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동성당 게시판

주님 공현 대축일에 드리는 넷째 왕의 예물

인쇄

이순옥 [yimariaogi] 쪽지 캡슐

2008-01-07 ㅣ No.7854

      오늘은 주님공현 대축일입니다. 우리는 해마다 새해 첫 주일을 주님 공현 대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류의 구세주로 오셨음을 공적으로 선언하는 날입니다. 공현이란 공적으로 드러낸다는 뜻으로서, 주님의 영광이 온세상에 공적으로 드러남을 뜻합니다. 공현 대축일은 동방의 세 박사들이 별을 보고 쫓아와 말 구유에 누워계시는 아기 예수님께 경배함을 통해, 주님께서 온세상 사람들의 구세주로 드러나신 것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따라서 오늘은 예수님이 모든 사람의 메시아시라는 사실이 드러난 사건을 기념하는 날로, 작은 성탄이라 하기도 하며 성탄의 기쁨이 절정에 달하는 때입니다. 황금과 유황과 몰약. 이 세가지 선물은 동방박사 세 사람들의 믿음을 나타냅니다. 그 아기가 세상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왕이시고(황금-길) 하느님의 아들이시며(유향-진리) 죽음을 넘어 부활에로 이끌어가시는 분임을(몰약-생명)말해줍니다.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와서 아기 예수님을 경배했던 이들은 자기 고장으로 되돌아 갔다 합니다. 그 길은 헤로데가 알려 달라는 부탁에 따른 길이 아닌 천사가 일러준 길로 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그들이 이제 구세주를 만나 뵈었기에, 완전히 다른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변화 되기 때문입니다. 동방의 세박사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눈에 띄게 큰별이 헤로데를 비롯한 왕궁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현실적인 삶만을 바라보고 있던 예루살렘사람들, 자신의 권력에 집착하고 있었던 헤로데와 그의 측근들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아기 예수님의 별을 볼 여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현실의 안락한 삶에 머무르고, 오히려 그것을 지키기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연약한 어린아일뿐인데도 그들의 현실적 안녕을 지키기위해 그들은 그들의 잔혹한 폭력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구세주의 탄생을 알리는 범상치않은 별빛을 보지못한 것은 일상에 안주하려는, 현실에 대한 집착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성탄절이 되면 기억나는 연극이 있습니다. 넷째 왕의 전설이란 성극이었습니다. 내용은, 성경에 기록된 세 동방박사(三王) 이외에 구세주 예수님께 경배하러 오려던 한 사람의 왕이 더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넷째 왕은 정성껏 예물을 준비하여 주님께 경배 드리러 떠나지만 길에서 만나는 여러상황에서 사랑을 베풀고 선행을 행하느라 그만 다른 세 왕과 함께 아기 예수님께 경배 드리지는 못합니다. 세월은 흘러 넷째 왕은 우여곡절 끝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을 만나뵙고 자신의 뒤늦은 방문에 관한 사연을 말씀드립니다. 그러자 주님은 당신은 이미 그 왕을 만났으며 가장 귀한 예물을 바쳤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그는 아닙니다. 주님, 제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것을 보고 먹을것을 드렸고, 목마르신것을 보고 마실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것을 보고 입을것을 드렸습니까? 저는 33년간 당신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 얼굴을 뵙지도 못하였고, 저의 왕이 되시는 당신을 섬긴일도 없습니다. 그러자 아주 멀리서 속삭이는듯한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내가 진실로 말한다. 너희가 내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것이다. 넷째 왕은 미소를 지으며 숨을 거둡니다. 왜냐하면 그는 주님께서 자신의 선물을 받아 주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세 동방의 박사들을 이끌던 별빛은 오늘 우리에게도 비춰질것입니다. 구세주 아기 예수님을 향한 아름다운 별빛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단란한 가정의 소중함으로, 부모의 모습으로, 은인들의 모습으로, 사랑스런 자녀의 모습으로, 또 진리를 탐구하는 학자의 모습으로, 정의에 목말라하는 의인의 모습으로, 고통받는 이웃의 모습으로, 혹은 상처입은 이들의 모습으로, 또는 외로움과 두려움으로 떨고있는 이들의 모습으로 우리 주변에 비춰질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의 일상속에서 현실에 안주하는 무뎌진 마음때문에 우리가 알지못하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현실적인 이익에 얽매여 우리가 보지못하고 사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가준비할, 아기 예수님께 드릴 예물은 다름 아닌 우리의 깨어있는 마음입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열려있는 마음입니다 -중계동성당 양권식 시메온 본당 신부님 강론 내용중에서 ♬ ~ Turning....Suzanne Ciani


114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