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동성당 게시판

제대를 무대로 바꿈을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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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학 [yhim] 쪽지 캡슐

1999-09-21 ㅣ No.1577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가끔 소성전에 들어갈 때면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는다. 아무곳에나 방치된 독서대안에는 너저분하게 널려있는 성가책들과 휴지조각을 보게되고, 더 통탄할 일은 제대가 뒷쪽 벽으로 치워져 있거나 아예 무슨 탁자처럼 변해 버린 현상을 보면서 통제불능의 소성전을 이대로 방치하기에는 너무 상처가 크다고 판단된다. 잦은 교육과 행사로 인해 소성전이 아닌 강당으로 변해버렸기에 하는 말이다. 궁리끝에 제대보호를 위한 무대용 휘장까지 설치해 줬는데 이 또한 무용지물이라니???

우리 아이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이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어른들의 책임이 더 크다고 판단되어 이제라도 소성전에서 일어나는 모든 집회에 대해 "제대 사수"를 위한 선전포고를 아니할 수 없다.

본당 실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고민없이(아픔없이) 행해지는 제대의 수난을 방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10주년 행사로 청년들의 열린음악회가 그동안의 제대 사수에도 불구하고 고민없는 다수의 비도덕적인(?) 무리들에 의해 대성전에서 치뤄진다고 하니 이 때에도 제대의 방황을 보아야하고, 그래서 2000년전의 예수라는 한 인간의 죽음도 떠 올리게 된다.

그 전에도 어느 중학교의 음악행사가 없었던 바는 아니지만 자칫 원칙을 무시한 엉뚱한 발상이 없기를 바라며, 평신도까지 나서서 무슨 전쟁을 선포할 수밖에 이유를 베네딕도 수도회의 김인영 신부님의 글로써 대신하고자 하오니 이 번 행사를 기획하는 모든 분들은 부탁컨데 이 아래의 글을 꼭 읽어주기 바란다. 또한 전례 봉사를 담당하는 미사해설자와 독서자, 성찬봉사자, 제대봉사자, 꽃꽃이회, 복사단과 그 자모회 여러분께도 우리의 실수에 대한 책임의 통감과 동참을 구하는 바이다.

본인은 회사 일을 미루면서까지 이글을 띄울 수 밖에 없었다.

 

제대는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 성찬례를 거행함으로써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인간이 맺은 구원의 계약을 갱신하는 장소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통하여 하느님께 올리는 제사를 드리는 곳이 바로 제대입니다. 한편 제대는 주님의 최후의 만찬, 하늘 나라의 잔치가 벌어지는 식탁이기도 합니다. 성찬례를 거행하면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먹고 마시는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미리 천상 잔치를 맛보게 만드는 장소입니다. 이처럼 제대는 그리스도의 제사가 올려지는 곳, 그리스도와 함께 온 신도가 같이 친교의 식사를 나누는 곳입니다.

 

미사의 말씀 전례 때 성서를 읽기 위해 제대 앞으로 나간 독서자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제대를 향해 인사를 드리고, 어떤 이들은 감실을 향해서, 또 다른 이들은 사제에게 인사를 드리는가 하면, 어디를 향해서 고개를 숙여 존경을 드러내야 하는지 몰라 은근슬쩍 그냥 독서대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당의 중심이 어디이며, 우리는 어디를 향해서 존경의 뜻을 드러내야 하는가 하고 물으면, 사람들의 대답도 가지 가지입니다. 제대가 중심이라고 하는 이도 있지만 어떤 이는 감실 안에 성체가 모셔져 있으므로 당연히 감실이 성당의 중심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고, 미사를 드리는 중에는 제대가 중심이고 미사를 드리지 않을 때는 감실이 중심이라고 타협적인 자세를 보이는 사람도 있으니, 자연 우리 신자들이 어디를 향해 고개를 숙여야 할지 당황해할 수 밖에요.

