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매년 재의 수요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재의수요일> 788_ 1444_piety good_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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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7 ㅣ No.2166

 

[내용 추가 일자: 2024년 2월 14일] 

게시자 주 1: (1) 오늘의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동영상은 게시자 주 3 다음에 있습니다.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64.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341.htm <----- 필히 시청 요망

 

"KF94 마스크 미착용, 착용 시의 커다란 차이점을 잘 보어주는 실험 동영상들 - 오미크론 출현 이전인 2021년 10월 14일에 확보한 자료들임" 제목의 졸글에 추가된 중요한 방역 수칙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자 주 2: [첫 공지 일자: 2022년 7월 17일(다해 연중 제16주일)]

(1) [PC 혹은 노트북의 경우]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제시된 이들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 본문들을 눈으로 읽으면서 이들을 또한 귀로 듣고자 할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하십시오: 바로 아래의 주소를 클릭하면, New American Bible (NAB)에서 발췌된 오늘의 영어 전례성경 본문(즉,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들을, 화답송 등과 함께, 청취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이어지는 제(2)항 으로 이동하여 안내대로 하십시오.][원 출처: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http://ch.catholic.or.kr/pundang/4/common/Lenten/ash_wed_mp3 <----- 여기를 클릭하라  

 

[스마트폰의 경우]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제시된 이들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 본문들을 눈으로 읽으면서 이들을 또한 귀로 듣고자 할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하십시오:
(i) 위의 주소를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고 가만히 있으면 가지게 되는 작은 메뉴판 한 개에서, 다른 브라우저로 열기를 선택하십시오. 그런 다음에, (ii) 사용 중인 스마트폰에 이미 열려있는 본글의 브라우저를 찾아서 거기로 이동한 후에,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있는 주소를 누르면, 이들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 본문들을 눈으로 읽으면서 이들을 또한 귀로 들을 수 있습니다.

 

2006년 12월 10일(다해 대림 제2주일)부터 지금까지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안내된 English Bible Study 까페[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영어 성경공부 자료실]에서 필자가 지속적으로 전달 제공해온 자료이므로, 여기에 진작에 올려드릴 수도 있었으나, 혹시라도 거부감을 가지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그동안 그러지 않았던 것인데,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바로 위의 제(1)항에서 듣게 되는 NAB에서 발췌된 영어 전례성경 본문들 등을 또한 눈으로 직접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lub.catholic.or.kr/community/asp/club/attboard/read.asp?type=attboard&schcode=pundang4biblestudy&seq=8&id=1318 <----- 또한 필독 권고   

 

이것도 또한 여기에 진작에 올려드릴 수도 있었으나, 혹시라도 거부감을 가지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그동안 그러지 않았던 것인데,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3) 바로 위에 제(1)항 및 제(2)항 제공의 정보들을 반복적으로 꾸준히 함께 활용하면영어 듣기 및 읽기 능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2 끝)

[이상, 2024년 2월 14일자 내용 추가 끝] 

 

[내용 추가 일자: 2022년 3월 4일]

게시자 주 3: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매년 사순 시기의 첫 시작일인, "재의 수요일"(Ash Wednesay)에 대한 졸글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Ash_Wednesday.htm <----- 또한 필독 권고

[이상, 2022년 3월 4일자 내용 추가 끝]

  

 

매년 재의 수요일 온라인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동영상 청취 주소: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55/재의수요일.mp4 <----- 여기를 클릭하여 청취(聽取) 혹은 시청(視聽)하십시오

가해/나해/다해 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동영상 목록: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13.htm  
동영상 교재: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나해 I, 가톨릭출판사, 2008년; 다해 I, 가톨릭출판사, 2009년

동영상 교안(敎案)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66.htm

 

 

시작 기도: 대성호경, 주님의 기도

 

이 십자성가 표적(表迹)으로써, (이마 위에 +)

우리의 주님이신 천주께서는 (입 위에 +)

우리의 원수들로부터 우리를 구하소서. (가슴 위에 +)

성부와 (이마 위에 손끝을 찍음) 

성자와 (배 위에 손끝을 찍음) 

