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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에 대하여.. [성경_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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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58.38.*]

2009-06-30 ㅣ No.846

 
질문:
 
최후의 만찬에서 하신 말씀
"내가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 는 마르코 복음서의 이 말씀은 어떤 뜻입니까?
위의 '새 포도주, 포도나무 열매'는 무엇을 상징하고, 왜 결코 마시지 않는다고 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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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 찬미 예수
 
위에 주신 질문은 마르코 14,25의 말씀으로서, 다음의 공관 복음서들에 유사한 말씀들이 있음을 먼저 상기하도록 합시다:
 
(마태오 복음서 26,2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와 함께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이제부터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
 
(마르코 복음서 14,2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
 
(루카 복음서 22,1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제부터 하느님의 나라가 올 때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마시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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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면서) 우선 마태오 복음서 26,29에 대한 바티칸 공인 영어성경인 NAB(New American Bible)의 주석이며, 위에 말씀드린 다른 복음서에 있는 유사 구절들에 대한 NAB 주석은 제공되지 않고 있습니다:

(발췌 시작)
Although his death will interrupt the table fellowship he has had with the disciples, Jesus confidently predicts his vindication by God and a new table fellowship with them at the banquet of the kingdom.

비록 (곧바로 있을) 당신의 죽음이 당신의 제자들과 그동안 가져왔던 식탁 공동체(table fellowship)를 가로막을 것이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에 의한 당신에 대한 옹호와 하느님 나라라는 연회에서 이들과의 새로운 식탁 공동체를 자신 있게 예언하신다(엮은이 번역).
(이상, 발췌 끝).
 
그러나 이 주석이 주신 세 개의 질문들에 대한 답글로서는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트리엔트 공의회의 가르침, 트리엔트 교리서(즉, 로마 교리서),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담은, 가톨릭 보편 교회의 교리서인,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주어져 있는 성체성사에 대한 가르침에 충실한 답글을 드리고자 이 글을 마련하였습니다.
 
참고: 이 글의 끝부분에 있는 마르코 복음서 14,25 및 이 구절의 전후 구절들에 대한 나바르 주석 성경의 해설도 또한 읽어 보실 것을 권합니다. 전후 문맥 안에서 그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답글 시작)
 
질문 1: 마르코 복음서의 이 말씀은 어떤 뜻입니까?

답변 1: 
 
최후의 만찬 때에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시선을 하느님 나라에서 이루어질 파스카의 완성 쪽으로 향하게 하시고자 [혹은, 최후의 만찬에서 주님 당신 자신께서는 제자들의 주의를 하느님 나라에서의 파스카의 구현(fulfillment) 쪽으로 향하게 하시고자] 그러한 말씀을 하셨다고,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403항의 첫 문장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게시자 주: 다음은, 1997년에 발행된 보편 교회의 교리서인,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1403항 전문입니다:
 
CCC 1403 최후의 만찬 때에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시선을 하느님 나라에서 이루어질 파스카의 완성으로 향하게 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와 함께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이제부터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 (마태 26,29) . 247) 교회는 성찬례를 거행할 때마다 이 약속을 기억하며“오실 분” (묵시 1,4) 께 눈길을 돌린다.  교회는 “마라나 타!” (1코린 16,22) , “오십시오,  주 예수님!” (묵시 22,20) 하고 그분께서 오시기를 청하는 기도를 드린다. “은총은 오고 이 세상은 지나가기를!” 248)
 
247. 루카 22,18; 마르 14,25 참조.
248. 「디다케」10,6: SC 248,180(Funk, Patres apostolici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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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 At the Last Supper the Lord himself directed his disciples' attention toward the fulfillment of the Passover in the kingdom of God: "I tell you I shall not drink again of this fruit of the vine until that day when I drink it new with you in my Father's kingdom."243 Whenever the Church celebrates the Eucharist she remembers this promise and turns her gaze "to him who is to come." In her prayer she calls for his coming: "Marana tha!" "Come, Lord Jesus!"244 "May your grace come and this world pass away!"245

최후의 만찬에서 주님 당신 자신께서는 (다음과 같이) 제자들의 주의를 하느님 나라에서의 파스카의 구현(fulfillment)으로 향하게 하셨습니다:(엮은이 번역).
 
