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성당 장년게시판

나의 영세식-그 때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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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진 [monicacho033] 쪽지 캡슐

2000-04-02 ㅣ No.708

나의 영세일

 

지난 가을부터 준비를 해서 4월9일날 영세하는 예비신자들을 봉사자들과  함께 만나 보며 6개월을  지냈다.

    그동안  교리를 맡았던 수녀님이 중간에 바뀌시고 성탄,신정,설등  갖가지 행사들이 많이 끼어 있어서 준비 기간이 충분치 않았고 예비신자들 스스로도 많은 공부를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어  걱정도 된다. 그러나 영세를 앞두고 걱정을 하는 예비 신자분들께 영세가 신앙생활의 완성이 아니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신앙생활의 출발"이라며  <영세= 냉담 생활>로 들어가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말씀 드리고 있다.

 지금은 평생 학습의 시대라고 하지 않은가. 교회에서도 평생 학습시대에 맞춰 각종교육이 진행되고 서적이나 열린 정보도 많아 새 영세자들이 영성을 단계적으로 키워 나갈 수 있는 기회가 풍부해 졌다는것을 생각하면 그나마  다행스럽다.

 

이 분들의 영세 준비를 보며 오랜전 내 기억의 필름 속에 남아 있는  나의 영세때의 일을 되새겨본다.

 

 휴전 다음해인 1954년. 당시 여섯살의  나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지금은 여섯살이면 유치원에 다닐 나이지만 6.25가 끝나고 난 뒤의 시골에는  아이들을 위한 유치원 시설도, 공간도 없었다.  또 재미있는 놀이 거리도 없는 상황에서  6.25로 입학이 늦어져 함께 놀던 두세살 또는 대여섯살 많은 동네  아이들이 모두  입학하자 나는 같이 놀  친구가 없어서 심심하다며 부모님을 졸라서 한달쯤 늦게  입학하고 난뒤였다.

 

 영세식은 부활을 지난뒤 있었던것  같다.

누렇게 빛바랜 영세 사진에 보면 뾰족한 용소막 성당 의 고틱 건물앞에 나와 두살터울의  남동생이  봄 햇살이 눈부셔서 상을 찡그리고 두손을 앞에 모은채 찍은 "령세 기렴" 사진 이 있다.  

 영세식때 어머니는 부랴 부랴 흰 치마 저고리를 지어 내게 입히셨다.  나와  남동생은   쪽 유리문을 통해서 햇살이 고요히 성당 안을 비추는 가운데  신부님의 어깨에 두른 영대(?) 비슷한 것을  각각 한 손에 하나씩 잡고  신부님께 인도되어 걸어 들어 갔던 것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그때의 가슴 두근거림, 두려움, 무언지 모르는 축복들,새 옷에, 새영혼에  때 묻힐까봐 두려워했던 날들...등이 생각난다.

 

 주일미사 뒤에는  강(지금의 주일학교)이 열렸고  내가  기도 경문과 10~20 조목의 교리 문답을  신부님 앞에 나가 딸딸 외면   아무리해도 경문이 외워지지않던  할머니 들은 혀를 끌끌 차며 신통하다고 부러워했고... 이국적이고  서양 냄새가 나는  근사한 상본을 상으로 받고 자랑스레 돌아왔다.

 

  당시는  미사때 영성체를 하려면 그 전날밤부터 공심재를 지켜야했고, 주일날 미사가 끝나면 성당밑 동네에 사는  교우촌 신자들은  십리,이십리 먼 길을 걸어온데다 공심재로 허기져있는   먼거리의 신자들을 위해 밥을 지어 아랫목에 파묻어 두었다가  점심을 대접하였다. 물자도, 식량도 풍부치않던 시절  정성으로 지은 점심을 대접 받으며 돌아가는 신자들은 정말 한 공동체를 느꼈고  사랑의 나눔을 실감할 수 있는  한 식구였다.

 

그때 정말 숱하게도 많은날 점심을 먹고 가라고, 몸 녹이고 가라고 먼길 돌아가는 신자들을  붙잡아 주시던  홍석중 바오로씨네 어머니를 생각한다. 우리 식구들은 친척이라는 미명하에  으례히 점심을 먹고 가는것으로 알았고  수 많은 대녀들에게 1년이면 쌀  몇 가마는 더 먹였을  그 아주머니의  사랑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리고 그 신앙이나 이웃에 대한 사랑이 그대로 자손들에게  전승되고 있음을 본다.

 

이제 47년, 멀잖아  나의 영세 50년이 가까와 온다. 50년전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미사때 사제가 신자들을 등지고 미사를 드리시던  모습에서, 신자들을 마주 보고 서서 미사를 드리시는것, 오른쪽은 남자들, 왼쪽은 여성들로  엄격히 구분되어 있던 좌석, 라틴어 미사에서 우리말 미사등...일일이 꼽을 수 없을만큼  교회 내의 개혁과 많은 양적인 발전및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양적인 발전에 비추어 그 당시의 따뜻함이나 만남과 사귐, 나눔이 나를 비롯하여 신자들에게 얼마나 뿌리 내리고 전승 되고 있는가를 묵상하게 된다.

 

한주일뒤인  4월 9일 -뜻깊은  2000년 대희년을 맞아 하느님의 백성으로 태어나는 새 형제 자매들에게  청량리 신자 공동체가 진정한 신앙의 못자리- 따뜻한 만남과 사귐을 주는  "살아있는 공동체" 로  길이 기억되기를   기도한다.   

 

*용소막 성당 :강원도에서 풍수원 성당 다음으로 오래된 1백여년이 넘는 유서깊은 성당.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가 있던 배론 성지 가는 길목에 있으며 원주교구에 속한 성당이다.붉은 벽돌의 뾰족한 첨탑이 아름다운 고틱 양식으로 지방 지정문화재로 보호되고있다.성당 구내에는 이곳 출신의 성서학자요, 교회사 연구의 선구자였던 선종완 신부의 기념관이 꾸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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