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꼭필독] 요한 복음서는, 세례자 요한의 증언 및 이사야서의 고통받는 종의 노래들에 근거하여,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강생하신 하느님이심을 증언하는 복음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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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190.18.*]

2023-01-17 ㅣ No.2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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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면서

 

1-1. 질문 1: 요한 복음서가 저술될 때에, 요한 복음서 1,1-18이 저술되어 지금의 자리에 배치된 시점은 언제쯤일까요? 달리 말하여, 사도 요한이 요한 복음서를 저술할 때에, 시계열에 있어요한 복음서 1,1-18 제일 먼저 저술되었는지요? 

 

질문 1에 대한 간단한 답변: 매우 공리적으로(axiomatically) 그리고 또한 매우 간결하게(concisely) 기술된 요한 복음서 1,1-18을 잘 읽어보면, 이것이 요한 복음서 본문의 시작 부분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소위 말하는, 서문/머리글(Preface) 혹은 입문(Introduction)임을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요한 복음서 1,1-18은, 삽입된 세례자 요한의 언급을 제외하고, 예수님의 말씀이 단 한마디도 없는, 전적으로 이 복음서의 저자인 사도 요한이, 구약의 시대의 사고의 틀 안에 머물러 있는 유다인들을 그 주된 대상으로 하여 활동하셨던 예수님의 행적들에 대한 자신의 이해 전반이, 따라서 또한 구약의 시대의 사고의 틀 안에서 기술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통상적으로 특정 학문 분야의 지식을 체계적으로 다루는 책을 저술할 때에, 해당 책의 서문/머리글(Preface)입문(Introduction), 혹은 발문(跋文)은, 해당 책의 본문을 장차 읽을 독자들에게 해당 책에 어떠한 내용들이 담겨 있는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해당 책의 본문의 저술 후에, 심지어 색인(index)의 마련까지 완료한 시점에 가서, 비로소 그 작성을 완료하고, 그런 다음에, 해당 책을 출판하는 것이, 책의 저술 및 출판 작업에 있어, 그 순서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경우에 지금까지 15권의 책들을 저술/개정하면서, 그렇게 해 왔기도 합니다.

 

따라서, 마찬가지 이유로, 요한 복음서 1,1-18은, 아무리 빠르더라도, 요한 복음서의 나머지 부분이 저술 완료된 시점 이후에 작성되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상, 질문 1에 대한 간단한 답변 끝)

 

1-2.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중의 한 명인 사도 요한은, 이들 제자들 중에서 나이가 가장 어렸다고 알려져 있고, 특히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하신 제자라도 알려져 있는 분이며, 또한 상당히 총명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원후 95년경에 처음으로 출판되었다고 알려진 요한 복음서의 원 인간 저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요한 복음서 1,1-18은, 어느 한 날 갑자기 사도 요한이 저술한 그 무엇이 결코 아니고, 사도 요한이, (i) 예수님의 3년간의 공생활 당시에 함께 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전해들은 가르침들, (ii) 예수님과 함께 직접 체험한 바들, 그리고 (iii) 예수님의 친모이신 성모 마리아로부터 전해들은 바들 등의 내용들 사이에 존재하는 유의미하고 또한 대단히 중요한 논리적 유관 관계들을 잘 이해한 후에, 바로 이러한 자신의 이해에 근거하여, 자신이 이해한 바를 독자들이 논리적으로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자, 자신이 이해한 바의 가장 근본 진리들을, 구약 성경의 사고의 틀 안에서, 공리적인 방식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요한 복음서 1,1-18이라는 생각입니다.

 

달리 말하여, 요한 복음서 1,1-18은, 요한 복음서의 나머지 부분에서 기술하고 있는 예수님의 정체성(identity), 즉, 예수님이 강생하신 하느님이신 그리스도/메시아이심을 논리적으로 입증함에 있어 충분한 정도의 개수(個數)로 유한 개의 형이상학적 개념(metaphysical concepts)들과 이들 개념들 사이의 유한 개의 가장 근본 관계들을, 구약 성경의 사고의 틀 안에서, 기술하는 명제들로 구성되어 있는, 또 다른 한 개의 예수님의 신학적 족보이라는 생각입니다.