성령의 이름으로. (왼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은 후에 그리고 곧바로 직선으로 이동하여 오른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음)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들을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복습 0: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미 그리스도인들인 새 교우/세례 준비자(Catechumens)들을 위한 세례명 선정 안내의 글[제목: 축일표에 따른 성인, 성녀 모음으로 바로가기.. [세례명 선정시 꼭 참고]; 게시일자: 2003-03-08] 등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50.htm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주일 전례성경 학습자들을 위한 입문자료 모음 동영상을 청취할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세례를 받으신 교우님들께서 꼭 청취하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79.htm <----- 필독 권고

 

복습 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실재론(realism)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에 대하여, 실재론을 인정하는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그리스도교 부활 신앙 등을 인정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제목의 글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78.htm

 

복습 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하느님이 한 말단인, 적어도 3자들 사이에 있어, "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49.htm <----- 필독 권고

 

복습 3: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판단과 절차에 있어] (수용된) 올바름’(rectitude)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89.htm <----- 필독 권고

 

복습 4: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악"(evil), "윤리적 악"(moral evil), "죄"(sin), 원죄"(original sin) 등의 용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8.htm  <----- 필독 권고

 

복습 5: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시기"(jealousy)"질투"(envy)의 차이점에 대한 글들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envy_vs_jealousy_concept_error.htm <----- 필독 권고

 

복습 6: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자/하느님의 아드님"(the Son of God)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0.htm <----- 필독 권고

 

복습 7: (i) ‘그리스도의 복음’(the gospel of Christ)은 곧 ‘하늘 나라의 도래’(the coming of the kingdom of heaven)를 말한다(LG 5).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하늘 나라(천국)"(the kingdom of heaven)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80.htm <----- 필독 권고

[제목: 하늘 나라(천국)의 흔적이 있는 곳과 지상의 그 현존처는 구분하여야]

 

(iii) 더 나아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 성서 신학, 영성 신학 등에 있어 가장 중요한(the most important), '그리스도의 복음'(the Gospel of Christ)의 핵심(core)인, 초자연적 상태를 나타내는, ‘천국’(天國), 즉, ‘하늘나라’, 즉, ‘하늘 나라’(the kingdom of heaven)라는 차용 번역 용어의 정의(definition) 및 출처 등을 학습할 수 있다. 특히,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천당’(天堂, heaven)은 ‘천국’(天國, the kingdom of heaven)의 옛말이 아님을 항상 기억하면서, 필독 학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76.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77.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87.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96.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54.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80.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KH_JohnPaul_II.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H_concept_errors.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H_translation_errors.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ingdom_of_heaven.htm

 

복습 8: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구속(救贖)/속량 신비’(the mystery of redemption)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1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0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29.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69.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redemption_objective_vs_subjective.htm <----- 필독 권고


복습 9: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heart), 즉, 성체 성혈에 의하여 구약 성경의 유관 예언들이 구현된 그리스도교 고유한 구속(救贖)/속량(Redemption) 신비와 관련하여, 구약 성경 및 신약 성경의 유관 부분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성경 용어인 ‘Cor/heart’을, 글자 그대로, ‘심장’으로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을 하지 않고, 대신에, ‘마음’(mind)으로 잘못 번역을 한 심각한 번역 오류에 대하여 지적하는 필자의 졸글들을, 꼭 읽도록 하십시오:

 

히브리서 9,28; 이사야서 53,12 :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51.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mon.htm

 

히브리서 10,7; 칠십인역 시편 40,6-8[7-9]: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3.htm 

[제목: 칠십인 역 시편 40,6-8 및 히브리서 10,5-7: 을 마련해 주셨다 vs 대중 라틴말본 및 마소라본 시편 40,7-9: 귀를 열어 주셨다???; 게시일자: 2020-06-15]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tue.htm

 

히브리서 10,12; 시편 110,1: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wed.htm 

 

히브리서 10,17; 예레미야 31,33-34: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wed.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01.htm <----- 필독 권고 

[제목: 하느님께서 접촉하시는 우리의 신체 부위는 어디?; 게시일자: 2015-01-07]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04.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16.htm <----- 필독 권고

[제목: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의 우리말 번역 작업 자체가 해석/주해 작업이어서는 아니 됩니다; 게시일자: 2015-02-17]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lent_5.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8.htm  


