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성당 장년게시판

부자가 된 들병 아주머니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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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철 [ch033] 쪽지 캡슐

2000-03-21 ㅣ No.622

 지난 12월 어느 토요일 아내와 같이 북한산 등반을 했다.하산 길에 한 음식점에서 점심을 들기로 했다. 겨울이고 토요일 이라  음식점에는 우리외엔  손님이 없었다. 실내는 한켠으로 사람 하나 누을만한 자리가 꾸며져 있었고 식탁과 의자가 몇개뿐인  너무나 초라한 모습이어서  잘못 들어 왔나보다  생각 하면서 간단한 식사를 시켰다. 막걸리 한잔이 생각 났으나 한 병은 혼자 마시기에 많은 것 같아 그만 두기로 하였다. 식사가 나오자 "한 잔 하세요" 하면서 주인 아주머니는  막걸리 한병을 따 갖고 와 내게   권하며 말을 걸었다.  말문을 트며 우리는 고향이 서로 멀지 않은 곳임을 알게 되었다. 아주머니는 "우리 남도 사람은 생활력이 강해서 어디가나 밥은 먹고 살아요." 하였다.

 나는 그 말이 처음에는 생활의 정도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그러나 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분 말씀의 밥을 먹는다는 것은 생존 그 자체를 이야기 하고 있었다.

 

 식당은 초라 했지만 뚝배기에 담겨 나오는 해장국은 푸짐했고 구수했다. 특히 밑반찬이 좋았다.

 

 식당의 앞쪽은 버스 주차장이고 뒤쪽은 물 흐르는 계곡이었다.내가 "물소리가 퍽 운치 있게 들린다"고 했더니 아주머니는 처음에는 차 소음과 계곡의 물소리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해서 많은 고생을 했다고 돌이켰다.지금은 다른 곳에 집이 있어 그 곳에서 잠을 자지 않아  고생을 않지만 오랜 동안 그 고생을 했다고 했다."지금은 부자가 되었지요.40평 짜리 집이 있고 이 가게가 있으니 나는 부자에요"하면서 미소 짓는  아주머니는 나이에 비해서 더 주름이 많아 보였다.

 

 "젊어서 혼자가 되어서 이 산에서 들병장수를 25년간 했어요.그 후 이 식당을 열어 10년째 하고 있지요."- 장장 35년을  장사를 하다 보니 먹고 살게는 되었단다. "자녀들은 두셨어요?" 하고 묻자 "아들 딸 하나씩인데 모두 결혼하여 따로 살림내 주고 혼자 산다"고 했다."그래도 저는 부자에요."라고 다시 자신있게 말했다. "예 부자시네요." 맞장구 치면서 나는 그 아주머니가 정말로 부자라고 생각했다.

 

 들병장수(소위 이동 주보)의 고생스러움은 군에 갔다온 사람은 더 잘 이해 하리라.그보다 누가 자기가 들병장수를 했다고 감히 고백(?)할 수 있을까?

이 아주머니는 처절한 자기 과거를 오늘 보상 받았다고  여기고 스스로 대견 해 하는 것이다.그리고 여유있는 미소로 나에게 막걸리 한잔을  권하고 있는 것이다.가장 소박한 인정으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많이 가진 사람은 더 많이 가지려 하고 적게 가진 사람은 없기 때문에 가지려 하고...,그래서 만족을 모르는 욕심은 끝없는 불화와 불행을 가져오지 않는가?

스스로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 자신부터 그러 하지 못 하거늘..

 진정한 부자는 많이 가진 자가 아니라 적지만 가진 것에 감사하며 나눌 줄 아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리라.

 자기의 땀과 노력의 결과에 진정으로 만족하는 이 아주머니의 모습에서   삶을 밝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진지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그 아주머니가 진정 행복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최근 나는 자신의 현재의 삶에 불만을 가진 친구들을 만날때 이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하곤 한다. 나는 이 아주머니가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성당에 다니시라"고 권하고도 싶었다. 그러나  아주머니의 모습은 분명 신앙인 이상으로  느껴졌고 풍요로워 보여 말을 참았다. 몇달이 지났지만 그 아주머니의 모습은 잊혀지지않는다. ... 사순 시기인 이때에 다시 한번 그 아주머니의 삶을 음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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