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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베네딕토 1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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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수 [ysikwon] 쪽지 캡슐

2005-04-20 ㅣ No.4234

[연합뉴스 2005-04-20 02:44]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김용윤 특파원 =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교황 대(大) 요한 바오로 2세의 뒤를 이어 추기경들은 나를, 주님의 포도원에 보잘 것 없고 미천한 일꾼으로 뽑았습니다"

 

로마 가톨릭교회 제265대 교황으로 추대된 요제프 라칭어 추기경(78.독일)은 19일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 '주님의 보잘 것 없는 일꾼'으로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수십만 군중과 전 세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스티나성당 굴뚝에서 흰 연기가 솟아오르고 성 베드로 대성당의 종이 우렁차게 울린 뒤 호르게 아르투로 메디나 에스테베스 추기경이 '하베무스 파팜(교황을 선출했다)' 선언과 함께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낸 라칭어 추기경은 11억 가톨릭 인구를 이끌어 가게 될 사명을 성 베드로의 후계자로 일꾼을 자처했다.

라칭어 추기경은 또 환호하는 군중들에게 "나를 여러분의 기도에 맡긴다"고 말했다.

한때 독일 뮌헨대교구 교구장을 지낸 저명한 신학자로 지난 1981년부터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을 지낸 바티칸내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고위 성직자중 한 명.

베네딕토 16세로 전 세계 가톨릭교회를 사목하게 될 그는 이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신학적 보좌역을 20년 동안 도맡아 보수성향의 가톨릭 기조는 변함없을 전망이다.

젊었을 때 한때 진보적인 시각을 가졌던 사제였으나 1968년 학생혁명 이후 우파적 사고로 돌아선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남미를 중심으로 한 해방신학과 종교 다원주의, 동성애와 같은 문제들에 대한 전통적인 도덕적 가르침에 대한 도전, 여성사제서품 등을 차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지난 2002년 이후 추기경회의 의장으로 바티칸 내 '제2인자' 역할을 해온 그는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지난 1977년 추기경으로 서품됐다.

yykim@yna.co.kr (끝)

 

<새 교황 선출> 라칭어 추기경 교황 피선 배경

[연합뉴스 2005.04.20 06:00:52]

제네바 문정식 특파원 = 새 교황 선출에 이변은 없었다.

보수적 성향의 라칭어 추기경이 '베네딕토 16세'가 된 것은 바티칸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측통들이 이미 예상했던 결과다.

이상 보다는 현실이 앞섰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콘클라베를 앞두고 한껏 부풀어올랐던 제3세계 출신, 흑인 교황에 대한 기대는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

추기경단의 분포를 보면 근 40%가 제3세계 출신이지만 성향을 보자면 보수파가 압도적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 절대 다수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재위 시절에 서임된 이들이어서 그 성향을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극단적이지 않은 보수주의의 대변자로서 라칭어 추기경은 일단 추기경단에게 적격 인물로 보였을 것이다. 대교황으로 불리는 요한 바오로 2세의 보수 노선에서 크게 벗어난 인물을 택할 가능성은 애당초 희박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진보파들의 주장에 귀기울이지 않고 해방신학, 낙태, 피임, 동성애, 인간 복제, 여성 사제서품에 분명히 반대해왔다.

라칭어 추기경과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세속주의와 상대주의, 종교 다원주의에도 경계감을 갖고 있었다. 유럽연합(EU)의 헌법에서 신에 대한 언급이 사라진 것을 생전에 요한 바오로 2세는 애석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라칭어 추기경이 콘클라베가 개최된 지 불과 이틀 만에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얻은 것은 가톨릭 교회가 세속주의와 타종교로터 오는 위협에 직면해 있다는 라칭어 추기경의 신념에 대체로 공감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라칭어 추기경은 이런 점외에도 여러모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었다.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그는 큰클라베 첫날 회의에서 이미 40-50표를 얻고 있었다는 관측이 나온 것은 다른 후보와 차별화된 몇가지 장점에서 기인한다.

라칭어 추기경이 가장 유리했던 것은 '대전(大殿)'에 가장 가깝게 있었던 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재위 시절 '부교황'이라거나 '요한 바오로 3세' 등으로 불릴 만큼 실세였다.

지난 수년간 고령과 건강 악화로 요한 바오로 2세의 존재감이 차츰 퇴색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위상을 날로 강화되고 있었던 것이 사실. 일부에서는 진작부터 라칭어 추기경을 사실상의 교황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그가 오랫동안 2인자 자리를 유지한 것은 전임 교황의 신임이 두터운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40여 년 전 개최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참여하면서부터 친분을 쌓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즉위 후 몇년이 지나지 않은 지난 1981년 라칭어 추기경에 가톨릭 교리의 수호라는 중책을 맡겼다. 전임 교황의 믿음대로 그는 진보적 신앙관과 세속주의로부터 가톨릭 교리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비타협적 노선을 견지해왔다.

