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성당 게시판

아주 작은 생명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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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경아 [castle] 쪽지 캡슐

1999-06-09 ㅣ No.387

풀꽃이 살아가는 이유

           

사람들과 자동차로 가득한 도시의 한 복판에 이름모를 풀꽃 하나가 피

어 있었습니다. 풀꽃은 도로의 한 켠, 숨 막히게 박혀있는 보도블록 사이

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하루에도 수백명 씩 풀꽃의 곁을 지났지

만, 관심을 가지고 풀꽃을 보아주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어쩌다 말을 건네오는 사람들조차 동정어린 말을 하거나 조롱을 보낼 뿐

이었습니다.

 

"너는 왜 이곳에 피어있니? 넓은 들이나 산들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이 삭막한 도시에 피어있는 거야? 너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겁나지도 않니? 사람들은 너처럼 작은 풀꽃쯤은 아무렇지도 않

 게 밟고 지날 수 있다구. 너는 숨막히지도 않아? 빈틈없이 박혀있는 보도

 블록은 너의 여린 마음을 거침없이 짓눌러 버릴 수 있단 말이야."

 

그들의 말은 하나도 틀릴게 없었습니다. 풀꽃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

었습니다.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쏟아주지 않았을 때의 외로움과 슬

픔. 날마다 경쟁하듯 바쁘게 움직이며 자신의 존재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두렵기도 했구요. 무엇보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제

대로 숨조차 쉴 수 없을 만큼 너무 비좁고, 꽉 막혀있음을 풀꽃은 누구보

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풀꽃은 또 알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자신에겐 관심을 쏟아주지 않지만,

자신은 어느 누구에게나 관심과 사랑을 줄 수 있음을. 만일 자신의 환경을 원망하고, 두려움에 짓눌려 이 세상을 떠나버린다면 이 도시는 지금보다도 더 삭막하고 메마른

곳이 되어 버릴 것임을 풀꽃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하겠지요.

"이 곳은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피어나지 않는 죽은 땅이야."

 

그래서 풀꽃은 보도블록을 부시듯 피어나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에게는 당신들이 모르는 많은 친구들이 있어요. 밝은 햇빛과 떠도

 는 바람, 때맞춰 찾아오는 시원한 빗줄기와 한 줌의 공기가 나의 오래된

 친구들이지요.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살아갑니다. 만일 내가 이곳을 떠나

 버린다면 다시는 그들을 만날수도, 만질수도 없으니까요. 당신들에겐 내

 가 하잘것 없는 꽃에 불과하지만, 그들에게 나는 특별한 존재랍니다. 내

 생명을 위해 어김없이 나를 찾아주는 그들에게 나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

 인 소중한 존재랍니다."

 

여러분은 풀꽃보다도 훨씬 더 소중하고 특별한, 이 세상에 단 하나뿐

인 값진 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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