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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 삶의 이야기(당신은 내 안의 천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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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4rang2] 쪽지 캡슐

2010-01-21 ㅣ No.214

30여년 전 저는 지금의 제 남편을

중매로 만났습니다.

70년대... 그때 농촌은 정말로

어려운 시기 였습니다.

저희 친정 집도 그랬지만 제 신랑도

넉넉치 못한 집에서 자라나

많이 배우지 못한 그런 사람이였습니다.

하지만 정말 성실해 보이고

착해 보이는 남편을 믿고 선을 본지

약 3개월 정도 후에 전 결혼을 했습니다.

제 남편은 많이 배우지 못한 관계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원양 어선 배를 타는 일 밖에 없었습니다.

한번 배를 타고 나가면 2~3달씩은

떨어져 지내야만 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행복 했습니다.

어려운 시대 였지만 서로를 아껴주고

보둠어 주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날 제가 첫 아이를

임신을 했씁니다.

제가 임신을 해서 몸이 무거울때에도

남편은 원양 어선을 타야만 했고,

제 곁에 항상 같이있어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남편은 약속 했습니다.

"출산 하는 날만큼은 꼭 옆에서 같이 있어 줄께"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

제가 출산을 하는 날이 왔습니다.

남편은 약속대로 출산 하는 날

제 곁에 있어 주었습니다.

지금은 임신 해서 출산을 하면

으레 모두다 병원으로 가지만

그당시에는 집에서 출산을 하는것이

다반사 였습니다.

출산 하는 날 동네 어른이

저의 출산을 도와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지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아이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동네 어른 분께서는

" 첫 출산이라 그런지 많이 더디네.."

저는 죽을 만큼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곧 내 아이가 생긴다는

생각으로 정신을 놓지 않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요

아이가 태어 났습니다.

그런데 아니는 울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죽어서 태어 난 것입니다. 

동네 어른 분 말씀이 아기 나오는 길이

남들 보다 너무 좁아서

아기가 나오다가 숨이 막혀서

죽은 것같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남편은 저 몰래 그 아이를

뒷산에 묻었습니다.

전 죽은 아이 얼굴

한번 이라도 보려고 했지만 남편은 보면

더 못잊는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아기를 묻고 왔습니다.

첫 아들을 그렇게 잃고...

제 남편 얼마난 허무 했을까요?

전 남편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그러는 저에게 남편은 아무 내색 하지 않고

저에게 더욱 따듯 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는 남편에대해 전 결심 했습니다.

'꼭 이 남자를 닮은 아이를

낳아 주리라..' 고 말이죠.

그리고 몇개월이 지나

전 두번째 임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번의 아품이 있어서 그런지

전 두번째 아이 임신에 더욱 신경을 썼습니다.

또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출산날...

어김없이 동네 분들이 저의 집으로 와

제 출산을 도와 주셨습니다.

병원에 가고 싶었지만

어마어마한 병원비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집에서 낳기로 했습니다.

하늘의 장난일까요?

전 또 첫번째 아이와 같은 아품을 격었습니다.

두번째 아들을 뒷산에 묻고 내려오는

남편의 마음은 어떠 했을까요?

전 누워서 울기만 했습니다.

이런 제 운명을 탓하면서 말이죠.

남편은 계속 괜찮다 괜찮다...

말을 계속 해주었지만 전 그말이

귀에 들어 오지 않았습니다.

전 도저히 남편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습니다.

출산을 하고 3일째 되던날밤...

전 남편의 곁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두번이나 남편에게 아품을 준

제가 더이상 남편 곁에

있는 다는 것은 남편에게 죄를 짓는 다는

생각때문에 제가 떠나는 것이

이 남자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 여보... 미안해요. 저보다 더 좋은 여자

만나서 아이도 낳고 행복하게 살아요"

이렇게 짧막한 편지를 남긴채

전 대충의 옷가지를 챙겨 집을 나왔습니다.

어디를 가겠다는 행선지도 없이

무작정 나왔습니다.

계속 흘러 내리는 눈물을 닦으면서

마을 어귀를 빠져나가려고 할쯔음에 뒤에서

저의 손을 낚아 채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뛰어 왔는지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남편이였습니다.

"니 지금 어데가노?

그까짓 아기가 무슨 대수고?

그냥 우리끼리 잘 살면 되지!"

남편은 이렇게 말하며

저를 꼭 안아 주었습니다.

두번째 아이 까지 잘못되고 나자 남편은

혹 제가 딴 생각 이라도 품을까봐

며칠밤을 잠을 설치며

제 옆을 지켰노라고 말하더군요.

그렇게 저는 남편의 손을 잡으며

다시 집으로 돌아 왔고,

예전 보다 더욱 극진히

남편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전 또다시 임신을 하게 되었고

이번마저 잘못되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돈을 계속 모으고 있었습니다.

자연 출산이 힘들면

제왕절개라도 해볼 생각이였습니다.

그때 당시 돈으로

100만원을 비축을 해 두었습니다.

요즘은 어떨런지 모르겠지만 그때에는

제왕절개 수술은 의료보험 혜택이

없었기 때문에 얼마의 돈일 들지

예측 할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출산 날이 다가 오고

전 급히 병원으로 옮겨 졌습니다.

처음엔 자연 분만을 시도 했지만

의사 선생님께서 안되겠다 하시며

제왕절개를 할 것을 제안 하셨고

저는 수술실로 옮겨 졌습니다.

제 배를 새로로 반을 가르고

저의 아들이 태어 났습니다.

비록 제 몸에 수술 자국 흔적이

크게 남았지만 그것보다도

아들을 얻은 기쁨이 더 켰습니다.

남편 얼굴에서 결혼 후 처음으로

환하게 웃음 짓는 모습을 봤습니다.

저를 한없이 아끼고 사랑해준 남편에게

웃음을 줄 수 있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전 행복 했습니다.

병원비 70만원을 내고 저는 퇴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밑으로 딸아이를 한명 더

출산을 했는데 이 딸이 효녀 인지 딸아이는

자연 분만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네 식구가 지금까지

알콩 달콩 어려운 시기도 많았지만

한 가족을 이루며 살아 가고 있습니다.

어렵게 얻은 두 아이는 아직까지

크게 속썩인일 없이 자라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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