진보세력에게는 라칭어 추기경의 이같은 태도가 완고한 '교조주의'로 비쳐지고 는 것이 사실. 이 때문에 독일 탱크와 맹견에 비유해 '판처카르디날'이나 '신의 로트와일러'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라칭어 추기경은 '후광'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비타협적인 성향 때문에 적들도 만들었겠지만 친화력을 통해 친구를 보다 많이 만들어두었다는 것이 바티칸 관측통들의 지적이다.

풍부한 경험도 그의 장점에 속한다. 라칭어 추기경은 실제로 2인자에 걸맞은 지도력과 행정 능력을 보여주었다.

국제 정치 무대에서 다른 국가 정상들과 교류할 수 있는 능력이 교황이 갖춰야할 덕목이라면 라칭어 추기경이 단연 우위라고 볼 수 있다. 교황청에 오래 머문 만큼 이탈리아어 구사 능력도 뛰어나다.

이탈리아 언론들은 자국 출신이 라칭어 후보와 경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동구권에 넘어간 교황권이 다시 이탈리아에 넘어가는 것을 탐탁하지 않게 생각하는 추기경들이 적지 않았던 것도 라칭어 추기경으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교황을 전담 취재하는 기자들, 즉 '바티카니스티'에 따르면 이탈리아 출신의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추기경이 진보파로부터 지지를 얻었으나 중풍을 앓고 있다는 점도 라칭어 추기경에게는 플러스가 됐을지 모른다.

라칭어 추기경의 나이도 또다른 플러스 요인이 됐을지 모른다. 라칭어 추기경이 비교적 고령이어서 재위 기간은 상대적으로 짧을 수밖에 없다.

추기경들은 젊은 후보를 선택해 2-30년을 재위할 교황을 뽑기보다는 머지 않아 새 교황을 선택하는 수고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계산을 했을지 모른다.

(끝)
<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Q: 교황이 되면 어떤 것들이 달라지나요?

A: * 자신의 성(姓)과 이전의 국적(國籍) 및 시민권을 잃게 됩니다.

    * 교황은 일상생활에서 때로는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규제를 받습니다.

    * 교황에게도 고해 신부가 있습니다. 교황의 고해성사를 담당하는 신부는 예수회 신부로, 일주일에 한 번씩 정

       해진 시간에 바티칸을 방문하여 교황이 고백하는 죄를 듣고 사해줍니다.

    * 교황은 교의 상 로마 가톨릭 교회 전체를 통솔하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집니다. 교회 내 모든 법령은 교황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교황은 일을 처리할 때 선례를 따를 수도 있고,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전통을 폐기

       하고 교회법을 제정하거나 개정할 수 있으며, 교황령을 선포할 수 있고, 협의를 거치지 않고도 교회 내 규정

       을 바꿀 수 있습니다. 어떤 문제들에 관해서는 추기경단의 자문과 조언을 받도록 되어 있지만 모든 일에

       교황 자신이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조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집니다. 교황 요한 23세가 교황청 추기경들

       을 소집하지 않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진척시키기로 결정한 것처럼, 교회의 고위 정책에 있어 전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 교황은 인간이 하는 재판을 받지 않습니다. 교황은 한 국가의 최고 통치권자와 마찬가지로 법정에 소환되지

       않을 권한을 갖습니다.


Q: 교황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A:  * 교령을 승인, 재가 또는 정지시킬 수 있습니다.

     * 대사(大赦)를 허락할 수 있습니다.

     * 시복이나 시성을 할 수 있습니다.

     * 주교를 임명하고 추기경을 지명할 수 있습니다.

     * 교구를 설정, 관리, 변경하거나 정지할 수 있습니다.

     * 교구장을 보좌할 수 있도록 보좌 주교를 선임할 수 있습니다.

     * 교황청 대학들을 설립하고 인준할 수 있습니다.

     * 전례서를 출간할 수 있습니다.

     * 교회 재단의 재산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

     * 교황청에 속한 선교 활동을 수립하고 관리할 수 있습니다.

     * 공의회를 소집, 주재하고 폐회할 수 있습니다.

     * 거룩한 날과 가톨릭 축제일 등을 정할 수 있습니다.

     * 새로운 전례를 도입하고 낡은 전례들을 폐지할 수 있습니다.

     * 믿을 교리를 공표할 수 있습니다.

     * 교회법을 새로 도입하거나 변경, 폐지할 수 있습니다.

     * 가톨릭 정통 교리를 이단으로부터 수호합니다.

     * 환속을 원하는 수도자들의 서원과 맹세를 풀어 줄 수 있습니다.

     * 혼인 관계의 특별 관면을 해줄 수 있습니다.