 

1-3. 이어지는 항들에서는, 위의 제1-1항에서 지적한 바를 염두에 두면서, 본글의 제목으로서 말씀드린 바에 대하여 가능한 한 실증적으로(positively) 및 논리적으로(logically)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2. 세례자 요한의 증언 자체에 대한 분석 I 

 

2-1. (들어가면서) 바로 아래의 제2-2항에 발췌된 바는, 요한 복음서 1,29.32-34에 기술된 세례자 요한의 증언에 대한 해설인데, 이 해설의 근거 문헌들을 찾아보았더니, 아래의 제3항에서 읽을 수 있는 요한 복음서 1,29.32-34에 기술된 세례자 요한의 증언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이 포함된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요한 복음서 1,33 및 1,34에 대한 설명은, 독자들의 이해를 도와드리고자, 그리스어 요한 복음서도 들여다보면서, 미력한 필자가 내용 보강을 한 것입니다.

 

2-2.

출처: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가톨릭출판사), 가해-I, 연중 제2주일, 복음 말씀 해설.

(발췌 시작)

29 이튿날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요한 복음서는 예수님의 십자가형 및/혹은 고양(exaltation)의 주된 목적으로서 죄의 속죄(atonement)를 강조하지 않으므로, 아마도 세례자 요한의 확언은 [이사야의 고통받는 종의 노레들 중의 두 번째에 포함되는 오늘의 제1독서(이사야 49,3.5-6)] 이 종이 한 마리의 어린양에 비교되고, 또 이 종이 많은 사람들의 사악한 행위(inquiry)를 견디어 내야 한다고 언급되고 있는, 이사야서의 네 번째 ‘고통받는 종의 노래’에 포함되는, 이사야서 53,7-12주님의 종을 반향하고 있는 듯하다(이사야 53,7-12를 보라). 이것은 그리스 교부들의 해석이었다.

 

라틴 교부들은 이 구절을 파스카 어린양을 언급하는 것으로서 해석하였는데, 이 해석 또한 가능한 두 번째 수준의 해석이나 그러나 이사야의 ‘고통받는 종’으로 해석하는 것이 주된 해석으로 생각된다. 파스카 어린양은 이 백성을 파멸로부터 보호해 주었지만(탈출 12,6-7 참조) 그러나 그들로부터 죄를 없애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32 요한은 또 증언하였다. “나는 하느님의 영(the Spirit, Pneuma)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신 것을 그가 예수님께 세례를 줄 때에 비로소 인식하였다[복음사가 요한이 공관 복음서의 세례 이야기를 자세히 말하지는 않으면서도, 그러나 언급을 하는 것으로 보아, 그는 독자들이 공관 복음서의 세례 이야기를 사전에 알고 있을 것임을 전제로 하고 있다(presupposes)].

 

예수님의 세례에서 사람 쪽으로 하느님의 현현(顯現)(Theophany)은 한 개의 객관적 사건(an objective event)이며 예수님의 한 개의 개인적 경험이 아니다.

 

세례자 요한은, 왜냐하면 그가 구약의 시대의 마지막 예언자이었기 때문에, 하느님의 신분/상태(Godhead)[즉, 신격(divine person)]에 계신 한 분의 구분되는 위격(a distinct person)으로서 성령(the Holy Spirit)에 대한 그리스도교 계시(Christian revelation)를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그는 구약 성경 안에서, 하느님의, 생명의 원천인, 힘(God’s vital power)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바로 이 ‘하느님의 영’(the Spirit)을 이해하였다.
 
33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하느님의 영(the Spirit, Pneuma)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remains)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the holy Spirit, Pneumati Hagiō)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주: 현재 시제] 

 

"새 번역 성경"에서, 위의 제32절과 이 절에서 ‘성령’으로 번역된 첫 번째 표현은 NAB에서 ‘the Spirit’로 번역되었는데, 구약 성경의 개념을 나타내는, 글자 그대로, ‘하느님의 영’으로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세례자 요한에 의한 메시아의 인식은 신성적 원천(divine origin)에 기인한 것이었다(요한 복음서 1,6 참조). 왜냐하면, 구약 성경의 예언자들이 메시아 시대에 바로 이 하느님의 영(the Spirit)이 넘쳐흐를 것임을 이미 예견하였기 때문이다(요엘 3,1; 이사야 32,15; 에제키엘 39,29; 즈카르야 12,10).