복습 10: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516항, 제517항, 그리고 제518항에서, (i) 성부 하느님의 계시, (ii) 구속(救贖)/속량 신비, 그리고 (iii) 총귀(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신비로 구성된다고 가르치는, 예수님의 신비/오적(奧跡)(mysteries)들에 공통인 특징들 중의 하나인, 이 세상의 질서가 아담과 하와가 원죄를 범하기 이전의 원 상태, 즉, ‘코스모스(cosmos)’로 회복되기 시작하였음을 말하는, 예수님의 부활에 의하여 이미 개시된, 성경 용어인 ‘총귀(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recapitulation, recapitulatio)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필독하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recapitulation_of_St_Irenaeus.htm <----- 필독 권고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새 창조’의 핵심 성경 용어인 'recapitulation/recapitulatio'의 차용 번역 용어로서 채택된 ‘총귀(總歸)’라는 용어의 출처와 기원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15.htm  <----- 필독 권고

 

복습 1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은총"(grace)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7.htm <----- 필독 권고

 

복습 1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영광"(glory) 이라는 용어와, "영광을 발하는"(glorious), "영광을 더하다"(glorify), "자랑하다"(glory in) 등의 그 파생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5.htm  <----- 필독 권고

 

복습 13: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년)"신학 대전"(Summa Theologiae)에 제시된 '애덕'(charity)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한 글[제목: 애덕(charity)이라는 덕; 게시일자: 2013-11-04]을 학습할 수 있다[본문 중에 포함된 key word: Christoph Cardinal Schönborn]: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65.htm  <----- 필독 권고

 

복습 14: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 성서 신학, 그리고 영성 신학에 있어 핵심 용어인 '완미(完美)'(perfection)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erfection.htm <----- 필독 권고

 

복습 15: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의로움/올바름’(righteousness)‘정의’(justice)의 차이점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묵상 동영상을 꼭 청취하도록 하라. 특히, ‘정의로운 자(the just)들’ 중에서만 오로지 ‘의로운 자(the righteous)들’이 있을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21.htm

 

(ii) ‘의로운 자들’(the righteous), 즉, ‘의인들’‘의로운 일들’(piety), 즉, ‘선행들’(good works)을 실천한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있을 수 있는데,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예수님께서 직접 나열하신 ‘의로운 일들’, 즉, ‘선행들’에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iety.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good_works.htm <----- 필독 권고

 

복습 16: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credere Deum’(信天主, 신천주), ‘credere Deo’(信賴天主, 신뢰천주), 그리고 ‘credere in Deum’(信仰天主, 신앙천주)의 차이점에 대한 글을 학습할 수 있다. 대단히 중요한 내용이므로 필히 학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8.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9.htm <----- 필독 권고

(이상, 복습 끝) 

 

 

<재의수요일> 재의 수요일

 

요엘 2,12-18; 마태오 복음서 6,1-6.16-18; 2코린토 5,20-6,2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나 I, 제257-266쪽; 다 I, 제277-286쪽 

 

오늘의 제1독서 중에서:    

 

 "... 심장(heart)을 다하여 나애게 돌아오너라, ... 너희의 옷이 아니라 너희의 심장(hearts)들을 찢어라." (요엘 2,12-13)

 

오늘의 복음 말씀 중에서: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piety)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마태오 복음서 6,1)

 

오늘의 제2독서 중에서: 

 

"여러분들이 헛되이(in vain) 하느님의 은총(grace)을 허용하지/받아들이지(accept) 않을 것을 우리는 간청합니다"(*) (2코린토 6,1)

 

-----

(*) 번역자 주: 바로 이 2코린토 6,1 본분 자체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다음의 주소에 접속한 후에, 가톨릭 교회의 교황 교도권에 매우 충실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오늘의 제2독서에 대한 해설을 꼭 학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ash_wed.htm <----- 필독 권고

----- 

 

오늘의 전례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학습하기 위하여,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합시다.  

