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자료실
2010.10.22 아름다운 쉼터(아버지와 신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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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신발(정호승, ‘너를 위하여 나는 무엇이 될까’ 중에서)
아버지는 언제나 내 발보다 큰 신발을 사 주셨다. 처음에는 키가 쑥쑥 자라니까 일부러 큰 신발을 사 주시는 줄 알았다. 또 가난한 형편에 조금이라도 더 오래 신으라고 그러시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무슨 신발이든 그리 오래 신지 못했다. 내 발이 채 크기도 전에 신발이 먼저 닳아 버렸다. 품질이 나빴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껴 신어도 금세 닳아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을 기회란 거의 없었다. 나는 언제나 그게 불만이었다. 신발이 벗겨질까 봐 조심스럽게 걷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번은 학교 운동회 때 큰 신발을 신고 달리기하다 꼴찌를 한 적도 있다. 나는 자연히 걸음걸이가 느려졌으며, 아무리 급해도 뛰어가는 일이 드물었다. 그 뒤 어른이 되어 이번에는 내가 아버지에게 신발을 사 드렸다. 아버지 회갑을 기념하기 위해 어느 구두 가게에 들른 나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아버님이 한 치수 큰 구두를 사세요.” 그러자 아버지가 빙긋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내가 네 발보다 큰 신발을 사 준 것은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어서였다. 항상 여유를 가지고 살라는 뜻이었지. 자기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바쁘게 사는 것보다, 조금 헐거운 신발을 신고 여유 있게 걸어 다니며 사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