243 Mt 26:29; cf. Lk 22:18; Mk 14:25.
244 Rev 1:4; 22 20; 1 Cor 16:22.
245 Didache 10,6:SCh 248,180.
 
게시자 주: 위의 해당 영문 본문 첫 문장의 끝에 있는, '다음과 같이'를 뜻하는, : 을 주목하십시요. 우리말 번역시에 이 부호가 누락이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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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2-1: '새 포도주'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답변 2: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333항에 의하면, 빵과 포도주는 창조계의 모든 생산물이라는 의미를 또한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에서의 '새 포도주'는, 이곳 지상에서의 생산물이 아닌, 하느님 나라에서 완성될 파스카에서 사용될 빵과 포도주, 즉, 강생하신 성자이신 예수님의 몸과 피를 의미할 것입니다. 이는 성찬 전례 예식 중의 실체변화(성변화, transubstantiation)에 의하여, 이 세상의 생산물인 빵과 포도주가, 천상 교회에 계시는 예수님의 몸과 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천상에 계신 예수님의 몸과 피를 의미할 것입니다. 이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신  "강생하신 성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 당신 자신"이시기 때문에, 천상에 계신 예수님의 몸과 피를 의미할 것입니다.
 
게시자 주: 지금 드린 답변은, 요한 복음서 6,51-56을 인용하고 있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1406항의 가르침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CCC 1406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그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요한 6,51-56) .
 
(요한 복음서 6,51-56)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52 그러자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5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54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내용 추가 일자: 2021년 6월 6일]
질문 2-2: '포도나무'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답변 2-2: 다음은, 마르코 복음서 14,25에 대한 "황금 사슬들"(Golden Chains, Catena Aurea)에 제시된 성 베다(St. Bede)의 주석입니다:

(발췌 시작)
Bede: Or else, Isaiah testifies that the synagogue is called the vine or the vineyard of the Lord, saying, "The vineyard of the Lord of hosts is the house of Israel." (Is 5,7) The Lord therefore when about to go to His Passion, says, "I will drink no more of the fruit of the vine," as if He had said openly, I will no longer delight in the carnal rites of the synagogue, in which also these rites of the Paschal Lamb have held the chief place. For the time of My Resurrection shall come, that day shall come, when in the kingdom of Heaven, that is, raised on high with the glory of immortal life, I will be filled with a new joy, together with you, for the salvation of the same people born again of the fountain of spiritual grace.

베다: 혹은 다른 곳에서, (i) 이샤야는,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유다교의 회당(the synagogue)이 주님의 포도나무 혹은 포도나무밭이라고 불린다고 증언합니다: "만군의 주닙의 포도밭은 이스라엘 집안이다" (이사야 5,7).

(ii)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당신의 수난(Passion) 쪽으로 나아가게 될 무렵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데: "나는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 [여기서부터, 아래의 질문 3에 대한 답변 시작] 이것은 마치 당신께서 공개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던 것 같습니다: 나는, 그 안에서 파스카 어린양의 바로 이러한 의식들이 또한 주된 자리를 보유해 왔던, 유다교 회당의 동물의 희생 제물 의식(the carnal rite)을 장차 더 이상 기쁨으로 받아들이지(delight in) 않겠다. 이는 나의 부활(Resurrection)의 시간이 장차 오게 되면, 하늘 나라 안에서, 즉, 불멸의 생명(immortal life)으로 구성된 영광(glory)과 함께 [내가] 일어나게 되는, 바로 그날이 장차 오게 되면, 나는, 너희들과 함꼐, 바로 이 동일한 백성이, 영적 은총(spiritual grace)의 샘(fountain)에서 유래하는(born of), 구원(salvation) 때문에, 새 기쁨(a new joy)으로 장차 채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이상, 2021년 6월 6일자 내용 추가 끝]

질문 3: 왜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마시지 않겠다'고 하셨나요?
 