     * 법원의 역할을 합니다.

     * 사법 절차의 규칙을 세울 수 있습니다.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은 8번째 독일인 교황이 됐다. 선종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아주 가까운 조언자로서 ‘교황의 오른팔’ ‘요한 바오로 3세’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다.

◇엘리트 사제= 지난 16일로 만 78세가 된 새 교황은 1927년 독일 바이에른주에서 반나치주의자 경찰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1951년 24살로 가톨릭 성직에 입문했다. 59∼63년 본대학 교수를 지냈으며 뮌스터대학,튀빙겐대학 등을 거쳐 69년 레겐스부르크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쳤다. 77년 뮌헨 대주교로 발탁되고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인 50세에 추기경이 됐다. 1981년 신앙교리성 수장,2002년 추기경단 수장이 됐다. 20년간 신앙교리성 장관을 지내며 감동적인 강론으로 일반에게 잘 알려졌고 그는 교회안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라칭거의 형 게오르크(81)씨는 동생이 훌륭한 교황감이지만 학자에 가깝고 요한 바오로 2세처럼 사람들과 바로 잘 어울리고 친근감 있게 매료시키는 재능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라칭거는 가족과의 유대가 강해 바티칸 생활을 하면서도 정기적으로 고향에 들렀다.

라칭거는 전 세계 추기경 중 유일한 인터넷 팬 사이트를 가진 인물로 알려져 있고 2000년 개설된 ‘라칭거 추기경 팬클럽(www.ratzingerfanclub.com)’이 대표적 사이트다. 열성 지지자들은 라칭거를 ‘라치’로 애칭한다. 2005년 4월 타임지의 ‘세계 100대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보수주의 리더=라칭거는 사목서신 등을 통해 ‘낙태 지지 정치인들에게 성찬(예배)을 베풀지 말라’‘페미니즘은 여성을 남성의 적으로 만드는 것’‘동성애는 죄악’‘콘돔 사용은 신의 섭리에 위배’ 등의 보수적 교리해석과 신앙을 강조했다. 종교적 상대주의,해방신학 등을 부정하는 강경 보수입장으로 유명하다.

라칭거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미사를 집전했고 새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단의 콘클라베를 주관함으로써 보수적인 태도를 지적받았던 요한 바오로 2세의 실질적인 후계자로 역할했다. 그는 콘클라베 시작 전 미사에서 파벌과 이념,자유주의,무신론,불가지론(不可知論),상대주의(relativism) 등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라칭거의 이 발언은 차기 교황이 교회의 절대적 진리를 수호해야함을 암시했다.

라칭거는 ‘신의 충견’으로 불리며 교황청 2위 실력자로서의 엄격한 보수성과 나이,유럽 출신 등이 교황으로서의 단점으로 꼽혔다. 하지만 불안정한 상황과 과도기 관리자가 필요한 시점에 보수적인 가톨릭 분위기가 오히려 그의 풍부한 경험과 깔끔한 관리능력,탁월한 외국어 실력 등을 장점으로 부각됐다. 라칭거는 “교회의 현안을 해결한 뒤 몇 년안에 사임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져 ‘과도기 교황’의 적임자로 뽑힌 셈이다. <<교황 선종에서 새 교황 선출까지 일지>>

△2005년 4월2일 = 요한 바오로 2세 선종. 장례절차 교황령 '주님의 양떼' 가동

△4일 = 교황 선출 추기경단 첫 회의 소집.교황 시신 일반인 공개 시작

△7일 = 교황청, 요한 바오로 2세가 1979∼2000년 작성한 영성록 공개.교황 시신 일반인 공개 종료

△8일 = 요한 바오로 2세 장례식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

△13일 = 교황 시신 안치된 성 베드로 대성당 지하묘 일반 추모객에 개방

△14일 = 교황 선출 추기경단, 콘클라베(비밀회의) 준비 회의

△16일 = 요한 바오로 2세의 옥새 '어부의 반지(페스카토리오)' 파기바티칸 9일간의 애도 기간 종료.

△18일 = 콘클라베 개시.오후 첫 투표에서 선출 실패

△19일 = 콘클라베 이틀째 회의서 265대 교황 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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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교황 탄생> 교황 베네딕토 16세 어록
[연합뉴스 2005.04.20 08:55:17]

http://pope.catholic.or.kr/pope265/bbs2.asp

 

(뉴욕 AP=연합뉴스)

▲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관해: "우리의 사랑하는 교황께서 아버지의 집 창문가에 서서 우리를 내려다 보며 축복을 내리는 것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다""이제 우리는 그의 유해를 불멸의 씨앗으로 땅에 묻는다. 우리의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하지만 동시에 기쁨에 찬 희망과 깊은 감사로 가득차 있다" (4월8일 교황 장례 미사에서)

 

