebés 의 경우:

사도행전 10,2 [신심이 깊은]

사도행전 10,7 [신심이 깊은]

 

2베드로 2,9 [신심 깊은 이들]

 

출처 3: http://biblehub.com/greek/2153.htm

eusebós 의 경우:

2티모테오 3,12 [경건하게 살려는, 熱心生活的(열심히 생활하려는)]

티토 2,12 [경건하게 살려는, 虔敬的生活]

(이상, 질문 1에 대한 답변 끝)

 

2.

이번 항에서는, 본글의 두 번째 주제로서,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에 이어지는 글[제목: 복음화/토착화를 위한 한 개의 필요 조건인 popular piety[민간의,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충실]의 보급 및 실천의 활성화]로서, "pietas(piety)" 라는 용어의 어원에 대하여 함께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22.htm <----- 필독 권고

 

특히 이 용어의 어원에 대한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의 중요한 서술을 고찰하는, 바로 위주소에 있는 글을 꼭 먼저 읽으실 것을 권고드립니다.

 

2-1.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의 저술인 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IIa IIae, q80. The potential parts of Justice(정의의 가능태적 부분들) 는 다음에 있으니 꼭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25.htm <----- 필독 권고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 윤리 신학 분야에서, 윤리덕(moral virtues)들의 주된 덕들인 사추덕(the four cardinal virtues)들 중의 하나인 정의(justice)와 연결된 덕(virtues)들, 즉, 정의(justice)의 특성(character)을 함께 나누나(share), 그러나 모든 면들에 있어 정의(justice)와 완미하게 합치하지(conform) 않는 덕들로 정의되는(is defined) 정의(justice)의 가능태적 부분(potential parts)들이, 적어도, 댜음과 같이 구분되어 서술되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경신덕(religion),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 준수(observance) [즉, 당연한(due) 영예와 경의(敬意)를 표하는 행위], 감사(gratitude), 되돌려 줌(revenge) [악한 보복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보상/배상(a compensation)], 진리(truth), 우의(友誼, friendship), 관대함(liberality), 그리고 epikeia  혹은 공평(equity).

 

2-2.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의 저술인 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IIa IIae, q81. Religion(경신덕) 는 다음에 있으니 꼭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337.htm <----- 필독 권고

 

2-3.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의 저술인 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IIa IIae, q121. Piety[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 는 다음에 있으니 꼭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50.htm <----- 필독 권고

 

2-4.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의 저술인 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IIa IIae, q121. Piety as a Gift([성령의] 한 개의 선물로서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 는 다음에 있으니 꼭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50.htm <----- 필독 권고

 

2-5.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의 저술인 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IIa IIae, q122, a6. Whether the other six precepts of the decalogue are fittingly expressed?(십계명의 다른 여섯 개의 규범들이 적절하게 표현되었는지?) 에서 발췌한 문장은 다음에 있으니 꼭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19_summa_IIa_IIae_q122_a6.htm  <----- 필독 권고

 

2-6. 다음은 토미스트(Thomist)인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1981년 3월 18일자 교리 교육용 일반 얄현 강론 말씀[제목: The Pauline doctrine of purity as “life according to the Spirit”]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이 글의 각주 (1)에서, 성령칠은(seven gifts of the Holy Spirit)들 중의 하나인 "piety" 로 불리는 은총의 자구적 어의/의미(literal sense)에 대하여 대단히 유익한 가르침을 주고 계십니다:

 

출처 1: http://w2.vatican.va/content/john-paul-ii/it/audiences/1981/documents/
hf_jp-ii_aud_19810318.html
 [이탈리아어본]

출처 2: http://www.miraclerosarymission.org/ga81mar23.html [영어본]

출처 3: https://www.ewtn.com/library/PAPALDOC/jp2tb56.htm [영어본]

(출처 3에서 발췌 시작) 

Piety serves purity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충실(piety)[이라는 은총]은 순결/정결/정조(purity)에 도움이 됩니다 

 

2. However, we would not completely discover the riches of the thought contained in the Pauline texts, if we did not note that the mystery of redemption bears fruit in man also in a charismatic way. The Holy Spirit who, according to the Apostle's words, enters the human body as his own "temple", dwells there and operates together with his spiritual gifts. Among these gifts, known in the history of spirituality as the seven gifts of the Holy Spirit (cf. Is 11:2 according to the Septuagint and the Vulgate), the one most congenial to the virtue of purity seems to be the gift of "piety" (eusebeia, donum pietatis) (1). If purity prepares man to "control his own body in holiness and honour", as we read in the First Letter to the Thessalonians (4:3-5), piety, which is a gift of the Holy Spirit, seems to serve purity in a particular way, making the human subject sensitive to that dignity which is characteristic of the human body by virtue of the mystery of creation and redemption. Thanks to the gift of piety, Paul's words: "Do you not know that your body is a temple of the Holy Spirit within you... You are not your own" (1 Cor 6:19), acquire the eloquence of an experience of the nuptial meaning of the body and of the freedom of the gift connected with it, in which the profound aspect of purity and its organic link with love is revealed.

