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성당 게시판

새벽길 마을버스 운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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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옥 [veron97] 쪽지 캡슐

2002-03-14 ㅣ No.4280

             [새벽길 마을 버스 운전사]

 

 

 

  며칠 전, 무척이나 가슴 뭉클했던 새벽녘의 일이었습니

 

다. 퍽이나 조심스럽게 빈 버스를 보도 쪽에 바짝 댄 기사

 

아저씨가 갑자기 반대편 도로를 살피더니 차에서 내렸습

 

니다.

 

  차에 이상이라도 생긴건가 궁금해하던 제 시선은 어느 할

 

머니 한 분에게 옮겨졌습니다. 아저씨는 할머니 옆에 있던

 

커다란 짐 보따리를 어깨에 지고서는 할머니를 부축해서

 

버스로 모셨습니다. 그제서야 서둘러 운전석에 앉은 아저

 

씨는 뒤따라 탄 내게 멋쩍은 미소를 지으시며 기다리게 한

 

것을 미안해하셨습니다.  "할머니, 내일도 이 시간에 장사

 

나가실 거죠?"  친아들인양 정이 듬뿍 담겨 있는 기사 아저

 

씨의 말과 아무 말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시는 할머

 

니...........

 

   그 기사 아저씨는 그동안 계속 새벽녘 장사를 나가시는

 

이 할머니 짐을 실어 편히 모시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아

 

저씨의 서글서글한 미소는 쉽사리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몇 정거장을 지나 할머니는 나보다 앞서 내리시게 되었습

 

니다. 다시 반대편 차선을 살피며 내리시려던 아저씨께 용

 

기를 내어 내가 도와드리겠노라고 말씀드리곤 할머니를

 

부축해드렸습니다. 가파른 경사까지 짐을 들어드리고 다

 

시 타는 내게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흰 박하사탕 두어 개를

 

내미셨습니다. 할머니가 매일 한두 개씩 손에 쥐어주셨다

 

는 사탕이 운전석 한켠에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손바닥

 

에 쥔 사탕에 가슴 한쪽이 따스해지는 것을 느겼습니다.

 

 

 

               -그대 지금 어디에 제 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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