▲ 이슬람에 관해: "이슬람 세계가 기독교적 전통을 지닌 서방세계의 도덕적 타락과 인간생명 조작을 비난하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이슬람 역시 역사의 흐름에서 위대한 영광과 타락의 시기를 겪었다" (2002년 3월6일 교황관련 뉴스 통신 Zenit.org에서)

 

▲ 유대교에 관해: "유대인들이 하느님과 특별한 방식으로 연결돼 있으며 하느님이 이같은 유대가 무너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란 점은 명백하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그리스도에게 `예''라고 대답하는 순간을 기다리지만 이스라엘은 역사상 특별한 사명을 갖고 있으며 이는 전세계를 위해 중요한 일이다" (2000년 출판된 저서 `하느님과 세계''에서)"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의 메시아이기도 하다는 것은 우리의 기독교적 확신이다. 유대교도와 기독교도가 하느님의 사람으로 통일하는 것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는 분명 하느님의 손에 달려 있다"(`하느님과 세계''에서)

 

▲ 신앙에 관해: "교회의 교리에 바탕을 두고 확고한 신앙을 갖는 것이 오늘날에는 근본주의로 불리는 반면, `온갖 이론의 바람에 휘둘려'' 이리저리 들까불리는 상대주의가 현대의 기준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처럼 보인다""우리는 어떤 것도 확실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개인의 자아와 욕망을 최상의 목표로 삼는 상대주의의 독재를 향해 가고 있다"(4월18일 콘클라베 개시 전에 열린 미사에서)

 

▲ 여성 사제 서품에 관해: "교회가 여성을 사제로 서품할 권리가 없다고 확신하는 것이 일부 인사들에게는 유럽 헌법과 상충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4월11일 Zenit.org에서)

 

▲ 교회 내 성추행 스캔들에 관해: "교회 안에서 사제들은 죄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톨릭 사제들, 특히 미국 내 사제들의 죄에 관해 언론이 계속 보도하는 것은 계획된 공작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왜냐하면 사제들 중 이런 행위의 비율은 다른 부문에 비해 높지 않으며 아마도 더 낮기 때문이다""미국에서는 이 문제에 관해 끊임없는 뉴스가 보도되지만 이런 종류의 죄를 범하는 사제들은 전체의 1%도 안 된다. 이런 뉴스가 계속 나오는 것은 정보의 객관성이나 통계적 객관성에 어긋나는 것이다" (2002년 12월3일 Zenit.org에서)"나는 문제의 핵심은 신앙이 약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2003년 8월24일 EWTN과 가진 기자회견에서)

 

▲ 사제의 금욕에 관해: "오늘날 결혼과 자녀의 관계가 변화한 상황에서 이런 포기행위는 이해하기가 매우 힘들 것이다. 자식을 낳지 않고 죽는다는 것은 한때 쓸모없는 삶과 동의어로 여겨졌다...따라서 결혼과 가족의 포기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돼야 한다. 즉 인간적으로 말해 나는 가장 정상적인 것 뿐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나는 생명의 나무의 삶을 연장하는 것을 포기하고 나의 나라는 하느님이라는 신앙과 함께 살며 이로써 다른 사람들도 하늘의 왕국이 있다는 것을 보다 쉽게 믿도록 해 주는 것이다. 나는 말로써만이 아니라 이처럼 구체적인 존재의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증거하며 이런 형태로 내 삶을 그에게 맡기는 것이다"(1997년 출판된 "지상의 소금: 밀레니엄의 끝에 선 기독교와 가톨릭 교회: 피터 시월드와의 인터뷰"에서)"금욕이란 강제의 문제가 아니다. 사제로 받아들여지는 사람은 자발적으로 이를 행하는 사람이다" (같은 책에서)

 

▲ 동성애에 관해: 동성애자의 특별한 성향이 그 자체로 죄악은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는 내재적인 도덕적 악의 경향을 띠고 있으며 따라서 이런 성향은 객관적인 이상증상으로 간주돼야 한다""동성애자들이 말과 행동으로 맹렬한 악의의 대상이 돼 왔고 지금도 그러하다는 것은 개탄스럽다. 이런 대우가 어디서 벌어지든 교회의 사제들은 마땅히 비난해야 한다. 개인의 내재적인 존엄성은 직장에서든, 행동이나 법으로 존중돼야만 한다"(1986년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 보도)"남자와 여자는 인류의 미래를 함께 보장하게끔 창조됐다. 이는 단지 육체적 보장 뿐 아니라 도덕적인 보장도 말한다" (2004년 11월19일 Zenit.org에서)"우리는 자신만의 올바른 삶의 길을 찾고 싶어하면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해 큰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일종의 법적인 동성 간 결혼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이들에게 도움이 안 된다"
youngnim@yna.co.kr
(끝)
<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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