 

2. 그러나, 만약에 속량 신비(the mystery of redemption)가 사람(man) 안에서 그리고 또한 어떤 은사적(charismatic) 방식으로 열매를 맺는 것을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바오로의 본문(Pauline texts)들에 포함되어 있는 사고(thought)의 풍부함을 완전하게 발견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이 사도의 표현들에 따르면, 당신 고유의 "성전(temple)" 으로서 인간의 몸에 들어오시는 성령께서 거기에 거주하시고 그리고 당신의 영의 선물(spiritual gifts)들과 함께 작용하십니다(opeates). 영성의 역사(the history of spirituality)에 있어 성령의 일곱 선물들로서 알려진 이들 선물들 중에서(그리스어본 칠십인역 구약 성경대중 라틴말 성경에 따른 이사야서 11,2 참조), 순결/정결/정조의 덕(the virtue of purity)에 가장 알맞은(congenial) 한 개는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 이라는 선물(eusebeia, donum pietatis)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1) 만약에, 테살로니아인들에게 보낸 첫 번째 서신(1테살로니카 4,3-5)에서 우리가 읽듯이,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충실(piety)이 사람으로 하여금 "거룩함(holiness)과 영예(honour) 안에서 자신 고유의 몸을 통제하도록(control)" 준비하게 한다면, 성령의 한 개의 선물인,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은 어떤 구체적인 방식으로, 창조 및 속량 신비(the mystery of creation and redemption)의 덕분으로 인간의 주체(the human subject)로 하여금 인간의 몸(the human body)의 특징인 바로 그 품위/존엄성(dignity)에 민감하게 만듦으로써, 순결/정결/정조(purity)에 도움이 될(serve)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이라는 선물 덕택으로,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 ...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님을 모릅니까?" (1코린토 6,19) 라는 바오로의 표현은, 몸의 혼인 의미(the nuptial meaning of the body)에 기인하는 그리고 이 의미와 연결된(connected) 이 선물에 기인하는 자유로움(freedom)이라는 한 개의 경험의 감동시키는 힘(eloquence)을 획득하는데, 바로 이 자유로움 안에서 순결/정결/정조(purity)의 깊은 양상이 그리고 사랑(love)과 이 양상의 유기적인 연결(organic link)이 하느님의 감화(感化)(divine inspiration)에 의하여 알려지게 됩니다(is manifested).

 

-----

1) In the Greco-Roman period eusebeia or pietas generally referred to the veneration of the gods (as "devotion"), but it still kept its broader original meaning of respect for vital structures.

 

그리스-로마 시대에 [그리스어 단어] eusebeia 혹은 [라틴어 단어] pietas 는, 일반적으로, [[바깥으로 표출되는] "경례(devotion)"로서] 잡신(gods)들에 대한경(veneration)에 대한 언급이었으나, 그러나 이 단어는 생명의 유지에 필요한 조직/체제(vital structures)들에 대한 존경(respect)이라는 이 단어의 더 폭넓은 본래의 의미(original meaning)를 여전히 지니고 있었습니다.

 

Eusebeia defined the mutual behaviour of relatives, relations between husband and wife, and also the attitude due by the legions towards Caesar or by slaves to their masters.

 

[리스어 단어] eusebeia 는, 친척들의 상호 품행(mutual behaviour)을, 남편과 아내 사이의 관계(relations)들을, 그리고 또한 로마 황제(Caesar)를 향하여 로마 군단(leigions)에 의한 혹은 자신들의 주인들 쪽으로 노예들에 의한, 당연한 태도(due attitude)를 정의하였습니다(defined).(#1)

 

-----

(#1) 번역자 주: 몇 년 전에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는, 리스어 단어 eusebeia 에 대응하는 라틴어 단어인 "pietas" [대응하는 영어 단어는 "piety"]의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가 두 인격(two persons)들 사이에 어떤 관계(a relationship)가 형성되면 자동으로 발생하게 되는 한 개의 윤리덕(a moral virtue)인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 을 말함을, 필자 나름대로의 노력 끝에, 회복/복원하였는데,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글들에 있으니 아래에 나열된 순서대로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44.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49.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19.htm [제4-2항]  <----- 필독 권고

-----

 

In the New Testament, only the later writings apply eusebeia to Christians; in the older writings this term characterizes "good pagans” (Acts 10:2, 7; 17:23).