답변 3: [내용 추가 일자: 2021년 6월 6일] 질문 3에 대한 답변인 위의 질문 2-2의 답변 중의 (ii)에 추가하여, [이상, 2021년 6월 6일자 내용 추가 끝] "진실로" 및 "결코" 등과 같은 표현들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수식어이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 그 자체가 아니므로, 내용 이해에 있어 무시하셔도 괜찮을 것입니다. 사실 최후의 만찬은, 그 날 밤 이후 곧 바로 이어져 진행되었던 희생 제사인, 십자가 상에서의 당신의 수난, 죽음과 동일한 제사이기에, 이 말씀은, 인류 구원을 위한 하느님 의지의 드러남(즉, 공적 계시의 완성)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당신을 희생물로 바치는 십자가 상에서의 단 한 번의 피를 흘리는 희생 의미할 것입니다. 즉, 전적으로 인류 구원을 위한 이 십자가 위에서의 희생은 하느님의 의지에 따른 것이기에 단 한 번의 실행으로 충분하므로, 십자가 위에서의 이 피를 흘리는 희생이, 유다교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동물 희생 제사들 처럼, 두번 다시 지상에서 반복되지(repeat) 않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고 계신다는 생각입니다. 이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본질적으로, 전지전능하시기에, 한 번 행사하시면 행사 그 자체로서 완전하여(사효성), 충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희생 제사와 [미사 성제 중의] 성찬례의 희생 제사는 동일한 제사입니다. “제물은 유일하고 동일하며, 그때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바치셨던 분이 지금 사제의 직무를 통해서 봉헌하시는 바로 그분이십니다. 단지 봉헌하는 방식이 다를 뿐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367항]

[내용 추가 일자: 2021년 6월 6일]
(발췌 시작)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바로 이 새 계약은, 그 결정적인 표지(標識)/패(牌)(mark)와 함께, 역사 안에서 현존하며, 그리고 바로 이 표지를 통하여 이 새 계약은 시공간의 다른 양상(different dimensions)들 쪽으로 드러내어졌습니다(is subjected to). 바로 이 새 계약은 장차, 하느님과 함께하는 영원 안에서, 모든 세기들의 끝에 그 정점(頂點)에 도달하여 그리하여 그 완미(完美, perfection)를 성취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내가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
(이상, 발췌 끝)
[이상, 2021년 6월 6일자 내용 추가 끝]
 
참고: 구원을 향한 지상에서의 여정의 시작인 세례가 각 개인에게 두 번 주어지지 않음을 또한 생각하시면, 아마도 이 말씀에 대한 이해가 쉽게 되리라 싶습니다.
 
게시자 주: 지금 드린 답변은 다음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항목들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CCC 1323 “우리 구세주께서는 팔리시던 그 밤에 최후 만찬에서 당신 몸과 피의 성찬의 희생 제사를 제정하셨다. 이는 다시 오실 때까지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세세에 영속화하고, 또한 그때까지 사랑하는 신부인 교회에 당신 죽음과 부활의 기념제를 맡기시려는 것이었다. 이 제사는 자비의 성사이고 일치의 표징이고 사랑의 끈이며, 그 안에서 그리스도를 받아 모시어, 마음을 은총으로 가득 채우고 우리가 미래 영광의 보증을 받는 파스카 잔치이다.”145)

145. 전례 헌장, 47항.
 
CCC 1326 끝으로, 우리는 성찬례를 거행함으로써 이미 천상 전례와 결합되며, “하느님께서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 (1코린15,28) 이 되실 그때의 영원한 생명을 미리 맛본다.
 