 

34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이 절의 시제가 과거가 아니고 (현재 완료형) 현재임을 잊지 말라. 세례자 요한에 의한 세례는 옛 계약(Old Testament)적 기대에 해당한다. 예수님에 기인하는 세례(제33절)는 성령 안에서 새 계약/신유조(新遺詔)(New Testament, 예레미야 31,31-34 및 에제키엘 11,19; 36,26 참조)의 구현에 해당한다.

 

(Sun T. Soh) 제33절에 발췌된 문장과 [이사야의 ’고통받는 종의 노래들’ 중의 첫 노래에 포함되는] 이사야 42,1(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 정의를 펴리라) 쪽으로 간접적 언급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영으로 기름부음을 영구히(permanently) 받고 계시는, 따라서 거룩한(holy) ‘하느님의 아들(the son of God)’[즉, 하느님의 아드님(the Son of God)]이신, ‘주님의 종’으로서 인식하게 한다.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2: (1) [심각한 문제점 한 개]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제33절에 대한 해설에 의하여, 제34절에서 말해지고 있는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번역된 바는 구약 시대의 유다인들이 바빌론 유배 이후의 시기부터 오랜 기간에 걸쳐 기다리고 있었던 피조물인 메시아, 즉, "하느님의 아들"(the son of God)를 말함을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으나, 그러나,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확인 할 수 있듯이,

https://en.katabiblon.com/us/index.php?text=GNT&book=Jn&ch=1&interlin=on <----- 여기를 클릭하여 필히 확인하라

 

왜냐하면 공경의 의미를 나타내는 그리스어 대문자를 첫글자로 사용하지 않고 소문자를 사용한 그리스어 명사 "υἱὸς"(son, 아들)제34절에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추가적 근거의 제시 없이, 대부분의 영어본 성경들에서 "the Son of God"으로 번역된 것과 "새 번역 성경"에서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번역된 것은, 결코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없음에 반드시 주목하라. 다음에 발췌된 바는, 이에 대한 필자의 지적이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a_ot_2.htm <----- 여기를 클릭하여 꼭 필독하라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요한 복음서 1,32-34의 해설 발췌 시작)

32-34. To emphasize the divinity of Jesus Christ, the Evangelist includes here the Precursor's testimony regarding Jesus' Baptism (cf. the other Gospels,
which describe in more detail what happened on this occasion: Matthew 3:13-17
and paragraph). It is one of the key points in our Lord's life, in which the mystery of the Blessed Trinity is revealed (cf. note on Matthew 3:16). 

 

32-34.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divinity)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 복음사가는 여기에 예수님의 세례(Jesus' Baptism)에 관련한 이 선구자의 증언을 포함시킵니다 (더 자세하게 바로 이 사건에서 발생하였던 바를 기술하는, 다음에 있는, 다른 복음서들을 참조하라: 마태오 복음서 3,13-17과 단락). 이것은 우리의 주님의 삶에 있어 중요한 점들 중의 하나인데, 그 안에서 복되신 성삼위의 신비/오적이 드러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태오 복음서 3,16에 대한 주석을 참조하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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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역자 주: (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마태오 복음서 3,16 및 이 절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주석을 학습할 수 있다. 또한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a_baptlord.htm
<----- 필독 권고  

 

(2) 그런데, 바로 이 해설은, 기원후 4-5세기를 거치면서 "정식화된" (formulated) 그리스도교 계시 진리인 삼위일체 교의(dogma)에 전적으로 근거한/의존하는 해설임에 반드시 주목하라.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왜 바로 이 지적을 드리는가 하면, 예수님의 제자들 및 사도 바오로를 포함하는 기원후 1세기 시절의 일부 유다인들이 도대체 어떠한 방식으로, 무엇에 근거하여예수님이 "피조물인 그리스도/메시아"가 결코 아니고"하느님이신 그리스도/메시아"이심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하여서, 아무런 설명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3)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바로 위의 제(2)항의 두 번째 단락에서 지적한 바에 대하여 다루는, 아직은 완료되지 아니한, 졸글[제목: 요한 복음서는, 세례자 요한의 증언 및 이사야서의 고통받는 종의 노래들에 근거하여,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강생하신 하느님이심을 증언하는 복음서이다]을 읽을 수 있다. 특히 성서 신학, 교의 신학을 전공한 성직자(주: 여기에는 주교님들도 포함함) 및 수도자들의 필독을 요청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934.htm
 [주: 본글]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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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위에 발췌된 바에서 마지막 단락, 즉, 제34절의 해설을 미력한 필자가, 부득불, 내용 보강을 하였다.