 

신약 성경에서, 오로지 더 늦은 시기에 대한 저술(the later writings)들만이 eusebeia 를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하며(apply), 그리고 더 옛날인 시기에 대한 저술(the older writings)들에서 이 용어는 "선한 다신교도들(good pagans)" 의 특성을 기술합니다(characterizes)(사도행전 10,2.7; 17,23).(#2)

 

-----

(#2) 번역자 주: (번역 오류) 따라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바로 이 주석이, "새 번역 성경"사도행전 10,2; 10,7 에서 "신심" 으로 차용(借用) 번역된 표현이 번역 오류임을 또한 지적하고 있음에 주목하라.

-----

 

And so the Greek eusebeia, as also the donum pietatis, while they certainly refer to divine veneration, have a wide basis in the connotation of interpersonal relations (cf. W. Foerster, art. eusebeia, in: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ed. G. Kittel-G. Bromiley, vol. VII, Grand Rapids 1971, Eerdmans, pp. 177-182).

 

그 때문에(and so), eusebeia 라는 리스 단어(the Greek)는, 또한 piety 라는 선물(the donum pietatis)로서 그들이 하느님에 대한 공경(divine veneration)에 대하여 확실하게 언급함과 동시에(while), 대인 관계(interpersonal relations)들이라는 함축(connotation) 안에 있는 한 개의 폭이 넓은 기초(a wide basis)를 가지고 있습니다(#3) [W. Foerster, art. eusebeia, in: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ed. G. Kittel-G. Bromiley, vol. VII, Grand Rapids 1971, Eerdmans, pp. 177-182 을 참조하라].

 

-----

(#3) 번역자 주:  바로 이 기초를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는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 이라는 용어로써 나타내고 있다.

-----

-----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 2-6: (본 글의 또하나의 결론) 성 요한 바오로 2세(St. John Paul II) 교황님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가 자신의 저술인 신학 대전(Summa Theologica)에서 가르치는 바는 다음의 같이 요약될 수 있을 것입니다:

 

(i)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아브람(Abram)에게 당신 자신들 드러내시기 전인 다신교 시절부터, "piety[pitas, eusebeia, 즉,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 이라는, 정의(justice)에 부속되는 한 개의 윤리덕(a moral virtue)이, 인격(persons)들 사이의 관계에 있어 기초를 이루는 한 개의 자연덕(a natural virtue)(#1)으로서, 이미 인류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

 

-----

(#1) 게시자 주: "자연덕(natural virtue)"이라는 용어가 나타내는 개념의 정의(definition)는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27.htm

-----

 

(ii) 이 윤리덕을 실천하여야 하는 주체가, 한 분이신 전능하신 하느님을 하나의 말단(one termination)으로 하는, 2자 사이의 한 관계(a relation)의 다른 말단(another termination)일 경우에, 이 윤리덕은 "경신[religion, 즉 경신덕(the virtue of religion)]" 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십계명(the Decalogue)의 첫 번째 새 개의 규범들은 이렇게 불리는 덕의 행위(acts)들/표출(expressions)들에 관한 규정(prescriptions)들이다.

 

(iii) 이 윤리덕을 실천하여야 하는 주체가, 당사자의 부모들과 가까운 친척들[여기에는, 원시(原始)와 고대(古代)의 씨족(氏族), 혈족(血族) 등이 포함됨]을 하나의 말단(one termination)으로 하는, 2자 사이의 한 관계(a relation)의 다른 말단(another termination)일 경우에, 이 윤리덕은 "filial piety(효, 孝)" 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십계명(the Decalogue)의 네 번째 규범은 이렇게 불리는 덕의 행위(act)/표출(expression)에 관한 규정(prescription)이다.

 

(iv) 십계명(the Decalogue)의 나머지 여섯 개 규범들도 또한 "piety[pitas, eusebeia, 즉,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 이라는, 정의(justice)에 부속되는 한 개의 윤리덕(a moral virtue)의 행위(acts)들/표출(expressions)들에 관한 규정(prescriptions)들이다.