CCC 1340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식사 중에 당신 사도들과 최후의 만찬을 거행하시면서 유다인들의 파스카에 결정적인 의미를 부여하셨다. 과연 예수님께서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성부께 건너가신 새 파스카는 최후의 만찬에서 앞당겨 이루어졌고, 성찬례 안에서 거행되었다. 성찬례는 유다인들의 파스카를 완성하고 하느님 나라의 영광 중에 이루어질 교회의 궁극적 파스카를 미리 거행한다.
 
CCC 1362 성찬례는 그리스도의 파스카를 기념하며, 그분의 몸인 교회의 전례 안에서 그분의 유일한 희생 제사를 현재화하고 성사적으로 봉헌한다. ‘감사 기도’ 의 각 양식들 안에는 성찬 제정의 말씀 후에 아남네시스 또는 기념이라고 부르는 기도가 있다.
 
CCC 1366 성찬례는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재현(현재화)하고, 이를 기념하며, 그 결과를 실제로 적용시키기 때문에 희생 제사이다.
 
우리 하느님이시며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을 위해 영원한 속량을 실현하시려고 십자가의 제단 위에서 중개자로서 돌아가심으로써, 당신 자신을 단 한 번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셨다. 그러나 그분의 죽음으로 그 사제직이 끝나서는 안 되었으므로(히브 7,24.27) , “잡히시던 날 밤” (1코린 11,23) 최후의 만찬에서 사랑하는 당신 신부인 교회에게 (인간의 본성이 요구하는) 눈에 보이는 제사를 남겨 주고자 하셨다. 그 제사에서는 십자가 위에서 단 한 번 이루어진 피의 제사가 재현될 것이며, 그 기념이 세상 끝 날까지 계속될 것이고, 그 구원적 효과는 우리가 날마다 저지르는 죄의 용서에 적용될 것이었다.191)
 
191. 트리엔트 공의회, 제22회기, 미사성제에 관한 교리, 제1장: DS 1740.
 
CCC 1367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희생 제사와 성찬례의 희생 제사는 동일한 제사이다. “제물은 유일하고 동일하며, 그때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바치셨던 분이 지금 사제의 직무를 통해서 봉헌하시는 바로 그분이시다. 단지 봉헌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192)“십자가 제단 위에서‘단 한 번 당신 자신을 피 흘려 봉헌하신’저 그리스도께서 그 똑같은 제사를, 미사로 거행되는 이 신적 희생 제사에서 피 흘림 없이 제헌하고 계시기 때문에`……`이 희생 제사는 참으로 속죄의 제사이다.”193)
 
192. 트리엔트 공의회, 제22회기, 미사성제에 관한 교리, 제2장: DS 1743.
193. 트리엔트 공의회, 제22회기, 미사성제에 관한 교리, 제2장: DS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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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자 주: 질문으로 주신 마르코 복음서 14,25 및 이 구절의 전후 구절들에 대한 나바르 주석 성경의 해설은 다음에 있습니다. 읽어 보실 것을 강력히 권합니다. 전후 문맥 안에서 그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참고 1: 나바르 주석 성경은 현재까지 가장 방대한 가톨릭 주석 성경으로서, 오프스 데이의 설립자(Founder of Opus Dei, 1928년 설립)이시고 스페인의 나바르 지역에 1952년에 사립 교황청립 나바르 대학교를 설립하신, Saint Josemaria Escriva(1902-1975년, 2002년 10월 6일자로 성인 반열에 오르심)께서 이 주석 성경의 집필 작업을 시작하셨으며 나바르 대학교 신학과 교수진들이 작업을 완료하여 2000년 대희년에 즈음하여 발간된, 현재까지 가장 방대한, 가톨릭 교회 교도권의 가르침에 매우 충실한, 가톨릭 주석 성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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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순태 마태오 교수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 10시간 
(나바르 주석 성경의 해당 구절에 대한 해설의 우리말 번역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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