 

[내용 추가 일자 2022년 3월 4일]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요엘서 2,13.14에서 "하느님께서 후회하셨다" 혹은 이와 등가의 의미로 번역된 우리말 표현에서 "후회"의 의미가 "인간들의 후회"의 의미와 결코 동일하지 않음을 지적하는 글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73.htm <----- 꼭 필독 권고

[이상, 2022년 3월 4일자 내용 추가 끝]

 

A. 예루살렘은 모리야 산(Mount Moriah)과 시온 산(Mount Zion) 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성전 (Temple)은 모리야 산 위에 위치하고 있다. 다음은 설명은 본 해설서 시리즈의 가해-I 대림 제1주일 제1독서(이사야 2,1-5) 해설에서 발췌한 것이다: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의 정확한 위치는 예루살렘의 동쪽 언덕의 북쪽 부분으로서, 성전의 자리이다[모리야 산(2역대기 3,1)]. 예루살렘은 (동쪽과 서쪽의) 두 개의 언덕에 지어졌다. 시온이란 이름은 서쪽에 위치한 언덕에 붙여졌는데, 이 언덕은 동 쪽에 위치한 언덕보다 넓고 또 높다. 고고학적 발굴 및 고대 예루살렘에 있었던 단 한 개의 샘, 즉, 기혼 샘이 동쪽 언덕의 키드론 골짜기 쪽에서 발견된 사실은 이 도시가 처음 에 성전의 남쪽에 위치한 동쪽 언덕에 지어졌음을 말해준다. 기원전 740년경에 바위를 파서 만들어진 약간 경사진 터널을 통하여 아직도 기혼 샘의 물이 실로암 연못까지 흐르고 있는데, 길이가 500m 이상인 이 터널 수로 옆길을 걸어가면 실로암 연못이 나타난다. ‘성서의 시온’(the Biblical Zion)은 동쪽 언덕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즉 기원전 1,000년경에 지어진 다윗의 도성(City of David, 현재의 지명은 Ophel)와 서쪽 언덕에 위치한 성벽 없는 주거지역 범위를 의미한다고 추측되어 왔다.(*)

 

[내용 추가 일자: 2024-02-14, 재의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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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진짜 시온 산의 위치는 1세기에 생존한 역사가 요세푸스도 모르고 있었으며, 19세기 중반 이후에 우연히 시작된 찾아내는 과정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성경의_시온_산_vs_요즈음_불리고_있는_시온_산_2819.htm <----- 필청/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821.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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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2024-02-14일자 내용 추가 끝]

 

B.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마태오 복음서 6,1에서 ‘의로운 일’로 번역된, ‘piety’(NAB, RSV 등. 즉, ‘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일들에 대한 충실’)이라는 용어의 역사적 배경,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44.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iety.htm

 

C. 복습 1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은총"(grace)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7.htm <----- 필독 권고

 

D.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하느님께서는 그대에게 은총(graces)들로써 장차 보상해(reward) 주실 것이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010항 참조]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의 글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11.htm

 

E.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제2절에 있는 ‘은혜로운 때’라는 납득할 수 없는 번역 오류에 대한 지적의 글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67.htm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수용될 수 있는 때'/'허용되는 때'(the acceptable time)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더 자세한 해설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ash_wed.htm 

 

F.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교회의 교황 교도권에 매우 충실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오늘의 독서들에 대한 해설들을 학습할 수 있으며 필독을 권고드립니다. 일부 해설들의 우리말 번역은 필자가 한 것입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ash_wed.htm <----- 꼭 필독 권고

 

G.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lerus/homilies/ash_wed.htm <----- 전문 필독 권고

[주: 교황청 성직자 및 수도자들을 위한 홈페이지 제공]

(발췌 시작) 

THEME OF THE READINGS


오늘의 독서들의 주제

 

Today is the beginning of Lent, a time of penance and reconciliation. The readings of this Wednesday stress, above all, inwardness, a repentant heart, and reconciliation. In the penitential liturgy of the first reading, God tells us through the prophet Joel: "Return to me with all your heart, ... and rend your hearts, and not your garments." In the Gospel, Jesus invites us to put externals to one side and pray, fast. and give alms "in secret," that is, from the interior of our heart. The reconciliation Saint Paul speaks about in the second reading means, above all, creation by another, a remaking of one's interior.