 

(v) 이 윤리덕을 실천하여야 하는 주체가, 당사자가 속한 민족(nation)을 하나의 말단(one termination)으로 하는, 2자 사이의 한 관계(a relation)의 다른 말단(another termination)일 경우에, 이 윤리덕은 "충(忠, loyalty)" 이라고 불리어 왔다. 다만, 이 때에, 인류의 역사에 있어, 민족(nation)이라는 개념이 상당히 늦게 도입되었음을 또한 기억하라.

 

(vi) 다른 한편으로, 위의 제(i)항부터 제(v)항까지에 나열된 바가 사실은, 복음화(evangelization)와 관련하여,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 이 복음화의 대상(object)인 자들 모두에게 인격(persons)들 사이의 관계에 있어 기초를 이루는 한 개의 자연덕(a natural virtue)으로서 이미 잘 알려져 있음을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음을 부디 인지하도록 하라.

 

그리고 자연법은 직접 체험을 통하여 습득될 수 있으므로, 위의 제(i)항부터 제(v)항까지에 나열된 바로부터 우리는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 이라는 한 개의 윤리덕(a moral virtue)보급(普及)[즉, 첫 번째 햏위(first act)] 및 실천(實踐)[즉, 두 번째 행위(second act), 즉, 활동(activity)](#2)의 활성화(活性化)복음화(evangelization)의 한 개의 자연적/당연한 사전 전제 조건(a natural presupposition)(즉, 필요 조건)인 것이 분명함을 알 수 있다.

 

-----

(#2) 게시자 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의 용어 정의(definitions)들을 따르고 있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의 "첫 번째 행위(first act)""두 번째 행위(second act)" 라는 용어들의 정의(defintions)들은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85_potency.htm

혹은

http://ch.catholic.or.kr/pundang/4/summa/glossary_potency.htm

-----

 

(vii) 따라서,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복음(the Gospel of Christ)이 그 심장(heart)인, 계시법(the revealed law)은, 아담과 하와의 원죄 이후로, 자연법(the natural law)의 부족함을 보충하고자 하느님에 의하여 주어지는 바이고, 자연법은 직접 체험에 의하여 습득될 수 있으며, 그리고 특히 바로 이 자연법의 습득이 계시법의 받아들임을 위한 필요 조건이기 때문에, 바로 이 자연법을 직접 체험을 통하여 습득하게 하는 "민간의(일반 백성/평민들 사이의),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충실(popular piety)" 이라는 한 개의 윤리덕(a moral virtue)보급(普及)[즉, 첫 번째 햏위(first act)] 및 실천(實踐)[즉, 두 번째 행위(second act), 즉, 활동(activity)]의 활성화(活性化)가 "복음화(evantelization)" "토착화(inculturation)" 를 위한 한 개의 필요 조건(a necessary condition)임을 우리는, 연역적 추론(deductive reasoning)에 의하여,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한다.

(이상, 게시자 주 끝)

 

2-7. 위의 제2-6항에 이어지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1984년 교황 권고 [제목: Reconciliation and Penance] 제21항에서, 그러나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위의 제1-3-6항에서 이미 지적하였듯이, "새 번역 성경"의 1티모테오 3,16에서 "신앙의 신비" 로 대단히 잘못 번역된, "the mystery of piety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의 신비]" 에 대한 가르침은 다음에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19_St_John_Paul_II_on_1Timothy3_16.htm <--- 필독 권고

 

3.

----------

사실,

누군가 생면부지(生面不知)의 사람을 처음 만나면,

우리는

"첫 만남의 기쁨"을 전달하는 순수한 웃음과 함께,

또한,

인연(因緣)이 일어나는 바로 그 찰나(刹那)에,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자연적으로,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 이라는

한 개의 윤리덕(a moral virtue) 순수한 통제를 받게 된다.

그리고

경의(敬意)는 의지의 한 행위인 선의(善意, goodwill, benevolentia)에 포함되고,

선의(善意)우의(友誼, friendship)라는 한 관계의 시작이다.

----------

 

[내용 추가 일자: 2015년 4월 29일]

4.

4-1. 이 글에 이어지는 글[제목: 민간의(popular) 경의(敬意, respect)/존중(尊重, esteem)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의 성경 근거 외]은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28.htm  <----- 필독 권고

 

4-2. 특히, 위의 게시자 주 2-6에 이어지는 결론인 "복음화/토착화의 4단계 실천적 원리들" 은 다음에 있으니 필독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28_four_principles_of_Evangelization.htm <--- 필독 권고

[이상, 2015년 4월 29일자 내용 추가 끝]

 

----------

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작: 현재까지 약32시간 (자료 조사 및 분석 포함)

 



1,306 3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