 

언젠가 한 본당 수녀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이 수녀님이 계신 성당은 감실이 제대 바로 뒤 성당 벽에 놓여 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제의방에서 나와 제대와 감실 사이를 지나가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제대에 등돌린 채 감실에 인사하려다 보니 갑자기 "성당의 중심은 제대이다"라고 교육받았던 생각이 나더랍니다. 그래서 다시 몸을 돌려 감실을 뒤로 한 채 제대를 향해 인사를 하고 그냥 지나치려는데 왠지 감실 안에 모셔진 예수님께 죄스런 마음이 들어 다시 몸을 돌려 감실을 향해서 인사를 하고서야 그 사이를 빠져 나왔다고 합니다. 마침 본당신부님이 성당 안에 들어오셨다가 그 광경을 보시고는 수녀님을 불러 그 까닭을 묻기에 사실대로 이야기하니 그 본당신부님 왈, "수녀님, 전례중에는 물론 제대가 중심이 되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아무 전례도 거행되지 않으니까 당연히 예수님이 계신 감실이 중심이 아니겠어요?" 하시더랍니다.

 

신학원에서 저한테 "성당의 중심은 제대이다"라고 단단히 교육받은 그 수녀님, 본당신부님 말씀을 거역하기도 쉽지 않은 일, 그래서 그 다음부터 감실과 제대 사이의 지름길을 포기하고 제대 앞으로 지나가기로 결심하셨답니다. 제대 바로 뒤에 감실이 있으니, 제대에다 절한 것인지 아니면 감실에다 절한 것인지 본당신부님은 알 수 없을 것이요, 또 한 번으로 제대와 감실 모두에 인사한 격이니 일석이조가 아니냐며 웃으시던 그 수녀님이 생각납니다. 제대와 감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서로 다투고 있는 것은 분명 아닐진대, 오늘날 각 성당에서는 신자들이 제대와 감실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일을 자주 볼 수 있음은 무슨 까닭일까요?

 

성당이 무엇하는 곳입니까?  미사, 즉 성찬례를 거행하는 장소가 아닙니까?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서 성찬 전례를 거행합니까? 당연히 제대 위에서 하게 되죠.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성찬례는 가장 중요한 예식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있었기에 우리 구원이 이루어졌고, 따라서 우리는 영원히 이 십자가 제사를 기념해야 합니다. 이 십자가 제사가 당신의 죽음 후에도 계속되도록 예수님은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기 전날 저녁 최후 만찬을 거행하시면서 "너희는 이 예식을 행함으로써 나를 기념하라"고 당부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성찬례, 곧 미사인 것입니다.

 

이같이 그리스도교의 가장 중요한 예식이 이루어지는 제대가 성당의 중심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성당을 새로 지어 축성할 때도 제대 축성이 가장 큰 예절이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으며, 성당이 파괴된 후에도 제대가 있었던 자리를 보존하는 유럽의 일부 교회의 관습도 이러한 사실을 말해 줍니다.

 

성찬례가 이루어지는 장소인 제대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희생을 생각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우리 또한 예수님처럼 자신을 희생하는 삶, 다른 이의 양식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내던지는 삶을 살아야 하며, 예수님이 하느님 나라의 선포에 온 생을 거셨듯이 우리도 복음 선포에 우리 자신을 바쳐야 함을 상기시킵니다. 예수님의 제사로써 우리가 하느님과 화해하고 하느님 백성을 이루는 모든 이들과 일치하도록 요청받았음을 생각하면서, 하느님 뜻을 따르는 삶, 내 이웃과 하나되고자 노력하는 삶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반성하는 계기가 바로 제대 앞에 서 있는 때라 할 것입니다.

 

미사를 드릴 때가 아니더라도, 우리 신앙 생활의 뿌리가 되는 십자가의 제사가 이루어지는 장소인 제대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남으며, 따라서 우리가 언제나 성당에 들어갈 때마다 제대를 향해서 인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뜻깊은 장소인 제대가 전례뿐 아니라 우리 신앙 생활의 중심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요, 따라서 우리가 성당에 들어설 때 어디를 향해서 인사를 드려야할지 몰라 머뭇거릴 필요는 더 이상 없겠죠?