 

오늘은, 참회(penance)와 화해(reconciliation)의 기간인, 사순 시기의 시작입니다. 바로 이 수요일 독서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내적인 것(inwardness), 회개하는 심장(a repentant heart), 그리고 화해를 강조합니다. 제1독서의 참회의 전례에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예언자 요엘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 심장(heart)을 다하여 나애게 돌아오너라, ... 너희의 옷이 아니라 너희의 심장(hearts)들을 찢어라."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외관(externals)을 한 쪽에 내려놓고, 그리고, "몰래"(in secret), 즉, 우리들의 심장(heart)의 내면(interior)으로부서, 기도하고, 단식하며, 그리고 자선을 제공하라고 권유하십니다(invites). 제2독서에서 성 바오로가 말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당사자의 내면의 어떤 개조(a remaking)인, 다른 이에 의한 창조(creation)를 의미합니다.

 

DOCTRINAL MESSAGE 


교리 메시지

 

The greatness or misery of a person is measured by the greatness or misery of his heart. A person is forged in the interior, in good or bad thoughts, in good or evil decisions, in just or unjust behavior, in truthful or deceptive words. Jesus Christ has come into the world to change mankind from within, so that his works are a true expression of his heart. In face of the behavior of his contemporaries, marked by ostentatious display, Jesus assumed an attitude of perfect harmony with his conduct and his teaching. The works that Jesus mentions are good and praiseworthy, but any form of ostentation is to be reproved, because it is not done for God but for human recognition. To "give alms" is a good thing, but to give alms to be appreciated by others and have our generosity praised, is not Christian. "Do not let your left hand know what your right hand is doing," Jesus Christ warned us. 

 

한 인격(a person)의 훌륭함(greatness) 혹은 불행(misery)은 그의 심장(heart)의 훌륭함 혹은 불행에 의하여 측정됩니다. 한 인격은, 내면 안에서, 선하거나 혹은 악한 생각(thoughts)들 안에서, 선하거나 혹은 악한 결정(decision)들 안에서, 정의롭거나 혹은 정의롭지 아니한 처신(behavior) 안에서, 진실한(truthful) 혹은 사기의(deceptive) 말(words)들 안에서, 단조(鍛造)됩니다(is forged).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를 안쪽에서부터 바꾸기(change) 위하여 이 세상 안쪽으로 이미 오셨으며, 그리하여 그 결과 당신의 말씀들은 당신의 심장(heart)의 참된 표현입니다. 겉보기를 꾸미는 과시에 의하여 명시되는(marked) 당신의 동시대인들의 앞에서/거슬러(in the face of),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처신(處身, conduct) 및 당신의 가르침과 완미한 조화(perfect harmony)의 태도를 취하셨습니다(assumed).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일들은 선하며(good) 그리하여 칭찬할 만 하나, 그러나 겉보기(ostentation)의 어떠한 형태도 제거되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러한 형태는 하느님을 위하여서 행해진 것이 아니고 인간의 알아차림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선을 제공하는" 것은 한 개의 선한 일이나, 그러나 다른 이들에 의하여 고맙게 여겨지기 위하여 자선을 제공하고 그리하여 우리의 관대(generosity)가 칭찬을 받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인다운(Christian) 것이 아닙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여라"라고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Let us do good for the love of God the Father, whose face is reflected in the poor and those who need our money and our fraternal love. "Prayer" and "fasting"" are two great works, when done with right intention, without wishing to call attention, with the desire to please God the Father and to serve our brothers. True conversion is not in fasting, praying and almsgiving, but in doing these with a renewed heart, free from egoism and personal interests. The attitude of Christ follows upon that of the prophets, especially the text of the prophet Joel, in the first reading. The penitents of those times rent their garments to show their sorrow and repentance. Joel tells them it is far more important to rend their hearts and to sorrow for their sins. As St. Paul points out in the second reading, the early Church followed the attitude and teaching of Jesus Christ. The new creature, emerging from baptism, is reconciled with God through Jesus Christ. The Apostles, who continue the work of Christ, are the ministers of reconciliation. In regard to the minister, he exhorts: "We entreat you not to accept the grace of God in vain." This is a very appropriate exhortation at the beginning of Lent. 