 

(2) [또다른 심각한 문제점 한 개] 그러나, 위에 발췌된 바의 마지막 단락, 즉, 제34절의 해설에서 말하는 거룩한(holy) ‘하느님의 아들(the son of God)’[즉, 하느님의 아드님(the Son of God)]이 하느님인지 혹은 아닌지는 또 다른 문제임에 또한 반드시 주목하라.

 

[내용 추가 일자: 2023년 2월 4일]

(3) 다른 한편으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바로 위의 제(2)항에서 지적한 문제점과 관련하여 기술하고 있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441항을 학습할 수 있다. 특히, 바로 이 문제점과 관련하여, 매우 유감스럽게도, 기존의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 제441항의 우리말 번역문에 심각한 번역 오류가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17.htm <----- 꼭 필독 권고

[이상, 2023년 2월 4일자 내용 추가 끝]

(이상, 게시자 주 2-2 끝)

 

 

3. 세례자 요한의 증언 자체에 대한 분석 II 

 

3-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요한 복음서 1,29.32-34에 기술된 세례자 요한의 증언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들 전문을 학습할 수 있으며, 유관 단락들의. 우리말 번역은 필자가 한 것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a_ot_2.htm <----- 여기를 클릭하여 꼭 필독하라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요한 복음서 1,32-34의 해설 발췌 시작)

32-34. To emphasize the divinity of Jesus Christ, the Evangelist includes here the Precursor's testimony regarding Jesus' Baptism (cf. the other Gospels,
which describe in more detail what happened on this occasion: Matthew 3:13-17
and paragraph). It is one of the key points in our Lord's life, in which the mystery of the Blessed Trinity is revealed (cf. note on Matthew 3:16). 

 

32-34.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divinity)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 복음사가는 여기에 예수님의 세례(Jesus' Baptism)에 관련한 이 선구자의 증언을 포함시킵니다 (더 자세하게 바로 이 사건에서 발생하였던 바를 기술하는, 다음에 있는, 다른 복음서들을 참조하라: 마태오 복음서 3,13-17과 단락). 이것은 우리의 주님의 삶에 있어 중요한 점들 중의 하나인데, 그 안에서 복되신 성삼위의 신비/오적이 드러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태오 복음서 3,16에 대한 주석을 참조하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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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역자 주: (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마태오 복음서 3,16 및 이 절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주석을 학습할 수 있다. 또한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a_baptlord.htm
<----- 필독 권고  

 

(2) 그런데, 바로 이 해설은, 기원후 4-5세기를 거치면서 "정식화된" (formulated) 그리스도교 계시 진리인 삼위일체 교의(dogma)에 전적으로 근거한/의존하는 해설임에 반드시 주목하라.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왜 바로 이 지적을 드리는가 하면, 예수님의 제자들 및 사도 바오로를 포함하는 기원후 1세기 시절의 일부 유다인들이 도대체 어떠한 방식으로, 무엇에 근거하여예수님이 "피조물인 그리스도/메시아"가 결코 아니고"하느님이신 그리스도/메시아"이심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하여서, 아무런 설명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3)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바로 위의 제(2)항의 두 번째 단락에서 지적한 바에 대하여 다루는, 아직은 완료되지 아니한, 졸글[제목: 요한 복음서는, 세례자 요한의 증언 및 이사야서의 고통받는 종의 노래들에 근거하여,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강생하신 하느님이심을 증언하는 복음서이다]을 읽을 수 있다. 특히 성서 신학, 교의 신학을 전공한 성직자(주: 여기에는 주교님들도 포함함) 및 수도자들의 필독을 요청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934.htm
 [주: 본글]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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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3-2. [또다른 심각한 문제점들] 그러나, (i) 위의 게시자 주 2-2에서 이미 지적한 두 개의 심각한 문제점들, 그리고 (ii) 바로 위에 있는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필자의 번역자 주에서 지적하고 있는 또다른 문제점들 때문에, 부득불, 미력한 필자가 아래의 제4항을 작성하게 되었는데, 그리스도교 전통적 성서 신학 전공자들 및 교의 신학 전공자들의 필독을 요청드립니다. 