 

* 감실과 제대의 관계

감실은 성체를 모셔두는 자리입니다. 성체를 따로 모시는 까닭은 병자를 위해서, 어떤 사정으로 인해 미사에 참여하지를 못하는 신자에게 또는 성체를 영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나아가 미사 때 신자들을 위해 충분한 제병을 준비하지 못한 경우를 대비하여, 또한 미사 때 남은 성체를 보관하기 위하여서도 감실은 이용됩니다. 물론 중세 이후 내려온 관습에 따라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흠숭하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미사성제로서의 성체성사야말로 미사 없이 성체께 바쳐지는 경신례의 원천이요 목적이다."「성체공경 훈령」 3항과 「미사 없는 영성체와 성체신심 예식서」 2항에 나오는 이 선언은, 성찬례로 대표되는 제대와 성체신심으로 대표되는 감실과의 관계를 단적으로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즉, 감실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제대 위에서 거행되는 성찬례와 그로써 드러내고자 하는 파스카 신비를 신자들에게 상기시키는 데 그 본래의 목적이 있

는 것입니다. 이 말을 달리하면, 제대와 연계되지 않은 감실, 성찬례와 상관없는 감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됩니다. 감실이 신자들의 눈을 제대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면 그것은 감실의 본래 존재 목적에도 어긋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중세 이래의 전통은 예수님의 현존인 성체가 모셔진 곳이라 해서 감실을 특별한 자리를 마련하여 왔습니다. 이때문에 이미 앞에서 말한 바대로 감실은 제대를 밀어내고 성당의 주인공인 양 인식되기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조가 대부분의 성직자·수도자들을 위시하여 신자들의 마음 안에 여전히 자리잡고 있는 이때, 위의 교도권의 가르침은 대단히 용기있는 선언이라 할 것입니다.

 

가능하면 성당 안이 아니라 따로 경당을 만들어 거기에 감실을 안치하라고 권고합니다. 파스카 신비의 장소인 제대는 감정보다는 이성에 호소하는 데 반해 감실은 예수님의 현존이라는 감상적 정서에 호소하므로 신자들의 시선을 더 끌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성당 안에 감실이 있을 때 신자들의 마음은 제대를 향하지 않습니다. 공간 확보가 어렵다거나 어떤 특별한 사정으로 경당을 마련할 수 없을 때 차선책으로 성당 안의 뛰어난 자리에 모시라고 교도권은 말하고 있습니다. "뛰어난 자리"가 성당의 중앙 위치, 즉 제대의 존엄성을 해치는 자

리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제대의 존엄성을 확보하기 위해 성체를 모실 경당을 따로 마련하라고 요청하던 교도권이, 제대의 위치를 위협(?)할 만한 중요한 자리에 감실을 배치하도록 할 리는 없지 않습니까?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뛰어난 자리"란 성당의 제대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성체의 존엄성을 확보할 수 있는 조용하면서 기도 분위기를 돋울 수 있는 자리, 성당의 한 모퉁이 자리와 같은 곳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위의 문헌에서 제대 위에 성체를 모시라는 권고는 중세 이래 내려온 관습을 인정한 것으로서, 전통주의자들과의 타협이 드러나는 장면이라 하겠습니다.

 

로마에 있는 4대(大) 성당(성 베드로, 성 바울로, 라떼란,성모 대성당)을 위시한 대부분의 전통적 양식의 성당에 들어가 보면 제대 외에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빨간 감실등은 눈에 띄지도 않지요. 성당 한쪽 구석에 소경당을 만들어 거기에 성체를 안치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로마 성당들의 구조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까?

 

감실 앞에 앉는 것은 파스카 신비를 묵상하기 위함인데, 제대는 바로 그러한 파스카 신비의 상징 자체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제대가 언제나 우리 신앙의 중심 자리에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감실 자체를 무시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감실 안에 모셔진 성체를 통해 우리는 여전히 파스카 신비를 묵상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감실 때문에 제대의 중요성이 감소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에서 감실의 위치를 현명하게 배치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 원문을 축소 편집한 것이므로 자료가 필요하신분은 본인의 ID yhim@catholic.or.kr로 메일을 주시면 보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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