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검정성당 자유 게시판

등대 옆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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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세택 [stwee] 쪽지 캡슐

2002-11-26 ㅣ No.2119

                 

 

               등대 옆에서

 

 

 

차겁고 캄캄한 겨울 바다에 서서 한줄기 빛을 멀리 비추며 서있는 등대를 본 적이 있는가.

 

동해안 최북단에 있는 조그마한 어항인 대진항에서 캄캄한 밤에 아무 것도 없는 차가운 겨울 바다를 가느다란 빛을 천천히 돌아가면서 멀리 비추고 서있는 하얀 등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넋을 잃고 밤새도록 바라보았다.

 

오징어잡이배들도 사라지고 개 짖는 소리도 그친 겨울해변에 파도만 소리내며 하얗게 거품으로 부숴지는데 묵묵히 서서 빛을 보내는 등대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멀리 수평선 너머에서 밤새도록 고기를 잡다가 새벽에 지친 몸으로 돌아오는 선원들이  저 등대불빛을 바라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또 험난한 파도를 뚫고 짙은 안개속을 빠져나온 배가 등대불빛을 발견하면 얼마나 기쁘고 안심이 될까 하는 생각도 하였다.

 

내 삶이 피곤하고 지쳐서 간신히 살아갈 때 만나면 등대불빛을 만난 것처럼 반가울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또 힘들게 살아가는 주위의 친구들에게 내가 등대처럼 반가운 빛을 보내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고 자문을 해봤다.

 

내 곁에 내가 삶의 무게에 지쳐할 때 묵묵히 희망의 빛을 비춰주는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다른사람에게 등대 같은 존재가 되었으면 더욱 좋겠다. 집채만한 파도가  몰려들고 온 세상이 휩쓸려 갈 때에도 흔들림없이 빛을 보내주는 그런 등대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늘에는 얼어붙은 별들이 깜박거리고 은빛 달 그림자만 반사하던 바다가 새벽이 되니 도루묵잡이 배들이 갑자기 불빛을 밝히고 떼로 나타나서 북쪽으로 몰려가고  한참 후에 손톱만한 태양이 바닷물을 끓이지도 않으면서 삐죽히 솟아오를 때까지 하얀등대는 말없이 긴 빛을 돌리면서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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