 

 

4. 세례자 요한의 증언 자체에 대한 더 자세하고 정밀한 분석과 그 결과들 III 

 

4-1. 우선적으로, 요한 복음서 1,32-34에 기록된 세례자 요한의 증언에서, 특히 하느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계시한 부분(#)에서, 계시자인 하느님에 의하여, "하느님의 영"(the Spirit)이 또한 "'거룩한'(holy, 즉, 하느님의 신성(divinity)을 지닌) 하느님의 영", 즉 "성령"(the Holy Spirit)으로 불리고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그런데 또다시 세례자 요한의 증언(요한 복음서 1,32-34)에 의하여, 바로 이 '하느님의 신성(divinity)을 지닌'(holy) "하느님의 영"이 예수님에게 강하하시어 예수님 위에, 왜냐하면 바로 이 세례자 요한의 증언 중에 세례자 요한에게 드러내어진 하느님의 계시(#) 전체가 현재 시제이기 때문에, 항구히/영구히(permanently) 머무르고 계심을 알 수 있고,

 

따라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또한 하느님의 신성(divinity)을 항구히/영구히 지니고 계심을,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베푸는 시점에, 자신에게 이미 제시된(요한 복음서 1,33ㄷ) 하느님의 계시(#)의 첫 번째 문장이 자신의 눈 앞에서 구현됨을 직접 목격함으로써(요한 복음서 1,32), 한 개의 진리임을 확실하게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만약에(If), 유다인인 자로서, 세례자 요한의 증언(요한 복음서 1,32-34)에서 거명되고 있는 '하느님의 신성을 지닌'(holy)  바로 이 "하느님의 영"이, 피조물이 아니고,  다만 '하느님의 일(opus Dei)을 하고 계신' 하느님 당신 자신이심을 한 개의 진리로서 인정하는 자(A)이라면,

 

세례를 베풀면서 바로 이 "하느님의 영"을 수단/도구로서 항구히 자유롭게 사용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심을 밝히고 있는, 세례자 요한의 증언 중에 세례자 요한에게 드러내어진(요한 복음서 1,33ㄷ) 현재 시제인 하느님의 계시(#)의 두 번째 문장에 의하여, 바로 그자(A)는 예수님이 '하느님의 일을 하고 계신' 하느님이신 바로 이 "하느님의 영"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가지고 계심을 알아차리게 되며,

 

그러나, 왜냐하면 권위에 있어, 하느님이신 "하느님의 영"보다 차이가 있게 확실하게 더 높은 권위를 가진 분(즉, 더 거룩한 분)은 결코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에,

 

따라서, 바로 그자(A)'예수님이 하느님이심'(##)을 한 개의 진리로서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렇치 않는지요?

 

다른 한편으로,

 

(i) 왜냐하면 시편 2,2에서 기름부음받은이(즉, 메시아)가 또한 시편 2,7에서 "하느님의 아들"(the son of God)로 불리므로,

(ii) 유다인들이 기다리고 있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인 이사야서의 고통받는 종의 네 편의 노래들 중의 첫 번째 노래 중의 '기름부음받은이'(이사야 42,1에서 하느님에 의하여 '하느님의 영'을 받은 자),

(iii) "하느님의 아들"로 또한 불리는 메시아인, '어린양(고통받는 종의 네 번째 노래에 포함되는 이사야 53,7) 구속자(redeemer)'이며 또한 거룩한 분(the Holy One), 즉, 하느님(고통받는 종의 두 번째 노래에 포함시키기도(예를 들어, NAB의 소제목) 하는 이사야 49,7)(*), 다름 아닌, 바로 '거룩한 분'(the Holy One)이신 "하느님의 아들"(the son of God), 즉, 하느님이신 "하느님의 아드님"(the Son of God, 즉, 성자)으로 불리는 바로 그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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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사순 제4주간 수요일 제1독서(이사야 49,8-15)의 해설로서 제시된, 이사야서 49,7-13의 해설을 읽도록 하라: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lent_4_wed.htm 

(발췌 시작)

