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2코린토 6,2에서 은혜로운 때??? 은혜 베풀 때??? 번역 오류 1242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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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7 ㅣ No.2167
1. 들어가면서
1-0. 다음은,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매년 재의 수요일에 미사 중에 제2독서로 발췌되어 봉독되는 2코린토 5,20-6,2에 포함되는, "새 번역 성경", 2코린토 6,1-2 전문입니다:
출처: https://maria.catholic.or.kr/bible/read/bible_read.asp?m=2&n=154&p=6 (발췌 시작) 6,1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2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이상, 발췌 끝)
1-1. 질문 1: 바로 위의 제1-0항에 발췌된 바에서, "은혜로운 때"의 의미가 무엇인지요???
이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우선적으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듯이, "은혜"(恩惠)는, 은총(gratia, grace)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선물"(gift)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55.htm <----- 필독 권고
예를 들어, "超性恩惠"(초성은혜, supernatural gift) 등.
1-2. 질문 2: 2코린토 6,2에서, "은혜로운 때"에 대응하는 그리스어 성경 용어, 영어본 성경 용어 등은 무엇인지요?
이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은혜(恩惠)로운 때"가, 특정 지역 언어와는 무관한,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이 된 성경 용어가 아니고, 의역 번역(free translation)이 된, 그리하여 어쩌면 우리나라에서만 오로지 사용되고 있는, 성경 용어일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1-3. 질문 3: 우리나라 천주교회에서 사용해 온 "신약 성경", 2코린토 6,2에서, "은혜로운 때"라는 번역 표현이 처음으로/최초로 사용된 시점은 언제쯤이고, 이 번역 표현이 사용된 성경은 어느 것입니까?
질문 3에 대한 간단한 답변: 2005년에 초간된 "새 번역 성경", 즉, "성경"입니다.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여 살펴보십시오: https://maria.catholic.or.kr/bible/compare/cmp_view.asp?m=3&n=154&p=6 <----- 필히 확인하도록 하라
게시자 주 1-3: 참고로, "200주년기념성서", 2코린토 6,2에서는,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듯이, "은혜로운 때" 대신에, "알맞은 때"로 번역되었습니다: https://maria.catholic.or.kr/bible/read/bible_read.asp?menu=bible&m=5&n=81&p=6
1-4. 질문 4: 2코린토 6,1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는,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요?
질문 4에 대한 답변: 다음에 발췌된 바는 2코린토 6,1-2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인데, 바로 이 질문 4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ash_wed.htm (발췌 시작) 1-10. St Paul concludes his long defense of his apostolic ministry (cf. 3:1-6:10) by saying that he has always tried to act as a worthy servant of God. First he calls on the Corinthians to have a sense of responsibility so that the grace of God be not ineffective in them (vv. 1-2), and then he briefly describes the afflictions this ministry has meant for him. Earlier, he touched on this subject (cf. 4:7-12), and he will deal with it again in 11:23-33.
1-10. 성 바오로는 자신의 사도로서의 사목 직무(apostolic
ministry)에 대한 자신의 긴 옹호(defense)를 하느님의 한 명의 가치로운 봉사자로서 행동하기 위하여 항상 노력해
왔다고 말함으로써 끝냅니다. 첫 번째로, 그는 코린토인들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그들 안에서 효능 없게 되지 않도록 책임의 감각을 가질 것을
부탁하며(call on)(제 1-2절), 그런 다음에 그는 자신의 경우에 바로 이 사목 직무가 의미해온 바인 역경(afflictions)들을 간략하게
기술합니다. 더 일찍, 그는 바로 이 주제에 대하여 손을 대었으며(4,7-12 참조), 그리고 11,23-33에서 또다시 이것을 장차 다룰
것입니다.
