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관련

아직도 정연주에게 뭘 바라는 자가 있다

인쇄

이용섭 [979aaa] 쪽지 캡슐

2008-08-18 ㅣ No.7599

아직도 정연주에게 뭘 바라는 자가 있다
홍정기 문화일보 논설실장이 18일 쓴 시론
등록일자 : 2008-08-18 15:18:45     
 
문화일보 18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홍정기 논설실장이 쓴 시론 '정연주 하여가(何如歌)'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정,연,주 - 춘추사필(春秋史筆)은 이 성명3자를 KBS 전직 사장으로 기억할까, 전전직 한겨레 논설주간으로 기억할까. 꼭 열흘 전, 베이징 하계 올림픽 8일 개막식이 3000 제자의 죽간(竹簡)으로 받든 공자의 ‘춘추’처럼 대의명분을 밝혀세우는 사필이라면 뒤쪽으로 기울 것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한겨레는 역시 ‘정연주의 한겨레’다. KBS는 ‘KBS 한때의 정연주’는 몰라도 ‘정연주의 KBS’랄 것까진 아니다 싶다, 아무래도.

‘정연주의 한겨레’, 그렇다. ‘춘추’의 공자와 그의 3000 제자들이 중원의 혼(魂)으로 살아나던 8일, KBS 최고의결기관 이사회가 정연주에 대해 ‘감사원의 해임 요구에 따른 해임 제청 및 이사회 해임 사유에 따른 해임 제청안’이라는, 한마디로 사장답잖고 사장같잖아 그만두고 그만 나가게 하자고 하자 이튿날 한겨레 사설이 ‘해임 제청은 원천 무효’라며 법·절차·상식 무시한 ‘언론 쿠데타’를 그만두라고 했다 해서 ‘정연주의 한겨레’라는 것만은 아니다. 필자는 3개월 3일 앞서 5월15일, 창간 20돌 한겨레가 ‘모두가 침묵할 때, 그들의 외침이 세상을 깨웠다’면서 정연주를 그 일필(一筆)로 꼽은 사실을 먼저 든다. 염량(炎?U), 원래 그 말뜻 그대로 무더워 짜증스러우면서 시신의 냉기까지 스멀스멀 스며 있었기에.

그날 한겨레는 정연주를 ‘스타 필진의 시대’를 연 사람, 시대를 앞서 희망을 말해 언론 개혁의 논쟁 그 중심이었다고 받들었다 - “…‘정연주 칼럼’을 선명하게 각인시킨 것은 ‘조폭 언론’이라는 말이었다. 2000년 10월11일 ‘한국신문의 조폭적 행태’란 글을 시작으로 25일, 11월8일 세 차례에 걸쳐 쓴 ‘조폭 언론’ 시리즈는 언론개혁의 공감대를 확산시켜 국민운동을 이끌었다.” 한겨레가 이처럼 ‘조폭’ 운운의 2000년 글들을 소개하면서 2년 뒤의 ‘화제작, 출세작’ 시리즈를 외면한다면 그 또한 조폭적 필순(筆順)이다.

필자의 2003년 7월5일 문화일보 ‘오후여담’ 제목은 ‘신의 아들 정연주’였다 - “며느리나 딸이 아이를 낳을 때쯤이면 미국으로 건너가 갓난 아이에게 미국 국적을 취득하게 만들고, 끼리끼리 알고 있는 병역면제의 길을 찾아내고…”(2002.8.9) “현역 3년을 꼬박 때우는 힘없고 ‘빽’없는 자식들은 ‘어둠의 자식’, 방위로 때우는 사람은 ‘장군의 아들’, 면제자는 ‘신의 아들’이라고 한다. ‘어둠의 자식들’이라고 불리는 수많은 젊은이들은…난장판 같은 현실세계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8.23)라던 정연주(였)다. 그러나 세 부자(父子) 중 어느 누구도 군대는 안간 사실이 드러나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아 필자도 정연주식으로 묻는다 - 현실세계는 난장판 같은 그 인생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한겨레처럼 ‘역사 20년을 빛낸 필진’이라 한다면 신의 아들과 그 아들들이 얽혀진들 뭐 어떠냐는 식이다.

첫째 글이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병역 문제를 공격하기에 그럴 듯한 화력이어서 그랬는지 2주 뒤 그 글로 내달았고, 그 겹겹 위선의 보위로 당선된 노무현 후보가 만사 제쳐 ‘정연주의 한겨레’부터 방문하고, 취임 2개월 만인 이듬해 4월28일 KBS 사장직으로 보은했으니 그 위선의 메트릭스엔 한겨레와 KBS가 그리 멀지 않다. 혹 같은 좌표의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 그런 메트릭스 아니라면 KBS 사장 정연주가 2005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당시 국내에서 일하던 장·차남을 두고 “(미국에서) 뿌리를 뽑아 (한국으로) 옮긴다는 게 불가능해서 (병역을 면제시켰다)…두 아들을 그리워하면서 살고 있다”고, 두 아들마저 속인 그렇고그런 거짓이 설 자리는 없다. 자신의 성명3자 걸고 쓴 글들이 위선의 출세작으로 드러나고 두 아들을 걸고 한 말도 그랬으니 정연주식 부정(父情)은 부정(不正)과 부정(不貞)의, 또 부정(否定)의 난장판이다.

정연주에게 아직 뭘 더 기대하는 듯한 ‘언론 쿠데타 갑강을변(甲强乙辯)’은 하여튼 ‘하여가(何如歌)’를 닮았다 -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자유민주·시장경제의 파수꾼 - 뉴데일리/newdaily.co.kr]
Copyrights ⓒ 2005 뉴데일리뉴스 - 무단전재, 재배포 금지

   -->


17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