It starts (v. 7) by contrasting the love of God and the humiliation of the chosen people, who will eventually be exalted (cf. 52:13-15); some commentators see the verse as part of the second Song of the Servant.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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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따라서, 바로 위에서 지금까지 고찰한 바의 한 개의 따름 정리(a corollary)로서, 요한 1,34에 제시된 세례자 요한의 증언, 즉, "하느님이신 예수님(##)하느님의 아드님(the Son of God, 즉, 성자)이심"이 한 개의 진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 따라서, 바로 위에서 지금까지 고찰한 바의 또다른 한 개의 따름 정리(another corollary)로서, 하느님이신 예수님(##)이 또한 하느님의 아드님(즉, 메시아)로서, 세례자 요한의 또다른 증언(요한 1,29)인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심'이 한 개의 진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 따라서, 요한 복음서 1,1-18의 문맥 안에서요한 복음서 1,14에서 사람은 곧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말하므로, 요한 복음서 1,14에서 말씀은, 결코 피조물이 아니고, 따라서 하느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경우에도 그리고 어떠한 과정을 거치더라도, 특정 피조물이 자신의 창조주이신 하느님 쪽으로 결코 변성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십계명들 중의 제1계명). 그러므로, 하느님이신 바로 이 말씀이 또한 "하느님의 아드님"(즉, 성자)으로 불리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라) 따라서, 한처음부터 '하느님이신 말씀'이 하느님과 함계 계심(요한 복음서 1,1-2)은 이제 매우 자명하다 할 것입니다.

 

(마) 따라서, 성경 본문에서 한분이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피조물들[즉, 비가시적 혹은 가시적 피조물들, 이 세상에서 생활하는 생명/목숨을 가진 가시적 피조물들, 그리고 지성(intellect)과 의지(will)를 가진 인류] 쪽으로, 다가오는 방식/과정에 따라, 즉, '하느님의 일을 하고 계신' 하느님의 바로 그 방식/과정에 따라,

(a) 하느님(즉, 성부),

(b) 하느님의 영(즉, 성령/성신),

(c) 예수님(즉, 하느님의 아드님, 즉, 성자, 즉, 말씀),

이렇게, 논리적으로(logically) 및 실제적으로(really) 구분되어, 불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바로 위의 제4-1항에서 고찰한 바에 의하여,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1)(Sun T. Soh) 요한 복음서 1,29.32-34에서 하느님에 의하여 계시된 바 및 이에 대한 세례자 요한의 목격 증언, 그리고 구약 성경의 예언자들에 의하여 예언된 바들을 통하여, 삼위일체 교의가, 명시적이지 아니한 방식으로, 즉, 한 개의 계시 진리로서 인지될 수 있도록 유다인들인 예수님의 사도/종도들에게, 예수님의 공생활 직전의 시기에, 하느님에 의하여 이미 충분하게 잘 제시되었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4-2.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제시한 바로 위의 제4-1항의 기술에서,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의 공생활 시작 바로 직전에 헤로데 안티파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였음을 또한 십분 고려하여, 예수님의 부활 사건, 예수님의 승천 사건, 오순절에 발생한 성령 강림 사건 등, 예수님의 공생활 시작 이후의 시기에 발생한 바들을 논거로서 전혀 제시하지 않았음에 또한 주목하십시오. 그리고 심지어 대천사 가브리엘에 의한 수태고지 사건, 세례자 요한의 친모가 예수님을 잉태하신 성모님을 "나의 주님의 어머니"라고 고백한 사건 등도 논거로서 전혀 제시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요한 복음서 1,29.32-34에서 세례자 요한 자신이 몰랐다고 말하고 있는 바에 바로 이 수태고지 사건 등이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말씀인고 하면, 바로 위의 제4-1항에서 논증의 과정에 사용된 지식/정보들은, 신약 성경의 나머지 본문들과 논리적으로 독립적이며(logically independent), 따라서 신약 성경의 나머지 본문들에 기술된 바와 완미하게(perfectly) 부합하는지(conform)의 여부를 누구든지 하나 하나 확인할 수 있도록 기술되어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최근에 알아차리게 된, 요한 복음서 1,29.32-34에 기술된 세례자 요한의 증언의 성서 신학적 및 교의 신학적 중요성이라 아니 지적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왜냐 하면, 많이 부족한 죄인이 생각할 때에, 요한 복음서의 인간 저자인 사도 요한이,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하신 제자인 사도 요한이, 바로 이 중요성을 알아차렸음은 매우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4-3. 또한, 바로 위의 제4-1항에서 예수님의 정체성(identity) 관련하여 도출된 결론들은, 요한 복음서의 인간 저자인 사도 요한의 저술 방식 덕택으로, 그리고 예수님께서 요한 복음서 10,38요한 복음서 14,11에서 이미 말씀하셨듯이, 요한 복음서의 나머지 부분에 기술된 바들에 의하여 추가적으로 논리적으로 입증되는 내용들 임에, 또한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그리고 지금 말씀드린 바로 이 점을 십분 감안하여, 필자는 다음의 명제를, 애초에, 본글의 제목으로서 채택하였습니다:

 

"요한 복음서 서문(요한 복음서 1,1-18)요한 복음서 1,29.32-34에 기술되어 있는 세례자 요한의 증언에 대한, 예수님과 공생활을 함께 하였던 목격자인, 사도 요한의 증언들의 요약문이다."