 

[우리에 대한] 성부 하느님의 사랑을 위하여 선(good)을 행하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가난한 자들 그리고 우리의 돈(money) 및 우리의 형제애다운 사랑(fraternal love)을 필요로 하는 자들 안에서 당신의 얼굴이 반향되도록(reflected). "기도""단식"은, 올바른 의향(intention)과 함께, 주의를 끌고자 하는 바람 없이, 성부 하느님을 기쁘게 하고자 하고 그리고 우리의 형제들을 섬기고자 하는 욕망(desire)과 함께, 행해질 때에 비로소, 두 개의 훌륭한 일들이 됩니다. 참된 회심/윤리적 변화(true conversion)는 단식 행위, 기도 행위 그리고 자선 제공 행위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but), 이기주의(egoism) 및 개인적 이익(personal interests)들로부터 자유로운, 한 개의 다시 새롭게 된 심장(a renewed heart)과 함께 바로 이들을 행하는 행위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태도는 예언자들의 바로 그것, 특별히, 오늘의 제1독서에 있는, 예언자 요엘의 본문, 뒤를 잇는 것입니다(follows upon). 바로 그 시대의 참회자들은 자신들의 슬픔(sorrow) 및 회개(repentance)를 나타내 보이기 위하여 자신들의 겉옷들을 찢었습니다(rent). 요엘은 그들에게 자신들의 심장(hearts)들을 찢는(rend) 것 및 자신들의 죄(sins)들에 대하여 슬퍼하는 것이 월씬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오늘의 제2독서에서 성 바오로가 지적하듯이, 초기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태도 및 가르침을 뒤따랐습니다. 세례로부터 부상하는(emerging), 새 피조물(new creature)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화해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일을 계속하는 자들인 사도(Apostles)들은 화해의 사목자(ministers)들입니다. 사목자에 관련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권고합니다: "여러분들이 헛되이(in vain) 하느님의 은총(grace)을 허용하지/받아들이지(accept) 않을 것을 우리는 간청합니다"(*) (2코린토 6,1). 사순 시기의 시작에 있어 바로 이 권고는 매우 적절한 권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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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바로 이 2코린토 6,1 본분 자체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다음의 주소에 접속한 후에, 가톨릭 교회의 교황 교도권에 매우 충실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오늘의 제2독서에 대한 해설을 꼭 학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ash_wed.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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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 3분 복음/교리 묵상

 

CCCC 300. 내면의 참회가 무엇입니까?
 CCC 1430-1433, 1490

 
내면의 참회(interior penance)는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기 위하여 거룩한 은총에 의하여 이끌려(drawn) ‘죄를 깊이 뉘우치는 심장(contrite heart)’(시편 51,19)의 움직임(movement)을 말합니다. 바로 이 참회는 저지른 죄들에 대한 슬픔/후회(sorrow) 및 혐오(abhorrence), 앞으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확실한 결심(purpose), 그리고 하느님께서 도와주심에 대한 신뢰를 필연적인 결과로서 수반합니다(entail). 내면의 참회는 [천주께서 항상 베풀어주시는 애덕(caritas, charity)의 한 종류인] 신성적 자비(divine mercy) 안에서 [당사자 자신을 위한 신성적 사랑(divine love)인] 희망(hope, 망덕)에 의하여 자라게 됩니다(nourished)(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sh_wed_c1430.htm

 

CCCC 301. 참회는 그리스도인의 삶 안에서 어떤 형태들을 취하게 됩니까?
CCC 1434-1439
참회(penance)는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만, 무엇보다도 먼저, 단식하고, 기도하고, 그리고 자선을 제공하는[마태오 복음서 6,1-6.16-18](*) 과정에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이들과 참회의 다수의 다른 형태들은 그리스도인의 일상의 삶 안에서 실천에 옮겨질 수 있는데, 특히 (교회법 제1250조에 의하여 정해진) 사순시기 중 및 매 주 금요일인 참회의 날(penitential day)에 실천에 옮겨질 수 있습니다.(엮은이 번역)

 

[내용 추가 일자: 2024-02-15]

(*) 번역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소위 말하는 물적 자선들 7개영적 자선들 7개의 성경 근거들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형신애긍지행14단의_성경_출처들_및_실천_사정들_3003.htm <----- 필청/필독 권고 

[이상, 2024-20-15일자 내용 추가 끝]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sh_wed_c1434.htm   

 

 

마침 기도: 성모송, 영광송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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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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