1-2. 성 바오로는 열심 신자들이 헛되이(in vain)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권고하는데, 바로 그러한 받아들임은, 만약에 그들이 자신들이 세례에서 받아들였던 믿음(the faith)과 초기 은총(initial grace)을 경작하지(cultivate) 않는다면 그리고 만약에 그들 쪽으로 하느님께서 계속하여 보내시는 은총들을 그들이 무시한다면(neglected), 발생할 것입니다. 바로 이 권고는 다음과 같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유효합니다: 성 프란치스코 드 살(St. Francis de Sales, 1567-1622년)은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을 우리의 심장의 입구(the gate of our heart)에서, 그것이 [심장 안쪽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함 없이, 받아들일 때에, 즉,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임 없이,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혹은, 열매 없이, 그것을 받아들일 때에, 우리는 헛되이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는 것인데, 왜냐하면, 만약에 당사자[의 자유 의지(free will)]가 그것에 동의하지(consent to) 않는다면,(*1) 이 고무(the inspiration)를 느끼는 것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기 떄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손들 안에 내복약(the medicine)을 가지고 있는 아픈 사람(the sick man)이, 만약에 이 약의 일부분만을 오로지 그가 내복한다면, 이 약으로부터 오로지 부분적으로만 장차 혜택을 입을 것임과 꼭 마찬가지로, 역시 또한, 당신의 사랑을 포옹하도록(embrace) 우리들을 움직이는 어떤 커다란 그리고 강력한(mighty) 고무(inspiration)를 하느님께서 [우리들 쪽으로] 보내실 때에, 만약에 우리가 그 전체로서 그것을 [우리의 심장 안쪽으로 수용(受容)하여] 이용(利用)할 수(avail of) 없다면, 우리는 마땅히 장차 오로지 부분적으로만 그것으로부터 혜택을 입을 것입니다" [성 프란치스코 드 살(St. Francis de Sales, 1567-1622년), "Treatise on the Love of God", book 2, chap.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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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고유한 "은총"(grace)이라는 신약 성경 용어의
전통적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다: (이상, 발췌 끝)
작성 중입니다
2. 유관 자료/사료 분석
작성 중입니다.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칠십인 역 그리스어 본 이사야서 49,8(영어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eptuagint/isiah49.htm (발췌 시작) Thus saith the Lord, In an acceptable time have I heard thee, and in a day of salvation have I succored thee (이상, 발췌 끝)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NAB (New American Bible), 이사야서 49,8을 읽을 수 있습니다: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__POW.HTM (발췌 시작) Thus says the LORD: In a time of favor I answer you, on the day of salvation I help you, To restore the land and allot the desolate heritages, (이상, 발췌 끝)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NAB(New American Bible) 본문에서 "acceptable"이라는 성경 용어가 사용된 절들 모두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1/ZZ.HTM
https://biblehub.com/isaiah/49-8.htm
https://biblehub.com/lexicon/2_corinthians/6-2.htm
대한성서공회 홈페이지 제공의 국내의 개신교회 측 신약 성경, 코린토 2서 6,2:
https://bible.fhl.net/new/ob.php?book=all&chineses=47&chap=6&sec=2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662-1707_장_바쎄/2코린토_6.htm (발췌 시작)
신지은_및_의시_in_1704_장_바쎄_로마_보존본_2코린토6_1-2_제302b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왼쪽에서 네 번째 열(column)부터 읽도록 하라.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1)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1704년경에 장 바쎄 신부님이 2코린토 6,1에서, "the grace of God", 즉, "하느님의 은총"으로 직역 번역되는 표현을, 중국어로 번역하면서, 대신에, "神之恩"(신지은)으로 번역하였음을, 즉, 2코린토 6,1에서, 영어로 "grace"로 번역되는 성겯 용어를 "恩寵"(은총)으로 번역하는 대신에, 낱글자 "恩"(은)으로 번역하였음 알 수 있습니다.
(2)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807년애 처음으로 그리고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선교사들에 의하여, 1813년 이후에 중국어로 번역된 한문본 성경들 모두의 2코린토서 6,1에서, "恩寵"(은총)이라는 직역 번역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神之恩", "上帝之恩", 등으로 번역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bible.fhl.net/new/ob.php?book=all&chineses=47&chap=6&sec=1 (3) 그런데, "神之恩"(신지은)을 우리말로 중역(double translation)을 하면 "하느님의 은혜"이며, 바로 이 중역된 번역 표현이,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듯이, 우리나라 개신교회 측의 신약 성경들 중의 2코린토 6,1에서, "하느님의 은총" 대신에, "하느님의 은혜"로 번역되는 데에 결정적으로 영햘을 주었다는 생각입니다:
(4) 그러나, 2코린토 6,1에서 중국어로 및 우리말로 번역되기 이전의 애초의 성경 표현은 "하느님의 은총"(the grace of God)이거나 혹은 이 표현과 논리적으로 등가이기(logically equivalent) 때문에,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압니다:
(이 글의 결론 ) 1704년경에 장 바쎄 신부님이 2코린토 6,1에서, "the grace of God", 즉, "하느님의 은총"으로 직역 번역되는 표현을, 대신에, "神之恩"(신지은)으로 번역한 것은, 그 흔적이 우리나라 개신교회 측의 신약 성경들 중의 2코린토 6,1에 지금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는, 번역 오류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74-1659_엠마누엘_주니오르_디아스/성경직해_권7_46_성신강림후제12주일_53-65.htm [주: 제52a쪽]
http://www.vatican.va/chinese/bibbia/antico-testamento/Isaia_zh-t.pdf http://www.vatican.va/chinese/bibbia/nuovo-testamento/II-Corinzi_zh-t.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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