 

게시자 주 4-3: 그런데, 바로 위의 (이 글의 결론 1)을 포함하는 위의 제4-1항에서 도출된 결론들 모두는, 예를 들어, 위의 제4-1항 중의 제(마)항에 나열된, 실재론(realism)의 범주에 포함되는 형이상학(metaphysics)에 있어 세 개의 말단(terminals)들인(a) 하느님(즉, 성부), (b) 하느님의 영(즉, 성령/성신), 그리고 (c) 하느님의 아드님(즉, 성자, 즉, 말씀, 즉, 로고스) 사이의 관계의 상태(relationship)가 어떠한지에 대하여 전혀 알 수 없음에 반드시 주목하라.

 

그리고 바로 이러한 부분은, 기원후 4세기와 5세기에 걸친 약 130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삼위일체 교의(dogma)가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적으로 정식화되는(fomulated) 과정에서, 위의 제4-1항 중의 제(마)항에 나열된, 사도/종도 바오로를 포함하는 예수님의 사도/종도들이 이미 인지하고 있었던 이들 세 개의 말단(terminals)들 사이의 관계의 상태에 대한, 이해의 폭이 점차적으로 깊어졌다고 알고 있으며, 따라서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라도, 위의 제4-1항에서 이미 고찰하였듯이, 성경 본문에 이미 계시되어 있는 한 개의 계시 진리인, 삼위일체 교의의 정식화 과정은 꼭 필요하였다는 생각이다.

 

왜나햐면, 하느님은 한 분뿐이기 때문이다.

(이상, 게시자 주 4-3 끝)

 

[내용 추가 일자: 2024-04-03]

4-4. (Sun T. Soh)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92.htm <----- 꼭 필독 권고

[제목: 필리피 2,11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번역오류]; 게시일자: 2021-03-28]

 

(i) 본글에서 고찰한 바인, 예수님의 공생활의 시작 부분인 예수님의 세례 및 세례자 요한의 증언 그리고 하느님의 지고한 따라서 유일한 신성적 권위(divine Authority)로부터 삼위일체 교의의 정식화의 필요성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유다인들의 경우에, 매우 자연스럽게 인지되었을 것임

 

그리고 독립적으로,

 

(ii) 예수님의 공생활의 마지막 부분인 예수님의 부활 및 승천 그리고 하느님의 지고한 따라서 유일한 신성적 통치권(divine Sovereign)으로부터 삼위일체 교의의 정식화의 필요성(necessity)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의 경우에, 또한 매우 자연스럽게 인지되었을 것임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습니다.

[이상, 2024-04-03일자 내용 추가 끝]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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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성자 주: 2020년 가해 부활 제3주일부터, 매주 시리즈의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본 "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교안"은 통상적으로 이틀 동안의 묵상 후에 작성되고 있으며, 그리고 묵상 동영상 녹화 후에 추가적인 묵상의 결과로서 내용 보강이 진행되기도 합니다. 

 

[아래의 안내 첫 공지일자: 2021년 3월 10일]

이곳은 2004년에 굿뉴스 서버에 개설된 "가톨릭 문서 선교회"가 운영/관리하는 Big DataBase Archive 구축 공간 및 2000년 대희년부터 당시 교육부 지원 공동연구/교육용 SGI Origin 3400 수퍼컴퓨터 사용자들을 위하여 연구/개발해 온 고유한 AI 알고리즘/빅 데이터 분석 기법 기반 최신 연구 결과물들의 제공처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또한 이곳은, 문화장벽(culture barriers)들/언어장벽(language barriers)들 등에 기인하는 형이상학 개념(metaphysical concepts)들의 전달 장애/훼손/오류 등의 조기 회복/복원 및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이들 개념들 사이에 현존하는 진리인 유의미한 관계의 상태들의 전달/발견 등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추구해 온, 연구/교육, 선교/전교/복음화 및 토착화, 공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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